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휠에서 166MM을 출시한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입니다. 엘리트 라인이 깔리기도 한참 전부터 이 핫도그같이 생긴 쪼그만 차량의 모델이 나오고 있었지요. 다른 모형에 비해 단순하고, 간단하고, 가격도 쌌고요. 그래서, 166MM 모형에 대한 첫 느낌은 대부분 초라함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166MM 은 이견의 여지없이 페라리의 초기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차량입니다. 이 차는 처음으로 페라리에게 전례없던 역사적 성공들을 가져다 주었을 뿐만 아니라, 페라리의 전설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진정한 걸작이었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전문가들, 디자이너들은 대개 아주 당연하게 이 차를 페라리 최고의 차 10 선 안에 집어넣고는 하지요.
단순한 직사각형, 핫바에 가까운 모양에 에그크래들(계란판) 그릴을 가진 이 차량이 어떻게 그런 중요한 것일 수가 있는 걸까요? 그 해답은 이 차가 입증한 페라리의 기술력과 강성, 그리고 (놀랍게도) 혁신적인 바디 디자인에 있습니다.
페라리의 창립자인 엔초(Enzo Anselmo) 페라리는 알다시피 1920년대 젊은시절 막강한 알파로메오 팀의 레이싱 드라이버였습니다. 그는 알파로메오 팀의 레이서인 동시에 스쿠데리아 페라리(SF) 를 세워 레이싱 알파로메오들을 판매하는 스폰서 역할도 했는데, 여러 문제 때문에 그만 1939년 알파로메오와 갈등을 빚고 떠나게 되지요
엔초의 사업적 수완을 높이 평가했던 알파로메오는 그가 떠날 때, 향후 4년간 그가 제작할 모든 차량과 디자인에 알파로메오의 이름을 써야 한다는 제약을 거는데, 그것은 상당히 예지력있는 방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어쨌건, 이것이 미봉책에 불과했으며, 동시에 최악의 결과를 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페라리는, 알파로메오에서 우려했듯이, 스폰서일 보다는 오히려 신차 제작에 돌입, 결국 그의 첫번째 레이서이자, 166MM의 전신인 스포츠 스파이더 125S를 생산했죠.
엔초는 이 때, 알파로메오에서 같이 일했던 엔진빌더 지아치노 콜롬보(Giacchino Colombo)를 데리고 있었고, 콜롬보는 엔초에게 1.5리터 12기통의 빼어난 엔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125S는 훌륭한 차였고, 여러 경기에서 우승하며 기염을 토했으나, 전후 재건과 호황이 맞물리면서 포뮬러 2 레이싱이 2리터대로 엔진규정을 확대함에 따라 구시대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이에 엔초와 지아치노는 125S 엔진의 55x52.5mm 실린더를 60x58.8mm 로 확장, 실린더당 166.25cc 총 1,995cc의 135마력 엔진으로 업그레드 하여, 166 S와 166 inter 를 제작합니다. 이때, 페라리가 쓴 코치빌더는 카로체리아 알레마뇨(Allemano)와 투어링(Carrozzeria Touring)의 수석 디자이너 카를로 안델로니 (Carlo Anderloni) 였죠.
안델로니는 사이클 펜더를 지닌 스파이더 코르사 바디를 하나 제작했고, 그에 반해 일반 스파이더 코르사 버전과 차축간 거리가 긴 두 대의 쿠페 바디 개체는 알레마뇨 사가 제작해 줬습니다. 그리고, 1948년 2월 5일, 평소보다 일찍 개최된 48년 밀레 밀리아 1000km 경기에...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클레멘트 비온데티(Clemente Biondetti)와 Giuseppe Navone 가 모는 알레마뇨 쿠페 버전, 그리고, 125S 의 마스터였던 코테제Cortese 와 Marchetti 가 운전하는 스파이더 버전의 166S 들을 출전시킵니다.
그리고, 여기서 코테제의 스파이더는 리타이어 하지만 비온데티의 쿠페는 종합우승을 차지하게 되는데요,
그런데, 이 대회는 알베르토 아스카리 같은 쟁쟁한 드라이버들이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영웅적 존재였던 타찌오 누오바리의 은퇴무대이기도 했기 때문에 막상 비온데티의 우승보다도 이런 전설적인 드라이버들의 소식에 관중의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당시 포뮬러 2 경기 중 이탈리아 최고의, 세계적인 대회였던 밀레 밀리아에서 우승했다는 것은 사실 놀라운 업적이었는데, 이렇게 묻히는 것이 아쉬워서 였을까요?
166의 성능을 어느 정도 입증했다고 느낀 엔초는 곧바로 바디를 개조해 166 S 의 개선작업에 착수하고, 아직 인지도가 떨어지던 페라리의 이름을 더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새로 바디를 제작하는 차량의 이름에 MM(Mille Miglia)를 붙이기로 합니다.
그리고, 이맘 쯤, 밀레 밀리아 우승 한달여 후인, 3월 20일, 이번에는 166 S 스파이더를 탄 비온데티와 Igor Troubetzkoy가 타르가 플로리오에서 또다시 우승을 거머쥐게 됩니다.
비록 업계에서 알아주는 엔초 페라리의 이력과 이전 125S 의 성공이 있었다 해도, 신생 메이커로서 이탈리아 최고의 대회를 두 개나 석권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이었지요.
더욱 자신감이 붙은 엔초는 제작 중이었던 166 MM 이 '페라리'라는 브랜드를 대중에게 각인시킬수 있게 해달라고 코치빌더에게 특별히 주문합니다.
이것이 바로 166 MM 이 탄생하게 된 계기이지요. 166 MM은 앞 뒤 두개의 계란형 반구체 케이지와 중간-바닥에 토션(Tortion)을 위한 사다리와 X자를 조합한 프레임을 바탕으로 전방엔진 후륜 구동의 구성에, 앞바퀴는 독립된 더블 위시본과 리프 스프링의 서스펜션을, 그리고 뒷바퀴는 라이브-리어 액슬에 토션바와 리프 스프링을 채용했습니다. 바퀴는 모두 드럼 브레이크를 사용했구요, 가장 중요한 바디는 투어링(Carozzeria Touring) 사가 제작을 맡았습니다.
5단 기어, 60도로 기울어진 12기통 엔진, 3단 카뷰레터에, 뒤쪽에는 스페어 타이어와 함께 90 리터의 연료통이 놓였습니다. 차체는 투어링 사에서 총 25대를 로드스터 형태로 제작하고, 거기에 다섯대의 벨리네타 또한 제작을 맡았습니다. 시험적으로 사이클 윙 스파이더도 한 대가 제작되었으며, 나중에는 비그날레(Vignale)에서 스파이더와 벨리네타를, 그리고 자가토(Zagato)에서도 벨리네타를 제작하지요.
이렇게 제작된 첫 번째 시리즈의 순정 166 MM이 총 33 (+1) 대, 그리고, 나중에 페라리는 자체 제작과 비그날레, 그리고 피닌파리나(Pinin Farina)를 통해 13 대를 더 제작, 총 46 대의 166 MM 를 제작합니다. 이들의 샤시번호는 모두 짝수로, 홀수의 로드 버전들인 166 Inter (역시 166 S 의 Coppa Intereuropa at Monza 에서의 우승을 기념한 이름입니다) 와 차별화되었고, 이중 대부분 개체는 완전한 증명서와 수많은 레이싱에서의 빛나는 우승의 기록들을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 있지요. 뭐, 이건 나중 이야기이고..
다시 디자인을 짚어보면,.. 비록 알파로메오 시절부터 엔초와 유명 코치빌더들 사이에 빈번한 거래가 있었지만, 166 MM이 만들어지던 1948년 말-1949년 초 사이의 투어링 사와 페라리의 관계는 조금 더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우선, 투어링 사에는 '무게는 적이고 바람은 상대편'이라는 모토를 갖고 있었던 설립자 펠리체 비앙키 안델로니(Felice Bianchi Anderloni)가 개발한 초경량(Super light) 알루미늄 합금 테크닉인 슈퍼레제라(Superleggera)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바로 이 때쯤, 설립자 안델로니가 급서함하였고, 그 아들인 카를로 안델로니(Carlo Felice Bianch...)가 회사를 물려받았던 것입니다.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단순히 스폰서-레이싱 팀이 아니라 완전하고 특별한 브랜드로 정립하려 했던 엔초와 많은 경쟁 코치빌더들 사이에서 아버지의 죽음 이후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해야 했던 카를로 안델로니의 필요성이 맞아떨어져서 166 MM은 당대에는 혁신적인, 아주 단순하고, 또 유려한, 마치 한획에 그은 것 같이 대범한 디자인의 바디를 갖게 됩니다.
당시의 많은 고급차종 들은 2차 대전 직전의 예술작품같은 클래식하면서도 너무 대범한 곡선미를 버리고, 레이싱 카에서 영감을 받은 유선형의 단순 정제된 차체 디자인을 향해서 막 눈길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대전 전의 들라이예 같은 프랑스 대형차들은 마치 전후 호황의 미국차들처럼 크고 환상적인 디자인을 갖고 있었지만, 거기에는 그 밑에 급의 레이싱 차 전문사였던 들라쥬와 같이 때로는 조잡해 보이는 느낌의 디자인이 뒤섞여 있었고, 이탈리아 카로체리아들은 이런 전통의 맥을 이으면서도 좀 더 단순하고 일관성있는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로드스터의 경우 이런 단순화-일체화의 추세를 어디까지-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적용할 것인가가 큰 문제였고, 특히, 166 이전의 125S 처럼 보통 단순하고 무식한 탱크나 덩어리같은 드럼형태와 고전적인 사이클 펜더 형태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상황이었지요.
(사진은 1938년 밀레 밀리아에 피아트 토폴리노 베이스로 카로체리아 스탄구엘리니(Stanguellini)에서 제작, 출전한 500 스파이더 입니다)
166 MM은 그런 혼란 속에서 매우 단순하면서도 클래식한 곡선미를 차체 속으로 흡수하여 정갈하면서도 세련된, 은은한 곡선의 통일감있는 차체를 시도한 것입니다.
1948년 투린 모터쇼에 페라리는 166 MM을 역시 두 가지 버전 - 쿠페와 레이싱 로드스터 (Spider da Corsa) - 로 처음 공개합니다. 작고 응집력 있는, 그래서 역동적인 느낌을 주는, 166 MM 로드스터의 스타일은 La Gazzetta dello Sport 지의 편집자였던 지오반니 카네스트리니(Giovanni Canestrini)로 하여금 마치 "작은 보트(barchetta)" 같다는 탄성을 지르게 만들지요. 이 '바체타!'라는 탄성이 후에 166 MM의 애칭이 됩니다.
초경량, 소형 바디를 가진 장식없는 로드스터인 166 MM "Barchetta"에는 일반적인 로드스터-컨버터블에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었던 캔버스탑과 풀사이즈의 윈드쉴드가 없었고, 짐을 싣는 트렁크부분의 랙이나, 심지어는 도어놉(손잡이)도 없었지요.
인상적이고 단순한 라디에터 그릴과 후미에서 시작해서 라이트와 그릴 사이의 수염모양까지 연결되는 부드러운 펜더의 곡선, 그리고 필요에 의해 뚤어놓은 후드의 인덕션까지... "바체타"는 단순한 한 차량의 애칭을 넘어, 훗날 자동차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디자인의 한 형태로 남게 됩니다.
앞서 언급했듯, 대부분의 166 MM 개체는 지금도 건재하고 있는데, 가장 최근 아리조나 초원의 헛간에서 발견된 0052M 까지 많은 개체들은 북미 대륙에 존재합니다. 0052M 은 한 때 페라리의 북미 공식 수입상이었던 루이지 치네티(Luigi Chiinetti) 의 소유였던 것으로도 밝혀지기도 했지요.
그리고, 루이지 치네티는 바로 사진 속의 모델을 타고 1949 년 르망 24시간 내구레이스에서 우승한 주인공입니다.
이것은 명실공히 166 MM 최고의 전적이지만, 결코 전부는 아니지요.
왜냐하면, 1949년 페라리 166 MM 은 밀레밀리아, 르망, 그리고 스파 전승의 햇트트릭 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기 때문입니다.
우선 4월 24일, 샤시번호 0008M 을 타고 전년도 우승자 51세의 비온데티는 코드라이버 Giuseppe Navone와 함께 밀레 밀리아에서 다시 한번 우승,
무려 네번째 완주, 그리고 세번째 종합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거머쥐며, 자신과 페라리의 존재를 확실하게 입증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6월 25-26일에는 루이지 치네티와 피터 미셸-톰슨이 동일차량 (0008M) 을 타고
르망에서 압도적인 우승을 거두면서 비로서 페라리의 이름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됩니다.
바로 이 모델이지요~!
마지막으로 2주 후인 7월 11일 다시 치네티와 르망에서 동료차를 몰았던 장 루카스 (Jean Lucas) 가 이번에는 0010M 을 타고 벨기에의 스파 프랑코샹에서 르망의 호적수였던 루보(Louveau)의 들라쥬와 접전을 치루며 가장 극적인 우승을 거두지요.
이렇게 해서 1948년에 시작된 페라리 166 씨리즈의 전설은 49년 166 MM 바체타 로 완성되었습니다 !
그리고, 이듬해인 1950년,
이번에는 166 MM 투어링 벨리네타 쿠페 (0026M)가 밀레밀리아에서 우승, 동일 차종의 연속 세번째 우승이라는 또 다른 대기록까지 만들어내면서 166 MM 은 전설적인 명차의 전당에 화려하게 입성하게 됩니다.
별거 없어보였던 작은 모델에 이렇게 엄청난 기록들이 숨어 있었을 줄이야...
지금도 샤시 번호를 따라 각 개체들이 보유한 기록을 보면 49년 이후부터 50년대 중반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개인 참가자들을 통해 거의 모든 개체가 수많은 대회에 참여했으며 우승을 거머쥔 기록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진은 50년 밀레 밀리아 우승차였던 0026M - 밀레 밀리아 리유니언 대회에 참가한 모습입니다.)
역시 전설적인 명차로 알려진 재규어 E 타입도, 일본 레이싱 50연승의 대기록에 빛나는 하코스카 스카이라인도, 그리고 페라리 디자인의 역사상 가장 논란이 되었다는 테스타로사도
어쩌면 이 조그만 차량이 보유한 기록들만큼 수많은, 다양한, 그리고 중요한 성취를 이루거나 의미를 갖지는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은 49년 밀레 밀리아 때의 비온데티와 0008M)
게다가, 166 MM 의 "바체타" 디자인은 페라리의 후속 모델들은 물론 훗날의 알파로메오, 오스카, 르노, 닛산 등등의 차들, 특히 영국의 오스틴과 AC 사의 에이스 같은 차들에 큰 영향을 주었지요.
그중 AC 에이스의 미국판이라고 할 수 있는 바체타의 적자 AC 코브라, 그 첫 우승차와 함께 찍어보았습니다~
좀 비슷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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