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

A Bridge Too Far (1977) Richard Attenborough

이박오 2012. 5. 7. 07:51

 

A Bridge Too Far (1977) Richard Attenborough

 

 

이 영화를 언급하려면 먼저 하나의 기억을 이야기 해야 한다. 그것은 두 개의 장면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그 잔인함으로 깊이 각인된 장면, 연합군 공수부대원들이 낙하산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적군들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기관총을 갈겨댄다. 매달린 채 발버둥치며 무력하게 살육 당하는 군인들. 다른 하나는 아마 영화의 마지막 일거라 생각되었던 장면으로, 패배한, 부상당하고 지친 연합군들이 파괴된 도시의 대로변에 맥없이 무리지어 앉아있는데 지나가던 독일 장군이 초콜렛을 건네는 장면.. 그리고 높은 하늘 밑에 낮게 깔린 그 폐허와 넓은 도로 양 옆으로 낮게 주저앉아있는 대열 너머로 거대한 다리가 하나 보인다.

어릴 적 보았던 이 영화의 기억은 끝나지 않는다였다. 잔인한 살육과 결국 승리는 없다는 막막함이 지루하게 계속되는 길고 긴 영화를 봐야 한다는 강박의 어지러움과 중첩되어 정말 머나먼다리 라는 인상으로 잊혀지지 않고 남았던 것이다. 하지만, 다시 보게 되었을 때는 내 기억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억 속의 두 장면 모두 진짜로 있었지만, 이미지는 꽤나 달랐다. 혹시 다른 영화를 잘못 기억하고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하나도 아니고 둘 모두 등장하니 이게 맞을 텐데.. 이렇게 흥미진진했던가? 그리고, 이렇게 짧았었나?

 

 

이 영화는 결코 짧지 않다. 세시간에 육박하는 리처드 아텐보로의 머나먼 다리’ (1977) 2차 대전이나 그 막바지의 서유럽 전황, 혹은 악명 높은 마켓가든 작전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이 보더라도 충분히 재미있게 구성되었으며, 더크 보가드, 마이클 케인, 숀 코너리, 로버트 레드포드, 진 해크만, 제임스 칸, 에드워드 폭스, 하디 크루거, 막시밀리안 쉘, 라이언 오닐, 엘리엇 굴드, 안소니 홉킨스 등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대스타들이 대스타의 후광 없이도 충실히 자기들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무게를 지니게 된다. 거기에 로렌스 올리비에와 리브 울만이라니..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캐스팅에 각각의 배우 모두 명성에 걸맞는 연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는 실제 전사를 다루는 책을 바탕으로 재현되었고, 심지어 가장 말이 안될 것 같은 에피소드 마저도 실화에 근거한다. 장담컨데, 이 영화는 전쟁을 모험담이나 선악의 대결 혹은 인간성의 대두 등이 아닌 전술과 전략, 그리고 피로와 참상이 교차하는 전장전선그대로 재현하는 최상의 영화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는, 에피소드들의 나열을 통해 어떤 종류의 일관된 주제로 몰고 가려 하거나 감독의 주관, 혹은 철학을 들이대지 않고, 이야기를 그대로 밀어붙여 사실의 의미를 획득한다는 점에서도, 전쟁을 다루는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리차드 아텐보로는 굳이 일화나 나레이션을 통해 주제를 감동적으로 전달하는 대신 음악을 사용하는 방식을 택하는데, 거기서도 영국인 특유의 과소법(understatement)으로써의 아이러니를 이용한다.) 여러 에피소드들을 마켓가든이라는 하나의 큰 이야기로 모으는 이야기의 형식을 띠지만, 여기서는 특별히 에피소드들의 독립성이 강조되지도 않고, 각각의 주인공들의 행위에 지나친 감상이나 해석을 부여하지도 않는다. ‘화려한 캐스팅의 몇몇 인물들은 영웅적이고, 다른 인물들은 무책임하지만, 감독은 그들에 대한 평가를 내리려 하거나, 결과를 강조하거나, 감정적인 면면을 부각시키지 않는다. 그들의 행동에는 어떤 명백한 한계가 있으며, 그들은 그 한계에 대해 침묵으로 대답한다. (가령 시종일관 주저주저하는 눈빛의 더크 보가드나 낙관론자의 패배를 보여주는 에드워드 폭스의 연기 같은 것들이 모두 잘 계산된 연기이다.) 그래서, 모든 이야기는 각각 인물의 역사나 성격이 아닌 마켓가든이라는 한 사건의 진행과 결과로 합쳐지게 된다.

 

 

이 영화에는 많은 스타들이 등장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주인공은 아니다. 심지어 가장 신사적인 인간으로 나오는 독일 장군 비트리히나, 그에 대항하는 어쿼트, 이 작전을 통해 세계 공수특전사에 남은 존 프로스트도 개인적으로는 부각되지 않는다. 비트리히가 예외적으로 세 시간의 여유를 허락했을 때, 영국군 장교는 통역을 하던 의사에게 고맙다고 말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의사는 벌써 했다고 하고 비트리히는 바로 들어가 버린다. 이런 모든 장면들에 어떤 감정의 과잉 같은 것은 없다. 에피소드가 끝나면, 병사들도, 장군들도 자신의 지위로 돌아간다. 그래서, 어쩌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중반까지는 등장하지도 않는 의사와 민간 봉사자일 지도 모른다. 오직, 무언가 잘못되었을 때, 작전을 조롱하거나 비웃기 위해서, 영화는 희망찬 행진곡을 곁들인다. 영화라는 매체의 전성기였던 70년대의 영광을 그대로 대규모 전쟁 신들로 옮겨낸 이 현실적인 장면 장면들은 지금의 영화 산업이나 과장된 영화 문법으로는 웬만해선 다시 재현해 낼 수 없을 것이며, 동원된 대전 당시의 차량이나 장비들 역시 이제는 그야말로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이야기와 주제는 있다. 그것은 선전 문구가 말했듯이 작전을 수행했던 장군들의 이야기이며,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 하에서 수많은 인명에 대한 책임을 맡은 자들이 지나친 욕심과 안일한 준비로 행동하면 어떠한 희생이 따르게 되는가 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사전 지식없이 본다면, 우리는 그런 탐욕스럽고’ ‘무능한장군들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그들은 전쟁을 경쟁이나 레이스 따위로 여겼던 (패튼과) 몽고메리(등장하지는 않으나 처음부터 영화는 이들을 언급한다) 이며, 제대로 준비도 안된 계획을 밀어붙일 뿐만 아니라, 충분히 근거있는 여러 정보들을 애써 외면하는 브라우닝이고, ‘우리는 웨스턴 영화에서처럼 악당들을 무찌르고 포로들을 구해내는 역할을 하는 기병대라고 경망스럽게 떠들어대는 호록스이다.

 

 

독일군 점령치하 네덜란드의 라인강 하구에 이르는 일직선 도로를 따라 7개의 다리를 3개 공수사단을 투하시켜 선점한 후에 전차부대로 도로를 급속돌파하며 이틀 안에 확보함으로써 적진을 관통하고 라인강 서부까지 진격, 항만 확보와 독일 최대의 병참지역인 루르 지방 공략의 발판으로 삼는다는 구상의 마켓가든 작전은 몽고메리가 입안했으며, 브라우닝은 여기서 7개의 다리를 책임질 공수사단을 총괄하는 집단군(마켓)을 맡고 있었고, 호록스는 육로를 뚫고 가는 전차부대(가든)의 책임자였다.  노르망디 상륙 이후 전쟁 후반기 19449월에 시행된 이 작전은 연합군의 가장 처참하게 실패한 작전의 하나로, 이틀에서 나흘을 예상했던 작전은 9일간의 전투로 발전되면서 17000여명의 연합군 사상자와 대략 6000-10000명 정도의 독일군 사상자, 그 외 500여명의 민간인 피해자를 냈다. 연합군, 특히 영국군은 이 작전으로 가장 뛰어난 정예부대라고 할 수 있는 공수사단 하나의 절반 정도를 희생당하는 괴멸적인 패배를 당했다. 마지막 9일 째에 그들은 마지막 점거 대상이었던 아른헴 다리와 그 근방에 고립되어 있었던 영국 1공수사단을 불과 1마일 앞에 두고 있었다. (결국 나이메겐까지의 도로를 확보하는데 성공했지만, 아른헴과 라인강 서부는 45 3월까지 함락되지 않는다)

반면, 영화는 패전의 영웅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점거 직전에 어처구니 없이 폭파당한 쏜 강의 가교를 만드는 스타우트 (로버트 싱크) 대령이나, 독일군에 선점된 나이메겐 다리를 빼앗기 위해 캔버스로 만든 배를 타고 강을 도하하는 줄리안 쿡 소령, 아른헴에서 총탄이 떨어져 패배할 때까지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나흘간 결사항전했던 존 프로스트 중령과 마지막까지 적진에 고립되는 1사단 본부의 로이 어쿼트 장군, 거기에 동료를 살리기 위해 군기위반까지 하는 사병의 이야기, 그리고, 아들이 죽자 그 시체까지 바리케이트를 쌓는데 이용하는 네덜란드의 레지스탕스 시민들과 부상병들을 살리기 위해 적군 장군을 찾아가 잠깐의 휴전을 요청하는 의사, 등등, 이 모든 이야기들은 허구가 아니며, 매우 충실하게 재연되고, 거기에 독일군 기갑 사단을 맡아 나이메겐과 아른헴 다리를 지켜내는 두 명의 SS 무장 친위대 장군, 그리고 그들의 상관인 모델 원수와 룬트스테트 원수까지 영화는 보여준다. 그리고, 연합군에서처럼, 독일군에서도 네덜란드에 집결해 있던 집적군의 총 책임자였던 모델의 안일함과 그에 반하는 두 장군의 강직함이 교차된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한 영화의 구도 (나태한 총책임자들과 피해를 입는 휘하 장군들)는 꼭 사실에 근거한 것만은 아니다. 가장 분명한 경우는 모델 원수로, 그는 영화에서 묘사하는 나태한 망상주의자가 전혀 아니었다. 영화에서는 연합군의 대규모 강하를 자신을 잡으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다리를 폭파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는 그가 다분히 희화 되지만, 실제 발터 모델은 연합군이 그를 목표로 대규모의 부대를 투하할 만한 요인이었고 (독일군의 동부 (러시아) 전선 영웅 중 하나였고 집적군단의 지휘자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합군의 의도를 간파했으며, (영화에서도 묘사한대로) 독일군이 발견한 마켓가든 전투의 지휘도를 입수해서 (영화와는 달리) 곧바로 두 개의 사단을 아른헴과 나이메겐으로 급파하고 첫 날이 지나기 전에 방어 태세를 완료했다.

연합군 지휘관들도 마찬가지이다. 브라우닝이 네덜란드 레지스탕스의 정보나 자국의 정보들을 무시하고 작전을 강행한 것이나, 호록스가 모험에 가까운 82공수사단의 나이메겐 다리 탈취가 마침내 성공한 이후에도 기갑 부대를 무려 18시간이나 멈춰서게 만든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지만, 그것이 단순히 그들이 안일해서 였던 것은 아니다. 오버로드 작전(노르망디)의 성공 이후 일시에 괴멸할 줄 알았던 독일군들은 제공권을 완전히 빼았기며 거의 모든 군장비가 파손되어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서유럽의 대부분에서 버티고 있었고, 반대로 안정적인 병참선 구축에 실패한 연합군들은 금방 지쳐가고 있었다. 영화에서 브라우닝이 잠깐 언급하고 지나치지만, 이 때 연합군은 열 다섯 번 이상의 공수작전을 계획했다 취소하기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연합군의 진군 속도가 너무 빨라서 필요가 없었지만, 두 세 달 후, 항만 확보에 실패하고 보급이 결정적인 문제로 떠올랐을 때에는 공수작전이 절실하게 필요해졌다. 마켓가든 작전은 그런 여러 작전 중 하나였을 뿐이다.

 

 

게다가, 시간도 없고 규모도 너무 큰 대규모 작전이었지만, 만약 성공했다면 병참선을 마련해서 연합군의 진격속도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키고 독일군의 최요충지를 탈취하게 되는, 연합군에게는 노르망디에 못지 않을 활력을 주었을, 그런 중요성을 지닌 작전이었다. (더욱이 당시 영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독일군의 V-2로켓이 제작되고 있던 루르 지방을 반드시 공격해야 한다는 요구도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었으며 크리스마스 이전에, 1944년 내에 전쟁을 끝내버리고 싶다는 모두의 욕심도 있었다.) 영화에서도 사실은 제대로 보여주듯이, 잘못은 결국 몽고메리만의 것도 아니었다. 그가 이 작전을 제안한 후부터 모든 장군들, 그리고 많은 작전참모들은 위험요소들을 무시하고 배제하며, 그저 안일하게 독일군 대항병력이 이미 전의를 상실했다고 가정해버린다. (그리고, 1사단의 공수장소를 목적지로부터 무려 8마일 (15km)이나 떨어진 곳으로 잡는 작전장교가 그러듯, 몽고메리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기도 한다.) 마켓가든이 아니었더라도, 이런 비슷한 내용의 무책임한 어떤 작전은 어쩌면 어느 다른 시점에서라도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이 작전은 그 실패의 규모가 가장 컸다는 데서 특별할 뿐이다.

호록스의 경우도 그의 잘못만이라기 보다는 순전히 독일군의 훌륭한 즉각 방어태세 확립에 의한 지연이었다. 마켓가든 작전의 치명적인 허술함 중 하나는 기갑군단이 7개의 다리를 관통하기 위해 단 하나의 도로만 이용해야 한다는 점이었는데, 이미 모든 정보를 입수한 독일군은 재빠르게 병력을 움직일 수 있었고, 연합군 30군단은 거의 모든 도로에서 크고 작은 저항에 맞부딪혔으며, 심지어 이미 지나온 길도 되돌아가거나 병력을 분산시켜 남겨 두어야 하는 상황들이 계속 발생한 것이다. 게다가 강폭 30미터 정도의 쏜 강에서 무너진 다리를 가교로 대체하는 데만 반나절 이상이 걸리듯, 다리 하나만 무너져도 작전의 결과가 달라질 게 뻔하다는 점도 문제였다. 가교로 대체할 수도 없는 길이 260여 미터의 나이메겐 다리가 만약 폭파됐더라면, 작전은 바로 실패했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상황이 잘못된 결과를 향해 나아가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브라우닝이나 호록스만 무턱대고 비난할 수는 없다. 애초에 무리한 계획을 위험 속에서 도박적으로 강행한 몽고메리를 비난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겠지만, 영화는 그를 온당히 배제한다. 이런 방식으로 이 영화는 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기 보다는 그 전체 과정을 보여주는 편을 택한다.

 

 

대신 영화는 여러가지 다른 에피소드들을 병렬해서 보여준다. 희망찬 행진곡 속에 일견 성공적으로 보이는 연합군의 진군과정은 벼락치는 듯한’ ‘속도가 생명이라던 작전 개시 시점의 전술을 금새 상실한 채 지속적으로 느려지고 있고, 아인트호펜에서 여유롭게 진군하는 30군단을 대환호로 맞이하던 인파는 결국 아른헴에서 전쟁의 의미를 이해할 의도가 전혀 없는 늙은 노파의 끊임없는 불만과 투정으로 뒤바뀐다. 그 와중에서 우리는 가교와 보트를 둘러싼 영국군과 미군의 쓸데없는 자존심 다툼도 볼 수 있으며, 결국 대단해 보였던 이 작전이 사실은 세부 대책 없는 속 빈 강정과 같았음을 알게 된다. 그 모든 게 패배라는 결과로 돌아올 아른헴에서는 외부로는 물론 사단 내부의 무선마저 두절되고 보급은 끊기며 지원도 오지 않는 가운데 심지어는 사단장이 독일군의 습격을 받아 행방불명되는 난감한 상황까지 벌어지게 된다. 어처구니없이 민가에 고립되게 될 공수사단장 로이 어쿼트 장군이 전장에 착륙할 때 그를 맞은 것은 환영인파도 불평도 아니라 정신병자들의 웃음 소리였으며, 영화의 마지막에서 분노한 그가 나는 항상 우리가 너무 먼 (머나먼) 다리를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했었네라는 어처구니 없는 대답을 듣기 위해 연합군 헤드쿼터로 돌아올 때는 그 웃음과 오버랩되는 새떼의 비웃음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이 영화는 거대한 블랙 코미디이다.  

 

 

 

이 영화는 블랙 코미디이다. 사실, 영화에서 연합군의 진군과정 전체가 블랙 코미디 이지만, 아른헴에서 우리는 그 가장 명백한 세 에피소드를 보게 된다. 첫 번째는 사단 본부에서 벌어지는 보급품 에피소드. 적진 속으로 떨어진 보급품 드럼 중 유난히 가까운 하나를 달려가서 들쳐메고 뛰어오는 병사를 향해 모든 부대원들이 환호성을 외치지만, 거의 다 왔다 싶을 때쯤에 일격에 사살되는 장면, 어처구니없게도 그가 목숨을 걸고 들고 오려 했던 드럼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베레모만 한가득 들어있었다. 두 번째는 예의 투덜대는 노파가 결국 지긋지긋한 전쟁터가 돼버린 집을 버리고 떠나는 장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모두가 지쳐 나자빠져 있는 가운데 혼자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집 앞을 나선 노파는 끝까지 전쟁을 이해하지 못하고 폐허가 된 거리에서 택시를 부르다 총에 맞아 죽는다. 마지막 장면은 그나마 좀 웃기는 블랙 코미디로, 도대체 상대가 안 되는 프로스트의 부대에 항복을 제안하는 독일군 기갑사단에 프로스트의 부관이 그쪽이 항복해도 우리는 수용할 시설이 없으니, 항복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대로 대답하는 장면. 

그리고 나면 계속 지연되면서 새벽에서 아침으로, 아침에서 오전으로, 그리고 점심 때로, 결국은 오후로 넘어가도록 시작되지 못하던 나이메겐의 모험적이지만 자살적이기도 한 다리 탈취작전이 이어지고, 독일군이 설치한 폭약이 폭발하지 않아서 어부지리로 성공한 줄도 모르고 연합군이 다리를 건너면 예의 그 힘찬 행진곡이 이어지며 이제 누가 저들을 막을 것인가라고 뇌까리는 독일군의 모습이 보인다.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라고 대답하는 독일군 장군과 환호하는 연합군. 하지만,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그 연합군은 결국 아른헴에 이르지 못한다.

 

 

간신히 연결된 무선에서 서로 지원을 요청하는 부대들과 며칠간의 지연 끝에 결국 투입된 폴란드 공수부대가 신이여 몽고메리를 가호하소서라고 빈정대며 강하하는 즉시 대부분이 사살되는 장면과 불가능한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강을 헤엄쳐서 건너온 공수부대원과 강을 건너지도 못하고 공격당하는 지원부대. 총탄을 맞고 모르핀을 달라고 외치는 의무병을 업고가며 모르핀은 정말 아픈 사람에게만 주는 거라고 말하는 병사, 그리고 난 정말 아픈 줄 알았는데 라고 대답하는 의무병..

이렇게 모든 일이 꼬여만 가는 가운데 오직 한가지 영화가 일관되게 조금씩 발전시키는 주제는 정지와 조용함에 관한 것이다. 아무도 이해하지 않는 외롭고 고집 센 노파의 중얼거림으로 시작되는 조용함, 휴식, 평화에 대한 갈구는 전장에서 늘어만 가는 연합군 부상자들을 보살피며 단 오 분만이라도 좋으니 그들이 평화로이 죽음을 맞이 할 수 있도록 제발 총성과 포탄이 멈추기를 기도하는 민간봉사자와 한 시간만이라도 좋으니 부상자들을 독일군 병원으로 후송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기를 부탁하는 의사, 그가 바라보는 잿더미가 되어버린 아른헴 시가지와 그 속을 떠도는 사람들과 개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적군임에도 불구하고 세 시간의 여유를 주는 독일군 장군의 기사도적인 에피소드로 발전된다. 전쟁이 일순 정지하고, 총탄 소리 대신 숨어있던 병사들과 부상병들이 서로를 부축하고 무리지어 후송되는 삶의 소리로 화면이 가득 차면, 한 병사가 플룻을 불기 시작한다. 허황된 행진곡이 아니라, 차들이 움직이며 전사자들을 묻는 와중에 들리는 그 플룻 소리만이 병사들에게는 진정한 안식을 준다. 결국 연합군은 패배한다. 후퇴하지 못하고 아른헴에 낙오된 공수부대원들이 다 부서져 버린 본부 건물에 모여 앉아 찬송가를 부르는 가운데 몇 명의 독일군들이 천천히 그들을 향해 걸어가는 평화로운 모습으로 전투는 끝난다.

 

 

작전에서 지속적으로 괄시받는 약소국가 폴란드의 공수여단장 소사보스키가 내뱉듯이 누군가가 내일은 전쟁 놀이나 할까?’ 라고 말하면 모두가 죽는다’. 이 영화는 무모함으로 수많은 인명을 죽음으로 몰고간 무책임한 장군이 전술적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17000여명의 피해와 작전 실패 앞에서도 꿋꿋하게 90퍼센트는 성공했다고 망언하는 것을 보여주며 비아냥거리지만, 굳이 그들 똥장군들만을 겨냥하는 작품은 아니며, 차라리 전쟁이라는 상황 자체가 지닌 어처구니없음을 드러낸다. 그것은 심지어 한 가족의 마지막 남은 형제를 살리기 위해 분대 전원이 희생하는 가족 중심의 영웅주의 같은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국가간 전쟁은 2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인간이 행하는 가장 위대한 행위의 하나라고 굳게 믿어져왔고, 20세기 이후 선과 악의 싸움으로 신화화 된 적도 있었다. 지금도 지역에 따라 전쟁은 어떤 민족의 생사를 가르며, 우주전쟁 같은 환타지에서는 인류 생존이라는 숭고한 사명을 부여받기도 하지만, 20세기 후반 이후 전쟁의 실체는 다름이 아닌 경제와 정치에 있을 뿐이다. 가족의 마지막 남은 형제는 전쟁에서 제외되지만, 만약 그가 이미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전장에 투입되었다면, 굳이 그를 구하러 적진으로 뚫고 들어갈 영웅들은 현실에서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전쟁 속엔 영웅의 일화들이 분명 존재하지만, 전쟁 자체가 그런 것을 의도로 벌어지는 행위는 아니다. 그런 일화들은 결국 부수적이며, 때로는 오히려 전쟁보다 더 가식적인 정치 쇼로 소모되기도 한다. 진짜 전쟁은 베트남전 이후로는 그런 것도 없지만 오직 전술과 전략의 문제일 뿐이다. 하필이면 왜 그 때 독일군은 기갑사단을 아른헴에 배치했으며, 왜 무전기는 모두 먹통이 되어버렸나? , 왜 누군가는 극비사항이어야 할 전술지도판을 전장으로 들고가서 적군에게 작전의 모든 것을 알려주었는가? (물론 때로는 이런 식으로 일부러 가짜 정보를 흘리기도 하지만) 마켓가든 작전은 어떻게 보면 연합군에게는 지독하게도 운이 없어서 실패한 작전일 뿐이고, 다르게 본다면,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용감하게 적진으로 뛰어든 군대가 겪을 당연한 운명을 보여준다. 소사보스키가 말하는 대로, 오직 만약 성공한다면똑같은 꼴통 작전도 위대한 작전으로 역사에 길이 남는 것이다. 반대로, 어떤 잘 짜여진 작전이라도, 서로가 서로를 이기기 위해 생사를 걸고 승부하는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는 도박일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 속에서는 장군도, 사병도, 영웅도, 겁장이도, 그리고 민간인도, 모두가 희생자일 뿐이다.

 

 

존 프로스트는 독일군의 항복 제안까지 거절하면서 총탄이 다 떨어질 때까지 자신의 대대와 점거지를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2차 대전의 한 영웅이 되었다. 지금도 아른헴의 시민들은 도시에 고립되어 끝까지 싸운 그의 부대를 추모하며, 아른헴 다리의 이름은 존 프로스트 다리가 되었다.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듯이, 그러기 위해서, 그는 가정집을 맘대로 점거해 그 가족을 파탄으로 몰고갔으며, 결과적으로는 무리한 항전을 계속함으로써 아른헴 시를 잿더미로 만드는 역할도 하게 된다 (독일군은 주택가에 숨어서 항전하는 적군을 소탕하기 위해 시 전체를 포격한다) 영화는 결코 그를 비난하지 않지만, 동시에 의사의 시선을 통해 비극을 드러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전쟁이란 그런 것이다. 전선의 움직임을 위해서 1차로 희생되고 소개되는 것은 비전투 인원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짐을 싸서 달구지를 끌고 떠나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무 것도 남지 않은 황량한 등성이를 올라가는 그들의 모습이 저 쪽으로 사라지고 나면 어김없이 흐르는 힘찬 행진곡. 과연 어느 누가 그 감상에 빠질 수 있을 것인가?

 

 

 

 

 

아른헴 지역에는 여러 개의 기념물이 있다. 그 중 한 기념비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힐데를란트의 사람들이여, 50여년전 여기서 영국과 폴란드의 공수부대원들이 독일로 진격하여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중과부적으로 싸웠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과 파괴만을 가져왔고 당신들은 우리를 비난하지 않았다. 이 기념비는 당신들의 위대한 용기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며, 부상병들을 돌보았던 여성들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싸움 후의 긴 겨울 동안 당신들의 가족은 죽음을 무릅쓰고 연합군과 공군을 숨겨주었으며 저항군은 우리를 안전하게 돌려보내 주었다. 우리를 도망자로 여기고 집에 받아주었던 당신들을 우리는 친구로서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이 진한 관계는 우리가 모두 사라진 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되리.

There are a number of monuments in the Arnhem area. A memorial near Arnhem reads:

To the People of Gelderland; 50 years ago British and Polish Airborne soldiers fought here against overwhelming odds to open the way into Germany and bring the war to an early end. Instead we brought death and destruction for which you have never blamed us. This stone marks our admiration for your great courage remembering especially the women who tended our wounded. In the long winter that followed your families risked death by hiding Allied soldiers and Airmen while members of the resistance led many to safety. You took us then into your homes as fugitives and friends we took you forever into our hearts. This strong bond will continue long after we are all gone.   (from Wikipedia : http://en.wikipedia.org/wiki/Operation_Market_Garden)

 

 

 

 

+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http://www.youtube.com/watch?v=eK4t6mh2718&feature=relmfu

+ 머나먼 다리 트레일러

http://www.youtube.com/watch?v=DKDPX8PEi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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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는 영국군의 셔먼 파이어플라이 같은 전차들이 대거 출연하지만, 역시 독일군 전차는 2차 대전 시의 것이 아니다. 독일군 전차 중 대전 후 파괴되지 않고 남은 것은 손꼽힐 정도이며, 박물관이나 수집가들이 소장하고 있는 전차들을 촬영에 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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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도로 (Hell’s Highway) - 저지대인 네덜란드의 지형은 무선 장애 이외에도 30군단의 쾌속진격에도 많은 문제를 야기시켰다. 작전상 주어진 길은 단 하나였으며, 그 길은 대개 주변 지대보다 높이 제방처럼 연결되어 있었으나 너무 좁았고 (2차선) 지원차량들이 이용하기에는 지반이 약했으며 숲과 도랑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게다가 주변보다 높이 솟은 덕에 일렬로 늘어선 연합군 차량들은 적들의 포격 연습감이 되기에 딱 좋았다. 30군단이 통과해야 할 다리들은 쏜 (30m), 베겔(20m), 그라베(240m), 마쓰-발 운하(60m), 나이메겐 (260m), 아른헴 (90m), 그리고 우스터비크의 철교까지 7개였다. 이 도로를 통해 2300여대의 차량과 보병들로 구성된 기갑군단이 아른헴까지 64마일, 100km 구간을 이틀만에 주파하겠다는 계획은 당시 이미 두 달 간의 캐나다군과의 교전에서 연패하고 괴멸, 빠르게 퇴각하고 있었던 네덜란드의 독일군에 대한 정보를 뒷받침해 입안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과는 달리, 히틀러는 9월 초 의견충돌로 해직시켰던 룬트슈테트 원수를 전격적으로 서부전선 최고 책임자로 다시 불러들였고, 룬트스테트는 패튼과 아이젠하워의 연합군 60개 사단규모의 진격을 대비한 대비책을 짜기 시작했으며, 2개의 무장친위대 (SS)기갑사단을 정비하기 위해 아른헴으로 이동시키면서, 자신의 전임이었던 모델 원수로 하여금 기갑사단들을 포함한 B 집적군의 지휘를 맡게 했다. 연합군 정보부와 네덜란드 지하저항군 모두 독일군 병력 이동의 정보를 입수, 보고했으나, 몽고메리는 모두 무시해버렸다.

그렇다고 독일군의 상태가 특별히 좋았던 것은 아니다. 모델이 거느린 B 집적군 이래 봤자 중화기는 야포 250여문이 전부였고, 그에게 임시 배속된 두 개의 기갑 사단도 말이 사단일 뿐, 2개 사단 병력을 다해 7000명이 안되는 데다가 전차는 중전차 3대와 구축전차 2대라는 웃지 못할 병력이었는데 (영화 패튼에 등장하는, 패튼이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처음으로 독일 전차부대를 물리치는 엘 가타 전투에서 파괴된 독일군 전차만 해도 30여대였다. 노르망디 이후 연합군의 끊임없는 공습으로 독일군은 말 그대로 괴멸상태였다), 그럼에도, 좁은 도로를 따라 길게 일렬로 늘어선 연합군 기갑군단은 기습 및 매복 등을 통한 허리끊기로 전진을 지연, 교란시킬 수 있었고, 선두 전차 한두대만 파손시켜도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었다. , 전차 하나 없이 경화기만으로 무장한 공수부대원들을 대상으로 아른헴과 나이메겐의 두 다리를 선점하는 것은 전차 5, 그리고 우연의 일치로 아른헴 근방에 주둔해있던 3000여명의 대공수부대 병력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물론 독일군이 보기에도 마켓가든 작전은 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특히나 작전지도까지 확보해놓고 보니, 신중하기로 유명한 몽고메리가 이런 도박에 가까운 작전을 실행했다는 것은 더더욱 믿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연합군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눈에 띄는 것이었고, 모델은 방어선을 구축했으며, 두 개 사단은 각각 아른헴과 나이메겐으로 진군했다. 이렇게 해서, 작전 개시 1일 만에 마켓가든 작전은 기습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아른헴의 영국 공수 1사단의 투하 작전은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목표지에서 15킬로미터 밖에 착륙한 후에 짚차를 타고 목표지로 이동, 보급부대와 지원병이 오기까지 24시간 동안 다리를 지켜야 하고, 지원병 역시 15킬로미터 밖에 착륙한다는 식의 이런 작전은 독일군의 존재를 아예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워낙 대규모의 인원이 공수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항공기가 부족했던 연합군은 인원을 2, 3차로 나누어 투입할 수밖에 없었는데, 수송단은 정비와 휴식을 이유로 하루 한 번 이상 비행하기를 거부했고, 날씨가 안좋으면 그 마저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아른헴의 1공수사단은 지원없이 6일간 고립되었으며, 6일째 폴란드 공수여단이 마침내 투입되었을 때에는 독일군이 점령하고 있는 강의 건너편에 착륙했기 때문에 아무 도움도 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른헴에서 독일군의 공격을 피해 우회 전진해서 다리의 북쪽을 장악한 존 프로스트가 이끄는2대대의 반격은 매우 거셌는데, 그들은 독일군 9사단의 정찰대대를 전멸시켰으며 20대 이상의 차량을 파괴하기도 했다. 비트리히와 독일군들은 이런 영국 공수부대원들을 붉은 악마 (Roten Teufel)라고 부르며 적이지만 예의를 갖추어 대했다고 한다. 빌헬름 비트리히는 SS 소속으로는 특이하게 반나치적인 인물이었는데 대전 후반기에 자유롭게 당을 비난하여 내부에서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그는 아른헴에서 자신이 약속한 병원 지원 시간에 나치당원들이 연합군병 포로들을 일부 살해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당이 자신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며 분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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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여단장 소사보스키

브라우닝에 의해 노골적으로 무시당하는 폴란드 장군 소사보스키의 공수여단은 날씨 때문에 작전 시작 6일 후에야 투입되었으며 (애초 작전이 이틀에서 나흘 기획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라) 그들의 착륙지점은 독일군이 점거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병력의 삼분의 일 정도는 착륙과정에서 사살당하거나 포로로 잡혔고, 영국 공수1사단은 착륙지에서 강 건너 북쪽에 있었기 때문에 도움을 줄 수도 없었다. 지원요청에 응하기 위해 소사보스키는 야간도하를 시도했으나 더 많은 병력만 상실했다. 이렇게 무책임하고 의미없는 공수작전을 지휘한 브라우닝과 몽고메리는 작전 종료 후 오히려 폴란드 군에 압력을 넣어 소사보스키를 교체했으며, 마켓가든 작전 실패의 책임을 그에게 떠넘겼다. 불명예스럽게 퇴역한 소사보스키는 전후 영국으로 망명하여 노동자로 살았는데, 그의 장례식에서야 이웃 사람들은 그가 대전에 참가했던 장군이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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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패튼과 머나먼 다리를 분석하면서 나치 독일군을 유태인 학살과 무관한 군사집단으로써 다루었다. 이 영화들은 유태인 문제를 다루지 않고, 오직 전쟁과 전사를 다룬다. 유태인 문제를 다루는 좋은 영화들은 많이 있고, 또 이 문제는 일본군의 학살과 만행이 아시아에 상처를 남기듯 유럽에 깊은 상처를 남겼으나, 반면에 이 때문에 나치 독일이라는 집단 전체를 연합군이 무조건 단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하지만, 반공시대에 만들어진 많은 전쟁영화에서 독일군은 그냥 악의 축이고 선한 민주주의의 도덕적 쾌감을 위해 죽어나갔다. (우리 나라 반공 영화에서 처럼)

반면 역사의 중심도 아니었고 그 피해자가 미국이나 유럽도 아닌 당시로서는 약자였던 중국과 아시아인들이었으며, 스스로는 원폭의 피해자가 된 일본의 경우 아시아가 아닌 미국에 의해 패배하면서, 사과도, 뉘른베르그 재판도, 끝까지 뒤를 좇아 전범들을 단죄하는 단절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미군의 전초기지로 지원받으며 그대로 재활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본은 아직도 사과라는 것을 할 줄을 모른다. 이는 나치 독일을 공식적으로 자체 부정해버린 독일과는 전혀 다른 태도이다. 그래서, 제국으로서의 일본을 다루는 아시아의 영화들은 나치 독일의 유태인 학살을 다루는 영화들과는 다른 태도를 견지하게 된다. 왜냐하면, 제국으로서의 일본은 아직도 심판받지 않은 채 살아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런 문제를 다루겠지만, 가령, 중국 영화 귀신이 온다[鬼子: Devils on the Doorstep] (2000, Jiang Wen)’ 같은 작품을 보면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고, 또 지워져서는 안될 제국 일본에 대한 분노가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근데 우리나라에는 이런 영화가 없다. 난징 대학살이나 731 부대 같은 사건의 무대가 아니었어서 그런가? 황국 군대로 일본에 끌려가고 관동 대지진에서 학살당한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해서 그런가? 아니면, 역시 6 25의 상흔이 너무 커서 일까? 참 이상한 일이다.

 

 

반면, 태평양 전쟁을 다루는 미국과 유럽의 영화들은 당연히 이런 문제를 직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서양의 태평양 전쟁 영화들은 아시아 인만 느낄 수 있는 어떤 역사적인 핵심을 지니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서양의 시각이 대부분의 일본 영화로 역수입된다. 그래서, 일본의 위대한전쟁영화들을 같은 아시아 사람들이 보면 위선과 거부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앞서 말한 귀신이 온다같은 작품이 바로 그런 위대한전쟁 영화에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는 중국인들의 대답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