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

Typhoon (2005)

이박오 2012. 3. 20. 11:23

 

태풍 (2005) 곽경택

 

                                            

 

태풍은 악평을 받은 블록 버스터 이고, 그럴만한 여러 이유도 있다. 영화의 몇몇 장면은 억지스럽게 애국, 동료애, 가족의 코드를 강요하며, 일단 군사, 외교적으로 말이 안되거나 지나치게 단순, 편협한 설정들 (특히 미국과의 관계라든지 한국 내각의 모습 같은 것들 근데 아직도 군사작전권이 연합사에 있었나??)도 거슬리거니와, 중심이 되는 사건들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황당하다. 처음 일개 해적 나부랑이들이 미군 위성유도장치를 쓸데없이 탈취하는 어이를 상실한 장면부터 시작해서 (탈취한 위성 유도장치는 핵 풍선과 아무 상관도 없다! 단지 거래용일 뿐. 이런 OTL! 돈 때문에 그런 자살행위를 하다니! 각국 정부에 다 알리면서 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태풍과 관련된 지점인데, (일개 해적 나부랑이) 최명신이 태풍의 진로를 예상하고 거기에 풍선을 날린다는 계획을 짜고 감행까지 한다는 것은 어처구니들이 뇌에서 대탈출하게 만드는 대담무쌍한 설정이며, 강세종이 그 쌍태풍 속으로 헬기를 타고 돌진한다는 것도 참.. . (사실 미군처럼 잠수함 타고 가는 게, 물론 그것도 위험하겠지만 서도, 상식이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잘은 모르겠으나..)

뭔가 있을 것처럼 나오다가 5분도 안 되서 죽어버리는 영화 첫 장면의 떡밥 미군들(겨우 몇 명이 군사기밀 장치를 호위한다 하신다.. OTL!!)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직장이나 돈 얘기는 하지 말라는 강세종의 국방부 홍보 멘트(OTL!!!) 전혀 영화에 녹아들지 않는 해적들의 마을 배식 장면, 쓸데없이 등장해서 피바다 망언을 하시는 야바위 무당할망 (혹시 아바이 수령동지?), 죽고 싶어 환장한 해적들이 최명신을 졸졸 따라다니며 우리는 친구 아이가 하며 우정 아닌 충성을 다짐하는 장면들과 강세종의 자살 행위에 의문 없이 동참하는 멋진 녀석들 (해병대 만세다!), 그 녀석들 보고 감상에 빠지는, 나도 남자야! 라며 형제애의 로망에 빠지신 대통령 각하 (부끄러울 일이 그렇게 없으세요?).. 다들 왜 이러시니..

그런데, 이렇게 영화의 문제점들을 열거하다 보면, 한가지 빠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최명신의 가족과, 그의 분노이다. 그러고 보니 태풍은 탈북자의 분노에 관한 영화이다. 최명신이 어떤 미친 계획을 세우건 간에 중요한 것은 왜 그렇게까지 그가 남한 사람들에게 이를 부득부득 갈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장동건, 이정재의 멋있는 호연과 그들이 보여주는 감정의 깊이를 생각해보면 태풍은 매우 아까운 영화이기도 하다. 만약 이 영화가 블록 버스터나 혹은 과장된 액션물이 아닌, 단순히 쫓고 쫓기는 범죄자-추격자의 이야기였다면, 거기에 더 충실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영화는 가장 중요하며, 감동적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핵을 빠뜨린 채 그 태풍의 겉만 치장하거나 비판하게 되는 상황에 처한 것은 아닐까?

                  

 

학살-블록 버스터

영화 속 최명신은 잔인하다. 그가 처음에 탈취한 미국 상선의 승무원을 모두 학살하는 장면은 블록 버스터에는 흔하지만, 여전히 충격적인 장면이다. 따지고 보면 그의 계획 자체도 잔인하다. 남한 인구 전체를 학살하겠다는 계획. 이 계획은 분노를 넘어서는 광기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최명신이라는 인물의 고통을 공감하기 힘들게 된다. 그런데 더 꺼림직한 부분은 이 과도한 설정이 왠지 영화의 깊이보다 관객의 흥미 유발을 위한 블록 버스터 공식에 끼워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억지스러울 정도로 과장된 설정이나 쓸데없어 보이는 장면들의 삽입도 그러하다. 왠지 내용에 충실하기 보다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하는 듯한 느낌. 왜 굳이 최명신의 해적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여동생들과의 밑도 끝도 없는 로맨스를 시도하는가? 최명신-최명주 관계를 더 부각시키기 위해서? 형제애를 강조하고 싶어서?

쓸데없는 미국 상선 공격 장면 같은 의미없는 사치들도 이 영화에는 넘쳐난다. 해적의 마을, 무당할망, 꼭두각시 인형을 파는 아가씨, 등등. 가령 청와대 담배장면만 보아도 그렇다. 분명히 다른 작품들을 인용하고 있는데 (가령 꼭두각시 인형을 파는 아가씨는 오시이 마모루의 이노센스와 그 밖의 수많은 인형사, 가면 장르에서 따온 것이 분명하다) 원작들에서 갖고 있던 중요한 상징이나 의미는 하나 둘 삭제해 버린 채 이미지만 남긴다. 예의 담배 장면은 사실 비밥 극장판에 두 번 등장하면서 세균과 위생, 위생과 억압의 문제 같은 것을 상기시키는 모티브였는데, 이 영화에서는 역시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냥 쓰인다. 그냥 답답하니까 청와대에서 담배 피고 끄라니까 대드는 꼰대의 어리광으로..

이렇게 다수의 블록 버스터는 참신했던 문법을 공식화하면서 상징과 의미들을 학살해 나간다. 관객들은 끊임없는 자극, 시각, 음향, 감동적인 음악의 물량공세를 통해 흥미와 재미를 강요당하지만, 그 재미는 보통 마약같이 무의미한, 빈 공식들로 치장된 인형놀이와 같게 된다. 물론 모든 블록 버스터가 그래서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또 상징의 적절한 인용은 잘 될 경우에 짧은 시간에 복잡한 의미망을 영화로 도입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식의 남용과 거래는 대자본을 필요로 하는 모든 블록 버스터가 피하기 힘든 문제이기도 하다.

                   

 

두 개의 태풍

이러한 문제들을 걷어내고 나면 우리는 영화의 진정한 문제의식과 그 구도를 볼 수 있게 된다. 거기에는 간단히 두 개의 축이 남는다. 가족과 고향(조국). 이 영화에서 그렇게 쉽게 드러나지 않는 것은 이 둘의 갈등이 실제로 어떻게 벌어졌느냐 하는 쪽이다. 물론, 최명신(가족)과 강세종(고향)의 대결로 구조화되기는 하지만, 사실 영화에서 최명신의 적은 강세종이 아니라 그를 이용하는 안기부라고 보는 편이 더 낳을 것이다. 대신, 이 영화는 왠지 무성의한 태도의 중국 주재 외교관 박- (민지환, 오직 영화의 마지막에 우리는 그가 최명신의 가족들을 내팽개치는 꼴을 보게 된다), 그리고 중국 국경에서의 가족의 몰살, 마지막으로 함께 생존했던 누나 최명주(이미연)의 죽음과 남한 안기부의 계속되는 배신을 통해 최명신의 분노의 깊이를 가늠하려 한다.

인정머리 없는 남조선 간나 아들 수작질이 뻔하지. 조선 땅의 간나 아들이 피를 토하고 살덩이가 터져 죽는 꼴을 반드시 지켜 보기요.

니 인생이 억울하게 불행해진 거 알아. 하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들어도 되는 건 아니야.

그리고 이 시도는 대체로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블록 버스터의 비계를 발라내고 남은 영화는 그렇게 복잡할 것이 없는 내용이 되지만 주 조연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만으로도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영화의 외국인 조연(태국, 러시아)들은 캐릭터 설정이 말이 안되서 그렇지 연기들이 골고루 좋으며, (사상으로 무장했던 쉬리의 최민식과 비슷하게도 보일 수 있는) 장동건의 이글거리는 연기와 이정재의 절도있는 액션, 신속하면서도 요소요소를 집어주는 추격전 같은 것도 무척 좋다. 그리고, 영화의 중심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이미연은 놀라울 정도의 관록을 뿜어내며, 대립하는 두 인물로부터 필요한 인간성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남매의 감격적인 상봉장면과 그들을 팔아먹으려는 안기부, 국제 정세가 인간보다 중요하다는 명령을 하달 받는 강세종, 남매를 구하는 최명신의 친구들까지, 어떤 장면은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박진감 넘치게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최명신이 예견했던 것처럼, ‘출세하고 떵떵거리고 살만한 대가도 없이 임무를 수행했던 강세종은 정치의 멍청한하수인이 되고, ‘남조선 간나 아들은 또 다시 그 인정머리 없음을 드러내고야 만다.

그러니까, 문제는, 왜 강세종마저 결국은 불쌍한 남매를 팔아먹는데 동참할 수밖에 없게 되는가 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항의해보지만,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앞에서 우리가 자주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어란 말인가? 겨우 두 사람을 못 구한다는 말인가? 바로 이런 것이 아마도 감독이 표현하고자 했던 또 다른 분노, 가령, 강세종의 분노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렇게 본다면, 청와대 담배 장면은 어쩌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할 수 있게 될 지도 모른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내내 껌을 씹어대던 정부장은 최근에 담배를 끊어서라며 강세종에게 사과하지만, 강세종은 그가 최명신을 복수에 눈 먼 단순한 북한놈이라고 정의하는 것에 더 기분이 나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정부장도, 살아남았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에, 그 갑갑함에 다시 담배를 피워야 하지 않았을까? 혹시 그런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최명신은 단순한 바보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강탈한 미군의 무기가 결국 모스크바로 이송 되는 것을 지켜본다. 왜 최명신은 그렇게 극단적인 행위를 할 수 밖에 없었는가? 그리고, 왜 그는 자살을 택할 수 밖에 없는가? 그는 어떻게 남한이 그를 또다시 죽일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게도 냉정하게 인식하게 된 것일까? 라고 한 번 질문해 보게 된다.

이런 질문들을 떠올릴 수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최명신과 강세종의 마지막 격돌, 두 사람이 뛰어드는 태풍의 모습을 좀 더 아량을 가지고 이해해 볼 수 있게 될 지도 모른다. 왜 강세종은 돌아올 연료도 없는 헬리콥터를 타고, 미군 잠수함이 공격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돌진하는가? 그는 말한다. ‘미국이 한반도를 향해 핵 미사일을 배치하려고 했던 사실에 자신들이 증거가 될 거라고. , 그의 의도는 단순히 최명신을 죽이고 재앙을 막으려는 것이 아니다. 아니, 그의 의도는 최명신과 함께 살아서 어떤 정치적 증거가 되는 것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명신은 그러한 시도마저 결국은 의미없는 자살행위가 될 것을, 자신들은 역사 속에서 이용당하고, 버려지고, 이름마저 지워지는 자들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널 죽이려고 여기까지 온 거 아냐. 살아남아서 말을 해.

뭘 말을 하란 말입니까. 도대체 어따 대고 말을 하란 말이야!

결국 강세종은 임무를 완수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증거가 되지 못한 채 사건을 비밀로 남게 하는데 일조하게 되며, 최명신은 누나와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다. 그의 메시지는 저주받은 폭탄에서 남한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와도 같은 풍선으로 변화하게 되지만, 그의 분노는, 강세종의 표현되지 않은 분노도, 파도에 묻혀, 잊혀지게 된다.

                  

 

국가와 인간

이 영화에서 좀처럼 관객의 공감대를 살 수 없을 것 같은 인물은 강세종이다. 그는 왜 그렇게 말도 안되게 애국자인가? 그는 왜 그렇게 자신을 내던지며, 동시에 명령에 복종하기만 하는가? 그래서, 아쉬운 점은 강세종이라는 인물이 지닌 딜레마가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그의 마지막 행동은 분명히 매우 치명적인 명령불복종 감인데, 영화는 애국 코드만 강조하며 심지어는 뜬금없는 대통령 드립까지 치다 보니 그가 왜 이렇게까지 행동해야 하는 지를 설득력있게 보여주지 못한 채, 도대체 어떻게 증거가 되겠다는 것인지도 이해시켜주지 못하고 끝난다.

강세종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멍청이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명령을 어기고 싶지도 않다. 그는 임무를 나갈 때 마다 목숨을 아끼지 않는 대신, 매 순간 어머니에게 편지를 남긴다. 자신이 사라질 지도 모르는 순간을 대비해서, 누군가에게 증거가 되고 싶어 하며, 자신의 존재를 그렇게 증명하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무게없이 흔들리며 앞가림도 못하는 정부에게 충성하는 군인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강세종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 모든 사람들에게 충성하고 싶어한다. 그는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영웅일지는 몰라도, 그의 행위가 꼭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그는 왜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잊지 못하며, 그 아버지를 자신이 외면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왜 그 마지막 밤을 잊지 못하는 것인가?

이는 가족을 살리기 위해 죽어가는 최명신의 아버지와, 이 영화의 남성-형제-아버지의 이미지와 연계되며, 이득과 정세에 따라 가족들을 내팽개치는 국가와 대립된다. 만약 이 영화에서 최명신의 아버지가 접촉했던 박-의 뒷모습을 더 보여주었으면 어땠을까? 안기부는 박-이 결국에는 아무 실권도 없었다고 분석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어쨌거나 한 가족에게 거짓말을 하고 나몰라라 하는 위선적인 한 인간, 거짓된 메시지를 실어온 풍선 같은 존재를 보게 된다. 만약 이 영화가 다른 액션들이나 형제애의 구성에만 너무 집중하지 말고, 미국-중국-한국의 정치적 관계와 안기부-외교부의 입장 같은 것들을 좀 더 깊이있고 성실하게 다루어 주었다면, 어땠을까, 라고 생각해 본다. 그런 면에서 태풍은 아쉬운 영화이다.

 

                  

 

 

*태풍 트레일러

http://www.youtube.com/watch?v=BYHC82spIX0

 

 

 

 

*

그래서, 이 영화는 어떤 의미에서 마이클 베이의 유명한 블록 버스터 더 록’[The Rock](1996)에 근접해 간다. 명예롭고 강직했던 미 해병 준장 허먼 장군은 극비 작전에서 이름도 없이 사망했으나 국가에 의해 보상이 거부된 부하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생화학 근거리 미사일을 탈취하고, 알카트라즈를 점령하여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을 인질로 삼아 보상금을 타내려 한다.

혹은 이 영화는 국가 협약에 의해 발목이 잡혀 교전 중에 사망한 자위대 병사들의 복수를 하기 위한 인물의 모의 쿠데타로 이어지는 오시이 마모루의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영화 2’[機動警察パトレイバ the Movie 2](1993), 그리고, 이유는 다르지만 (환경파괴의 도시확장에 반대) 컴퓨터에 물리적 바이러스를 퍼뜨려 도시를 파괴하려는 묵시론적인 과학자-살인자의 이야기를 다루는 1[機動警察パトレイバ the Movie](1989)도 생각나게 한다.

더 록에서는 허먼 장군을 따르는 용병들의 타락과 영화 자체의 오락성을 배가시키는 두 주인공들 (영국 MI 6 소속 스파이였던 메이슨 대위와 화학자 굿스피드)의 활약으로 블록 버스터 답게 재치있게 사건을 해결하는 반면, 패트레이버 시리즈에서 오시이 마모루는 매우 특이한 공동체개념을 주장하는 경찰 집단을 전면에 내세운다. ‘더 록에서는 허먼 장군이 쥐고 있는 비밀과 메이슨 대위가 알고 있는 비밀들로 인해 전전긍긍하는 CIA 간부들이 등장하며, 패트레이버에선 고토-나구모 경부들이 이끄는 특차대 1,2반의 개별 행동에 족쇄를 채우고자 하는 수도 경찰의 간부들이 등장한다. 오시이 마모루는 특히 일본 자위대라는 특별한 군대 체제나 수도경찰과 지방경찰 같은 이중적인 경찰 체계, 그리고 아시아의 정치적 역학 관계 등에 관심을 보이는데, 이런 것들이 그의 다음 작품들인 인랑공각기동대’, ‘이노센스를 통해 점점 더 발전해 나가며, 그 속의 인간, 혹은 기계와 같은 주체들을 탐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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