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ing and the Clown
이준익 감독은 드라마를 짜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의 영화들은 대단히 효과적인 스토리 라인을 갖고 있어서 큰 감정선이 모이는 몇 개의 나뉜 그룹들이 상승효과를 이루며 절정으로 치닫는다. 그럼에도, 그는 호감의 선을 지킬 줄 아는 감독으로 도를 넘치는 일이 없다. 그의 영화에서 이미지와 음악, 그리고 미장센의 구성 역시 이야기를 이끄는 기능적 역할을 벗어나는 적이 거의 없다. 잘 살펴보면 인상적인 장면들과 균형잡힌 음악을 솜씨좋게 사용하고 있는 게 분명함에도, 대체적으로는 TV 드라마 같은 느낌을 주는 색깔의 화면들이 압도적이다. 그의 영화들의 가장 강력한 힘과 깊이는 언제나 이야기와 연기에서 나타나며, 최악의 경우에는 무슨 공보영화 같은 질감을 주기도 하는데, 다행히 그는 이야기의 경제성을 중시해서, 여기서도 늘어짐이나 탐닉 등의 실수로 도를 넘지는 않는다.
그의 두 번째 영화 ‘왕의 남자’는 이준기를 탑스타로 만들었고, 동성애 코드를 다룬 첫 번째 주류 국산 영화이며, 또, 여러 다양한 텍스트가 들어가 있기도 하다. 이 중 이준기에 대해서는 별로 할말이 없고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 감독은 동성애적 대상이 되는 이준기에게도 특별히 이렇다 할 강조 같은 것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동성애 코드는 대중적으로 이슈가 된 것과는 달리 깊이 있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단, 이 영화를 구성하는 여러 개의 텍스트는 다양한 뒷배경들을 영화로 끌고 들어 온다는 점이 언급할 만 하다.
우선 영화는 성공적인 연극 ‘이’를 영화로 옮겼으며, 이 이야기의 근원은 물론 유명한 폭군 연산군의 일대기를 그리는 왕조실록에 있다. 거기에 첸 카이거의 걸작 ‘패왕별희’를 끌고 들어오며, 마지막으로, 해외 직배를 위한 DVD caption 작업자들은 부분부분 셰익스피어를 끌고 들어온다.
1. 조선왕조실록 (역사)
조선의 스물 일곱 왕 중 오직 두 사람만이 왕으로 추존되지 못했는데, 왕자의 호칭인 ‘군’으로 실록에 남은 이 두 사람은 반정에 의해 폭력적으로 왕위에서 축출당했다. 하지만, 역사는 무조건 그들이 부적격했다고 하지는 않는데, 두 사람 다 지적으로 조숙했고 그들 자신의 심리적, 정치적 입지를 무너뜨릴 정도로 그것에 반응했기 때문이다.
광해군(재위1608-1623)의 경우, 조선 역사에서 가장 현실적인 외교감각을 가졌던 군주로 기억된다. 임진왜란 직후, 그리고 명-청(후금) 교체기라는 동아시아의 거대한 외교적 혼란기에 왕이 된 그는 현실적인 외교정책으로 조선을 명 제국과 청 제국 모두로부터 안전하게 해주었다. (그는 명 제국에 신의를 져버리지 않는 몸짓을 보내면서도 실제적인 도움은 주지 않음으로써, 나중에 청 제국이 조선에 나쁜 감정을 갖지 않게 하고(강홍립의 투항), 곧바로 청과 외교강화를 맺어 조선의 입지를 명확하게 했다) 하지만, 이런 실리 중시의 외교정책은 명을 형님의 나라로 숭상하고 청을 오랑캐의 나라로 경멸하던 당시의 유교적 예법 문제에 심각히 위배되는 것이었다. (명 멸망 후 조선은 청의 문화를 외면한 채, 유교문화의 가장 과격한 전초기지가 된다. 대신 청은 빠르게 실리주의를 추구하는 성공적인 제국으로 탈바꿈해 나간다.) 그래서, 어떤 실재적 이유로든 간에, 이러한 정책은 과격 소장파 중신들로부터 왕이 배척될 빌미를 제공해 준다.
광해군의 실리정책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몇몇 다른 왕들처럼 그도 후궁의 핏줄 (그러니까, 서자)이었는데, 그의 인재등용책은 그래서인지 서자들에게 관대했다. (허균의 홍길동전은 이 때 쓰였다) 이런 정책들에 대한 유림의 반발심, 아버지 선조의 서자에 대한 불신, 그리고 왕위 옹립을 둘러싼 당쟁 등에 휘말려 그는 자신의 경쟁자들을 모두 살해해버리고 (어린 적자 영창대군을 방에 가두고 불 때워 죽인 사건은 악명이 높다), 수도를 옮긴다든지, 궁궐을 다시 짓는 다든지 하는 무리한 계획의 강행으로 민심의 지지도 차차 잃어간다. (실제 인조반정은 광해군이 계모 인목대비를 폐비한 사건에서 계기된다)
반면, 연산군(재위 1494-1506)은 이렇다 할 정치적 공적이 없는 폭군이다. 애첩 장녹수와 함께 사극의 소재로도 인기가 많은 그는 아버지의 두 후궁(귀인)을 공적으로 타살(곤장형)했으며 할머니 인수대비를 밀쳐 죽였고 계모 정현왕후에게 행패를 부렸으며 큰아버지의 부인과 간통하고 스승을 처형하는 등 악질 패륜아의 면모를 두루 갖추었으며 무오, 갑자사화를 통해 사림들을 학살하고 삼사를 없애버리는가 하면 성균관을 폐한 후 유흥장으로 만들고, 도심에서 백성들을 쫓아낸 후 전국에서 기생들을 모집하고 중신들의 처첩을 탐하는 등의 온갖 악행으로도 모자라, 그 악행을 지탄하는 언문 상소가 올라오자, 언문 사용을 아예 금지시켜 버리고 책을 불태우기까지 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에 대한 연민적 시각이 있기도 한데, 어머니 폐비 윤씨의 죽음(폐비 윤씨는 성종의 용안에 상처를 냈다는 이유로 폐해진 후 상소에 의해 사사된다), 월탄 박종화의 ‘금삼의 피(1936)’ 등을 통해, 사도세자나 정조 같이, 어머니 없이 자란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비극적인 인물로 거듭났으며, 그 치세 초반에는 나름 성정을 펼치기도 했다는 측면도 주목받았다. 이러한 여러 극단적인 면모가 그를 단순한 폭군이나 패륜아가 아닌 정신병적인 인물로 부각되게 하는데, 실제로, 야사에는 ‘할머니에게 미움받고 어머니에게 사랑받지 못하며, 친어머니없이 자란 자신인지라 모든 것을 죽이고 싶다’고 녹수에게 토로하는 연산의 모습도 나타난다.
장녹수는 첩의 딸로 태어난 노비 신분이었으나 예술분야에 재능을 발휘해 연산군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된다. 그녀는 자신의 올아버니를 이용해 정치에도 영향력을 끼쳤다고 알려져서 양민들이 혐오하게 되었고, 중종반정 시 반정군에 잡혀 목이 잘린 후 돌팔매질을 당했다. 한편, 연산군은 처형되지 않았으며, 유폐되었으나, 같은 해 31세의 나이로 병사 (독살이라는 시각도 당연히 있다)하였으며, 그의 아들들은 모두 제거되었다. 그의 사후, 반정공신 성희안이 총책임을 맡아 연산군일기가 왕조실록으로 편찬된다.
1. 연극 이(爾, 김태웅, 2000)
영화의 원작 연극인 ‘이’의 원래의 컨셉은 장녹수를 비추는 거울상/경쟁자로서의 남성을 끼워 넣는 것이며, 그것은 이야기에 강력한 추동력을 주었다. 왜냐하면, 새로 끼어든 남성은 녹수뿐만이 아니라 왕과 궁정, 그리고 나라 전체를 비출 수 있는 광대였기 때문이다. 이의 원작자 김태웅은 연산군일기에서 연산군이 공길이라는 광대를 벌주는 장면을 보고 주연 캐릭터를 얻었다고 하는데, 직언을 하고 문자를 쓰며 잘난 체 하다 곤장을 맞는 역사 속 광대는 사실 장생의 캐릭터와 더 닮아 있기도 하다. 반면, 연극 속 공길 캐릭터는 장녹수뿐 아니라 그 올아버니의 캐릭터까지 수렴한 듯 자신만의 야심을 키우는 인물로 확장된다. 하지만, 녹수가 공길이 되자마자 욕망과 성의 문제가 발동되어, 다시 공길의 캐릭터는 야심찬 정치가와 불행한 연인으로 나뉘게 된다. 그래서 공길의 또 다른 파트너인 장생이 도입되고 마침내 두 쌍의 캐릭터가 완성된다. (연산/녹수/공길/장생) 연산이 녹수를 부르고, 녹수의 캐릭터에서 공길이 나오고, 공길이 장생을 요구했다면, 장생은 다시 연산을 받아 치는 구조가 탄생한 것이다.
이렇게 원래 연극의 방점은 공길(그리고 녹수)에게 찍혀 있기 때문에, 그는 처음부터 도포를 하사받고, 이(爾)가 되며 장생과 갈등하고 녹수와 대립한다. 영화에서와 달리 장생은 공길을 보호하기 보다 그의 친구이며 남색 파트너로 욕망을 투사하지만 거절당한다. 공길은 녹수만큼이나 대담하게 유혹적인 몸짓을 보이기에 그와 연산은 분명한 남색꾼들이 되며, 그 관계 또한 동성애에서 정치적 이용으로, 가차없이 흘러간다. 연극의 대결구조는 녹수와 공길에 의해 지배되는데, 가령 녹수가 공길의 옷을 벗기려 했기 때문에 공길이 형판 윤지상의 죄목을 밝히는 소학지희(笑謔之戱 – 웃고 희학하는 놀이)를 공연하게 된다는 식으로 전개되며, 결국 녹수의 두 번째 음모인 언문 투서의 주범으로 공길이 지목되지만 장생이 대신 장님이 된 후 마지막으로 공길과 장님놀이를 하다 질투에 눈 먼 연산의 칼에 죽고 나면, 공길은 다시 장님놀이를 계속 하다 자살한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녹수를 맞받아치는 강한 캐릭터의 공길은 영화에서처럼 조용하거나 순종적이지 않으며, 특히 장생과의 관계는 매우 거칠게 묘사된다. 더욱이, 그의 각성이 중요하게 부각되어 공길이라는 인물을, 영화와는 달리, 완성시킨다. 반면 연산은 가장 크게 축소되어 그의 광기와 내력은 거의 문제시되지 않는다. 연극 속 연산은 공길을 사랑해서 자기 자신마저 버리면서 이용당하는 후원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서의 연산과 공길의 대사들은 그래서 중요하다. 반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연산은 장생이 빠진 장님놀이에 참여해 공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연산: 인생은 한 판 놀이, 그 놀이에도 가시는 있었구나. 내가 너를 버리지 않았는데 어찌 나를 버리느냐?
공길: 아닙니다. 내가 마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버린 것이옵니다. 비단 도포에 빠져 얼빠진 나를 버린 것이옵니다. 이제야 나를 찾은 것입니다.
반면, 녹수의 캐릭터 역시 영화와는 달리 공길의 반대점에서 그의 욕망, 그리고 성의 허위성을 까발리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애당초 공길이 그녀의 그림자였을지 몰라도, 연극에서의 녹수는 공길을 없애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마침내 성공한다. 하지만, 허무하게도 그녀가 그렇게 해서 차지해야 할 왕 연산은 오히려 공길의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 같이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연극 속의 녹수는 마지막에 왕과 함께 하지 못하고 홀로 도망칠 수 밖에 없다.
녹수: 어서 피해! 현실을 보라구! 현실을!
연산: 현실? 현실? 그런 게 있었나?
허구의 성을 지닌 가공의 연인 공길의 도입으로 역사 속에 실재하는 환상적인 여인이었던 장녹수는 현실로 튕겨져 나온다. 그녀는 환상에 빠진 연인 연산을 끝내 잡지 못한 애처로운 성의 실재로, 아이를 낳는 여인으로, 다시 무대에서 역사로 빠져나가게 된다. 반정군이 들이닥치고, 관객들은 역사 속 장녹수와 연산군의 비참했던 말로를 기억할 수밖에 없지만, 무대의 연산은 녹수와 결별한 채 허무의 그림자 속으로 터벅터벅 홀로 걸어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연극 이는 역사적인 측면보다는 그 속의 한 장면을 꺼내서 전혀 새로운 현실과 허상, 연극과 실재에 관한 고찰로 발전시켜나간다. 녹수와 장생은 각각 역사 속의 타락과 그에 반하는 반정세력으로 대립각을 세우지만, 연극은 그들의 갈등이 아닌 (녹수의 그림자) 공길과 (장생의 실체가 되어야 할) 연산의 관계에 좀 더 주목한다. 그리고, 이 관계는 더 이상 이들의 과거사나 당시 역사 속의 정치적 갈등 같은 것이 끼어듦이 없이 순전히 두 남색꾼의 서로 다른 욕망의 부딪힘으로 가득해진다.
반면, 영화 왕의 남자에서 공길과 녹수는 고정되고, 연산에게는 다시 그의 역사가 되돌려진다. 성의 정치를 표방한 현실과 재현의 대결이었던 원작은 정치적 소용돌이 속 연인들의 이야기로 변신한다. 그리고, 이렇게 변신한 이야기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첸 카이거의 영화 ‘패왕별희’에 근접해간다. 심지어, 이 영화는 경극 (북경 오페라)을 패러디함으로써 패왕별희를 오마주하기까지 한다.[1]
* 연극 이 장생 과 공길 역의 초연배우 이승훈과 오만석
위 이미지는 "바다마녀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문제가 된다면 삭제하겠습니다.
원본 링크 : http://iooeun.tistory.com/entry/100529-%EC%97%B0%EA%B7%B9-%EC%9D%B4
2. 패왕별희 (覇王別姬 [Farewell, My Concubine; King of Pae parts with concubine]) (陳凱歌, 1993)
패왕별희는 역사적 변환기의 두 연기자뿐만 아니라, 근대 중국사에서 경극 장르의 부침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잘 알려져 있듯이, 격렬한 문화혁명 기간 동안, 중국 공산당은 사상교육을 통해 극단적으로 잔인하게 전 세대의 고급 문화와 계급적 지식 체계를 절멸시켜버리고, 그렇게 강력한 자기 정화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수립해낸다. 영화는 일제 강점기에서 이 문화혁명을 거치는 동안 변화하는 두 경극 스타의 모습을 이용해 역사에 대한 통찰과 근대 국가 체제 (특히나 공산당 중국이라는 거대 국가) 속에서의 문화의 운명을 중국의 가장 유명한 비극적 영웅 항우와 우희 두 사람의 이야기에 비추어 보여주게 된다. 이것을 연기하는 두 동성 스타는 탈출구를 찾지 못한 채 같은 연극을 반복하다 그 속에 빠져들어가면서 역사와 함께 일그러져 버릴 수밖에 없고, 반복해서 무대 위의 죽음을 재연하는 수밖에 없게 된다.
영화가 이 두 배우의 유년시절부터 시작해서 그들의 첫 만남과 성공 과정을 차근차근 보여주는 이유도 그런데 있다. 처음 그들의 성공은 계급 사회에서의 지위상승을 의미하지만, 갑자기 국가적 배신자, 예술을 팔아먹는 창녀 같은 존재로, 그리고 마침내는 새로운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낡아빠지고 불순한 계급 문화의 잔재로 낙인 찍혀 매도당한다. 중국 고전의 세계에서 천하를 놓고 겨루다 몰락하는 영웅과 그 애첩의 운명은 결국 근대 국가에서 극장의 비극적인 몰락으로 축소된 후, 그 속, 억압적인 세상에 항복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이고 무력한 초나라 왕 항우 (장풍의)와 그에게서 계속해서 버려지면서도 그를 계속 욕망할 수밖에 없는 우희 (장국영), 이 무대 위 두 배우의 추락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는 경극이라는 국가적 예술 형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중국에서 경극 ‘패왕별희’는 결국 계급을 초월해 모든 인민들이 사랑하는 영웅의 이야기이며, 경극의 이야기 자체가 바로 사라진 시대의 영광스런 문화의 운명과 같았기 때문에 이 영화 또한 그 파장을 얻어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왕의 남자에 존재하는 문화적 틀은 패왕별희에서 작동하는 틀과는 사뭇 다르다. 그것이 바로 이준익 감독이 영화의 서사를 풀어나가기 위해 굳이 경극 형식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해야만 왕의 남자는 패왕별희의 비극의 세계로 돌입할 수 있다) 즉, 원작 연극 이를 지배하는 무대 장르인 소학지희(간단히 말해 희극이라고 해 볼 수 있겠다)는 조선 시대 단 한번도 전 국가적인 예술로 승인받은 적이 없고, 비극성을 소환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3. 조선 문화와 왕의 남자
조선 문화는 엄격하게 상류 문화와 하류 문화로 나뉘어진다. 양반은 광대들을 돌보기도 했지만 이 광대들은 영웅적인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다. 오히려 조선의 민요, 굿놀이, 희극들, 가면극들, 판소리들 과 같은 하류 문화의 기본 정서는 날카롭게 풍자적이며 해학으로 가득하고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과장된 세속성이 지배한다. 이몽룡과 춘향은 발가벗고 방안에서 뛰어 놀며, 배고픈 흥부 아이들은 동네 애들의 조롱 속에 진흙을 주워 먹고 울며불며 달려든다. 이러한 극으로 치닫는 놀이정신과, 그 해학 속의 서정성, 체념의 정한이란, 배우거나 수련하는 것 이라기보다도 날카로운 익살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만이 마스터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을 향유하는 관객들도 수련의 완성이 주는 경이로운 거리감 따위 보다는 살아 숨쉬며 같이 즐길 수 있는 골계미를 원한다. (그런 면에서 근대 (17세기 후반 이후) 판소리의 발달과 명인의 출현은 조선 문화의 바로크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반면 조선의 상류문화는 세속적인 욕망들이 사라진 채 고결한 정신, 섬세하고 고고한 자태, 보일 듯 말 듯한 움직임, 그리고 에두르는 표현으로 채워진다. 장식성이 발달했던 날아갈 듯 화려한 고려 청자와는 달리 조선 백자는 무색 무취의 묵직하면서도 단아한 기백을 지니게 된다. 이런 문화는 드러내놓고 수련하는 것을 가장 수치스러운 일으로 여긴다. 문기를 지닌 진정한 사대부라면 고아한 정신을 지니기 때문에 일필휘지 할 수 있다. 청과 일본의 장식미, 공예미와는 다른 보일 듯 보이지 않고 들릴 듯 들리지 않는 조선의 섬세하기 보다는 조야하고 수수한 미란 사실 수수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이 극으로 갔을 때 모든 허상과 장식이 사라지고 단순함과 균형미만 남는다는 과격한 유교정신을 담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양분되어 보이는 조선 문화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이 다른 두 계급이 소통하는 그 이상한 방식에 있다. 신기하게도, 양반에 적대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하류 문화는 억압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양반들의 묵인과 보호 하에 양민들(그리고 양반 자신들)의 해방구로 작동하고, 곧 이어, 조선 문화의 정점에 이르게 될 영,정조 시대쯤에 가서는 아예 상류 문화가 하류 문화의 미학을 체득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완성되는 조선의 미학이 바로 ‘일그러진 균형미’와 ‘균형 속 의외성으로서의 해학’이며, 이러한 기풍이 조선의 유학과 예술의 완성기인 17세기 진경시대를 지배하게 된다. 절정기의 조선 예술작품은 그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어딘가 균형을 무너뜨리는 비대칭적인 구조를 지니게 되며 퇴계와 이황에 의해 완성되는 성리학은 이상(이)에서 실재의 움직임(기)을 포괄하는 쪽으로 전회한다.
왕의 남자는 이러한 조선의 두 계급 문화의 관계를 반영한다. 궁궐과 국왕은 저급한 문화가 공식적으로 억압당하는 상징적인 지점이기에 연산이 광대패를 들인다는 사실은 더 기괴하고 저돌적인 행위가 되며, 양반 중신들을 자극하고 공격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한다. 장생패가 처음 입궐할 때 울려 퍼지는 숨막히게 느린 정악, 그 속에서 권태로운 표정을 짓고 앉아있는 왕 연산은 사실 장생의 극을 보고도 웃을 생각이 없다. 그것은 그가 불경스러움에 분노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처선에게 눈짓을 보내는 이유도 그런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묵직한 균형이 깨져버릴 때, 답답하게 모두를 억누르고 있던 정적이 일시에 무너지면서 왕의 웃음보가 터지게 된다.[2] 그것은 단순히 이것은 재미있다 라는 인정이 아니라, 어떤 기세가 일시에 무너지는 형국을 나타낸다.
피나는 수련을 통해 정상에 올랐지만 역사의 부침속에 허무하게 사라지는 예인들의 비극적인 삶을 다루는 패왕별희와는 달리 왕의 남자에서 장생과 공길의 역할은 이렇게 자꾸 균형을 무너뜨리고 연산이라는 한 관객의 숨구멍을 트여 주는 데에 있다. 현란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같은 극을 반복하고 자해하고 타락하면서 어두운 무대 속으로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패왕별희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왕의 남자는 같은 질서, 억압적인 아버지의 질서에 억눌려 있는 왕을 위해 다양하고 현란하게 다른 무대들을 활용하게 된다. 다양한 광대극들, 가령 재주넘기, 탈놀이, 풍물, 농악, 같은 장르들을 적극적으로 들여오는 것도 모자라 영화 속 장생은 결국엔 간단한 풍자극을 사용할 것이면서도 굳이 처선에게 전국의 광대패를 모아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한다. 오히려,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몇몇 놀음들, 줄타기, 인형놀이, 맹인놀이 같은 것만이 예외적으로 순수하게 장생과 공길 자신들의 처지를 반영하는 극으로, 이 영화 속에서 순수성을 가지고 재연된다.
경극도 마찬가지이다. 이 영화는 패왕별희를 오마주하지만, 경극도 오마주할 생각은 물론 없다. 경극은 사용하되 그 용도는 전혀 다르다. 패왕별희의 경극이 순전히 두 주인공을 위한 (그들이 문화 전체를 대변하기 때문에) 것이라면, 왕의 남자의 경극은 순전히 연산을 위한 (그 자신이 억압적인 금지에 의해 침묵을 강요당한 피해자였기 때문에) 극이 된다. 경극을 흉내는 내지만, 지 멋대로 웃음거리로 바꿔 버리는 다른 광대패들과는 달리, 이 때 연산의 눈동자를 고정시키는 것은 오직 한 명의 배우, 공길이며, 이 배우가 소환해내는 금지된 대상(어머니)이다. 그리고, 바로 이때 연산의 허구적 자아이기도 했던 장생은 무력한 아버지(선왕)였음이, 그를 둘러싸고 있던 (강한) 여성들 (영화와는 무관한 얘기지만, 역사 속의 인수대비(연산의 할머니)는 수양대군(세조)의 총애를 받았던, 눈에 띠게 강직하고 야심찬 인물이었다) 은 배후 공모자들이었음이 드러나게 된다. 연산이 결국 그 연기에 휘말려들어 극 속으로 난입할 때 이 영화가 위태위태하게 이어가던 균형(아버지의 질서)은 결국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4. 셰익스피어 – 극중 극의 구조와 욕망의 움직임
사실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받은 것은 이 영화보다도 원작 연극인 이 자체라고 보는 편이 더 옳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연극 이가 끌고 오는 것들이 이미 셰익스피어가 확립한 연극관이기 때문이다. 극장으로서의 세계(Theatrum mundi), 극중 극(play within play), 무(nothingness)로서의 세계 인식, 광대(fool)와 여장을 한 남성 연기자(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소년배우boy actor)의 적극적인 활용, 말놀이(language play), 이 모두는 셰익스피어의 희극과 비극을 관통하는 트레이드 마크로, 현실과 허구, 무지와 인식, 그리고 욕망의 자기 복제성 등, 그의 극들을 이해하는데 필수인 다중의 층위를 부여하는 도구들이다.
가령 인생을 걸어다니는 그림자, 무대에서 뻐기다 사라지는 3류배우, 바보의 이야기, 의미없는 소음 등에 비교하는 맥베스의 유명한 대사는 이러하다.
Life's but a walking shadow, a poor player
That struts and frets his hour upon the stage
And then is heard no more: it is a tale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 (Macbeth, V.v)
이때 맥베스의 대사는 단순히 아 인생이란 허무한 연극과도 같구나 하는 의미로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바로 무대 위의 (3류) 배우이기 때문이다. 이 때 갑자기 캐릭터 맥베스 뒤의 초라한 연기자가 보이며, 다시 연기자를 통해 격렬하게 꿈꾸어지고 있는 우리의 ‘삶보다 더 큰’ 맥베스의 야망이 갑자기 무(nothing)가 되어 관객들에게 투사된다. 셰익스피어의 모든 극들은 이렇게 이야기 속의 삶을 살고 있는 캐릭터들이 연극을 상연하는 연기자를 거쳐 세계가 아닌 무대를 깨고 뛰쳐 나와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관객과 대면할 때 그 엄청난 다중성을 획득하게 되는데, 그는 이런 장치들을 중첩해서 사용하면서 구조를 확장해 나가기 때문에 연극에 다층적인 의미망을 형성해낸 후, 그것이 개인이나 사회의 욕망을 어떻게 건드리는 지를 탐구해 나간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을 가장 깊이 있게 사용하는 장치들이 바로 말놀이나 극중 극과 광대의 활용이다.
연극 이(와 영화 왕의 남자)의 세계관도 허구와 현실의 혼합된 상태에 있다. 그래서 맹인놀이는 이 (두 버전)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영화에서의 줄타기는 연극에는 없는 요소로 맹인놀이에서의 ‘세상의 사라짐’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아슬아슬한 외줄의 길은 광대들의 놀이를 통해 허공으로 둘러싸인 적막한 무대로 변신, 영화의 마지막에 세상을 버리고 이야기 속으로 사라질 네 인물들을 위한 극장이 된다.
여장을 한 남성 연기자의 운용은 셰익스피어의 극에서와 완전히 같다고는 볼 수 없는데, 셰익스피어 극의 소년배우는 왕의 남자에서와 같이 직접적으로 동성애를 언급하기 위해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소년배우는 좀 더 복잡한 욕망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대상이 된다. 일차적으로 그들은 여성의 역할을 하지만 (경극이나 장생의 광대패처럼, 16-17세기 유럽의 극단은 대체로 동성극단이었으며, 셰익스피어의 모든 극은 원래 동성극단을 위해 쓰여진 것들이다.) 곧이어 여성이 사랑하는 소년의 역할을 하기도 하며(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Antonius and Cleopatra), 남성으로 분장하는 여성(십이야Twelfth Night, 당신 좋을 대로 As You Like It), 남성과 여성 모두의 대상이 되는 소년(한여름 밤의 꿈 A Midsummer Night’s Dream), 그리고 마침내는 딸 혹은 광대(리어왕King Lear), 그리고 다시 욕망의 대상인 여성으로 (오델로Othelo) 돌아오는 복잡함을 갖고 있다. 셰익스피어가 극중 극 같은 장치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극작가인만큼 이 소년배우들의 극 속에서의 움직임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자꾸 캐릭터 바깥으로 튀어나오거나, 또는 눈에 띄지 않게 이야기 전체의 움직임을 이끌고 가는 강력한 (숨은) 욕망의 대상으로 강조된다.
대신 영화 왕의 남자나 연극 이 에서 공길은 녹수의 모호함(녹수의 계급상승 혹은 위반에 공길의 성 정체성이 더해진다) 혹은 모호함이 가져오는 질서의 파괴(녹수의 음란함에 공길의 남색이 더해진다)를 강조하면서 다수의 욕망이 투사되는 대상으로서의 움직임(모든 남자를 치마폭에 감싸는 녹수가 연산과 장생 사이에서 움직이는 공길으로 구체화된다)도 획득한다. 연극 이에서의 난잡하고 억센 성격의 공길은 셰익스피어의 소년 배우가 연기하는 욕망을 분출하는 클레오파트라와 비슷하며, 모호함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영화에서의 공길은 마치 그 클레오파트라(소년배우) 가 아끼는 소년 시동(또 다른 소년배우)과도 같이 거울 혹은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측면이 더 강조된다.
5. 여기서 잠깐 - 동성애인가 소년배우인가 – 영화 왕의 남자의 결말
그래서, 연극 이가 동성애를 다루는 극인 반면, 왕의 남자는 동성애와 소년배우의 이야기 사이에서 멈추게 된다. 녹수/공길의 이면에 있는 또 다른 거울에 비추는 연산/장생은 그들의 불안과 피곤함(장생과 연산은 현실과 허구의 왕으로서의 만족감보다는 피곤한 권태와 불안에 휩싸여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오는 혁명적인 에너지와 폭력성 (광기와 배짱), 그리고 거기에 더해 앞을 보지 못하는 맹목성까지 (연산의 정치적 눈멂, 장생의 육체적인 눈멂) 나누게 된다. 그런데, 이 두 쌍은 순환하면서 원을 이루지 못하고(가령 녹수가 그 욕망의 순환에 끼여들지 못하고) 장생/연산이 녹수의 그림자인 공길에 집중하면서 깨지게 된다.
이때 공길은 단순히 외모가 아름다운 배우가 아니라 일종의 소년배우 역할을 하게 된다. 소년배우는 외모만이 아니라 남성이 투사할 수 있는 이상적인 여성의 위치를 환기시킴으로써 남성의 시선을 끌어들인다. 남성이 가진 환상 속의 매혹적인 여성의 행동과 태도를 수행하는 순간, 소년배우는 어느 여성보다도 더 완벽한, 더 아름다운, 즉 남성의 욕망을 자극하는 여성을 연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연기와 연극의 가장 근본적인 위력은 어떤 분장이나 배경, 셋팅보다도 연기자의 연기 속에서 관객의 환상이 보일 수 있을 때 발휘되는 법이다.[3] 그래서, 외모와는 무관하게 연기자 공길이 관객을 사로잡는 순간, 실재 여성인 질투하는 녹수는 타자가 되어 환상의 바깥으로, 추한 현실로 떨어져 나가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끝나는 연극과는 달리 영화 속 녹수는 무대로 다시 개입하면서 두 쌍의 관계를 복원시킨다. 영화 속의 녹수는 조선조 가장 유명한 악녀로서가 아니라 연산의 연인으로 귀환하여 질투와 자존심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왕의 여자로서의 권세와 위엄도 잃지 않게 된다. 영화 왕의 남자의 마지막은 그런 면에서 특이하며 의미심장하다. 두 광대가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마지막 장면에서 왕과 애첩 역시 함께 역사에서 빠져나와 순전한 허구 속의 연인으로, 환상 속에 남기 때문이다. 장생/공길만큼이나 환상적인 커플이 된 연산/녹수는 성난 모습으로 달려드는 실재 앞에 버티고 앉아 있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스스로 허상이 된다.
결국 영화에선 녹수도 관객이 된다. 이 영화는 ‘역사’를 참조하긴 하지만, 그 진실을 반영해야 한다고 하는 진지한 ‘사극’이라고 보기는 힘들게 된다. 왕과 녹수는 마침내 그들도 현실을 방기해버린 한 쌍의 미친 연인, 혹은 그 연인을 연기하느라 삶을 소진해버린 배우였음을 인정하고, 현실(역사)이 아닌 무대에 남기를 선택한다. 이런 식으로 영화 왕의 남자의 반복되는 극중 극들은 결과적으로 역사가 아닌 주체를 반영하며, 개인들의 이야기로 빠져나간다.
그렇다면, 영화 속의 녹수는 어떻게 다시 연산과 화해하는 것일까? 그것은 연산이 공길을 사랑하는 방식과 연관된다. 연극의 연산은 녹수와 화해할 수 없다. 그는 진짜로 공길과 사랑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속의 연산은 경극으로 뛰어들면서 그의 미친 사랑의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공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환상 속의 어머니인 것이다.
따라서, 영화 속에서 공길은 연산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거울로 남게 된다. 연산이 공길에게 원하는 것은 ‘같이 자자’가 아니라 ‘같이 놀자’이다. 연산이 공길에게 원하는 것은 그가 녹수에게 원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단 한번, 경극이 끝나고, 실체를 대면한 이후에, 술취한 연산은 공길로부터 위로를 받으려고 한다. (그는 끌어안고 입을 맞춘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길이 그를 거부한다. 공길 역시 같은 경극을 통해, 연산이 더 이상 연민을 요구하는 나약한 남성이 아닌 미친 폭군이며 살인마였음(남근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처선의 연산 계몽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아마도 경극까지 동원할 때의 처선의 계획이란, 연산으로 하여금 금지된 어머니를 만나게 하고 그를 옭아매는 중신들에 대한 복수를 마무리함으로써 올바르게 애도하여 지금까지의 폭정(그리고 음란함)을 끝내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애초부터 실패한다. 계속해서 사라진 어머니를 찾는 굶주린 연산은 (그것을 알기 때문에 녹수는 줄곧 그의 타락한 어머니 행세를 해왔다)[4] 그의 의도와는 달리 이번에는 환상의 여성인 공길에게도 빠져들기 때문이다 (영화는 불안해 하는 녹수를 통해 이러한 연산의 불안정함을 드러낸다)
처선은 ‘그깟 광대들을 몇 들이는데 무슨 뜻이 있었겠습니까? 광대는 그저 광대일 뿐이지요.’ 라고 하지만, 연산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공길에게 빠져들고 만다.[5] 공길은 장생마저 할 수 없었던 궁궐의 ‘형세’를 깨는 연기자였던 것이다. 연산은 장생의 입에서 ‘비역질’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나서야 그를 쏘기 시작한다. 오직, 이 이야기의 마지막에 가서야, 이야기의 세상에 빠져서 현실을 외면했던 연산은, 오직 그의 거울이며 경쟁자였던 장생마저 그의 받아들일 수 없는 진실(남성을 사랑하고 있음)을 발설하고 나서야, 그가 사랑한 대상이 공길도 아니며, 사실은 어머니의 그림자였음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연산에게 공길은 그 자체로서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어머니의 환영을 불러오는 무대 위의 인간이었고, 연산은 그 무대를 현실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공길이 자신과 장생만의 이야기를 통해 그를 버리고 떠나갈 때, 그는 육체적인 ‘어머니’ 녹수에게 다시 돌아간다. 비록 녹수는 연산이 사랑하는 대상이 어느 무엇도 아닌 허상이라는 것을 감지하면서도, 혹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공길에게 버림받고 돌아오는 연산을 받아주게 된다.
녹수에게 돌아간 연산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는 자신이 내친 처선을 내쳐 불러 보지만, 이미 처선은 자결한 후이다. 녹수와 연산은 원점으로 돌아오지만, 이제 그들이 눈 먼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6] 반면 공길은 장생의 이야기를 통해 (도둑질에 대한 벌을 대신 받는 이야기)그들이 그러한 인연의 끈으로 묶여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되돌아가게 된다.[7] 장생 역시 자신도 남자를 사랑한 눈먼 광대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처벌받으며, 돌아오는 공길을 다시 한번 받아주게 된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에 네 명의 주인공들은, 혼란 속에 화해하지 못하고 각자의 욕망을 따라 사그라드는 연극 속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다시 두 쌍의 연인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그렇게 환상 속으로 탈출하는 연인들의 이야기가 된다. 날아오르는 광대들의 몸짓을 바라보는 미친 왕과 그의 여인은 이미 그들과 함께 여기와 저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광대놀음 속의 광대들이 되어 세상에 대한 흥미를 잃고, 밀쳐 들어오는 군중의 앞에서도 그렇게 태평스레, 그러나 어떤 결단의 몸짓으로 앉아있게 된다. 그렇게 이 영화는 두 개의 무대 (1. 장생/공길의 무대 2. 연산/녹수의 무대)를 지닌 채 현실/역사라는 관객(밀려드는 반정군)과 화해하지 않는다.
6. 셰익스피어 – 영화의 번역
이제 영화가 아니라 해외 배급판의 영문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잠깐 하고 이 글을 끝맺고자 한다. 대체로 어떤 영화든 자막 번역은 대사가 가진 감정이나 놀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채 의미 전달로 만족하거나, 때로는 반대로 대사의 길이를 맞추기 위해 의미를 덧붙이거나 자르거나 할 수 밖에 없는데, 이 영화에도 그런 번역의 문제가 대두되는, 번역가에게는 도전이 될 만한 장면들이 무수히 나타난다. (뭐 당연한 얘기이긴 하다) 가령 경극 장면, ‘(팔복) 송곳이나 꺼내시오! (칠득) 얼마나 찔렀는지 송곳 끝이 무디구나’ 가 Passion swells. So I kept this awl pressed to my arm’ 같이 의미 전달에 급급해서 번역된 경우는 좀 아쉽지만, ‘소근소근 쑥덕쑥덕’같은 웃긴 장면이 ‘Whisper whisper, She did, she that’으로 번역된 것은 꽤나 성공적인 것 같아서, ‘(육갑) 말을 해라 이년들아’ 의 익살이 ‘Stop mumbling and Speak!’ 로 살아날 수 있게 됐다. 또한, ‘오늘 밤도 공쳤구나’ 같은 경우는 ‘Another night, another nought’ 이라고 (놀랍도록) 정확하면서도 확실하게 번역한다.
그 밖에는 가령 첫 번째 소극 공연에서 내시들의 옷에 있는 無 같은 한자들도 번역해 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아쉬움도 남는다. 대신 시작 타이틀 부분에 조선왕조 실록과 연산군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자막으로 넣어준 것은 무척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번역자들이 셰익스피어를 염두에 두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것이다. 이미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장님-허공의 표현들을 번역가들은 emptiness 나 sky 가 아닌 abyss로 번역하기도 했었다.
징한 놈의 이세상 한판 신나게 놀다 가면 그 뿐
광대로 다시 만나 제대로 한번 맞춰보자
The World’s but a stage
Kingly is who struts
For a while, then exits in style!
*** 이 글에는 지나치게 많은 이미지가 삽입되었는데, 그 이유는 뭐랄까, 이준익 감독이 만들어내는 화면을 음미해보고 싶었달까, 뭐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름 공이 많이 들어간 화면, 카메라, 편집들인데도 이상하게 ‘영화적’이라는 느낌을 주거나 하지는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 가령 영화의 후반부에 왕과 처선의 갈등 장면, 그리고 이어지는 녹수에게로의 복귀 장면은 사실 여러모로 인상적이다. 어쨌건, 이 '영화적이지 않은 느낌'은 단순히 후반 작업의 필름 필터링 같은 문제는 아닐 성 싶다. 그리고 마지막 이미지는 많은 논란이 되는 ‘사족’ 장면인데, 나 역시 사족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주인공들이 환상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장면 자체는 나름 괜찮기도 하다.
** 또 이 글에서는 녹수를 은근히 부각시켜 보았는데, 이 영화에서 가장 축소된 캐릭터라서 그렇기도 하고 매력적이면서도 왠지 녹수와는 안 어울릴 것도 같은 외모를 가진 배우 강성연 때문이기도 했다. 보통 이 영화에서는 정진영의 연산 연기가 평가를 받지만, 감우성이나 강성연 같은 배우들은 지나친 과욕없이 기본이 탄탄하다는 느낌을 준다. 장생패 조연들도 대단하지만, 역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는 늙은 내시의 목소리로 연기하는 장항선 님이 아닐까 싶다. 그냥 개인적인 감상이다 ~.~
* 이 영화에 등장하는 궁궐은 기본적으로는 조선의 정궁, 북궐 경복궁이다. 하지만 감독은 이 기본적인 건물을 수많은 장식으로 수놓는데, 가령 그가 사용하는 궐 내부의 문들은 마치 중국의 문처럼 각양각색의 그림으로 장식된다. 녹수의 침소에 보이는 원형 격자가 사용된 문 같은 것도 그러한데, 이러한 문들이 실제 궁궐에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의 주거용 전각들은 내부가 공개되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궁전들인 동궐 창덕궁이나 창경궁, 후원의 경우 이런 분위기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덕수궁(경운궁)과 서궐 경희궁(경덕궁)은 임진왜란 이후에 선조와 광해군에 의해 지어진 궁궐들이다) 그러고 보면 연산군 때만 해도 아직 조선의 초기, 중흥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시대였고, 더욱이 세조와 성종 같이 강력한 임금들의 치세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이렇게 강력했던 왕권을 무너뜨리고 당쟁을 시작하게 만든 연산군은 과연 폭군이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역사의 희생자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1] 그래서, 연극과 마찬가지로 영화 왕의 남자도 연산군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역사가 아닌 허구 임을 분명히 한다.
[2] 탈놀이에서 오히려 풍자극을 계획했던 장생은 연산 앞에서 연산의 남근을 강조하는 역할만을 한다. 그런데, 이때 공길이 끼어든다. ‘그 애가 당신 씨인 줄 알어? 내시 중에 불알 한 쪽이 성한 놈이 있어 밤마다..’ 장생이 강조하는 왕의 남근은 공길에 의해서 거세되어버린다. 연산과 녹수 모두를 웃기는 공길의 이 개입은 애초에 장생이 계획했던 ‘왕을 갖고 논다’는 풍자극을 완성하는 의미를 지닌다.
[3] 이것이 타락하면 대중자본주의의 문화 상품화가 이루어진다 – 연기자들이 타락했다는 말이 아니다. 문화 자체가 그것을 조장하고 장려한다. 그래서 연기에서 자신의 환상을 발견하려는 관객의 욕망은 실제 배우의 미모, 혹은 시각적 이미지의 자극으로 변질된 후에 이번에는 반대로 배우의 미모나 환상적인 이미지가 관객들의 환상을 생산하게 된다. 그렇게 시각적인 자본주의 세계에서 ‘연기’는 쇠락하고 ‘이미지’가 득세하게 되며, 그 이미지는 상품화되어 소모되고, 더 자극적인 이미지들을 양산하게 되어 소비자들로 하여금 현실을 외면하게 만든다. 더 나아가 연기도 이미지화되어, 삶을 반영하는 대신 삶이 모방해야 할 모습을 창조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 현실을 모방함으로 시작한 예술이 상품화될 때 현실을 정복하게 되고, 이제 연기자가 현실을 모방해서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연기자(사실은 상품)의 이미지(외모와 연기 모두의 측면에서)를 모방하려고 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4] 녹수와 공길은 둘 다 연산에게 어머니 역할을 하지만, 공길과는 달리 녹수는 거짓 어머니 이며 타락한 어머니의 역할을 한다. 녹수는 거짓 어머니이기 때문에 연산이 진실에 다가가는 것을 지연시키는 역할을 하며, 혹은, 연산이 그녀를 그런 식으로 대상화하며, 그렇게 해서 그녀는 연산의 자기 방기, 폭정과 음란함과 연계된다. 사실,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역사 속 연산군과 장녹수의 관계도 일견 그렇게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5] 녹수와 함께하는 연산이 알 것을 다 알기 때문에 권태로운 연산이라면 공길은 연산에게 시간을 자꾸 되돌리는 역할을 한다. 이 연산은 녹수 이전의 미성숙한 연산과도 같아서 공길을 통해 자꾸 다른 진실들을 타진해 보려고 한다.
[6] 여기서 개인적으로는 녹수도 어떤 결단의 상태로 돌입했다고 생각해 보았다. 공길의 등장은 권력에의 야심을 안고 있는 녹수에겐 연애뿐만이 아니라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권력의 경쟁자의 등장이었고, 연산의 돌아옴은 그 대결에서 자신이 승리했다는 것을 입증하게 된다. 하지만, 스스로 비방서 음모를 꾸밀 정도의 현실에 대한 시각이 있었던 녹수는 비록 연산이 일인지하의 군주라 할지라도 그 치세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을 터인데, 끝까지 연산을 버리지 않고 애첩으로 남는다. 즉, 이 때 녹수는 자신이 연산을 권력의 도구로서가, 혹은 질투심에 의한 경쟁 대상이, 아니라도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라고 나는 본다.
[7] 이 이야기는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에서도 동일하다. 나는 이 글에서 장생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는데, 장생(의 연산과의 관계)에 대한 탁월한 분석은 참고 평론 1. 허문영의 글에 있다. 단 연극과 비교해서 보았을 때 영화 속 공길의 장생에 대한 애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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