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은 감독의 두 편의 영화들: 개관
'고양이를 부탁해'를 주목해서 보게 된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공간에 대한 관심. 혜주의 일상의 공간 - 인천-지하철-서울-포스코 등등, 그녀는 불에 탄 차가 있는 산산조각난 집을 떠나, 아픈 언니와 함께 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다 - 지영의 공간 - 다리 밑의, 그러나 언덕도 있는 판자촌 - 공장지대, 비류와 온조의 공간 - 중국인 마을, 언덕지대, 그리고 태희의 공간 - 인천의 흔한 변두리. 영화 속에서 지영은 혜주를 만나러 서울로 올라오고, 혜주는 소녀들을 클럽(369)로 초대하며, 다시 서울(두산타워)로 초대한다. 그리고 소녀들은 비류와 온조의 집을 방문하며, 태희는 지영의 집을 방문한다. 지영은 공장 지대의 벽 틈에 갇힌 버려진 새끼 고양이를 발견하며, 자신이 해고된 날 그 고양이를 꺼내 안고 돌아온다. 두번째는 고양이의 움직임 - 고양이는 혜주에게 선물된다. 하지만, 혜주는 고양이를 기를만한 여유가 없다. 고양이는 지영에게 돌아오지만, 곧 지영은 집을 잃게 되고, 태희가 고양이를 맡게 된다. 하지만, 태희 역시 집을 떠나면서 고양이는 비류와 온조에게 맡겨진다. 세번째는 태희의 움직임 -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태희의 움직임이다. 그녀는 모든 공간을 떠돌아 다니지는 않는다. 가령, 서울은 태희의 공간이 아니다. 그녀의 공간은 바람이 매섭고, 외국인 (버마) 노동자가 있는 자유공원(월미도?)이며 미친 여자가 돌아다니는 도시의 변두리이고, 장애인인 남자친구 (그는 소아마비라 움직이는 게 힘들고 태희의 건강한 다리를 갖고싶어한다) 가 있는 곳이며, 아들만 귀여워 하는 집에서 스스로 떠나고 싶어하는 딸의 자폐적인 공간으로서의 잠긴 방이다. 그녀는 내부로는 갇혀있고, 외부로는 떠도는 존재이다. 소녀들은 모두 연안부두 출신이며, 영화 마지막에서 태희는 고양이를 맡기고는 지영을 데리고 (우리의) 세상을 떠난다.
영화 속의 다섯 소녀는 각각 상징성을 갖고 있고, 모두 중요하며, 모두가 세상과 화해하지 못한채 그 언저리만을 맴돌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엇박자로 나가는 인물이 바로 태희이다. 태희는 사랑스럽지만 꿈이 없기 때문에 가장 위태위태하다. 역설적으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태희가 자꾸만 멀어져가는 그들의 관계를 지속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영화는 가장 현실적인 혜주로 시작하지만, 곧 사회적 타자가 되는 지영에게 시선을 돌리고, 지영은 고양이를 안고 우리에게 돌아오며, 항상 사회적 보류상태를 유지하는 태희가 그 고양이를 맡아 지하실에 숨겨놓고 보호해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갑자기 스스로 아웃사이더임을 자청하던 비류와 온조가 그 고양이의 주인이 되어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에서 태희와 지영은 떠나고, 혜주는 현실로 돌아가고 비류와 온조가 고양이를 안은채 우리와 함께 남게 된다. 여기서 관객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혜주와 함께 현실로 떠나거나, 태희와 지영과 함께 환상으로 탈출하거나, 혹은 비류와 온조와 함께, 고양이를 떠맡게 되거나. 이 영화는 떠도는 변두리 인의 비현실적인, 그래서 더 절실한 꿈을 담고 있으며, 세상의 어떤 아웃사이더들, 결정하지 못하고 떠도는 소녀들과 교류하고 싶은 의지의 소산이다.
정재은 감독은 다음 작품 '태풍태양'에서 소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각도에서 다시 변두리 인들의 이야기를 구성해낸다. 태풍태양은 서울에서도 신도시, 그리고 끊어진 도로, 학교를 떠난 소년들이 모이는 공원, 버려진 밤의 대도시, 같은 공간을 떠돌며, 소년들은 소녀들과는 달리 어떤 꿈을 갖고 있지만,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다. 태풍태양의 주인공인 소요는 그 속에서 유일하게 떠도는 존재이지만, 그가 떠도는 방식은 태희와는 달리 계속해서 선택적이다. 이것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저것이 옳은 것인가? 그는 모기와 갑바라는 두 명의 큰 형들을 통해 갈등하고, 학교와 학교 밖에서 갈등하며, 자신의 가족과 세상이 붕괴되는 속에서도 한주를 통해 어떤 욕망을 지속시키고 있다. 태풍태양에서 역시 감독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은 그 방황의 시간이다. 하지만, 고양이를 부탁해와는 달리 태풍태양에서 소요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감독은 여기서 영화를 중단시켜버린다. 거인과 같았던 두 형들은 무너지고, 패배하며, 사라지고, 천번의 사랑을 꿈꾸던 한주 역시 태풍 속으로 걸어들어가지만, 학교로 돌아간 소요는 어느날 갑자기 숨쉬고 있는 스케이트를 느낀다. 그리고, 몇년 뒤 그는 '소요'라는 이름으로 호주(?)에서 벌어지는 대회에 선수로 출전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감독은 이 영화를 꿈을 이루고 '성공한' 자들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라, 꿈을 갖고 계속 넘어지는 친구들에게 바친다.
고양이를 부탁해와 태풍태양은 한 쌍을 이루고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 태풍태양은 고양이를 부탁해에 대한 대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두 영화는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오히려 그런 방식을 통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심을 보여주게 된다. 나는 고양이를 부탁해를 사적인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감독의 욕망이며 의지이고 또 표현이며 선언이었다. 영화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다행히 어떤 운동으로 이어져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여전히 성공하지는 못했으며, 다음 작품인 태풍태양은 이상할 정도로 외면당했고, 버려졌다. (태풍태양은 고양이를 부탁해와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다. 정재은 감독은 다른 누구보다도 더 절실하게 아웃사이더를 이야기하는 감독이라고 나는 생각하며, 이 두 영화를 나는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그녀의 세상에서 성공, 혹은 성장이란, 자신이 싸워서 이기고 갈취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항상 너무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거나, 혹은 피해가게 되는 그런 것이며, 이야기들은 성공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우회로에 산재하는 환상이나 나약한 믿음, 인정받지 못하는 꿈, 그런 것에서 나오게 된다.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집시의 시간' 같은 작품들이 혹시 이런 세계를 보여주지 않았었나 생각이 된다. 또는 미국의 뉴 웨이브 영화 중 하나였던, 몬테 헬먼 감독의 'Two-Lane Black Top'[자유의 이차선]? 역시 태풍태양과 비슷한 여정에 놓인 작품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한다.) 그녀는 또한 이런 이야기들을 굳이 패배자의 시점으로 그리지도 않는다. 두 편의 영화의 가장 매력적인 지점은 이 영화들이 성공이나 실패, 혹은 죽음으로 향해 내달리는 '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고, 계속해서 결정을 유보하고, 방황하는 '방랑'에 집중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들은 나약하고 미미하지만, 무언가 '현재'를 보여주고 있다. (가령 요즘의 많은 일본 영화들이나,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문제를 잠깐 해결하는 변영주 감독의 '발레교습소'같은 영화와 비교해볼만 하다. 혹은 마지막의 강렬한 인상을 향해 계속 달리는 노동석 감독의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영어 제목이 더 멋있다 - Boys for Tomorrow) 도 생각해볼만 하다.)
그래서, 이 영화들에서 공간에 대한 시각은 중요하다. 그것은 사회문제를 다루는 다른 영화들의 상징적인 공간들과는 또 다른 공간을 창조한다. 변두리나 가족 같은 것들은 계급적이지만 파괴되야 하거나 떠나야 하거나, 그런 공간들은 아닌, 상처를 주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오직 하나 뿐인 공간이기도 한, 도망가야 하지만, 동시에 빠져나갈 수 없는, 그런 공간들로 조망된다. 그 공간들을 버리고 삶은 달걀과 쌍원경, 퍼석퍼석하게 낡은 책들과 나름대로의 임금을 가지고, 마치 비류와 온조의 방에 있던 나룻배를 타고 떠나듯 떠난 태희와 지영은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이 영화가 감독의 도박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현실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한 감독을 역시 나는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태희와 지영도 그렇게, 성공하지는 못해도 나름대로의 삶의 실체를 가지고 우리에게 귀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꿈같은 세상이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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