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말 레이싱 부문에서 포르셰는 두 가지 위업을 양 손에 거머쥐고 있었는데, 하나는 917/20 - 917/30 이 이루어낸 싱글-듀얼 터보 차저의 엄청난 괴력이었고, 또 하나는 911 카레라 2.7 RSR 의 대성공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포르셰에게, 그리고 사실, 자동차의 역사 전반에도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일단, 포르셰로서는 이때까지의 투어링-스포티 카 라인의 911, 그리고 그 전신인 356 이 파워 보다는 경쾌함을 중시하는 엔진 구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에 반해 2.7 RS(R)의 성공을 기점으로 곧바로 2.8, 그리고 3.0 RS로 배기량을 확장하면서 동급도 아니고 무려 1~4 리터 까지 차이가 나는 콜벳이나 페라리들을 제치고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파워풀한 면모를 강조하게 됩니다.
그리고, 역시 작고 경쾌했으나, 파워 대비 뛰어난 성능으로 RS 의 전신이 된 550 에서 출발하는 그 화려한 레이싱 섹션에서 917/30 의 트윈터보 차저의 완성으로 무려 세 배 정도 출력을 뻥튀기하는 막강한 성능을 선보이며 레이싱카의 엔진 개념을 다시 써버린 것이죠.
이 시점이 바로 1973년. 포르셰는 이 두 가지 위업을 합쳐서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됩니다. 그것도 단 몇개월 만에 말이죠.
바로 Porsche 911 Carrera RSR 2.1 Turbo 입니다. 사실 2.1 터보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레이싱 보다는 양산형 터보 3.0 에 대한 준비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데요, 당시 포르셰는, 레이싱 무대의 정복 보다는 보다 파워풀하고, 카레라 2.7 처럼 개별적으로도 레이싱 참전이 가능할 정도의 3 리터 차량을 단기간(1975년 목표)에 완성,시판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었고, 그 시험용 차량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2.1 터보였던 것이지요.
제작 과정에 있어, 카레라 터보의 가장 큰 과제는 역시 911 과 터보차저의 조합이었습니다. 여기에서는 두 가지 커다란 과제가 대두되는데, 하나는 917 엔진에 결합된 터보 차저를 훨씬 더 협소한 911의 엔진에 우겨넣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역시 917 의 트랜스미션과는 다른 출력 기준을 가진 911 의 기어박스와 터보 파워를 안정성있게 결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밖에 또 하나의, 사실 가장 눈에 띄는, 문제점은 바로 911 특유의 오버스티어링 문제였는데요, 후방 엔진 차량에 타이어 접지력까지 떨어지니, 출력이 강화될 경우 문제점이 더욱 더 심각해 져서 그렇지 않아도 출력을 키울 때마다 마치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해온 이 문제를 이번에도 확실히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뭐, 물론 이런 문제들에 대해, 지금까지 911에서 해온 것 처럼, 포르셰는 간단하지만, 나름 유연한 해결책들을 제시했습니다. 일단 터보 차저의 결합에 있어서는, 917에 쓰였던 KKK(Kuhnle, Kopp & Kausch) 터보 차저를 그냥 차 뒤쪽에 엔진 위쪽에 고정, 노출시켜 올려놓아 버렸습니다. 이게 보기보다 더 훌륭한 해결책이었던 것이, 터빈에 필수적이었던 냉각효과를 확실하게 챙길 수 있었지요. 두 번째, 기어 문제는, 놀랍게도 포르셰는 무려 10년이 다된 크랭크 샤프트와 엔진 베이스를 '그냥' 썼습니다. ㅎ.. 이건 뭐 자만심도 아니고.. 아, 물론 정말로 손도 안댔다는 건 아닙니다. 우선 배기량, 인젝션, 카뷰레이팅 등 기술 향상은 워낙 꾸준히 있어 왔고, 908 에서 끌어와서 72-73년 911L 모델부터 쓰였던 H 타입 트랜스미션 (915) 을 쓰고 있었지요.
그리고 세번째, 오버 스티어링, 무게 배분 문제는, 포르셰도 이 문제만은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들였는지, 일단 후륜 타이어를 초광폭으로 대체하고, 휀더도 이에 맞추어 확장 함으로써 다운포스와 접지력을 향상시켰으며, 거기에 더해 917 의 리어 스포일러와 같은 윙을 터보 차저 위에 붙였습니다. 이렇게 2.1 터보는 그 유명한, 911 사상 가장 빵빵하고 오만한 엉덩이를 가지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2.1 터보의 1호차량은 카레라 2.7 RSR 을 한 대 가져다가 필요한 부분만 개조해서 만들었는데, 카레라 2.7 RSR은 가벼운 합금 케이지에 플라스틱 차체를 갖고 있었죠. 비록 엔진은 경량 합금으로 새로 만들었으나, 차체에서는 모든 것이 그대로 2.1 터보에 이식되었습니다. 거기에 새로 세 대를 더 제작해서 1974년 초 포르셰는 총 네 대의 2.1 터보 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 네 대는 모두 마티니 리버리를 입었고, 가벼운 테스트 드라이빙 후에 그 중 두 대가 곧바로 3월의 르망 4시간 내구 레이싱에 9 번과 10 번으로 처녀출정하게 됩니다. 이 때의 드라이버들이 바로 반 레넵(Gijs van Lennep), 뮐러 (Herbert Muller), 슈티(Manfred Schurti), 그리고 쾨니히(Helmuth Koenig) 였습니다.
3월에 출정한 두 대는 모두 경기를 끝마치지 못하고 리타이어 합니다. 당시 이 대회의 우승차량들은 알파로메오 33/TT/12 와 마트라 MS670, 그리고 리지에-마제라티 JS2 였죠. 2.1 터보는 네 대밖에 생산되지 않아서 그룹 5 (레이싱 전용차량) 프로토타입 (과거의 그룹 6) 에 속했는데, 당시 규정에, 프로토타입 차량은 최종 배기량이 3.0 리터로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반면에, KKK 터보 차저는 대략 1.4배의 배기량을 뿜어주었으므로, 포르셰 기술자들은 오히려 2.7 리터 차량의 엔진을 2.1 리터 정도로 낮춰 주어야만 했죠. 다른 프로토타입 차량들이 모두 12 기통에 500 마력 대의 순수 레이싱카 였는데 반해 2.1 터보는 겨우 6 기통 GT에 가까운 스펙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터보 차저를 통해 500 마력에 도달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마트라, 알파 로메오, 그리고 페라리나 걸프-미라지 같은 순수 레이싱 전용 프로토타입들과 맞붙어서 2.1 터보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그닥 커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언급한대로, 포르셰는 이 차량들로 르망을 평정하려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오히려 2.1 터보를 통해, 그들은 터보 차저를 911 에서 공식적으로 시험하고, 동시에 그 기량을 자동차 팬들에게 각인시키고 싶어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2.1 터보가 애초에 전혀 승산이 없는 차였다는 소리는 결코 아닙니다. 바로 이전의 카레라 2.8 RSR (메리 스튜어트) 와 3.0 RSR 들이 프로토타입들과의 경쟁에서 눈부신 전과를 이미 내고 있었지요.
1974 년 2.1 터보는, 그룹 5 나 6 이 아닌 '실루엣(Silhouette)' 클래스 마크를 달고 있습니다. 실루엣 클래스란 양산차와 비슷한 외형을 하고 있으나 내부와 차체는 프로토타입인 차량에게 주어지는 클래스라는 군요. 당시 리지에도 실루엣 클래스에 속했다고 합니다. (요 클래스는 호몰로게이션 규정상 경기 종료 후 일반에 판매도 가능하다고 하네요) 실루엣은 바로 2.1 터보에 딱 어울리는 그런 클래스였습니다. 심지어 포르셰 팀은 양산형 3.0 터보에서는 없어지거나 축소될 것이 분명했던 거대한 리어 윙이 잘 눈에 띄지 않도록 검은 색으로 칠해버려서, 최대한 911 의 고유 '실루엣'을 고수하려고 까지 하죠.
3월 르망 4시간 레이스에서는 출전차량 두 대가 모두 리타이어 하기는 했지만, 이미 2.1 터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데 성공합니다. 917/30 으로 순수 레이싱카의 한 정점을 찍어버린 동시에 카레라 2.7-3.0 으로 양산형 레이싱 카의 가능성을 열어 놓은 포르셰로서는 더이상 많은 돈이 필요한 순수 레이싱 카의 개발 보다는, 카레라 라인에 터보를 결합시켜 좀 더 싸고 접근성이 높은, 다시 말해, 양산 가능한, 말하자면 그룹 5 이하에 어울리는 차량을 선보이는 것이 목표였던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1 터보에서는 터보 차저와 그 부속 들이 엄청나게 붙어 있고, 그 때문에 차 뒷부분이 무척 무서워 보이게 되죠. 2.1 터보의 오버 휀더는 훗날 934 에서도 그대로 유지가 되지만, 이 엔진과 터보 차저 구성은 대체로 935 가 물려받게 됩니다.
2.1 터보는 또한 연료통의 위치가 바뀌었는데, 앞쪽이 아니라 운전석 옆, 그러니까 조수석 자리에 연료통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오토아트 2.1 터보 모델은 상당히 유명하고, 나름 희귀한 편이기도 한데, 그 중에서도 가장 가치가 있다는, 그리고 유일하게 딜러 버전이기도 한, 이 24시간 르망 모델은 사실 몇 가지 눈에 확 띄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바로 헤드 라이트 밑 범퍼의 보조 라이트 재현. 그리고 또 하나는 윈드 쉴드 윗 쪽의 점멸등 재현입니다. 보조라이트는 오렌지 색 데칼로, 그리고 점멸등은 검정 동그라미 데칼로 재현(??) 해 주었군요~ ㅠ.ㅠ
콕핏 내부의 묘사입니다. 스티어링 휠 스포크 사이로 보이는 요상한 덩어리는 사실 에어 파이프인데, 플래쉬를 터트려서 보았을 때 재현이 꽤나 구린 편입니다만, 자연광으로 보면 크게 티가 나지는 않습니다. (천만 다행...^^;;;)
반대편에서 본 모습입니다.
기어봉에 촛점을 맞추어서 한장 더...
2.1 터보를 통해 양산되게 될 930 3.0 터보와 함께 찍어 보았습니다. 이 차량들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930 터보 부터 911 이 막강한 고성능의 슈퍼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 전의 911 은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고성능도, 슈퍼카도 아니었죠. 하지만, 2.1 터보의 고성능에 여러가지 럭셔리한 기능을 첨가해서 최고의 트림으로 완성된 930 은 포르셰 역사상 처음으로 진정한 슈퍼카의 스펙을 가지게 됩니다.
오토아트의 장점을 보여주기 위한 헤드라이트 강조샷 입니다. 2.1 터보의 보조라이트 재현이 안습이긴 하지만 (930 의 주황등만 가져다 붙이고 회색 덕테이프만 치덕치덕 붙여주면 되겠죠?) , 두 차량의 멋진 5스포크 휠이 분위기를 살려주는 듯 합니다. 사실 오토 아트 모델의 경우 두 차량 모두 휠의 크기가 약간 작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컴팩트 한데, 뭐, 실차도 그렇다는 증언도 있고, 더욱이, 전혀 안어울리지를 않죠. 정말 멋진 모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노레브에서 출시된 3.3 터보 모델들은 휠 크기가 무척 크고, 그만큼 차량 실루엣도 둔탁하게 보이지요.
뒷 모습입니다. 930 터보도 오버 휀더가 도드라지지만 2.1 터보에 비하면 겸손해 보이죠~ㅋ. 윙은 말할 것도 없고요. 930 터보의 윙은 카레라 3.0 에서 선보였던 고래 꼬리 형태로, 934 에서도 쓰이죠. 어쨌거나 1년만에 꽤나 정돈되 보이게 정리가 되어 잘 보이지 않는 930 3.0의 터보차저의 함정은 인터쿨러가 없다는 점... ㅠ.ㅠ
다시 앞모습입니다. 오토아트가 출시한 2.1 터보의 세 버전 중 르망 버전이 자랑할만한 점은 헤드라이트의 재현정도인듯 합니다. 다른 두 번과 달리, 아주 총명해 보이죠~ㅋ 툭눈이 커버와 그 속의 라이트가 발군의 실력으로 재현되어, 일체형의 라이트를 지닌 옆의 930 터보 보다도 더 똘망똘망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개인적인 호불호는 갈릴 듯. 저는 오히려 브랜드 햇치 버전의 라이트가 맘에 든다능...
약간 경사를 두어 찍어 보았습니다. 요정도 각도에서 볼 때 2.1 터보의 오버휀더가 딱 임팩트가 있어 보이는 듯 합니다.
위에서 본 모습입니다. 외부 묘사에서 번호판 을 비추는 미니 라이트 같은 것이 생략되긴 했으나, 본넷과 루프의 서로 다른 서체의 번호 표기가 정확하게 재현되어 있어서 재미있지요. 오토아트의 브랜드 네임이 전혀 아깝지 않은 뛰어난 모델입니다.
물론, 전면부 범퍼 그릴이 통자여서 또 좀 민망하기는 하지만요, 컴팩트해 보이는 휠 (908 의 앙증맞은 앞바퀴가 생각나는 군요..) 과 엄청 임팩트 있는 타이어 재현이 또 모델의 포스를 업 시켜 줍니다.
비록 3 월 르망 에서의 첫 출전은 이렇다할 결과를 내지 못한 채 끝났지만, 한 달 뒤 4 월 몬자에서 벌어진 1000 킬로미터 내구 레이스에 다시 8 번과 9 번으로 출전한 마티니 포르셰 레이싱 팀은 반 레넵과 뮐러의 8 번 차량을 5 위에 올려 놓음으로써 확실히 이목을 집중시키게 됩니다. 이때, 몬자에서는 강력한 경쟁자였던 마트라-심카의 두대가 모두 엔진문제로 리타이어 한 가운데, 상위 3 위를 안드레티, 익스, 파체티 등이 탄 알파 33/TT/12 가 독식하죠. 4 위는 데릭 벨이 탔던 걸프 미라지가, 그리고 그 뒤로 반 레넵과 뮐러의 2.1 터보가 바로 뒤따라 들어오게 됩니다. 3위 알파와 4위 미라지, 그리고 5위 포르셰의 랩 차이는 겨우 반-한 바퀴 였고, 관객들은 열광했습니다.
불과 열흘 뒤 어린이 날에 벌어진 스파 1000 킬로미터 내구 레이스에 알파 팀은 준비 부족으로 출전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결과 스파는 가장 강력했던 마트라-심카와 걸프-미라지의 격전장이 되었죠. 앙리 페스카롤로의 마트라가 초반에 문제를 일으켜 리타이어한 가운데, 벨트와스의 출전거부(? - 스파 트랙이 별로라는 이유로...)로 대타가 된 재키 익스(으잉?)의 다른 마트라도 연료계에서 문제를 일으켜서 콕핏 내부를 온통 연료로 범벅을 만든 채 핏스탑하게 됩니다. 다행히(?) 데릭 벨의 일상적으로 열광적인 드라이빙으로 미라지도 문제를 일으켜서 핏스탑에 들어가긴 하지만, 익스와 벨의 마트라와 미라지는 끝까지 접전을 벌여 같은 랩에 경기를 마치게 됩니다. 이번에는 14 번으로 출전했던 반 레넵-뮐러의 2.1 터보는 네 바퀴 차로 여유있게 홀로 3위로 골인, 그리고 다시 네 바퀴 차가 나는 4위부터는 한 대의 BMW 3.0 csl 을 제외하고는 온통 카레라 RSR 들의 격전장이 되었죠.
다시 보름 뒤에 벌어진 뉘르부르그링 1000 킬로미터 에는 오토델타 알파 팀이 복귀하지만, 그만 1위를 마트라에게 또 내주고 맙니다. 격전으로 유명한 이 경기에서는 상위 4위 까지의 차들 (마트라-알파-알파-미라지) 이 모두 한 바퀴 내에 있었고, 5위 마트라가 두 바퀴 뒤에, 그리고 세 바퀴 뒤에 8 번으로 출전한 반 레넵-뮐러의 차가 6위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한 달 뒤, 6월 16일, 대망의 르망 24 시에는 아우토델타 알파 팀이 참가하지 않습니다 (!) 강력한 33/TT/12 의 불참으로 알파 로메오는 1934년 8c 이후로 가장 강력했던 르망 우승 기회를 그만 날리게 되지요. 스파에서의 상황이 재연된 것입니다. 남겨진 차량 중 강력했던 것은 마트라 와 미라지였고, 마티니-포르셰 팀도 두 대의 차량을 21, 22 번으로 출전시킵니다.
그런데,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마트라 팀은 그만 시작한지 네 시간만에 자리에와 벨트와스의 차량이 충돌사고를 일으키고, 자부아르의 차가 과열되는 등 문제를 겪게 됩니다. 두 대 모두 다시 레이스에 복귀할 수는 있었으나, 다시 자정 직전에 벨트와스의 차량이 엔진 고장을 일으키고, 다른 차마저 또 엔진고장을 일으키게 됩니다.
걸프 팀은 트랜스미션-기어박스의 문제가 예상되었고, 그에 대한 준비도 철저히 해 놓았으나 안타깝게도 정작 문제는 드라이브샤프트에서 발생하게 됩니다. 두 대 중 한 대는 토요일 저녁에 이미 리타이어 하게 되었고, 벨과 헤일우드의 차량도 똑같은 문제로 다음날 핏스탑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면서 우승과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예선전에서 두 대의 마트라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서 활약했던 리지에-마세라티 역시 순위권 밖으로 일찌감치 밀려났고, 2.1 터보 중 21번 역시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야간에 뮬산 직선로를 달리던 쾨니히의 차량은 갑자기 터보차저에 불이 붙었고, 곧바로 엔진이 폭발한 것입니다.
반면에, 반 레넵-뮐러의 22번 차량은 큰 문제없이 달리고 있었고,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이며 르망 연승자였던 앙리 페스카롤로 의 마트라 또한 별다른 문제가 없이 야간 주행을 넘기고 아침까지 1-2위를 지키며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략 오전 10시경, 2.1 터보 22번이 먼저 5단 기어를 잃게 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2.1 터보는 915 트랜스미션을 쓰고 있었는데, 그것이 24시간을 견뎌내지 못한 것이죠. 이 때부터 22번 차량은 4단 기어만을 써서, 마트라에 비해 랩당 최소 40 초 씩의 시간을 손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11시 직전, 이번에는 마트라의 기어박스에 문제가 생겨 핏스탑에 들어갑니다. 재미있는 것은 마트라의 기어박스를 포르셰에서 제작했다는 것이고, 놀랍게도 포르셰 워크스 팀은 그들의 최고 엔지니어 두 명을 곧장 마트라의 핏스탑으로 파견 보냈다는 것이죠~!
포르셰 워크스 팀은 어째서 자기 차의 문제는 놓아두고 상대편의 문제를 해결하러 간 것 일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뒷말들이 좀 있습니다. 뭐 어떤 차를 수리할 것이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기술적인 것이라서 큰 이견이 없었겠으나, 한 가지 그럴듯한 풍문은 마트라의 핏스탑과 수리 과정에서 르망 규정에 위반되는 어떤 요소가 발생했는데 포르셰 워크스 팀이 덮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아직 프랑스 땅에서 하는 경주에 프랑스 팀에 대해서 독일 팀이 제동을 걸기에는 껄끄러운 정치적인 어떤 요소가 있었다는 것이죠. 뭐, 그래서 포르셰팀은 주최측에 마트라의 문제점을 공식 항의하거나 보고하지 않았고, 1등의 자리를 놓쳤다는 것입니다.
음.. 모르긴 몰라도, 만약에 그것이 사실이고, 포르셰 팀이 끼어들어 마트라의 우승을 막았다면, 오히려 나중에는 더 안좋은 인상만을 남겨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다행히(?) 마트라의 문제는 비교적 쉽게 고칠 수 있는 것이었지만, 45분간의 수리 뒤에야 마트라는 다시 레이스로 복귀할 수 있었고, 이제 포르셰와 마트라는 동일한 랩에 있었습니다!
여러가지 사연이 있긴 했지만, 경기 종반에 프로토타입 우승 후보와 같은 랩을 돌고 있다는 것은 실루엣 클래스의 차로서도 빛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물론 22 번 차량은 아직도 4 단 기어만으로 주행중이었고 페스카롤로의 마트라는 다시 차근차근 거리를 쌓아가고 있었죠.
경기의 마지막 한 시간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페스카롤로의 마트라-심카 670 은 결국 2 등차 포르셰 2.1 터보와 6 랩의 격차를 벌인채 경기를 종료했고, 앙리 페스카롤로와 마트라는 르망 햇트 트릭의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그 뒤에는 엔진 과열에도 꿋꿋이 3위를 지킨 자부아르의 마트라가 6 랩 차이로 3 위, 그리고 데릭 벨의 미라지가 다시 7 랩 차로 4 위를 기록합니다.
이 경기의 또 다른 이변은 GT클래스에서 강력한 함대와도 같았던 카레라 RSR 들이 거의 모두 경기를 종료하지 못하고 리타이어 했거나 우승권에 들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루스, 크레머 등 강력한 팀들이 탈락하고 5,6 위는 페라리 365/GTB4 가 하게 되는데, 이마저도 6 위 차인 NART 팀의 365 가 7 위의 카레라 RSR 을 결승선 근처에서 간발의 차로 앞서서 이야기 거리가 되었죠. 그 뒤에는 페라리 312P 나 리지에, 그리고 나머지 카레라 들과 365 같은 차들이 차례로 들어오게 됩니다.
하지만, 많은 르망 팬들과 포르셰 팬들은 아직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혹시라도, 포르셰 팀이 보고만 했다면... 그것보다도, 혹시라도, 만약에 5 단 기어가 고장나지 않고 끝까지 작동해주기만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렇게 르망 24 시에서 극적인 2 등을 일구어 냄으로써 포르셰 911 카레라 RSR 2.1 터보는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순간들과 아쉬움을 남겨준 명차로 등극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달 뒤 미국 뉴욕 주 왓킨스 글렌,
아우토델타 알파 로메오 팀이 다시 복귀, 알파 로메오와 마트라의 재격돌이 이루어지는 그 곳에서
마티니 포르셰의 2.1 터보 또한 다시 한번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었습니다 ~*
'Museo Storico'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년 11월 그 세번째 일요일을 떠나보내며.. (0) | 2016.12.18 |
---|---|
alfa / bmw / autobianchi / ford (0) | 2016.12.18 |
[Highway 61] Dodge 1964 330 Max Wedge - Mr. Norm's "Grand Spaulding Dodge" Hustler ! II-II (0) | 2016.11.04 |
[Highway 61] Dodge 1964 330 Max Wedge - Mr. Norm's "Grand Spaulding Dodge" Hustler ! II (0) | 2016.11.04 |
압상트(와 마티니) - Porsche 917 Longtail 1970 Le Mans #3 Gerard Larrousse (0) | 2016.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