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o Storico

압상트(와 마티니) - Porsche 917 Longtail 1970 Le Mans #3 Gerard Larrousse

이박오 2016. 11. 4. 16:28

안녕하세요~

통 바쁘고 정리가 안되어 뭔가를 올리기가 쉽지는 않습니다만..

 

요새는 그래도, 바빠도 책도 좀 읽고, 오며 가며 음악도 좀 듣고 그러고 있군요~^^

뭐랄까.. 무언가를 진정으로 알거나 느끼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파이팅 이상의

끈기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ㅋ

 

그래서, 모든 면에서 젊음과 혁신, 발전 만을 추구하는 21 세기의 방향성에 더욱 위험을 느끼는지도 모르고요. 그렇다고 뭐든 걸 버리고 단순하게 살자는 요새의 미적 풍조를 선호하지도 않지만요.

 

술은 못하지만, 며칠 전 연달아서 술자리에 낄 기회가 생겼는데요, 사람들이 술집 주인과 함께 가게를 통째로 전세 내다시피 하며 스피커가 터지게 옛 노래를 들으며 술을 마시고 뭐 그러다 보니, 갑자기 생각나는 단어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압상트' 였죠~

 

압상트는 바로 낭만주의 시대 프랑스를 풍미한 대표적인 주류였습니다.

밑의 조성진의 엘리트 적인 연주는 왠지 너무 정제되고 지적이란 느낌도 들지..

모르지만.. (계속 듣다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란 걸 알게 되겠죠?^^;;)

820초 쯤인가 부터 시작하는 쇼팽의 발라드 1번은, 아마도 어떤 사람에게는 흐릿한 과거의 꿈과 시간을 상기시킬 지도 모릅니다. (첫 곡은 발라드 3번입니다)

 

 

올해 조성진이 우승해서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쇼팽 국제 콩쿠르 와는 별개로, 쇼팽이라는 작곡가는 보통 야상곡(녹턴), 왈츠, 전주곡, 그리고 연습곡 (이별) 등으로 잘 알려져 있고, 여성적이고 지나치게 섬세하며 나약한 정서를 담은, 감정에만 치우친 음악가가 아닐까 하는 편견이 있습니다.

 

 

 

 

 

발라드 1.. 첫사랑의 삐삐에 연주로 녹음되어 있곤 했다던 그 음악은 누군가에게는 꿈을, 누군가에게는 좌절을, 그리고 환상과, 백일몽을 가져다 주었겠죠? 반생 이상을 망명으로 보내야 했던 폴란드 출신의 음악가 프레데릭 쇼팽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그 언저리에서 조르주 상드 뿐만 아니라 슈만과 리스트, 그리고 그 동료들인 가난하고 광적이며, 퇴폐적인 예술가들과 어울리곤 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쇼팽과 죽이 잘맞었던 사람은 바로 민중, 서정시의 대가였던 하인리히 하이네 였다고 하죠. 두 사람은 주로 환상의 땅에 대해서 떠들고는 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민중의 이야기에 나오는 요정들과, 문학 속의 연인들, 그리고 고전 속 신들의 이야기로 가득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것은 허구이며, 주정에 불과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두 사람은 너무나 심취해서 열렬히 떠들어 대다가, 둘 다 막상 그 나라에 가보지는 못할거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갑자기 말을 잃고 침울해지기를 반복했다고 합니다. 하이페리온과 이카루스, 트리스탄과 이졸데, 오베론과 티타니아, 목신들, 양치기들, 마녀들과 저주받은 연인들... 쇼팽의 발라드는 목양지(파스토랄)의 나팔소리로 시작해서 폭포같은 감정의 분츨과, 환상의 격앙, 꿈과 밤의 열기로 가득합니다.

 

 

 

쇼팽의 무곡들 중 가장 대규모이며 강한 리듬을 가지고 있는 폴로네이즈 영웅적’. 조성진이 연주하는 폴로네이즈는 사실, 그 열기보다도 아주 잘 통제된 절제력에 의해 더 빛이 나는 듯 합니다. 어떤 연주자들은 이 곡을 마치 스케르쪼처럼 휘몰아치듯 연주하고는 하는데, 이 연주에서는 리듬감 보다는 기계체조선수같이 균형잡힌 루바토(리듬의 조절로 감정을 지연시키는 기술)를 살리면서, 폴로네이즈가 가진 힘을 감정이 아닌 강한 절제력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너무 간결하고, 정제된듯한 첫인상을 지나 좀만 더 듣다보면, 각각 잘 구획되어 바깥으로 넘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는 요동치는 힘을 꽉 잡고 있는 듯한 강력한 긴장, 그 속 한 구역에서 빛나는 섬세함과, 그 완급을 칼같이 조절하는 남성적인 카리즈마가 들끓고 있죠.

 

 

 

 

 

생각해 보면 19세기 후반은 어둡고 음울한 기운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중세 시대로 말할 것 같으면 멜랑콜리아의 시대라고 할 수 있었겠지요. 과학과 산업의 눈부신 발전 이면에는 전쟁과 영웅의 몰락에 의한 세계의 상실에 대한 세기말의 공포가 넘치고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나타난 것이 낭만주의였고, 낭만주의는 수많은 예술계의 스타들과 그들의 치정, 그리고 몰락까지를 담고 있었죠. 고전주의 시대에서만 해도 커다란 결함으로 여겨졌을 예술가들의 불나방같은 삶과, 날렵하다 못해 날카롭게 벼려져서 자신을 죽일 것 같아 보이는 민감함이 낭만주의 시대에는 악마와 결탁한 재능으로 열렬한 환호를 받았습니다.

 

 

 

 

 

낭만주의는 쇼맨쉽과 스캔들의 시대이기도 했지요. 예술가들은 스스로 작품의 주인공이 되어 자학과 학대, 가난과 고통, 질병과 실연 등, 다양한 고난 속으로 스스로를 내몰았고, 그들의 헛된 모험은 종종 사람들의 동경과 멸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과 19세기 후반의 큰 차이점은, 19세기 예술가들은 자신의 삶을 내던질 정도로 진지하게, 끝까지 그들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진정 불꽃같은 삶을 동경했으나, 그것은 환하고 찬란하기 보다는 밤의 불빛같이 음울한 푸른 빛에 가까웠습니다. 바이런은 진심으로 나폴레옹을 영웅이라 믿었으며, 슈베르트는 슈베르티아나를 버리지 않았고, 슈만과 고흐는 정신병을 얻었죠.

 

 

 

 

 

열정적이며 푸른 불빛과 같이 날카롭게 빛나던 가난한 예술가들의 종착역은 항상 파리였죠. 파리는 바로 압상트가 지배하는 곳이었습니다. 녹색 악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이 초록빛깔의 술은 바로 반 고호와 에릭 사티가 항상 마시던 것이었고, 가난한 서민들의 독약과도 같은 마법의 음료였습니다. 그들은 술에 취해 공상에 탐닉했고, 현실에 좌절했으며, 환상을 담은 작품을 토해내며, 서서히 자신을 죽였습니다.

 

 

 

중국계 피아니스 윈디 리의 쇼팽 소나타 3번 마지막 악장 리허설입니다. 쇼팽이 진지하게 쓴 두 곡의 소나타 중 2 번이 장송곡과 죽음의 주제로 무서울 정도로 허무한 결말을 지니고 있다면, 이 마지막 소나타의 최후 악장에서는 다시 영웅적 고뇌와 격렬한 갈등, 그리고, 종장에는 그 죽음을 이겨내고 부활하듯 상승하는 인상적인 조바뀜으로 변용되고 있습니다. 모차르트, 베토벤과 마찬가지로, 각 장르의 마지막 곡들(연습곡 10-12번과 25-12, 영웅 폴로네이즈, 전주곡 24번 등)에서 강력하고 돌이키기 어려운 결론을 짓기를 좋아했던 쇼팽 역시 자신의 음악 경력의 가장 중요한 장르의 마지막에서는 거대한 고통 뒤에 가볍게 날아오르는 부활과 승리를 택했습니다,

 

 

 

 

 

한때 시신경을 죽여 장님을 만들고 우울증과 신경과민에 빠뜨려 퇴락과 자살을 유도한다고 비난받으며 금지되기도 했던 압상트는 19세기 예술가들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죽음의 선물이었습니다. 고전주의 직후, 이 시기의 예술은, 서서히 죽어가는 서양 문화가 축적된 오래된 바탕 위에 피어난 푸른 빛 꽃과도 같았고, 가장 빠르고, 날렵하며, 날카롭고, 그리고 빛나는 푸른 불빛처럼 우울한 환상과 영감으로 가득한 것이었습니다.

 

 

 

윈디 리의 연주가 리허설 버전이었으므로 다시 찾아본 34악장 연주입니다. 사실, 유튜브에서 다른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으면 생각보다 차이가 너무나도 커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은데, 일부러 20세기 초 콘서트 문화의 전통을 이은 마지막 위대한 콘서트 피아니스트라고 할 수 있는 예브게니 키신의 연주를 골라보았습니다. 처음 열 살 정도에 서구에 데뷔할 때만해도 꽃미남, 신동으로 여겨지며 열렬한 환호를 받았던 슈퍼스타 키신은(어린 키신은 정말 꽃미남이었죠) 유독 이 3번 연주에서만은 깊이있는 터치보다는 피아노를 다 때려부실 듯, 음악을 집어 던지는 듯, 엄청난 파워로 땅땅 내리치며 밀어붙이는 개무식한 연주를 고수했는데, 역시 나이가 들면서 많이 세련되어진 느낌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해석으로 꼽기도 하는 키신의 연주는 템포와 포르테의 변화가 심하고 긴장이 터질 것 같은 아주 드라마틱하고 신경질 적인 연주라고들 하지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연주가 긴장이 덜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클래식 연주가들도 나가수 정도의 버라이어티는 기본으로 갖고 있다는 점... 참고로 저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넬슨 프레이레의 연주를 가장 좋아합니다.

 

 

 

 

20세기 초의 민족주의로 완성기를 본 서구예술은 곧이어 국가주의의 극대화로 양차 세계대전을 겪고, 그 뒤 민주주의-공산사회주의 의 냉전시대로 접어들면서, 급격한 이론화를 겪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생경하고, 원론적이며, 상당히 지루하기도 한 20세기 예술의 시대가 열리고, 다시, 민주주의의 승리로 팝 문화와 대중예술의 발달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상업주의와 키치의 시대가 도래하죠. 19세기 예술의 진지한 환상과 도취를 대변했던 서민의 술 압상트는 잘못된 누명을 쓴채 금지되고, 냉전시대, 보드카를 섞어서 마시는 섹스, 액션 어드벤쳐, 스포츠 쿨가이 007의 술, 마티니와 같은 가볍고 화려한 칵테일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쇼팽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곡이죠. 네 개의 즉흥곡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즉흥-환상-곡입니다. 정착할줄 모르는, 파도치듯 흘러가는 절망의 도가니와 목가적인 안식의 추구, 두 개의 주제가 끊임없이 교차되는 듯한, 쇼팽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난민 예술가 쇼팽의 삶과도 가장 가까운 곡인 듯 합니다. 마지막까지 파도치는 감정의 격랑 속에 사그라드는 꿈처럼 드리우는 안식의 그림자 까지.. 윈디 리의 연주는 소나타 3번 연주에서도 그렇지만, 마치 물결처럼 가볍게 흩날리면서도 열정적이네요~

 

 

 

 

 

 

 

1970년 르망에 출전했던 포르셰 팀의 싸이키델릭 푸른 불꽃마티니는 유명한 한스 허만의 짤즈부르크 917k 불꽃돌이의 뒤를 5랩 차이로 뒤따라 들어와 종합 2위를 차지한 차량입니다. 1968년, 이론화되고 이분법적 권위에 쩔은 세계를 조소하며 싸구려 마리화나를 피고, 저항과 혁명의 노래를 불렀던 비틀즈나 재니스 조플린 같은 스타들의 싸이키델릭 패턴을 멋지고 아름답게 날아가는 불꽃으로 재해석한 워크스 팀의 이 차량은 어쩌면, 마티니의 후원을 받은 압상트의 후예였을 지도 모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