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ther Sun, Sister Moon - Franco Zeffirelli (1972)
큰 기대 없이 보고 있던 제피렐리의 영화. 하지만, 기독교를 이해하고픈 자라면 필히 한 번 봄직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가장 행복한 성자의 한 사람이었던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일견, 그 주제 또한 너무나도 단순 소박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 속에서 수많은 상징과 구조들이 갑자기 성곽처럼 나타나는 순간들이 자꾸만 도래해서, 머리 속을 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단순함이 갑자기 성채처럼 높이 솟아나는 숨막히는 장면이 영화의 마지막, 프란체스코와 형제들이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를 만나는 장면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DYH2WS3CU6A&feature=related
이 클립에서는 프란체스코가 대성당에 처음 입장하는 장면과 파올로와 거래하는 모습, 교황청에서 그가 소리치는 장면, 그리고 교황이 이콘에서 살아있는 사람으로 눈을 뜨는 장면 (이 장면은 이 영화에서 반복되는 주제가 완결되는 순간이다) 이 빠져 있지만, 대신, 그와 교황의 너무나도 멋진 대사들과, 다시 삶에서 이콘으로 돌아가는 교황의 장면이 있다.
영화에서는 비중있게 묘사되지 않지만, 새들과 물고기들에게 설교하는, 늑대를 사랑하고, 나귀에게 고마워 하는 동물들의 수호성인 프란체스코는 교황 앞에서 뜬금없이 종달새 이야기를 하고, 교황은 신이 그에게 주신 능력을 알아 채며, 그 둘의 대화는 소박함과 영광의 구조, 그리고, 그 둘이 대결하지 않고 같이 존재하게 되는 행복한 역사와, 그것이 영광의 구조 속으로 흡수되는 방식,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두 사람 (프란체스코와 교황) 이 각각 한 명은 다시 들판으로,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다시 이콘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까지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 클립에서 보이는 장면만 해도, 처음 교황이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부터 마지막 촛불 속으로 사라져가는 프란체스코까지 하나하나가 모두 의미로 가득하다.
인노켄티우스 3세 역으로는 대배우인 알렉 기네스가 연기하고 있고, 그의 연기는 그 자체로 감동적이지만, 그라함 포크너의 순진하고 소박한, 주체못하는 사랑을 넘치게 표현하는 듯한 연기 또한 너무나도 멋지다. 게다가 두 사람의 대사는 너무 쉬우면서도 중요한 것들을 담고 있다. 프란체스코가 '단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단순한 방식이 통하지 않는 것은 아마 무언가 그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된다며 교황의 조언을 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겸허하며 순수한 감동적인 수사법이다. 그것은 보기보다 그렇게 쉽거나 단순하거나 순진한 내용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프란체스코는 그런 문제들을 너무 쉽고 순수하게 해결해 버렸고, 교황은 그를 축복하며, 경배한다.
물론, 이것은 성인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세상에 어느 사람이 성인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 그것은 프란체스코 교단을 인정하는 교황마저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주교들이 프란체스코의 유용성을 논하며 교황을 둘러싸고, 교황은 마치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듯, 다시 눈을 감고 이콘 속으로 후퇴한다. 카메라가 손을 뻗는 프란체스코에서 교황을 향해 돌아갔다가 다시 '최상의 신의 영광(Gloria in Excelsis Deo)'을 찬양하는 합창 속에 프란체스코 쪽을 비추었을 때는 이미 형제들은 모두 고개 숙여 이콘을 경배하고 있다. 다시 프란체스코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대성당의 장면에서 이미 교황은 완전히 후퇴한 채 저 멀리 사라져있고, 프란체스코가 보는 것은 촛불을 들고 자신을 쳐다보는 천사들의 역할을 하는 사제들과 저 멀리 솟아 오른 그리스도 자신의 모습이다. 이 영화에서는 결국 교회를 다시 세우는 이야기를 이콘을 통해 환기되는 신의 이미지를 통해 전달하고 있으며, 그것이 프란체스코가 행하는 직접적이고 단순한 방식과 충돌하며 묘한 구조를 쌓아가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그 구조의 충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합일 되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프란체스코와 교황의 만남은 그런 점에서 중요하며,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역사적이란 점에서 감동적이다.
그것은 교황이 마음을 바꾸는 두 번의 장면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첫 번째 장면은 이 클립에 없다. 그것은 프란체스코가 소리치고 끌려나간 후 교황이 스스로의 자리에서 손을 들어 자기 뒤의 그리스도 이콘을 가리키는 장면이다. 하지만, 두 번째 장면은 이 클립 속에 있다. 바로, 교황이 프란체스코로부터 뒤돌아서 자신의 신성의 표지들을 바라본 후, 다시 눈을 들어 그리스도를 보는 장면. 이는 영화 속 산 다미아노에서 신을 영접하는 프란체스코와 동일한 장면이며, 마지막에 프란체스코가 이콘 너머 솟아오른 신의 이콘을 보는 장면과도 동일하다. 그런 식으로 권력과 영광의 정점인 교황과 아무 것도 가진게 없는 거지들의 성인 프란체스코는 합일되며, 이콘을 너머 신의 영광 속으로 수렴된다.
13세기는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아직 비잔티움(동방)과 로마(서방)가 양립하던 시기였고, 십자군 전쟁과 중세의 말기였으며, 각각의 교회는 이콘들의 영광에서 벗어나 빠르게 세속화되던 시대였다. 이 시대에 교회는 이미 권력과 영광을 박탈당하기 시작했으며, 인노켄티우스 3세 스스로가 일으켰던 4차 십자군은 오스만 투르크의 공격으로 부터 비잔티움의 심장부인 콘스탄티노플을 지키러 갔다가 오히려 도시를 약탈하고 돌아왔던, 모욕과 경멸의 시대였다. 신성 로마 제국의 오토 황제 같은 세속적 야망에 충실한 정치적인 군주들이 곧이어 전 유럽에서 득세하고 경쟁하게 되면서 '신'의 중세는 무너지고 르네상스로 접어들게 된다. 프란체스코는 이 마지막 시기에 나타난, 카톨릭 기독교의 가장 행복한 성자였다.
* Brother Sun, Sister Moon이란 제목은 영화 속에서도 보이듯, 그가 평소 행했던 설교 문구중 가장 유명한 것들이다.
** 프란체스코와 교황의 로마 장면이 단순히 '화려한' 장면이 아니라는 것은, 비잔티움의 이콘들을 미장센으로 옮겨내는 프랑코 제피렐리의 뛰어난 영상들로 알 수 있다.
*** 영화에 등장하는 클라레는 산 다미아노의 수녀들을 이끌었고 프란체스코의 임종을 함께 했으며, 이후에도 프란체스코의 교리를 발전시켰던 성 클라레(클라라) 이다.
**** 하지만, 교황도 프란체스코도 아닌 우리들은 어떤 자리에 서 있는 것일까? 이 영화에서는 그런 역할으로 가장 마지막까지 프란체스코를 의심하는 도마와 같은 인물 파올로를 형상화 한다. 그리고, 감독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기대 (프란체스코도 어떤 시련 앞에서는 세속적인 영광의 구조에 순응할 것이다) 를 배신해버리는 프란체스코에게 결국 귀속되는 형제로서의 파올로를 보여주는데, 이 파올로의 결단을 이해하는 것은 이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방식일 것이다. 그는 결코 단순히 프란체스코의 열정에 감동을 받아서 귀속되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양심에 찔려서 프란체스코의 편에 서는 것도 아니고, 신학자이며 주교로서의 자신의 오기로 원초의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그의 결정에는 이 모든 요소들이 공존하며, 또,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무언가 또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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