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

Crime Story (1993) 黃志強

이박오 2012. 3. 28. 09:19

 

重案組 [Crime Story](黃志1993)

 

 

 

내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겠지.

그건 법이 정해.

죽여! 살려줘도 말 안 해!

말 안 해도 안 죽여.

 

 

 

0.     납치

돈을 위해 사람을 납치하는 경우 피해자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많은 영화에서 다루는 소재 중 하나인 납치, 유괴의 이야기는 그런 경제성의 문제를 따지며 이야기를 펼쳐나가게 된다. 그리고 대다수의 관객 역시 범인 검거와는 무관하게 우선 인질이 살아 돌아오기를 희망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에서는 어떨까? ‘복수는 나의 것에서 누나의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납치를 결행하는 류는 귀가 들리지 않는 관계로 그만 납치된 아이를 죽이고 만다. 이렇게 황당한 경우는 아니더라도, 실제로 납치범들이 피해자를 죽이게 되는 경우는 허다하며, 그 이유는 사소한 것들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경찰은 차라리 돈을 쉽게 다 주지 말라고 권하는 것이다  

왕부인, 송금을 멈추세요. 놈들은 돈을 받아도 만일을 위해서 남편을 죽일 수도 있어요.

처음엔 돈을 줘라, 이젠 주지 말아라, 이제 상관 마세요. 남편만 살린다면 뭐든 하겠어요!

대만으로 가는 송금이 끝나면 범인을 놓칠 거에요. 그럼 우리도 해결 못해요.

남편을 살릴 수 있다면 무슨 상관이에요. 수사는 당신들이 알아서 하세요.

왕부인! 지난 몇 년간 15사건 넘게 납치범은 돈을 받은 후 살해했어요. 전 남편 분이 16번째로 살해되는 거 원치 않아요. 범인을 믿습니까? 경찰을 믿습니까?

이런 저런 이유로 일단 범죄가 시작되면 그 적당한 선의 결말을 찾기란 매우 어려워 진다. 박찬욱 감독은 삼부작의 끝에서 순전히 악의에 의해서 습관처럼 아이들을 죽이는 괴물을 보여주었고, , 그런 비인간적인 악한들이 최근 몇 년간 영화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나기도 했지만, 이 또한 시대의 변화에 따른 일종의 유행이라 할만하고, 돈을 목적으로 하는 실제 사건의 경우, 범인의 공포나 피로, 혹은 뜻하지 않은 위기 발생 같은 것들이 인질 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1.     성룡

아시아 오락 영화의 한 주류를 이루는 홍콩 영화계의 수많은 대스타들 중에서도 성룡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그것은 단지 그만이 짜내고 연기할 수 있는 몸을 내던지는 코믹 액션 연기로 헐리웃까지 성공적으로 진출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다음 세대의 홍콩 미남배우들처럼 오락과 예술을 넘나들지도 않았고, 다른 정통 무협배우들처럼 역사 혹은 환타지 속의 영웅 역할을 하지도 않았다. 성룡의 특이한 점은 그가 맡는 캐릭터의 비슷비슷한 성격에 있다. 스승의 복수를 하는 혈기왕성한 제자건, 스페인에서 볶음밥 장사를 하건, 청소대행업을 하건, 경찰이건 탐정이건 간에, 그는 영웅보다는 소시민을 택한다. 어떤 기발한 액션을 보이건 이것은 성룡을 규정하며, 대외적인 인간성을 완성한다. 한결 같은 이러한 캐릭터가 영화배우 성룡을 존경스러운 한 인간으로 우리 기억에 남게 해 준다.

그의 영화들은 거진 오락영화이며, 심지어 코미디이다. 폴리스 스토리 [警察故事](1985)같이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에서도 그의 액션은 기발하며, 캐릭터는 대체로 코믹하다. 모든 액션을 대역이나 눈속임 없이 직접 연기하는 걸로 더 유명하지만, 그가 짜는 액션 안무의 트레이드 마크는 주변의 모든 것을 이용하는 기발함에 있어서, 아무리 진지한 장면이라도 사실적인 긴장감이 아니라 오락영화의 신선함과 통쾌함으로 귀착되며, 웃음을 유발하는 재치들, 혹은 긴장된 혈투의 끈을 놓게 하는 어이없는 실수들이 이어진다. 그래서, 사실상 내용보다도 과장된 액션이 전체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그의 영화들은 스펙타클 이상의 재미를 얻게 된다.   

그렇다고 성룡을 단순히 위대한 액션배우로만 평가하면, 그의 중요한 이면을 놓치는 것이 된다. 실제로 그의 영화들을 보면 어떤 배역을 맡건, 어떤 위험천만한 액션을 선보이건, 마지막 엔지 모음을 볼 때 우리가 기억하는 성룡은 뛰어난 액션 배우 이상의 어떤 인간미를 지닌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소시민의 친근함 같은 것인데, 이런 성격은 그의 유명한 액션 시퀀스 내의 이곳저곳에도 녹아 들어가 있다. 그리고, 1편과 2[警察故事續集](1988)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좌충우돌의 폴리스 스토리 (1편은 영웅이 되는 젊은 진형사, 2편은 영웅의 허당성을 까발림-으로 연결되는 이 영화들은 알고 보면 볼수록 더 웃기게 만들었다) 같이 뛰어난 작품들에서 작은 시퀀스들은 영화 내내 쉬지않고 이어지며 전체를 구성한다. 인물들도 각각의 액션을 가져서 그 액션들의 조합은 단순한 오락성만이 아닌 인물 설정, 코미디, 사건 전개, 갈등, 슬픔, 분노, 등등의 가장 효과적인 표출구가 된다.    

가령 프로젝트 A 2[A計劃續集](1987)에서의 길고 재미로 가득한 수갑 시퀀스는 단순히 무술이나 (사실 성룡의 액션을 어떤 무술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그닥 의미가 없어질 정도로 그는 스턴트의 천재이다.) 현란한 신체의 움직임만이 아니라, 그가 사람(의 신체와 관계)을 다루는 방식, 그가 속한 홍콩 경찰의 복잡다단한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주게 된다. 이 시퀀스를 통해 그는 수많은 사람들과 이상한 방식으로 소통 하게 되는데, 그것을 통해 우리는 여러 다른 이권 그룹들의 술래잡기와도 같은 관계가 감지되고 희화되는 것까지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의와 부패의 대립도 보게 되며, 더 나아가 그 둘이 어깨를 마주하고 서로 싸우면서도 같이 묶인 채 달아날 수밖에 없는 장면에 다다르게 된다. , 그의 가장 뛰어난 액션 안무에서 액션은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라 하나의 훌륭한 서사가 된다.

이 서사는 단순히 이야기를 보충하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는 할 수 없는 복잡한 움직임을 생생하게 구체화 해준다. 어떤 지형지물을 원래 목적과 무관하게 액션에 끌어 들일 때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듯이, 인물들도 그 속에서 이야기만으로는 끌어내기 힘든 캐릭터들이나 연관성을 드러내게 된다. 그래서 성룡의 액션 안무는 위대하며 진정한 무술인이었지만 너무 경력이 짧았던 선배 이소룡의 폭발하는 힘이 아니라 찰리 채플린을 연상시키는 시야가 넓고 호소력있는 인간미를 갖춘 예술이 된다. (그는 일종의 개그 잡탕 하렘물인 시티 헌터[城市獵人](1993)에서 카림 압둘 자바와 싸우는 이소룡의 유작 사망유희[死亡遊戲](1972,78)를 학습한다. (압둘 자바뿐만이 아니라 전설적인 합기도 사범인 황인식이나 태권도의 김태정 같은 분들이 출연했던 영화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독특함보다는 일반성을, 위대한 긍지나 사명보다는 소시민의 마음을, 국가나 역사 보다 그 속의 사람들을 표현하려 애쓴다. 그가 영웅이 되는 지점은 어떤 전복적인 파괴력을 뿜어내거나, 기존의 방식을 뒤집어 엎거나 하는 사회의 이면이나 그늘에서가 아니다. 배우로서의 성룡은 항상 사회가 지정하는 법이나 규정 같은 것들의 테두리 속에서 자기의 위치와 명분을 찾고, 그것들을 지키면서도, 그 테두리가 아닌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그런 방식으로 사회 속에서 정의롭고 올바른개인의 위치를 계속 생각하며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부패한 두 개의 국가와 혁명, (그리고 가난한 도둑들)의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며 경찰의 자리를 재정의하는 영화 프로젝트 A 2편에는 그의 성격을 대변하는 대화가 등장한다.   

전 작은 사람이에요. 목적이 아무리 정당해도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 방법 안 가리는 일을 하진 않을 겁니다. 사실 당신들을 매우 존경해요. 당신들이야 말로 큰 일을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만청을 타도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열의가 필요하단 건 알지만, 난 감히 사람들에게 그러라고 말 못해요. 왜냐하면 결과가 어떨지 모르니까요. 그래서 난 경찰 일을 좋아해요. 사람의 생명은 중요하고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니까요. 인구가 몇 명인지는 상관없어요. 모두 개개인으로 구성되는 거니까. 자신의 생활을 싫어하면 애국심이 어떻게 생기겠어요.

하지만 부패한 식민지 정부엔 좋은 경찰이 있을 공간이 없어요. 계속 당신을 해하려 들 거에요.

그런 놈들이 있으니 더 경찰 일을 해야 해요.

 

 

그런데, 이러한 그의 한결 같은 영화 이력에서 특이하게 눈에 띄는 작품이 바로 중안조이다. 이 영화에서 거의 처음으로 우리는 영화 내내 한번도 웃기거나 웃지 않는 피곤하고 지친 성룡을 만나게 된다. , 거의 처음으로 의미없는 액션들의 과잉충만을 경험하게 된다. 액션은 넘쳐나지만, 통쾌함은 없으며, 관계의 형성도 불가능해 진다. 더욱더 과격한 점은 여기서 성룡의 노력은 예외적으로 패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중안조는 성룡으로서는 독보적인 진지한 액션물이며, 그의 새로운 면목을 보여주었던 작품이다. , 그의 가장 뛰어난 영화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홍콩 갱스터-형사물로서도 드문, 근래에 찾기 힘든 정통 수사극이기도 하다.

 

 

 

2.     실화

이 영화를 얘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실화를 다룬다는 점이다. 극중 악덕 부동산업자 왕일비(나가영)의 모델이 된 홍콩 차이나켐[華懋集團](Chinachem)의 창업주 왕덕휘(Teddy Wang)) 1983년 처음 납치당해서 3300만 홍콩달러를 내고 풀려난 적이 있었으며 1990 4월 두번째로 납치당한다. 이때 범인들이 제시한 금액은 6천만 홍콩달러였다. 부인 왕여심(Nina Wang)1차로 3400만 달러를 지불했으나, 그는 풀려나지 않았다. 이 실제 사건은 왕립 홍콩 경찰이 보안상의 이유로 수사 내용을 기밀 처리하거나 파기해버렸으므로 대중에게 수사내용이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고, 황지강 감독은 영화를 당시 수사팀이나 그 밖의 관련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차량 납치 장면 같은 경우 실제 사건이 생긴 장소에서 찍었으며, CID (Criminal Investigation Department)가 당시 임시로 사용했던 현대식 건물 내부도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실 영화 속 내용의 어느 정도 까지가 사실에 기반한 것인지 관객들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더욱이, 내용이 기밀이었던 만큼 영화는 사건을 단순화했음을 명백히 고백한다. , 그 속에서 눈에 띄는 사건의 특이성은 다음과 같다. 1. 납치범들이 경찰에 치사 상해를 입힘 2. 홍콩 대만 중국 본토가 모두 연루된 사건 3. 경찰 내부에 주요 공모자가 존재 4. 납치된 왕덕휘를 어선에 억류한 상태에서 중국 해경에 적발됨. 이제, 이 사실들을 바탕으로 사건을 해결할 형사 반장 (성룡은 이 영화에서도 반장이 되어 폴리스 스토리의 맥을 잇는다)과 그에 맞설 수 있는 대적자 역의 경찰 공모자(정칙사 홍형사)를 설정하고, 두 사람의 관계와 대결을 통해 영화를 이끌어 나간다.

 

3.     성격

진지하고 사실적인, 실화에 근거한 납치극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이런 기획을 할 경우 염두에 둘만한 것은 그 실화가 어느 정도의 서사성을 지니고 있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예를 들어, 개구리 소년들의 실종 사건을 소재로 한다면, 관객들이 이미 사건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를 갖고 있는 상태이므로 1차적인 흥미유발에는 이득이 되겠지만, 그만큼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데는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만약 사실성에 걸맞는 서사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관객들은 일반 픽션을 다루는 영화보다 더 가혹하게 평가할 것이며, 그렇다고 서사를 위해 사실성을 포기할 수도 없게 된다.

중안조는 이런 부담에서 오히려 더 자유로울 수도 있다. 왜냐하면, 왕덕휘 납치 사건은 홍콩 재계를 뒤흔든 만큼 수사과정이 세세하게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독은 이런 이점을 이용하면서도, 이 알려지지 않은 내부를 재미있는 서사로 채우기는 거부한다. 영화 속에는 물론 자기 일에 뛰어난 두 형사의 흥미진진한 대결이 있지만, 이 대결은 어떤 뛰어남보다도 양편의 흥분 상태, 혹은 뻔뻔스러움, 또는 불신에서 오는 긴장감과 피곤함, 몰이해 같은 것으로 팽배해 있다.

1970년대 미국의 황량한 형사물의 유산인 쿨한 무뚝뚝함이나 그 이후 세대들의 뒤통수를 치는 똑똑함을 발휘할 수 있는 일관된 서사를 배제한 이 영화는 대신 피곤함에 쩔어 흥분 상태에 빠진 경찰을 보여주며, 그가 상대하는 범죄자들이 영화 속에서와 같이 똑똑하고 카리스마 있는 것이 아니라, 돌발적이고, 무계획적이며, 그래서 더 평범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존재들임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어떤 인물의 캐릭터보다도 그 인물의 현장성이 더 중요하게 되어, 배우들은 드러나거나 감추어진 일관성을 지니려 하지 않는다. 액션은 여전하지만, 의미는 말소된다. 그래서 이 영화의 내용에는 특별한 트릭 같은 것이 없다. 대신 영화 중안조는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뻔한 사실이 주는 답답함, 불만, 소통불가능, 분노의 억눌린 세계로 곧장 파고들어간다.

 

 

4.     관계

뻔한 사실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위험과 상처와 무신경 같은 것들이다. 영화 시작 부분의 짜증으로 가득한 홍형사와 악당들의 모의 납치 장면은 경찰청에서 심리치료 상담을 받는 진반장과 병치되는데, 아름다움을 넘어 유혹적이기까지 한 매력적인 여성 의사(반령령)와 피곤한 진반장은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교감도 나누지 못한다. 의사는 그가 느끼는 총격사건 진압 후의 공포 증세에 대해 간단하게 세 가지로 원인을 제시한다. 1. 죄 없는 사람들이 상해를 입었기 때문에 2. 자신이 상해를 당할까봐 3. 살인을 했다는 충격으로. 그리고 그에 대해서는 3번이라고 단정짓는다.

하지만, 그녀가 당당한 자태로 그의 주위를 맴돌면서 이렇게 분석해 나갈 때 영화가 보여주는 실제 사건의 장면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과 다를 바가 없다. 진반장은 의사가 분석한 대로 3번 때문에 고생하는 것이 아니다. 1번이건 2번이건 그런 것을 따질 것도 없이 그 모두가 그 사건에 다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임산부를 구하고, 자신이 죽을 뻔 하며, 살인을 하고 심지어 살해당한 줄 알았던 범인이 다시 살아나 자신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 체험까지 한다. 거기에는 생사의 기로가 있을 뿐 그 어떤 액션의 일관적인 리듬도, 원인이나 결과도 없다. 그리고 잠깐 탄창을 갈아 끼울 때,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불과 모퉁이 하나 돌아 있는 간이 테이블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국수를 먹고 있는 아이를 보게 된다. 아이는 잠깐 놀라는 듯 하지만 무신경하게 그대로 앉아 그를 쳐다본다. 여기에는 아무런 소통도, 이해도 없다.

긴장의 후유증으로 반사적으로 튀어나간 주먹에 맞을 뻔 하면서도 의사는 평정을 잃지 않지만,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진반장은 그러한 이론이나 분석 따위, 필요치가 않다. 이런 것들은 그를 화나게 할 뿐이다.

당신이 옳다치고, 뭐 하나만 물어봅시다. 당신이 나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요? 저라면 당연히 휴가신청 하겠어요.

고맙지만 휴가는 필요 없어요!

문제는 단순히 의사가 개념없는 대답을 내놓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더 진지하게 치료를 권하거나 약물 처방을 해주거나, 하다 못해 잠깐의 수면 같은 것을 권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그를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나중에 진반장이 치명상을 입은 경관을 들쳐안고 병원으로 달려들어왔을 때, 극도의 흥분으로 제정신이 아닌 그는 피흘리며 날뛰다 기절하고, 상처를 꿰매는 도중에도 갑자기 일어나 다시 뛰쳐나가려 한다. 여의사가 다시 그를 제지하려 하지만, 그는 고함친다.  

난 밖에서 싸우는 사람이에요. 동료 두 명도 아직 수술 중이고. 탁상공론이나 하는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요?

지금 당신 정신 상태론 일 할 수 없어요. 휴가 처리하고 내가 좀 지켜봐야겠어요.

당신은 지켜보면 되지만 나한텐 그만 두라는 얘기에요.

그리고 밖으로 나간 두 사람은 사망해서 실려나가는 경찰의 시체를 붙잡고 오열하는 가족들과 수술실에 있는 경찰의 가족들이 애원하는 것을 본다. 진반장은 그녀를 밀쳐버리고 벽에 기대선다. 범죄자와 경찰의 이분법에 대한 낭만으로 가득한 무간도[無間]에서 여의사가 긴장으로 가득한 삶을 사는 진영인에게 단 하나의 안식처가 되며 당연히 그들이 로맨스에 빠지는 것과는 달리, 그와 거의 같은, 여의사와 형사의 관계가 이 영화에서는 이렇게 황량한 불모의 에피소드로 현실적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남편이 납치되는 상황을 겪으며 심장마비 상태에 빠진 왕부인에게 자동차 배터리로 쇼크를 주는 홍형사의 더욱 더 무지막지한 장면으로 바로 연결된다. 

 

 

5.     불신

어떻게 보면 이것은 진반장 개인과 연기자 성룡의 문제일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성룡이 연기해온 진형사가 하는 행동이 항상 그런 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경찰 체계를 무시하고 독자적인 결단과 영웅의 도덕성으로 범죄자들과 상대해 온 사내이다. 폴리스 스토리의 표국장이나 서장같은 사람들이 능력은 떨어지는 반면 그를 발끝까지 이해하는 서민들이기 때문에 그의 행동을 100프로 이상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이상적인 상사들인 반면, 중안조의 장국장(단위륜)은 훨씬 더 사실적인 직업인이라서 놀라운 신속함으로 중국과 대만 경찰에 성공적으로 공조를 의뢰하며 홍형사와 진반장 모두에게 객관적으로 대하고 심사숙고해서 그 둘을 묶어 대만 수사처로 출장을 보낸다. 물론 그는 진반장을 각별히 신뢰하지도 않기에 대체로 무신경해 보이며, 결정적인 순간에 무작정 그의 편을 들어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런 객관성을 넘어서 진반장이 맞닥트리는 경찰의 체계는 훨씬 더 억압적이거나 비효율적인 것 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 급박한 왕일비 납치 현장에서 지원 요청을 위해 강력반으로 전화를 걸어보지만, 교환은 명찰번호와 비밀번호없이는 국장을 연결해 줄 수 없다고 반복하기만 하고, 결국 999번으로 민간인 신고를 할 수밖에 없다. 그의 독불장군식 태도가 대만에서는 더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홍콩 경찰과는 달리 전경이 가진 대규모의 막강한 화력을 이용한 진압 현장을 보여주는 대만 장면에서 호텔에 머무르라는 대만 경찰 측의 명령을 어기고 현장을 찾아가 결과적으로 범인을 죽이게 되는 그와 홍형사는 문초를 당하게 되는데, 이 때에도 진반장은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며 버티다가 곤경에 처하게 된다.

이 두 가지 사건 (강력반 호출, 대만 출장)이 가진 공통점은 이것이 진반장의 잘못인지, 혹은 체계의 비효율성인지가 좀 애매하다는 점에 있다. 물론, 경찰의 보고 체계가 그 상황에서 신속함을 저해하는 것도 사실이고 대만에서는 결국 몸으로 뛰어 들었기 때문에 의외의 수확을 얻기는 한다. 하지만, 이 장면들은 그가 체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또한 확실하게 드러내거나, 또는, 개인적 불신만을 더 가중시키는 듯한 느낌도 준다. 좀 답답해도 명찰번호와 비밀번호를 외우고 있다면 굳이 그렇게 짜증만 낼 일도 아니지 않은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가 이런 식으로 밖에 행동할 수 없는 이유는 자신이 불신하는 경찰 내부의 부패나 무능력 때문인지도 모른다. 홍형사를 구체적인 용의선상에 놓았을 때도 그는 경찰 내부를 그렇게 신뢰하는 것 같지는 않다. 기본적으로, 그는 법의 테두리 내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스스로 체계를 지키는 사내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에게 체계란, 기껏해야 너무 느린, 일반적인 속도저하의 원인인 장애물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느릿느릿함이 부패와 타락의 여지를 방조해준다. 그래서, 다른 영화들에서, 성룡은 액션으로 재빠르게 그 체계를 뛰어넘어, 부패와 거래의 현장을 습격하고, 사나이 답게 싸워 이김으로써 지연으로 가득한 더딘 체계를 극복하곤 한다.

, 폴리스 스토리같이 일반적인 경우에는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상사들과 동료들이 있어서 선조치 후보고도 가능하고, 벌도 받고 상도 받으며 주거니 받거니 하는 재미가 생기지만, 이 영화에서 그는 혼자이다. 단 한번, 대만에서 곤란에 처한 그를 국장이 빼주기는 하지만, 그 자신이 한 팀의 반장이고 이렇게 수완이 뛰어난 국장이 있음에도 그는 사건을 혼자 해결하려 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알게 모르게 고립된다. 홍콩 경찰 전체가 협동 수사하는 것처럼 설정되는 이 사건에서 막상 물증 없이 용의자 홍형사를 추적하는 것은 그 혼자 뿐이며, 홍형사는 30년 경력의 친분관계들을 이용해 진반장의 행적을 파악하며 증거를 인멸해 나간다.

 

6.     하수인

그의 고립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토바이를 타고 추격하는 경찰을 무자비하게 친 것으론 모자라,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죽여버리자고 달려드는 악당들로부터 몸을 던져 구해낸 진반장. 피흘리는 경찰을 안고 지나가는 차를 세우려 해도 아무도 서주지 않는다. 결국 그는 그 경찰이 타고 왔던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수밖에 없는데, 오직 이 장면에서만 단 한 번 우리는 자발적으로 단결하는 경찰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죽어가는 경찰을 살리려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그를 호위하기 위해 다른 경찰 오토바이들이 모여들며 로타리를 도는 장면은 그래서인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그런데, 영화는 여기서 약간 더 나아가 서민들과 경찰의 불화도 보여준다. 왕일비의 요청으로 그를 보호하기 위해 건축 현장에 온 진반장의 팀은 임금지불을 요구하는 한 패의 시위 인부들과 맞서게 되는데, 질서를 종용하는 그와 경찰들에게 노동자들은 페인트를 퍼붓는다. 페인트를 뒤집어 쓴 채, 경찰은 적이 아니니 질서를 지켜 달라고 그는 호소한다.

우리도 당신들처럼 봉급받고 살아요. 임금을 못 받으면 당연히 화가 나죠. 하지만, 우리도 임금 협상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구요. 위험 수당도 몇 년째 얘기 중인데 협의도 안되고. 데모하고 싶은 건 우리도 마찬가지 라구요. … 우린 여러분들 적이 아니에요. … 임금을 받으려는 것 이해합니다. 하지만 가진 자가 부르면 우린 또 와야 돼요.

하지만, 강제 해산하면서도 왕일비 죽일 놈, 지옥에나 떨어져라, 대대손손 저주받을 놈을 부르짖는 성난 노동자들에게 경찰은 결국 권력의 하수인일 뿐이다. 곁에 있던 경찰은 임금을 주면 될 것을 왜 저래.’ 라고 불평하고, 진반장도 이건 강력계 일이 아닌 노사문제이니 노동부에 연락해드리겠다고 하지만, 왕일비는 그럴 필요 없어요. 우리가 알아서 해결하겠소.’라고 잘라 얘기하고 가버린다.

결국 불법 시위를 할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과는 달리 왕일비는 필요할 때마다 떳떳하게 경찰을 호출한다. 아이러니 하게 납치당하는 날도 미행의 낌새를 알아챈 그는 신고를 한다. 사소한 일로 신고하지 말자는 부인에게, ‘우린 세금 내는 서민이야라고 대꾸하며 신고하는 그는 곧 진짜로 납치당한다.

 

 

7.     악덕업자

어째서 왕일비 같은 악덕업자를 보호해야 하는 걸까? 물론 말도 안 되는 질문이긴 하지만, 이 영화가 왕일비라는 인물을 그렇게 설정했을 때 (실제 왕덕휘가 악덕업자였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화공, 페인트 등으로 출발한 차이나켐은 분명히 굴지의 대기업이며 홍콩의 부동산업계를 주도하고 있다.) 이 사실은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 분명 돈을 노리는 악당들에 불과한 납치범들이 그럴 듯 하게 의식을 치를 때에도 나름의 명분은 있다. 자기 성공의 70프로가 직감을 따른 결과였다고 얘기하는 이 사업가는 큰 이득을 보고 신속하게 이동할 줄만 알지 다른 사람의 사정 같은 것들을 고려하지는 않는다. 사업에 있어서나, 경찰에게 연락하는 데 있어서도, 그의 단호함은 이런 시야를 반영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정말 그의 직감이 틀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에 공사장의 인부들을 몰아낼 때 진반장은 왕일비의 태도가 너무 민감할 뿐만 아니라 잘못되고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 차가운 눈빛을 보내지만, 곧 그는 실제로 납치당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때부터 우리가 보는 왕일비는 악덕업자가 아니라 평범한 남편이자 죄 없는 피해자로 돌변한다. 아내 왕부인을 통해 느껴지는 그의 다정한 모습이나, 나중에 그가 보내는 메시지,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서 아내와 함께 홍콩을 떠나는 그의 모습까지, 어디서도 우리는 악덕업자나 이기적인 개인의 모습을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왕일비도 알고 보니 인간적이더라 뭐 그런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악덕업자와 다정한 남편의 이중성을 지닌 이 인물을 통해 조성되는 상황이다. 그가 납치될 때까지만 해도 가진 자의 불안함으로 여겨지고, 또 결국엔 인과응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었던 관객의 도덕적 판단은, 그가 이후에 보이는 행동들에 의해 부정된다. 영화는 납치된 왕일비의 면면을 통해서, 가령 이런 질문을 더 구체적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혹시 우리도 이런 비도덕적인 사건을 통해 그를 도덕적으로 단죄하는 데에 은근히 동의하고 싶어했던 것은 아닐까? , 이렇게 사회적으로 악한 사람을 호위해야 하는 상황에서 소명의식을 지닌 경찰이라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진반장은 앞서 임금을 내노라고 고함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법을 지키자는 것입니다. 이 틈을 타서 집을 부수고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것은 교과서적인 대답에 불과할 수도 있고, 현대 사회에서는 법도, 정치도, 경찰도, 돈 없는 서민의 편이 되는 데에 인색한 듯 보인다. 하지만, 영화 속의 진반장에게 여전히 이 질문은 유효하며, 그것이 마지막에는 심리과 의사가 해결할 수 없었던 피곤함과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는 그와 왕부인과의 관계로 제시될 것이다 

 

 

8.     대치

한편, 더 중요한 문제는 진반장이 느끼는 당장의 피곤과 공포에 있다. 그는 영화 속에서 두어 번 기절하고, 죽을 뻔 하며, 지속적인 긴장과 그로 인한 흥분 상태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이 영화에도 역시 성룡의 멋진 액션 장면들이 속속 등장하지만 더 기억에 남는 것은 그 액션들이 이야기의 서사에서 해방구로 작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가령, 뛰어난 카 레이스를 보여주는 납치 장면에서도, 곡예 같은 대만 클럽 천장에서의 대결도, 성룡표 액션에 가장 근접한 듯 보이는 369에서의 대결도 갈등의 원만한 해결로 이어지지는 못한다. 카 레이스는 경찰 신고체계의 비효율성, 두 경찰의 잔인한 죽음이나 상해(이 영화에서 가장 잔인한 장면)로 끝나며 대만 클럽에서의 대결은 범인의 죽음과 대만 경찰과의 갈등으로, 369에서의 대결은 성벽도시의 대 폭발 및 화재로 이어진다.

여기서 진반장에게는 아미(장만옥 - 폴리스 스토리) 같은 여자 친구도 없어서, 그가 서민들에 의해 페인트를 뒤집어 쓸 때도 옆에서 웃어줄 사람이 없으며, 폐선에서 죽다 살아와도 맞아줄 동료들이나 집이 없이 차에서 옷을 갈아 입는다. 단 한번, 경찰서에서 행패를 부리며 깐죽대는 유로보이를 혼내줄 때 우리는 직접적으로 그의 편을 들어주는 경찰들을 보지만, 곧 홍형사가 나타나 유로보이를 빼돌리거나 제거하려 하며, 진반장과 전면 대치하게 된다. 왕일비의 첫 번째 납치사건 담당자였기 때문에 진반장과 같이 사건을 맡게 되는 홍형사가 바로 범죄의 주범이라는 것이 결국 이 영화를 경찰대 경찰의 이야기로 돌아오게 해 준다.

 

 

9.     파리목숨

육중한 거구의 홍형사는 납치의 주모자일 뿐만 아니라, 범죄자들과 거리낌 없이 거래하거나 이용하며, 어디에나 끄나풀을 심어놓고 부당이득도 챙기는 타락한 형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30년 경찰 생활에서 얻은 게 없다는 그의 푸념이나, ‘별 볼일 없는 홍콩형사짓 그만하고 자기 치마폭으로 들어오라는 호스테스 정부의 말 같은 것은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경찰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게다가, 그가 농담처럼 흘리는 자신의 초년 시절 이야기는 진반장의 현실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래서, 같은 홍콩 경찰인 진반장과 그의 대치는 더 힘을 얻게 된다.

당신을 존경했어. 영웅이라 생각했는데 한낱 범죄자에 불과했었군!

이 세상은 착하다고 복 받는 게 아니야. 우리 경찰은 언제 죽을지 몰라. 파리목숨이라고!

                     

왕부인의 송금일에 대대적으로 진행되는 범인 검거 작전에서 내내 눈치를 보며, 자신에게 접근해 오는 진반장을 갖은 비열한 방법으로 방해하는 인물 홍형사는 교활함으로 진반장을 능가하며,

날 치고 싶지? 죽여!

내가 졌다.

부끄럽지도 않아? 어떻게 경찰을 죽일 수가 있어! 당신 때문에 동료가 죽었어! 다른 한 명은 사경을 헤매고 있고 말이야!

말 다했어? 넌 아직 경찰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 목숨은 파리 목숨에다 죽어라 일해도 월급은 쥐꼬리만하고. 정말 간신히 산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중에 어떻게 살아!

결정적인 순간에는 진반장보다 훨씬 더 강력한 카리즈마를 발산한다.

죽일 테면 죽여봐.

인질 어디에 있어? 어디에 있냐고! 어서 말해!

차라리 날 죽여라!

더러운 인간! 얼마나 많은 사람을 더 희생시켜야 직성이 풀리겠어?

이 영화의 마지막 액션 씬이자 가장 규모가 큰 폭발 장면인 성벽 도시 장면에서 결국 홍형사를 잡은 진반장은 그를 미친 듯이 두들겨 팬다. 적에게라도 필요한 액션 이상은 하지 않는 성룡 영화에서 좀체로 보기 힘든 이 장면에서 (사실 성룡이 대적자를 흠씬 때려주는 장면은 여러 영화에 있지만, 다른 작품들에서는 그쪽이 계속 달려들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분노에 휩싸인 그는 홍형사를, 가능하면, 그러니까, 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죽이고 싶어한다. 홍형사 역시, 거래가 통하지 않는 진반장의 이상주의에 대한 적대감을 끝까지 감추지 않으며, 입을 열지 않는다. 더욱이 이 영화에서 정칙사라는 거구의 배우가 조성해내는 홍형사의 뻔뻔스러움의 카리즈마 덕분에 우리는 이 장면을 다른 영화에서의 악당이 혼날 때의 쾌감이 아닌 두 형사의 팽팽했던 긴장의 폭발으로 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악독한 범인일 지라도 개인적인 분노가 아닌 법의 심판대 앞에서 평가해야만 한다고 믿는 진반장(성룡)의 강직함과, 법도, 경찰도, 남는 것은 하나 없는 허울좋은 거짓에 불과하다고 믿는 홍형사의 거대한 타락과 비열함이 부딪히는 이 장면은 영화가 보여주는 그 모든 소통 불가능과 고립된 세계관의 충돌들을 집대성한다. 오직 붕괴로 인해 중상을 입은 홍형사와 갇혀 있다 구조된 아이를 두고 진반장이 선택해야 하는 급박한 마지막 순간에만, 두 사람 다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피하고 싶지 않아.

완전 미친놈이군! 바보 같은 자식!

미친놈이라고 해도 좋아. 난 원칙을 지킨다.

미친놈! 날 끌고 가진 못해. 어서 가! 나랑 같이 죽는 거 원하지 않아. 가서 아이를 구해! 아님 둘 다 죽어!

그리고는 왕일비가 펫키 새우잡이 배에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오로지 자신의 죽음 앞에서만, 홍형사는 타락해버린 세상과 화해하고 이상주의자 진반장(과 아이)를 놓아준다. 하지만, 중국 해경에 적발된 어선에 탄 공범들은 납치는 사형이라는 중국 법에 겁을 집어 먹고 묶여있던 왕일비의 입에 밥을 떠 넣은 후 닻을 매달아 바다로 던져버린다.

 

 

10.  허구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허구이다. 구조된 왕일비가 중국 경찰의 협조에 의해 국경에서 진반장과 장국장의 홍콩 경찰 및 왕부인에게 인도되는 것으로 묘사되는 영화의 마지막에는 ‘1991 327일 왕일비가 풀려났으며 홍콩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라는 자막이 오른다. 하지만, 이미 언급했듯, 왕덕휘는 구조되지 않았으며, 검거된 납치범들은 그를 바다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영화 속의 왕부인은 결국 사건을 해결한 진반장에게 뛰어와서 손을 붙잡고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라고 감사함을 표시하지만, 이것 또한 허구에 불과하다. 타락한 현실주의와 싸워 이기기는 했지만, 만약 진반장이 실제 사건의 결과를 대면했다면, 이상하게 이중적인 왕일비란 인물의 호위나 그와는 너무도 다른 홍형사와의 대결 같은 것들이 그에게 남긴 것은 환멸 정도였을 것이다. 윤리주의자로서, 진반장은 계속해서 법을 수호하고, 대가없는 정의를 실천하려 할 것이며, 그런 그에게 혹여나 윤리적인 대가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왕부인이 표시하는 고마움 같은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주듯, 세상은 대체로 윤리적이지 않으며, 사람들은 오히려 그가 그렇게 뛰어넘으려 애쓰는 체계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체계가 수호할 수 없는 정의란 어쩔 수 없이 체념되어야 할 것이며, 진반장 같이 무모한 자의 윤리란, 기껏해야 의학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흥분상태로 귀착될 수 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진반장이 여전히 굳은 얼굴로 왕일비의 신분증과 카드들이 들어있는 지갑에 불을 붙여 던져버리면, 연이어 오르는 자막은 작년 동남아 일대 화교 상인 납치 사건 273건에서 64명이 사망하고 경찰 85명이 순직하였음을 알려준다. 경찰에 대해서도, 범죄자에 대해서도, 일말의 낭만을 허용하지 않고, 끝까지 굳은 얼굴로 일관하는 영화 중안조는 이제는 보기 힘든 진지하고 힘이 넘치는 정통 수사극이다.

 

 

 

*중안조 트레일러

http://www.youtube.com/watch?v=lsw2QHnEFTM

미국판 DVD

http://www.youtube.com/watch?v=KFSsg2fjGEU

 

오리지날 홍콩 영화 트레일러

 

 

* 이 영화가 정통 수사극이라고 해서 우리 나라 영화들처럼 (가령 살인의 추억같은 영화처럼) 사반장 식의 재연을 보여준다는 뜻은 아니다. 중안조 역시 다른 홍콩 형사물처럼 과장된 액션과 검거 장면들이 넘쳐난다. 특히 왕부인의 입금일 장면 묘사는 과하다 싶을 정도인데,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다 미행자가 되는가 하면, 왕부인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변장까지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런 과한 장면들이 어떤 눈에 띄는 결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입금일 장면에도 결정적인 정보수집은 헤드쿼터에서 다 이루어지며, 그 외에 홍콩에서는 왕부인과 직접 접촉하는 진반장만이 실질적인 역할을 한다. , 대량의 인력 투입 같은 것에 대해 이 영화는 그렇게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필요하긴 하지만 결정적이지는 않은, 더욱 중요하게는, 그 속에서 눈치를 보며 어떻게든 주요 정보들을 가로채려 하는 홍형사가 버티고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대로, 진반장이 세븐 일레븐 앞에서 홀로 잠복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장면으로 기억할 만 하다.

** 이 영화에서는 성룡과 정칙사의 연기도 압권이지만, 왕일비 역을 맡아 단호함과 인간적인 면모를 모두 보여주는 나가영의 연기도 매우 훌륭하다. 특히나 주성치 영화들에서 그의 모습(가령 삼장법사)을 기억하는 관객들이라면 더욱 더 그런 느낌을 받을 것 같다.

                                  

 

*** 이런 류의 정통 수사극으로는 아마 프렌치 커낵션[The French Connection](1971, William Friedkin)’ 정도가 있을 것 같다. 수사라기보다는 진실의 탐구에 더 가까운 최후의 증인(1980, 이두용)’도 매우 무게있고 잊지 못할 작품이다. , 최근 영화 중에서는 야수’(2006, 김성수)가 이런 특이한 세계관을 보여준다. 하지만, 중안조를 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품은 역시 전설적인 걸작 악의 손길’[Touch of Evil](1958, Orson Welles)이다. 이런 영화들은 90년대를 풍미했던 홍콩 조폭 영화들과는 무척 다른 선악관을 지니고 있으며, 범죄자, 경찰에 대한 낭만성도 모두 배제되어 있다. 황량하지만, 동시에 쿨하기도 하고, 동물같지만, 연약하기도 한, 그리고 뭣보다 마초인, 남성상을 그리는 더티 해리류의 형사물과도 또 조금 다른 영역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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