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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osho] Nissan C110 Skyline 2000 GT-R "Kenmeri" 1972-73 - I

이박오 2017. 4. 21. 14:09


1960 년대에서 70 년대 사이, 일본은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구미' 라고 불리던 미국과 유럽 (구라파) 에서 그간 꾸준히 쌓아온 정밀한 기술 강국의 이미지를 업그레이드 시켜 새로운 자동차의 강국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커다란 역할을 한 모델들이, 예를 들자면, 도요다의 중소형 코로나 와 닛산(닷선) 블루버드, 그리고 혼다 S800 이나 마쯔다 의 코스모, 그리고 RX 시리즈 같은 것들입니다. 물론 위의 모델들이 대부분 레이싱과 랠리에서 성공적으로 성능을 입증하고 명차들이 되었다지만, 만약,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인상을 남긴, 가장 대표적이며 지금도 슈퍼카로 손꼽히는 모델을 세 개만 뽑으라면, 바로 도요다의 2000 GT, 닷선 240Z (페어레이디), 그리고 닛산 C110 스카이라인 2000 GT-R 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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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중에서도 수출도 많이 되었고 개체수도 많은 240Z 를 제외하면, 도요다 2000 GT 와 스카이라인 GT-R 이 남게 되지요. 이 두 모델들은, 일본 자국 내건, 해외에서건, 경매 같은 데 떳다 하면 수십만 불을 호가하는 전설적인 차량들이 되었는데요, 그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인 차량이 바로 스카이라인 GT-R, 그리고 GT-R 중에서도 2세대에 해당하는 C110 모델입니다.






왜냐, 이 차량은 사실 정식으로 해외에 수출된 적도 없기 때문이죠. 물론, 그 전 세대인 '하코스카' C10 2000, 무적의 GT-R 또한 정식 수출된 바가 없습니다. 해외에서 가끔 보이는 C10 2000 GT-R 차량은 대다수가 일반 GT나 세단을 개조한 튜닝카들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혹시라도 순정 GT-R 을 직접 보셨다면, 일기장에 적으셔도 좋을듯...)






그렇다고 스카이라인 C10 이나 C110 이 전부 희귀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일반 사양이 아닌 레이싱 스펙의 차량인 GT-R 만 소수일 뿐이고, 세단이나 쿠페, 웨건 같은 일반 사양들은 사실 그 수량이 훨씬 많았지요. 게다가 C10 의 경우 정식 수출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스카이라인 C110 의 경우, 일본 내수에서 극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수출 실적에 있어서도 수량이나 범위에서 모두 C10 을 능가하는 성공을 거둔 차량입니다. 70 년대 후반까지 특히 호주 같은 곳에는 많은 양이 수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요, 심지어 노르웨이의 숲 같은 데서도 종종 발견된다고 합니다.






단, 문제는 각 모델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최대출력 차량들인 GT-R 의 경우는 전혀 수출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C110 스카이라인 2000 GT-R 은 1973 년의 배기가스 규제로 인해 달랑 197 대만 생산되고는 단종되었지요. 물론 레이싱 경력도 전무하고요. 교쇼에서 출시한 73번 레이싱 스펙은 사실 73년 모터쇼에 프레즌테이션 차량으로 출품된 개체를 재현한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 전 세대인 하코스카 GT-R 의 놀라운 전적과, 훗날 R32 스카이라인의 또 다른 무패 신화가 구미 사람들에게는 끝없이 회자되는 전설이 되어 그만 C110 GT-R 을 신비에 쌓인 성배 같은 차량으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예전에, 미국에서 좀 특이한 러시아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자동차 정비 쪽 일을 배우려는 어린 친구였죠. 그런데, 재밌었던게, 그 친구는 닛뽕카덕 이었던 거죠. (세계 어디든 닛뽕카덕들은 좀.. 많이 있습니다..) 당시에 임프레자인가 수프라를 갖고 있다고 했었는데, 드림카를 물어보니 망설임없이 스카이라인 GT-R 이라고 하더군요. C110 까지는 아니고 R32 스카이라인이었는데, 무패니 연승이니 갓질라니 하고 한참 떠들던 기억이 납니다~







일본차들은 모두, 심지어 귀여운 마쯔다 미아타 (MX-5) 까지도, 레이싱이나 랠리에서 입증된, 빛나는 전통을 바탕으로 하는, 강력한 퍼포먼스 차량이라는 인식이 있고, 그것이 상위 트림의 럭셔리 카들이나 고급 세단들의 판매에 까지도 보이지 않는 파급효과를 미치고 있는 것을 구미에서 여전히 우리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미지 메이킹 이라는 것은 진실보다도 더 강력한 힘을 갖는 것이고, 그 정점에 있는 차량 중에 하나가 바로 이 C110 스카이라인 GT-R 이 아닐까요?







역사 속의 C110 GT-R 은 시대적인 제한 때문에 197 대만 생산되고는 레이싱에서의 성능의 입증도 없이 자취를 감춘 비운의 차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후의 맥락과, 빛을 볼 새도 없이 사라졌다는 그 비운의 역사가 만나서 이 차량은 오히려 베일에 쌓인 전설의 차량으로 탈바꿈하였고, 올드 닛뽕카덕들에게는 도요다 2000 GT 와 함께 진정한 드림카이자 슈퍼카로 거듭나게 됩니다.






예를 들어 2006년 발표된 OVA 6부작 애니메이션 카라스(Karas)에는 72-3년 당시 CF의 주인공이었던 켄(Ken)과 메리(Mary) 가 모는 GT-R 이 등장합니다. 아무래도 애니 에피소드 이다 보니, 완간 미드나잇에 출현했을 법한 '악마의 Z' 도 출연하지요. 물론 카라스의 Z 는 푸른 색이 아니라 붉은 색에 카본 후드를 하고 있지만요.







카라스는 굴지의 애니회사 타츠노코 프로덕션이 40주년 기념작으로 만든 변신, 펑크 장르의 애니 OVA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토리라인의 부재, 난독성, 캐릭터 붕괴, 등 내용 면에서 문제가 많다고 지탄을 보냈으나, 기술적인 면에서는 여러가지 혁신과 성취를 이루어낸 작품으로 알려져 있지요. 대략의 내용은 신주쿠 시를 두고 인간과 도시를 지키려는 작은 요괴들 및 카라스 오토하 (유스케)가 도시를 장악하려는 전대 카라스 에코 와 그 수하들인 미쿠라들 과 싸우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 에피소드에서는 악마의 Z 이며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기계 괴물, 미쿠라 중 하나인 와뉴도와 오토바이를 타고 그와 싸우는, 유일하게 인간의 편인 미쿠라, 누에가 등장하네요.








사실, 카라스는 사람들이 말하는 만큼 스토리라인이 허약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매우 불친절한 편이라는 점이 문제일 뿐이죠. 6편의 OVA를, 혹은 3편씩 모아 만든 두 편의 영화를 두 세번만 쭉 보아도 처음에는 전혀 이해가 안되던 것들이 거의 다 이해가 되며, 그렇게 파악되는 내용은 '수습이 안되는' 것과는 반대로 상당히 세밀하고 강력하며, 공력이 넘치는 설정들로 가득하지요. 그렇게 일단 내용이 파악되고 나면, 작품의 세계관은 일본 아니메의 전통적 세계관 중의 하나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상상력의 공간 으로서의 도시에 대한 강조 입니다. '카우보이 비밥 - 천국의 문' 에서 모로코 거리의 이슬람 과학자는 인간이 상상하는 것은 모두 존재한다는 말을 하지요. '평성대합전 - 헤이세이 너구리 전쟁' 에서는 자꾸 변해가는, 그러면서 기억도 사라지는 인간들의 세상을 변신술과 둔갑술로 자꾸 과거(쇼와 시대)로 돌리려는 너구리(타누키)들의 사투가 벌어집니다. 심지어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 극장판 1,2편'은 사라지는 도시에 대한 감독의 헌사 라고 보아도 될만큼 도시와 기억을 중요하게 다루지요. '귀를 기울이면' 같은 하이틴 성장 애니에서도 도시의 변두리와 기억에 관한 소재는 작품을 아주 특별한 것으로 만들 정도로 아주 강력하고 호소력있는 주제의식을 형성합니다.




카라스 에서 에코는 '인간의 도시'에 대한 염증을 인간의 결벽성와 동질성의 추구에 대한 혐오로 표현합니다. 에코는 모든 것을 획일화하려는 인간 도시의 성장 지향성을 혐오하죠. 에코나 오토하가 대변하는 미쿠라와 요괴들은 애초에 도시를 살아있게 하고, 지탱해주는 존재들로 나타납니다. 미쿠라들은 에코에 의해서 기계화되고 인간의 혈액을 마시도록 타락하기 이전에는 아마도 도시의 주요한 기운(물, 전기, 교통, 네트워크, 등등)을 관장하는 지방신 같은 존재들이었을 것이며, 오토하가 보살피는 작은 요괴들은 자꾸 자신들을 잊어만 가는 첨단의 도시 속에서 병들고 사라져가는 민담이나 전설의 존재들이지요. 에코와 오토하는 전대와 현대의 카라스로서 각각 미쿠라와 요괴들을 대변하는, 근본적으로는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은 전사입니다. 단, 에코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탈인간화 되고 인간=도시의 바이러스 같은 존재라고 여기게 된 반면에 오토하는 아직 도시의 주인공은 인간이어야 한다 라는 다소 낭만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세계관 자체는 모두 허구에 근거한다고할 수 있습니다. 요괴, 미쿠라, 카라스, 모두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허구일 뿐이죠. 그런데, 많은 아니메에서는 고도 성장의 일본 사회 속에서 자꾸만 잊혀지는 과거의 기억들과 이러한 허구의 요소들을 동질화 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지나치게 빠른 도시화의 열망 속에서 정말 중요한 개개인의 과거, 혹은 정체성은 사라지고 있다 는 것이죠. 에코는 도시의 인간들을 모두 말살시키려고는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인간의 획일성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다양성을 강조합니다. 중요한 것은 총체적인 성장이 아니라 개개인의 기억이라는 것이죠.






잘못된 전체의 말살을 통해 다양성을 지켜낸다는 에코의 모순적이고 비인간적인 면모는 어떻게 보면 오토하의 특징과 크게 다르지도 않습니다. 재미있게도 인간이었을 때 유스케는 사회적 금기인 '형의 아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마치 모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태어날 때부터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 없는 괴물이었습니다. 살인병기인 그는 통각이 없으므로 용맹스럽고, 아버지-형은 비인간적인 동생-아들을 괴물로 여기며 두려워합니다. 인간 유스케는 처음으로 조직의 동생을 구하려다 혼수상태에 빠지고, 그렇게 카라스 오토하로 거듭나게 되는데, 그 과정은 바로, 도시(조직)가 아닌 특별한 개인(동생)을 선택한 대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니에 등장하는 또 다른 카라스는 진정한 슬픔을 깨우친 인간만이 카라스가 될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어쩌면, 도시라는 거대한 기계의 일부가 되는 획일적인 삶에서 빠져나와 사회에서 매장될 개인적 기억을 선택하는 그러한 반사회적 행동과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카라스의 조건 자체가 무감각하고 기계적인 존재방식을 버리고, 자신의 존재 전부를 바쳐서라도 잊혀져가는 것들을 지켜내는 데 있을 지도 모르는 것이죠. 전체화된 대중을 버림으로써 다양성을 획득하겠다는 에코의 잘못된 선택, 그리고 인간이었을 때 괴물이었던 유스케가 극단적인 개성을 추구하는 것은 한쪽 극에서 다른 극으로 가는 행동인 것이며, 이러한 존재방식 자체가 카라스의 투쟁 일지도 모릅니다. 말하자면, 카라스의 세계관은 '대중-획일적 인간보다는 오히려 기계-기억-인간이 더 순수하다'는 고전 아니메 '메트로폴리스'의 세계관과도 흡사하다고 할 수 있고, 그것이 바로 '사이버 펑크' 장르 전체의 대표적인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갓파를 만나는 1화에서부터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모든 사건의 증인이 되는 여성 캐릭터는, 사실은 도시 대중과 섞일 수 없는 '외지인'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는 모두가 떠나가는 신주쿠에 끝까지 남아서 도시를 지키는 사람(새로운 타입의 도시인)이 되지요. (그래서 그녀는 작품 내내 중요하게 등장하는데도 이름이 없으며, 그러므로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이 됩니다.) 비슷하게 오토하는 인간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감각이 무디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인간성을 중시하는 사람이 됩니다. 현대의 도시인이 바쁜 일상 속에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면, 아니메의 주인공들은 그렇게 사라지는 개개인을 지키고 되찾으려 대신 투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요괴와 몬스터와 아니메의 세계관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허무맹랑한 허구인 주제에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인간을 죽이려고 투쟁하는 것 같지요. 하지만, 애시당초 이러한 허구들은 바로 인간의 상상력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니, 인간이 상상하기를 멈추는 그 즉시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입니다. 마치 신주쿠에서 사라져가는 작은 요괴들 처럼요. (허구 속의) 에코는 그러한 상상의 말살에 대항해 오히려 인간을 말살시키려 하는 것이구요. 만일, 에코의 뜻대로 된다면, 성장하는 인간의 도시는 사라지고, 그 모든 개인들의 혈액-기억만이 남아 또다른 기계-망령의 도시가 탄생할지도 모릅니다.







카라스의 세계는 신주쿠다 SF 다 여러가지 말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하게는 70년대 초, 쇼와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리들, 자동차들, 잘 보시면 모두 2006년이 아니죠. 쇼와 시대는 현대 일본 문화의 진정한 뿌리이며 향수이자, 급격하게 잊혀져가는 온갖 고물, 잡동사니, 그 허구의 거대한 집합체와도 같습니다. 바로 그 속에, 서방에서는 전설이 되었으나 일본에서는 잊혀져 가는 켄과 메리의 GT-R 이 있는 것입니다.


이 아니메 속 GT-R 은 현실에 급급해 과거를 망각해가는 사람들과, 그러한 사람들 모두를 말살시킴으로써 영원히 늙지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과거라는 백일몽으로 빠져들어가려는 도시의 유령들, 그 모두의 주박에 걸려 있습니다.


까마귀의 대변자 카라스와 고양이의 화신 유리네는 도시 그 자체의 눈으로서 이 GT-R 의 위에서 주박을 풀려 애쓰고 있습니다. 아니메 카라스의 진정한 역할은 바로 현실과 성장을 받아들이면서도 과거의 기억도 절대 잊어버리지 않음으로써, 계속 쌓여가는 현실의 기억들까지 모두 다 안고가야 한다는 다양성과 다중성에 대한 호소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





카라스 (후반부, OVA 4편, 또는 극장판 Revelation) 에 등장하는 또 다른 명차 MB 3.0 SEL (조직에 있을 때 유스케의 리무진... 모델은 AMG 버전) 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