Museo Storico

[Highway61] Hudson 1952 Hornet #91 Tim Flock

이박오 2017. 4. 21. 14:17


 



이 차는 1952년 나스카(NASCAR) 주관 대회에서 8번 우승하고 그랜드 내셔널 챔피언이 된 팀 플록(Tim Flock) 의 허드슨 호넷 91번 입니다. 예전에 팀 칼리버에서 만든 전문오픈 형태의 43 스케일로 소개했던 적이 있지요. 하이웨이 61에서 만든 모델은 색깔과 데칼이 조금씩 틀립니다.





91번 호넷은 현재 유명한 위의 하늘색 버전과 하이웨이 61의 버전 말고도 기록 사진들에는 아래와 같이 다른 버전들이 좀 더 있는데, 대회 마다 페인팅을 다시했으니 오히려 당연한 것이겠지요.








어쨌건, 이 모델은 1952년 팀 플록이 이 차로 그랜드내셔널 챔피언이 되었을때 찍은 사진, 그리고 같은 호넷 드라이버로 유명한 허브 토마스 (Herb Thomas) 와의 레이싱 사진이 찍혔을 때 사진들에 등장하는군요~





 






호넷은 허드슨 자동차 제조사의 마지막 모델이지요. 1940 년대에 활약했던 허드슨의 전 모델은 코모도(Commodore) 였는데 48년의 마지막 모델에 이르면 요 호넷과 거의 비슷한 모습의 둥글둥글 유선형 50년대 초 스타일로 바뀌게 됩니다. 다시 말해, 51년 등장한 호넷은 48년 코모도와 거의 다르지 않다는 말인데요, 앞 부분 그릴의 크롬 덩어리가 합쳐지고 더 과장되서 전형적인 50년대 초 모델의 형태가 되었다는 점을 빼고는 스타일이 거의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자동차 산업의 호황이 막 시작되던 미국에서는 좀 특이한 일입니다. 신형 호넷은.. 말하자면, 이미 구닥다리 였던 것이죠. 뒷쪽 테일 램프는 좀 더 구식이어서 40년대 모델들과 크게 다르지 않고, 동시대 올즈 88 이나 뷰익 로드마스터같은 위세당당한 명차들 앞에 서면은 웃기지도 않을 '호넷' 크롬 덩어리 빼면은 거의 아무것도 없이 발가벗은 거나 다름 없는 형태입니다. 하긴 뭐 당시 유명한 모델들 중 포드 커스텀이나 머큐리 8 같은 강력한 퍼포먼스 쿠페들도 이렇게 단촐 민망한 엉덩이를 갖고 있기는 하지요.




옆모습에서는 확실히 유려한 스트림라인(유선형), 그리고 샤시와 하판을 일체형으로 확 낮춰버린 스텝다운 차체가 눈에 띄는군요. 구닥다리이기는 하지만, 이런 정도의 사이드 라인을 보여주는 다른 차는 머큐리 8 정도에 불과하며, 핫-로드의 명차 중 하나인 머큐리와는 달리 호넷은 순정개체가 지금도 훨씬 더 대접을 받지요. 뒷바퀴를 반은 덮어버린 리어휀더까지 합쳐지면 두껍지만 물흐르듯 흐르는 허드슨 호넷의 라인은 왠지 동시대에 가장 우아했던 뷰익을 능가할 것 같기도 하고요. 50년대 초반 미쿡 자동차 디자이너들은 아무것도 없는 이런 라인을 민망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으나, 현재의 눈으로 보면, 4도어 세단이나 클럽쿠페에서는 심지어 절대적인 럭셔리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혹시 살짝 들린 뒷 모습에서 은근히 눈에 띄는 차 밑바닥의 거대한 연료통을 보셨나요? 호넷은 결코 만만한 구닥다리 차량 만은 아니었습니다. 호넷이 활동했던 51-54년 정도의 미국내 양산차 경기 실적을 보면 아시겠지만, 놀랍게도 이 구닥다리가 바로 그 시대를 평정한 유아독존의 1인자였으니까요. 머슬의 시조들인 올즈 88 과 머큐리, 전통적인 강자인 쉐보레와 포드, 그리고 최후의 크라이슬러 300... 요 정도가 가끔씩 고개를 디밀 뿐, 호넷은 레이싱 트랙을 철저하게 유린한, 무지막지한 1인자였습니다.





특히 52-53년은 허드슨 최고의 해들이었죠. 당시 나스카의 대표적인 레이서들 대다수가 이 차를 몰아보았습니다. 리 페티(Lee Petty) 같이 이 차를 몰지 않은 사람도, 허브 토마스 처럼 이 차로 가장 큰 명성을 얻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대부분의 경우는 팀 플록 처럼 이 차로 명성을 쌓고나서는 다음 스테이지로 이동하게 되지요. 왜냐, 허드슨 사는 바로 이 차로 망하게 되니까요.. 호넷은 빅 쓰리가 아닌 마이너 제조사에서 만들었음에도 나스카를 평정한 특이한 차량이며, 바로 이러한 성공이 오히려 나스카의 발전, 즉, 빅 쓰리 (예를들어 크라이슬러) 의 본격적인 개입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팀 플록과 91번 호넷은 바로 거기에서 나름 큰 역할을 한 상징적인 존재들입니다. 아쉽게도 이 모델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43스케일 모델에는 원래 조수석 드라이버 명이 Jocko Flocko로 되어 있었지요. 바로 나스카 역사상 유일한 원숭이 드라이버(?) 입니다.



사실 조코가 활동한 시기는 52년 이 아니라 53년 이었으니 이래저래 이 모델에 쓸 수 있는 이름이 아니긴 하지요. 원숭이 조코는 대외 홍보용으로 전년 챔피언인 팀 플록의 옆에 타게(묶여있게..) 되었는데 53년 7번의 경기를 거치면서 꽤나 유명해졌습니다.




하지만, 8번째 노스캐롤라이나 롤리에서 벌어진 경기에서 조코는 벨트(결박..)을 풀고, 드라이버가 앞쪽 타이어를 확인할 수 있게 체인을 당기면 열수 있게 되어 있던 도어를 열어제낍니다. (아마 발판 쪽이었겠죠?) 원숭이니까요.. ㅠㅠ 그러다 땅에서 튄 돌에 머리를 맞은 조코는 광란에 미쳐 날뛰면서 팀 플록 주변을 날아다니고, 괴성을 질러대고, 목을 감고 매달리고, 스티어링 휠에 올라타고, 뽀뽀하고, 눈 뒤집고... 막 이럽니다.. ㅠㅠ 당시 2등으로 달리고 있던 팀 플록은 업혀있던 조코를 떼서 던져버리기 위해 핏스탑을 해야 했고, 그 때문에 (그런데도) 3등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조코는 바로 은퇴(당)했지요.






팀 플록은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택시 운전기사였고, 형들은 밀주로 한가닥 하던 지역 보스급 삼촌을 위해 일하던 달빛(Moonshine) 레이서들이었죠. 큰형 밥 플록 (Bob Flock) 는 문샤인 레이싱으로 경기도중에 체포되기도 하는 등, 그 분야의 유명 인사였고, 둘째 형 폰티(Fonty Flock) 역시 빌 프란스(Bill France Sr.)가 나스카를 설립하기 이전에, 그랜드 내셔널 에서 챔피언도 하고, 이름을 날린 명 드라이버 입니다. 심지어 여동생 이델(Ethel) 까지 레이서 였으니, 1951년인가, 한번은 네 명 모두 한 경기에 출전하기도 하는 등, 비행 플록들(Flying Flocks) 혹은 미친 플록들(Mad Flocks) 으로 이름이 높은 골수 드라이버 집안이 되었죠.



잘나가는 레이싱 일가였으나, 밀주에 불법에 근본이 가난한지라 당근 차를 살 돈이 없었던 막내 팀은 레이스 광이자 자동차 딜러였던 친구 테드 체스터(Ted Chester) 가 마련해준 올즈 88 (큰형의 차 Grey Ghost 를 본딴 Black Phantom)로 1951년 본격적으로 레이싱을 시작합니다. 첫해부터 팀은 7 경기에서 우승, 둘째 형 폰티(Fonty)의 뒤를 이어 내셔널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1위는 레드 바이런 Red Byron), 다음 해에 체스터는 신형 호넷으로 차량을 교체해 주었는데, 이미 상기한대로, 이 차로 팀 플록은 그랜드 내셔널의 위업을 처음 달성하지요.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팀 플록이 속한 레이싱 팀의 구성 배경입니다. 당시 허드슨 사는 단일 브랜드 호넷에 기업의 사활을 걸고 있었으므로, 레이싱에도 전력을 다해 지원해 주었는데, 그렇다고 허드슨 팩토리 팀이 결성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정도의 예산은 없었던 것이죠. 단지, 회사는 각 개인들이 팀을 만들 때 온갖 기술적, 물질적 지원을 최대한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팀 플록의 경우 그의 차량 소유주이자 팀장인 테드 체스터는 당장 53년의 팀 운영을 고민해야 했고, 어느 날 펫샵에서 '좋고'라는 원숭이를 보고는 '좋고' '좋구먼' '좋더라' '좋같네 (어익후!)' 뭐 이러고 있다가 불현듯 '좋고 플록코' 라는 이름을 생각해 낸 것입니다.


그는 바로 원숭이를 사서 자신의 차를 돌보던 블랙번 형제들(더글러스Douglas와 벤 B. 블랙번)의 블랙번 오토서비스(Blackburn Auto Ser.) 로 가서는 거기있던 팀을 설득하기 시작했고, 팀의 경우 미친 형제들은 물론이고, 나머지 누이 마저 무려 비행 쇼의 낙하산 쇼걸이었던 정도로 쇼맨쉽이 풍부한 집안 출신이었던지라, 까라면 까지요의 분위기가 되었는데, 이렇게 팀을 설득해 놓고 나니 다시 문제는 나스카의 대장이던 빌 프란스 였습니다. 이건 뭐 약팔이도 아니고, 그렇지 않아도 처음 생겨난 나스카의 권위를 확립해야 했던 빌이 그딴 쇼맨쉽을 허용할 리는 만무했지요.


해서 체스터의 팀은 대기업에서도 종종 쓰이고는 하는 선조취 후보고의 절차를 따르기로 합니다. 블랙번 형제들은 몰래 조코 플로코의 자리를 만들고, 체스터는 몰래 원숭이를 반입했으며, 팀은 몰래 원숭이를 자리에 앉혔(묶었)지요. 원숭이가 등장한 첫 경기에서는 모두가 놀랐습니다. 원숭이는 놀라서 비명을 질러댔고, 같이 달리던 다른 드라이버들도 희번덕거리는 원숭이를 보고는 심쿵심쿵.. 펜스에 부닥칠 뻔 했다고.. (팀 플록의 회고담 입니다) 뭐 결국 관객도 심쿵하여 원숭이가 일약 스타가 되었으니 이제 빌 프란스고 나발이고 대놓고 조코 플로코의 이름도 차에 써주고 유니폼도 맞춰주고, 그렇게 이 팀-좋고 듀오가 결성된 것이죠. 비록 8번으로 끝나고 말지만, 5번째 인가 레이스에서는 팀-좋고 듀오는 우승도 차지하여 조코 플로코는 역사상 유일한 원숭이 레이스 위너도 됩니다!




하지만, 조코는 결국 롤리에서의 사고와 발작으로 강퇴당했으니 (주니어 존슨 Junior Johnson 은 팀 플록의 등에 매달린 원숭이가 마치 목을 조르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고 회고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조코의 상태를 궁금해했고, 팀은 항상 '좋고는 다 좋은데 사인을 할 줄 몰라서 잘라버렸어' 라고 대답했다고 하지요. 사실, 아틀란타의 팀 플록의 집으로 돌아간 조코는 경기 후유증으로 얼마 못 살았다고 합니다. 역사상 유일한 동물 드라이버에 역사상 유일하게 우승도 한 동물 드라이버 답게 역사상 유일하게 사고 후유증으로 사망한 동물 드라이버가 되기도.. ㅠㅠ..




요놈도 하이웨이61 모델인지라 물론 많은 기믹들이 있습니다. 전문개폐는 물론이고, 후륜과 같이 돌아가는 드라이브 샤프트와 냉각팬, 제대로 재현된 엔진에는 트윈 H 로고가 붙은 커다란 쌍발 카뷰레터가 인상적이네요.




좀 더 자세히.. 라지에터에 붙어있는 스티커에도 뭐라고 잔뜩 써있기는 한데, 물론 불가독합니다.




정면에서 보니 트윈 H 파워가 더욱 인상적으로 보이네요. 물론 효과도 뛰어났습니다.




반대 쪽에서 배터리 뒤에 보이는 오렌지색 통은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뒷쪽에서 찍은 모습입니다. 레이싱 스펙 답게 무게가 나가는 스패어는 과감하게 빼버렸고, 기름 넣기 편하라고 원래는 오픈 기믹이 있는 주유구 리드도 아예 떼어버렸습니다.





스티어링 휠에는 커다랗게 허드슨 로고가 콱 박혀 있고, 대쉬보드 에는 알피엠과 스피드미터 등이 있군요.





하이웨이61 이 늘 그렇듯, 썬바이저와 글로브 박스도 움직입니다.





처음 팀 플록이 레이싱에 입문하려 했을 때, 왠지, 밥과 폰티는 팀을 말리려 했습니다. 나스카 설립 이전만 해도, 그랜드 내셔널 이라고는 해도 주로 불법 행위자들의 재주자랑 정도였으니까 그랬을까요? 어쨌든 간에, 밥과 폰티는 50년대 초 이후로 차례로 은퇴합니다. 밥은 이미 1951년에 사고를 당해 경력이 단절되었고, 반바지에 색양말을 신고 경주차에 올라, 우승하면 관객들을 이끌고 딕시 송을 부를 정도로 쇼맨쉽이 풍부했던 폰티 역시 57년에 사고 이후 은퇴, 보험과 나스카 레이스웨이를 위한 여성 홍보팀을 운영하게 됩니다.




반면에 팀 플록은 허드슨 이후에 경력의 황금기를 구가하게 됩니다. 1953년 이후, 더이상 허드슨 사의 지원이 지속되지 못하게 되자, 허드슨 팀들은 자연스럽게 해산되고, 떠돌던 팀 플록은 잠시 어니스트 우즈 대령 (Colonel Ernest Woods)의 올즈 88을 몰기도 하고 (처음으로 무선송수신을 사용함) 다시 떠돌다가, 이번에는 머큐리 아웃보드 모터보트 사의 사장이자 레이싱 광이었던 칼 끼옉헤퍼 (Karl Kiekhaefer)에게 스카웃됩니다. 1955년, 그는 크라이슬러 300 B 를 타고 19번 폴에 오르고 18번 우승하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다시 한번 그랜드 내셔널 챔피언에 등극하게 됩니다.









55년 이후, 팀 플록은 나스카의 모든 부문에서 우승을 거머쥔 몇 안되는 드라이버이며, 동시에 55년에 벌어진 나스카 유일의 스포츠카 레이싱에서도 우승을 차지했고, 뉴욕에서 우승한 다음 날 대륙의 반대쪽인 캘리포니아에서 우승하기도 하고, 56년에는 데이토나에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보이게 됩니다.




비록 칼 끼옉헤퍼가 빌 프란스와 대판 싸우고 기분이 안좋을 때, 배가 아프다며 팀을 탈퇴하는 등 알고보면 성깔도 있었으나, 팀 플록의 19번 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는 대 기록이며, 그의 승률은 21.2프로에 육박했습니다.





하지만, 팀 플록은 역시 성질을 죽이지 못하고 유명한 한량 커티스 터너(Curtis Turner)와 함께 노동조합을 설립하려다가 역시 빌 프란스에 의해 나스카에서 영구제명 당하고 맙니다. 뭐 그래도 굴하지 않고 다른 단체에서 주관하는 경기에 계속 참가해서 명성을 입증했구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일찌감치 레이싱을 떠난 여동생 이델을 제외한 플록 형제들 모두 나스카 초기의 스타 드라이버로 역사에 남게 되었으며, 특히 막내 팀 플록은 50년대 초반 허드슨의 시대를 충분히 누렸을 뿐만 아니라, 살아남기까지한 유일한 드라이버입니다.





그는 50년대 초반을 나스카를 지배했던 레이스카 허드슨 호넷의 마케팅과 성공의 중심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뒷세대이자 60년대의 전조가 되는 슈퍼카 크라이슬러 300 으로 다시 한번 진정한 성공을 이루어내며 역사의 흐름에 올라타는 대표적인 드라이버로 우뚝 서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