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o Storico

[Highway 61] Dodge 1964 330 Max Wedge - Mr. Norm's "Grand Spaulding Dodge" Hustler ! II

이박오 2016. 11. 4. 16:32

이전 게시물에 올렸었지요. 모델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이번에 운이 좋게도 너무 우연히, 다시 구하게 되었지요.

그런 의미에서, 그리고, 제가 제일 아끼던 모델 중 하나였으므로, 다시 올려봅니다~^^


(이거.. 글 쓰는데 오래 걸릴 삘이네요~ ^^;;)




램 차저를 팔고 있을 때였어. 어느날 아침 손님 하나가 와서 말했지. " 시트 커버 한 세트랑 플러그 한 세트만 주면 당신 이름을 차에 써주지." 난 좋다고 하면서 물어봤어. "경주는 어디서 하는데요?" "노천극장이야." "뭐가 있는데요?" "8 마일 장내 트랙이지." "설마요~" 그래서 난 내 파트 매니저 드니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어. "그에게 플러그랑 시트커버 한 세트씩 내줘요." 그 주 일요일 오후에 그 손님이 나한테 전화를 걸어서 말했어. "당신 차가 이겼어." 그리고 수요일 까지 우리는 다섯 대를 팔아 치웠지.

그렇게 나는 레이싱에 뛰어든거야.

(노먼 크라우스.. 2016. 3월 모파맥스 인터뷰)

 


1963-65 NHRA Archive







# 머슬카

보통 머슬카를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실제로 기억하는 모델들은 60 년대 후반의 차들이 대부분입니다. 가령 폰티악 GTO는 1966-7년부터 명성을 날렸고, 닷지 차저같은 차들도 66 년 이후 모델들이 유명하며, 올즈모빌의 강력한 442 도 68 년에 등장했고, 플라이모스의 바라쿠다 시리즈나 로드 러너, GTX, 슈퍼버드 같은 차들 역시 67 년 이후에 등장합니다. 유명한 쉐빌도 66년 이후에 등장하죠. 많은 사람들이 머슬카로 생각하는 머스탱이나 까마로, 닷지 챌린저, 폰티악 트랜스 AM (파이어버드) 등은 머슬카라기 보다는 포니카라고 해야 더 적당할 것이고, 코르벳은 스포츠카에 해당합니다. 전성기 (즉, 70-80 년대 : 특수 효과나 속임수가 거의 없이 실제 카 스턴트를 쓰는) 미국 영화들에서 카 체이싱에 등장하는 많은 차들은 사실 머슬카가 아니라 70 년대 이후의 중형 세단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60 년대 초반의 중요한 머슬카들로는 플라이모스 벨베데레와 폰티악 르망 (템페스트), 포드 페어레인 500 (썬더볼트, 갤럭시)가 있고, 50 년대 말에서 60 년대를 이어주는 단 하나의 유명한 머슬카로는 플라이모스 퓨어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그 기저에는 많은 서민들과 가난한 폭주족 (Hot Rodder) 들의 사랑을 받았던 쉐비 (벨 에어)와 포드 (A) 같은 고전들이 있었지요.


 

그런 의미에서 63 년-65 년 중소형 닷지 (다트, 330, 440, 폴라라) 의 퍼포먼스 모델 (라이트웨이트 막스 웻지 lightweight max wedge) 들은 머슬카의 초기 모델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머슬카' 란 각 회사의 얼굴 역할을 하는 대표 모델이나, 최고급 사양의 고급 차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머슬카란 공장 직조로, 중형 빈티지 모델의 2 도어 쿠페에 장식이나 편의 사양 없이 고출력의 빅블럭 엔진을 얹은, 그리 비싸지 않으면서도 퍼포먼스 (여기서는 드랙 레이싱) 만을 고려한, 젊은 구매자들을 위한 차였습니다.


가령 50 년대 핫 로드 (Hot Rod)의 정신을 60 년대에는 각 개인이 튠업 해서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공장에서 직접 양산한 것이 바로 머슬카라고 생각하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면, 60 년대 중반 이후에는 이런 초기 머슬카들과는 약간 다른, 고급형 머슬카들의 시대라고 할 수 있고, 유명한 머슬카들이 종종 럭셔리 카로 오해받는 이유 역시 이 때의 머슬카들이 초기와는 달리 점점 더 무겁고 화려하게 변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60년대 초기 머슬카들은 바로 위와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치스럽기 보다는 골수 매니아들이나 는 도로의 테러리스트 같은 것.. 이런 머슬카들은 일반 승용으로 타기에는 무리가 있을 정도로 퍼포먼스 중심으로 제작되어 나왔으므로, 실제로 인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실용성, 럭셔리함, 혹은 스포츠 카의 매력 같은 것과도 전혀 무관한 매니악한 차들이었습니다.







Dodge 330 1964

이런 종류의 머슬카란 미국의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차량 모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머슬카는, 당연히, 1950년대를 수놓았던 크롬과 환영의 미끄러지듯 느슨한 서스펜션의 거대 차량들과는 다르며, 그 영광의 시대 이전, 1950년대 전반, NASCAR 와 전국 레이싱을 수놓는 파워풀하고 무식한 유틸리티 세단들과도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모든 차량들과의 차이점. 그것은 바로 60년대만의 독특한 문화, Funny Cars Wars 라고도 불리게 될, 극단적인 핫 로드 문화, 그리고 드랙 레이싱 입니다.





NHRA 의 세계. 그것은 인디아나폴리스나 데이토나 비치, 혹은 탈라드가나 세브링, 왓킨스 글렌 같은 그런 전문 레이싱이나 랠리의 세계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지금도 미국 시골 깡촌 강가의 공터에서 벌어지는 자동차 쇼, 그리고, 무료하고 정적인 시골길을 나란히 달려가던 두 대의 dung-car 드라이버들이 선로차단기 앞에서 죽이맞아 1달러 지폐를 걸고 갑자기 미친듯이 질주하는, 그런 낙천적인 정신병자들의 세계입니다. 아주 짧고, 단발적이며 즉흥적인, 승패는 결국 조금 부차적인게 되는, 동네 축제같은 왁자지껄함을 중시하는 그런 세계입니다. 퍼니카 전쟁은 1960년대에 시작해서 1973년 오일 쇼크로 끝나는, 알고보면 아주 짧은, 그런 이벤트이며, 다른 전문 경기들과는 달리 드라이버나 차량 모두에게 극한의 기술이나 능력 같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돈거는 재미로 하는 경마 같은 것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다른 어떤 자동차 경주보다도 더 많이, 현재까지도 미국의 수많은 동네에서 한여름마다 재연되고, 또 재연되는, 그런 기이한 경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스터 놈의 "그랜드스펄딩 닷지"는 나름 의미 있는 모델입니다. 풀 리버리 임에도 불구하고 드라이버 이름이 없지요. 이 차는 1963-4년 시카고의 퍼포먼스 닷지 딜러 노먼 크라우스가 처음으로 순정 차량을 튠 업 한 막스 웻지 모델 중 하나이며 명실공히 '그랜드스펄딩 닷지 레이싱 팀'의 가장 초기의 공식 차량이기도 합니다. 위에 흑백 사진과는 리버리에서 몇가지 차이점들이 존재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하이웨이 61 에서 이 차를 만들 때, 몇 년 전 경매에 나왔던 차량(밑에 사진)을 모델로 한 것이고, 놈 크라우스는 분명 이 차량을 두 대 이상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즉, 이 모델은 위의 흑백 사진 속의 차량이 아니라 밑의 사진 속의 차량을 모델로 만들어졌고, 뒷 유리에는 '미스터 놈 스포츠 클럽' 스티커가, 그리고, 트렁크에는 일리노이 주의 그랜드 가와 스펄딩 가 주소가 적혀있는 딜러샵 배지가 붙어 있는 팀의 공식 차량입니다.





동생과 함께 스무살 무렵부터 아버지의 주유소 옆에서 중고차 딜러로 경력을 쌓기 시작한 노먼 크라우스(Norman Kraus)는 어느 날 56년 쉐비 컨버터블을 팔아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차가 고성능 차량이었다는 것이었죠. 그는 차를 테스트 드라이브 해보고, 주인과 이런저런 흥정 끝에 10 달러를 받아서 신문에 따로 광고를 냅니다. 그랬더니 담날부터 전화통에 불이 붙었고, 그와 동생은, 그 다음부터는 절대로 일반 차량은 사지 않기로 합니다.





이것은 당시 젊은이들의 열망과 맞아 떨어졌습니다. 부자들 뿐만 아니라 서민들도 당시에는 돈을 쓰고 싶어했고, 저 멀리서 하는 전문적인 인디 레이스 같은 것 보다도, 큰 돈이 없이도 동네에서 자신의 차로 언제든지 할수 있는, 어디든 25 - 100 마일 가량의 쭉 뻗은 도로와 자신과 상대방의 차량만 있으면 할 수 있었던 경기, 바로 드랙 레이싱 (drag racing) 같은 것이 큰 인기를 얻고 있었던 것이죠.


크라우스 형제는 중고 퍼포먼스 차량 중개를 통해 놀라운 성공을 거두게 되고, 이것이 1959년 플라이모스와 함께 퍼포먼스 차량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닷지의 눈에 띄게 됩니다. 당시 플라이모스와는 달리(?)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던 닷지는 형제에게 접근해 그들의 차를 팔아달라고 부탁을 하지만, 1960년, 61년까지 형제는 계속 거절하죠. 마침내 1962년 가을, 닷지가 63년형 신형 다트와 크로스 램 웻지 (cross ram wedge) 엔진을 가져왔을 때야, 그들은 계약을 합니다. 그랜드(Grand) 가와 스펄딩(Spaulding) 가 모퉁이에 있던 그들의 딜러샵은 그렇게 '그랜드스펄딩 닷지' 딜러샵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노먼 크라우스(Norman Kraus) 가 미스터 놈(Mr. Norm)으로 처음 알려진 것은 신문에 한줄 광고를 내는데 지면이 모자라 다쓰지 못하고 미스터 놈까지만 쓴데서 유래합니다. 하지만 그랜드 가와 스펄딩 가가 합쳐져서 그랜드스펄딩 이라는 기가막힌 이름이 나왔듯, 미스터 놈(Norm 은 규범 이라는 뜻이 있죠~) 이라는 애칭 또한 훗날 머슬카의 한 규범을 세우는 이름으로 남게 됩니다.





그런데, 노먼 크라우스가 머슬카 매니아 였냐.. 그건 또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실, 천부적인 딜러에 더 가까웠죠. 그가 퍼포먼스 차량으로 집중하게 된 것도, 닷지 딜러로 거듭나고, 스포츠 클럽을 운영하게 된 것도, 사실 모두 그 마케팅 전략의 흐름 속에 있었습니다. 1959년 이후, 그는 모든 판매를 퍼포먼스 중심으로 개편했는데, 그것은 순전히 특정 고객을 타겟으로 삼고 그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의 자유로운 전략이었죠. 그는 자신의 딜러샾이 온전히 퍼포만스만을 취급하되, 어떤 특정 분야만 다루는 매니악한 곳이 되기를 원치는 않았습니다. 당시 디트로이트와 함께 빅 블럭을 이루는 자동차 산업의 메카였던 시카고에서, 그는 퍼포먼스에 관해서라면, 모든 것을 두손들어 환영했고, 닷지 딜러샾이었음에도 어떤 차량도, 어떤 드라이버도, 어떤 아이디어도 편애하지 않고 다 받아들였습니다. 몇년 내에 그랜드스펄딩 닷지는 단순히 닷지 최고의 딜러샾이 된 것 뿐만이 아니라, 시카고 퍼포먼스의 한 허브가 되었죠. 그리고, 노먼 크라우스는 그 모든 것을 소화해서 자신이 판매하는 차에 쏟아부었고요. 그는 64년 직접 팀을 만들어 수많은 경기에도 참여했는데, 그 때 함께 했던 레이서 게리 다이어(Gary Dyer) 나 친하게 지냈던 메커니즘과 프로모션의 귀재 아니 베즈윅 (Arnie Beswick), 그리고 경쟁자였던 딕 랜디(Dick Landy) 같은 사람들과의 광범위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전문적인 레이싱 팀이 아니라 프로모션 팀에 집중했고, 프로모션된 차를 팔아치우는 것에 더 집중했습니다.









그렇게 그랜드스펄딩 닷지는 매년 두배 이상씩 급성장을 계속해서, 몇년 내로 미국 최대의 닷지 딜러샾으로 공인받게 됩니다. 게다가, 미스터 놈의 차들은 순정 닷지보다 튠 업된 퍼포먼스 머신들이었습니다. 그의 차량들은 말 그대로 규범이 되어갔죠. 그는 레이싱에서 배운 것을 승리로 일구는 대신 고객들이 주문한 차에 쏟아부었고, 고객들은 퍼포먼스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그의 차에 환호했습니다. 닷지 딜러샾을 연지 불과 2년 내에 그는 닷지의 공장직조 퍼포먼스 차량을 상회하는 차량을 직접 커스텀 해서 판매할 수 있었고, 고객들은 빅블럭 엔진의 모든 것을 끌어내는 그의 차량에 열광했으며, 닷지 공장들의 결국 그의 조언이나, 그의 차를 따라서 차량을 제조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1967년에는 그랜드 스펄딩 슈퍼 닷지 (닷지 GSS)가 공장 직조로 나오게 되었고, 미스터 놈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퍼포먼스의 왕이 됩니다.





하지만, 애시당초, 노먼 크라우스가 퍼포먼스 차량을 마케팅의 흐름 속에서 낚아냈듯이, 그는 이미 70년대 초반에는 컨버터블 밴으로, 그리고 이후에는 경찰차 쪽으로 관심을 돌립니다. 노먼 크라우스는 1972년 그랜드 스펄딩 닷지 딜러샾을 공식적으로 매도했지요. 놀라운 것은 그렇게 70년대 까지, 그의 비전은 크게 틀리지 않고 맞아 떨어져서, 그가 떠난 드랙 레이싱 판은 70년대 초반 급작스럽게 사그라들었으며, 사람들은 더 이상 퍼포먼스 카를 꿈꾸지 않게 되었고, 반면, 미스터 놈의 딜러샾은 일리노이주 경찰차의 절반 이상을 공급하는 전국 최고의 경찰차 매입처로 다시 한번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머슬카, 그리고 드랙 레이싱이란, 어찌보면, 일반적인 머신과 레이싱의 관계와는 약간 다른 관계를 대중과 맺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강력한 퍼포먼스를 추구하고 차량의 능력을 극대화 시킬수 있었던 미스터 놈의 목적이 결국 메카닉한, 혹은 드라이빙 스킬의 무한한 발전과 정복이 아니라 그 머신을 열망하는 소비자에게 바로 팔아치우는 프로모션과 마케팅 이었듯이, 머슬카와 드랙 레이싱도 일반적인 머신과 레이싱과는 달리 프로모션과 마케팅, 소비자의 욕망과, 그 오락과 소비의 정서에 기반한 문화였습니다. 오늘날 학자들은 미국에서만, 특정시기에 발현했다가 사라진, 그러나 좀비처럼 남아서 해마다 반복되는, 이 드랙 레이싱 문화를 머슬카와 마초이즘, 60년대 인권운동과 인종탄압, 혹은 히피 대 반히피 문화 같은 것을 연관시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머슬카와 드랙 레이싱의 세계는 오락과 프로모션의 세계이며, 마치 프로레슬링과도 같은, 왠지 스포츠가 아닌 약장사나, 예술로 치면 키치나 캠프에 가까운, 왠지 순수하지 못하며, 심지어 경마와 같이 불건전하거나 쓸모없어보이기 까지도 하는, 독특한 정서로 가득한 잉여와 오락, 그 말초적인 기쁨의 세계였습니다.





어쩌면 바로 그런 이유로 오늘날 미국의 시골 깡촌 강변 공터에서는 해마다 60년대 드랙 레이서들을 재현한 자동차 쇼에 한 때는 누군가의 손자였던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의 손자가 손잡고 앉아서 각각 버드와이저와 데어리 킹 아이스크림을 핥으면서 아무 걱정없이 신나게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지도 모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