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이 마모루나 안노 히데아키 같은 거장들과 활동시기가 겹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퍼펙트 블루와 함께 등장한 곤 사토시의 모든 작품들은 아니메의 지평을 바꾸어 버렸으며, 심지어는, 다른 어느 누구도 도저히 따라 올수 없을 만큼 홀로 달려나간 느낌이 든다. 그의 서거와 함께 일본 아니메는 다시 10년 이상 후퇴해 버렸다.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계속해서 건드리는 '과거'와 '현재'의 충돌에 있다. 그는 두 개의 자아를 통해 그 충돌을 형상화 하는데, 그러한 구조의 궁극적인 목표는 일본 사회를 건드리는 것이며, 그가 건드리는 지점, 간단히 일본의 양심, 혹은 감추고 싶은 죄의식 이라 해두자, 은 다른 거장들도 건드리지 못했던 문화의 어떤 핵심에 다다른다. 그런 지점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 그의 작품들은 경이로움을 넘어 용감한 개인의 감동적인 여정이 된다.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든 간에 그는 다른 모든 감독들이 외면하는 어떤 문제를 계속해서 끄집어 내고 그것을 그의 작품들의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밀어붙였다.
그런 면에서, 나는 망상대리인을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부른다. 실제로는 파프리카가 마지막 완성작이 되었고, 망상대리인의 많은 부분이 파프리카를 위한 연습으로 쓰였지만, 나는 망상대리인의 주제와, 그 주제가 결국 파고 들어가는 개인의 이중성의 문제가 그의 여정의 한 매듭을 짓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파프리카는 그러한 매듭짓기 이후에 나타난, 좀 더 자유롭고 개인적인 여행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고, 아니라면, 그가 언제나 재미있게 바라보았던 이미지의 자율성에 관한 문제를 새로운 방향에서 재고하기 시작하는 작품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이 두 작품의 관계는 구로자와 아키라의 카케무샤와 란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망상대리인의 오프닝에는 그의 모든 작품들이 공유하는 '언캐니'의 이미지가 멋지게 조합되며, 이는 파프리카에서 인형들의 움직임으로 다시 특징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중간중간 자신의 전작들인 동경대부(Tokyo Godfathers, 2003)와 천년여우의 배경을 이용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카우보이 비밥의 오마주도 나타나고, 명백하게, 파프리카에서 요긴하게 쓰일 이미지와 기법들이 미리 쓰이고 있다.
* 망상대리인 (2004) 오프닝
http://www.youtube.com/watch?v=-anabfAg06U
망상대리인의 1-7편까지의 구성은 이야기꾼으로써의 곤 사토시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주지만, 기술적으로, 파프리카는 확실하게 진일보한 느낌을 주는, 늘어짐이 전혀 없는 스릴 넘치는 구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역량이 넘쳐나는 듯한 이 감동적인 오프닝에서도 보이는데, 이렇게 화려한 오프닝 이후에도 영화는 전혀 느슨해지지않고 계속 전진한다. 사실 이 오프닝 역시 이미 시작된 영화의 일부분일 뿐이다.
* 파프리카 (2006) 오프닝
http://www.youtube.com/watch?v=DMcVwXSvmBg&feature=related
어떤 사람들은 파프리카의 장면장면들을 퍼펙트 블루의 재탕이라고 하며, 타카하타 이사오, 오시이 마모루, 안노 히데야키 의 작품들을 모방했다고도 했지만, 그건 아니메의 전통과 오마주를 모르는 오해에서 나온 불평일 뿐이다. 사실, 그렇게 따지자면, 곤 사토시가 언급하는 작품들은 그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게다가, 천년여우에서는 만화도 아닌 일본 영화의 역사를 오마주하기 까지 한 그에게서부터 이정도 밖에 못 찾아낸다면, 불평도 제대로 못한다는 느낌마저 줄 정도이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 곤 사토시의 작품에서 이미지의 반복은 매우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경배의 오마주를 지나쳐 거울 속에 다르게 비치는 '언캐니'로 곧장 선회해버리기 때문이다.
* 천년여우(밀레니엄 액트리스, 2001) ...
http://www.youtube.com/watch?v=2H-QFJQS-XI&feature=related
그의 작품 중에서는 일견 가장 간단해 보이는 이 영화에서도 역시 과거의 문제는 아주 중요하게 숨겨져 있다. 그것은 전쟁과 피해자에 관한 문제이며, 이 문제가 망상대리인의 마지막 부분에서 단순하지만, 경이로운 방식으로 다루어진다.
물론, 곤 사토시의 팬들이라면, 뛰어난 스릴러 퍼펙트 블루(Perfect Blue, 1998)를 잊지 못할 것이며, 이 모든 작품들에 퍼펙트 블루의 유산이 골고루 스며들어 있음 또한 놓치지 않을 것이다. 파프리카처럼, 퍼펙트 블루도 그의 원작이 아니지만, 그는 이 작품에서 벌써 망상대리인과 파프리카에 까지 지속적으로 쓰일 어떤 구조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퍼펙트 블루에서의 주인공과 거울상의 관계는 그 뒤 모든 작품들에서 반전되어 나타나게 된다. (그런 방식으로 그는 현재가 아닌 과거에 집중한다. 반면, 퍼펙트 블루는 현재의 문제가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헐리우드 스타일의 스릴러 구조를 갖고 있다) 이미, 퍼펙트 블루의 마지막에 결국 혼란을 극복하고 자신을 되찾는 미마는 다시 자동차의 후면경을 보면서(후면경에 비친 자기 자신을 통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곤 사토시는 이 장면에 대해, 미마는 성장하지만, 그 성장이 끝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혼란/분열의 시작임을 암시하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는데, 백 프로 동의한다.)
(퍼펙트 블루는 알맞은 동영상을 찾지 못해 올리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내가 꼽는 아니메의 최고 거장이다.
한 가지, 그가 그렇게 오마주를 해댄다면, 일본 아니메의 넘사벽인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디 있을까? 그의 작품들의 장면장면에, 캐릭터들의 활달한 움직임 속에 숨어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니메는 단순히 이야기가 뛰어나고 캐릭터가 친근해서 경이로운 게 아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캐릭터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구성해냈던, 최고의 테크니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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