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tton’s Ghost Corps (2006) Zachary Weintraub
두 장짜리 패튼 디비디의 두 번 째 장에는 영화 제작 다큐와 영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패튼 다큐멘터리가 있고, 이 일반적인 헐리우드 다큐들과는 다른 성격의 또 하나의 정규 다큐멘터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패튼의 유령부대’라는 것으로 그가 44년 겨울 서유럽 진군시 버리고 갔던 20군단 휘하 제 94 보병사단에 관한 것이다. 사실 나중에 그들의 활약상을 전해들은 패튼이 그들을 자기 부대의 ‘금괴’ (golden nugget)라고 치하하며 경의를 보냈고, 지금도 94 사단은 Patton’s Golden Nugget 이라는 영예로운 별칭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순전히 희생자들로서의 94 사단 생존자들을 인터뷰한 기록이다. 애초 전쟁에 자원한 것이 아니라 우수 인력의 대학지원 모병 프로그램에 참가했을 뿐인 그들의 대학 지원이 일방적으로 취소되고, 장교가 아닌 일반 사병으로 전쟁에 투입된, 미국에선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기가 찬 사연부터 시작해서, 여기에는 드라마틱하지만, 드라마가 아니라서 공포스러운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겪은 소수의 생존자들의 기록이 담겨 있으며, 공포스러운 패튼에 대한 그들의 분열된 감정과 그의 ‘연기’에 대한 그들의 평가, 그리고 분노도 담겨 있다.
따로판매되는 듯한 Patton's Ghost Corps DVD.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50분이 채 안되는 짧은 분량이다.
개인적으로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들은 화가이기도 한 어떤 생존자(William Foley Jr.)가 기억하는 패튼의 작전 수행에 관한 일화이다. 지원 전차병력도 전무한 상태로 사르 모젤 삼각지대의 중무장된 지그프리트 라인 돌파를 명령받은 20군단은 오히려 그런 절대적 열세를 통한 게릴라적인 각개전투로 많은 마을들을 함락시키고, 나중에는 탱크와 로켓포, 중화기를 동반한 독일군 정규군의 대규모 공격을 받아 수많은 사상자를 내는 속에서도 독일 방어선을 산개 돌파하면서 ‘유령군단’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는데, 이 때쯤 그들의 활약상을 전해들은 패튼 장군이 뒤늦게 8군단과 기계화 10사단을 지원병력으로 보내고 치하하게 된다. 하지만, 분대 단위의 소규모 병력으로 적지에 고립되어 보급도, 무전도 없이 버티며 전우가 죽어가는 과정을 보는 사병들은 자연스럽게 ‘전쟁피로(battle fatigue)’와 긴장상태에 빠지게 된다. 마침내 그들이 사르 강에 도달했을 때, 약속했던 휴식과 정비 대신 패튼은 전격 도하를 명령한다. 그리고, 자기 병사들의 능력을 ‘자랑하기’위해 기자들이 모인 가운데 사전 조사도 없이 무리하게 대낮에 도하작전을 펼치는 것이다. 미군도 경악했지만, 강 위에서 진지를 쌓아놓고 기다리던 독일군도 경악했다. 그는 이렇게 증언한다. ‘단 두 시간만 기다렸어도. 겨울 해는 일찍 졌습니다. 당시 서유럽에서는. 단 두 시간 만 기다렸어도. 만약 그가 기다렸다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살았을 겁니다. 나는 그게 그의 탓이라고 할겁니다.’
94사단의 일원이었던 아마추어 화가 WIlliam Foley Jr.가 전장에서 아무 종이에나 그렸던 스케치들에 채색을 해서 출판한 기록집.
무리한 진군과 공격의 지속적인 강행으로 사병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으며 패튼은 5개 사단은 필요하다는 아이젠하워의 조언도 무시하고 단 2개 사단으로 독일 저항의 상징적 요충지 트리에(Trier)를 기습 점령하여 히틀러와 괴링을 공포에 빠뜨린다. 사병들을 적의 탱크 앞에 내던지는 패튼, 그런데, 그런 과감성이 때로는 전선 고착에서 돌파구를 뚫어주기도 한다는 것이 바로 전쟁의 모순이자 패튼의 모순이다. 결국 이런 비인간적인 진군으로 3개월 만에 전쟁의 끝을 보게 되며 살아남는 94사단의 생존자들의 증언 중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종전 선언 직후 한 병사가 독일군과 만나는 장면이다. 춥고 다리가 아픈 그에게 ‘어깨에는 총을 메고 허리에는 으깬 감자를 찬’ 독일군이 다가오면서 ‘전쟁은 끝났소. 다 죽어버렸어! (The War is over, everything is dead.)’라고 말하는 장면. 그는 옆에 앉아 자기 가족의 사진들을 꺼내 보여주며 ‘전쟁은 지긋지긋’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면 다른 곳에서는 얻을 수 없는, 처참하고 필사적인 동고동락을 같이한, 살아남은 전우들을 위해 전쟁이 끝난 전장에서 하모니카로 ‘즐거운 나의 집’를 불었던 생존자의 증언과, 마침내 그들을 인정하고 경배하는 패튼의 후일담도 보여준다. 초로의 생존자들은 이름마저 잊혀진 희생자들의 처참한 죽음을 기억하며 울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총탄의 날아오는 소리를 생각하며 몸서리치고, 자신들을 사지로 내던지는 패튼을 기억하고 흥분하면서도, 그가 전쟁을 조속한 승리로 이끌었다고 증언한다. 생존자의 증언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패튼은 사병들에게 어떤 XX놈이건 다시 한번 항복하려면 다른 병사가 사용하도록 무기와 탄약은 다 놓고 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죽거나 또는 이기거나. 이것이 패튼의 사병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그들의 장교들은 독일군보다 패튼을 더 공포스러워 했으며, 생존자들은 그를 뛰어난 심리학자(master psychologist)라고 평가한다. 죽은 자는 잊혀지지만 살아남은 병사는 훈장을 수여받으며, 패튼은 그들을 자신의 황금부대라고 칭하며 영웅으로 경배하고 인정해준다.
지그프리트 라인을 돌파하는 미군 보병들. 옆으로 보이는 조형물들은 바로 독일군이 설치한 탱크저지용 용니(Dragon's Teeth)들이다. 지그프리트 라인에는 이런 용니들과 콘크리트 방벽, 사격용 참호 벙커들이 즐비했다.
* 이 다큐멘터리에 언급되는 많은 일화들은 서유럽 전쟁에 관한 거의 모든 영화 (오락 액션물을 제외하고)와 연결될 수 있을 것인데, 특히 거의 같은 상황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윌리엄 웰먼의 1949년작 흑백 고전 ‘배틀그라운드’[Battleground]가 첫 손꼽힐만하다. 바스통에 고립된 101공수사단 휘하 한 분대원들의 사투를 그리는 배틀그라운드는 흑백 스튜디오 촬영에 고전시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헐리웃의 겉멋든 마티니 아이돌 분위기가 아니라 사병들이 거지꼴이 되어가는 리얼한 분위기를 시종일관 유지하며, 또한 쓸데없는 로맨스의 삽입이나 독일군을 필요 이상의 악당으로 묘사하는 등의 실수도 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독일군이 강조되는 장면 두 개는 모두 실제 전사에 의거한 것들이다. 하나는 미군으로 위장한 독일군 부대가 침투하는 장면, 또 하나는 독일군이 항복을 권유하기 위해 미군 사단장 맥컬리프를 만나는 장면) 거의 전부가 유격전인 보병 전투 신과 혹한 속에서의 병사들의 생존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현대의 리얼리즘 영화들같이 무게 잡지 않고 사병들의 개개 캐릭터를 유쾌하게 살려내는 이 작품은 흑백임에도 재미와 사실성을 모두 살린 가장 뛰어난 전쟁 영화 중 하나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단, 여기서는 작전 실패나 장군의 무모한 공격명령 같은 것을 다루지는 않는다. 이 영화는 전선 전체가 아닌 한 분대에 관한 작품이고, 바스통 탈환 후 말끔한 차림으로 진군해오는 지원병력들 사이로 넝마 같은 옷을 입고 수염은 덥수룩하며 절름발이에 상처투성이인 분대원들이 오기있게 구령을 붙이며 행진하는 것으로 끝난다.
* 이와는 달리, 종전 직후 독일군과 조우하는 연합군의 일화는 사뮤엘 풀러의 1980년 작 ‘빅 레드 원’[The Big Red one]을 생각나게 하는데 (‘지옥의 영웅들’이라는 무서운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잊혀진 걸작이라고 몇 년 전 ‘재구성’(reconstruction: 감독 의도와 달리 가위질 당한 작품을 다시 원래 의도에 맞춰 재 편집하는 것)되어 화제가 되고 칸에도 초대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세 시간에 육박하는 길이에 너무 많은 에피소드들이 들어 있어서 사실 그렇게 기억에 남는 작품은 아니다. 사뮤엘 풀러는 ‘네이키드 키스’[Naked Kiss](1964)나 ‘마견’[White Dog](1982)같은 놀랍다 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작품들을 만든 거장이지만, 워낙 이야기꾼의 기질이 강한 데다가 이 영화에선 마치 전쟁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일화란 일화는 다 보여주겠다는 심정으로 만든 듯 무지막지한 일화들의 나열로 일관되기 때문에 집중하기가 무척 어려워 진다. 그런 와중에 작품을 관통하는 일화 딱 한가지가 세 번 반복되는 것만은 기억에 남았는데, 그게 바로 종전과 적군과의 조우에 관한 것이다.
첫 번째는 1차 세계대전 종전 시 주인공 역의 리 마빈이 ‘전쟁은 끝났다’며 두 손 들고 다가오는 비무장 독일군을 칼로 찔러 죽이는, 영화의 시작 장면이다. 그는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독일군이 거짓부렁을 하는 줄 알았으나, 곧이어 그것이 사실이었고, 4 시간 전에 중지 선포가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두 번째는 영화 중반에 등장하는데, 이것은 종전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첫 번째 에피소드가 일어났던 바로 그 장소를 배경으로 한다. 이번에는 2차 대전으로 다시 참전한 주인공 역 리 마빈이 분대원들을 이끌고 독일군 시체들이 널린 예의 그 지역을 수색하는데, 사실 독일군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은 체 하고 미군이 안심하고 본대를 데리고 오도록 하려는 덫을 놓은 것이었다. 예전에 죽였던 독일군이 걸어 나왔던 장소 뒤에는 독일군 지휘자가 숨어있다. 하지만, 이제 고참이 된 리 마빈의 분대는 수색 과정에서 함정이란 것을 파악하고 독일군들을 죽이는데, 곧이어 뜬금없이 만삭의 임신부를 만나 그녀가 아기를 낳는데 산파 역할을 하게 된다. 숨어서 모든 것을 지켜 보고 있던 독일군 지휘자만 미군이 모두 돌아갈 때까지 계속 숨어 있다가 살아서 도망친다. 마지막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2차 대전 종전 장면이고, 리 마빈은 다시 같은 상황에서 (이번에는 같은 장소는 아니다) 같은 행위를 재연한다. 그는 다시 실수로 독일군 병사를 칼로 찌르는 것이다. 하지만, 곧 분대원들이 나타나 4시간 전 종전이 선언되었다고 말하고, 자신이 칼로 찌른 독일군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는 갑자기 미친 듯이 독일군 병사에게 응급조치를 해주며 너 이 새끼 절대로 죽으면 안돼 라는 식의 말도 하며 그를 들쳐 업고 간다.
이 세 번의 반복은 물론 매우 중요한데, 두 번째 장면 같은 경우는 상징을 주기 위해 약간은 억지스러운 전개를 하는 감도 없지는 않지만 (갑자기 임산부가 나타나는 점), 어쨌건 전쟁이라는 특이한 상황의 모순을 보여주며, 그것이 바로 서유럽전에 끝까지 참전했던 많은 병사들이 나누는 특이한 경험 – 전쟁이 끝나고 독일 병사들과 같이 앉아 이야기하며 쉬는 경험 같은 것들 – 과 같은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사뮤엘 풀러처럼 굳이 죽이고 살리고 하는 것보다는 실제 사병들의 증언처럼 (이런 비슷한 경험들을 다른 다큐멘터리들에 나오는 사병들도 증언한다) 전쟁이 끝나자 갑자기 ‘적’이 나와 같은 ‘사람’이 되는 그런 정도로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순간에 전쟁이란 상황은 드라마 없이도 충분히 한 사람의 삶을 뒤흔들만한 어떤 경험이 되는 것이다.
* 물론, 내전이나 식민지 해방 전쟁 같은 경우는 좀 다르다. 나치 독일 같은 경우 유대인 학살이라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다른 유럽인들에게는 상대적으로 공평하게 대했던 것에 비해 일본 제국은 아시아 식민지를 전격적으로 학대 수탈했고, 일본의 종전 시에는 식민지 대항군과 전선에서 싸운 것이 아니라 미군의 원폭에 의해 일방적으로 종전당했기 때문에 식민지인들과 일본의 앙금은 사라지지 않았다. 또, 남미의 경우처럼 국가 내 내전에서 역시 패자는 지속적으로 탄압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 진다. 한국 전쟁 같은 경우는 내전이면서, 동시에 끝나지 않고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특이하다. (분단 독일과는 매우 다른 경우이다) 1972년 남북 협약이 있기 전까지 남과 북 모두 수천명의 간첩을 파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독일도 물론 마찬가지였다), 남한과 북한에서 모두 간첩이나 불순분자는 가차없는 제거 대상이 되었다 (이는 독일과 좀 다르다). 또, 남한과 북한의 국민들 역시 서로를 다른 사상을 가진 '적'으로 간주하도록 철저히 교육받았다 (이는 독일과 완전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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