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o Storico

구글 [Ricko] Mercedes Benz 300 sl (w194) 1952 Carrera Panamericana Mexico #4 Customed-ing

이박오 2020. 4. 18. 22:55





제가 소개해드리는 이 모델은 릭코의 원래 모델은 아니고
누군가가 커스텀을 하다 만 모델입니다.

원형은 물론 1952년 카레라 판아메리카나에서
우승을 차지한 4번 차량이지요.

하지만, 커스터머는 같은 경기에 참전해
3등을 차지했으나 실격당한 6번 차량으로
커스텀 하다가..

말고 팔았습니다..

아니 차체를 다 깎고 이렇게 공을 들여놓고는
도대체 왜...

어쨌든, CMC가 아닌 릭코 모델에
52년 카레라 판아메리카나 대회에 참전한 세대의 w194 중
마지막 차량이 될 뻔 했다는데 의의를..



일단 릭코 모델의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하판에 나사체결용 프라파트가 엄청나게 나와 있군요.
하지만 박스도 없는 모델이니만큼,
이런건 나중에 갈아 없애면 티도 안날거라고..



전면부입니다.
헤드라이트는 CMC 보다 나은듯 한게
CMC는 복불복으로 짝짝이 헤드라이트도 많은데
릭코는 가운데 전구를 확실하게 재현해주어서
안전하지요.

하지만, 그릴을 보면...




다시 프로파일 입니다.
사실 CMC와는 크고 작은 차이가 있죠.

우선 CMC는 봉긋 솟은 전면부부터 후면으로
유선형으로 떨어지는 라인을 더 잘 살려준 반면
릭코는 사이드도어까지 라인이 평평해보여서
좀 늘어지는 느낌입니다.

4번 넘버 레터링은 상대적으로 좀 크고요




뒷태에도 차이가 있는데,
CMC의 하부 라인이 살짝
아치형으로 가운데가 들려보이는 반면
릭코는 넓고 평평하게 보이죠.

사이드에서 보았을때
꼬리가 살짝 들린 정도는 비슷한 걸로 보아
문제는 하부의 들린 정도가 아니라
후륜 펜더 양측면에서 가운데로 모이는 곡선을
잘 재현하지 못한 느낌 입니다.




커스터머는 콕핏 부분을 잘라내버리고
씨트 뒷쪽을 퍼티나 판으로 메꾸고
앞쪽에는 작은 윈도우들을 달아주었군요.

전혀 거슬리거나 하지 않은
아주 훌륭한 솜씨입니다~!




하지만, 물론 오픈 로드스터가 4번일 리도 없고
헤드라이트를 지나는 스트라이프의 색이
녹색일 리도 없지요.

위에가 오리지널 실차 사진이고




요것이 복원된 차량의 사진입니다.
1952년 카레라 판아메리카나 멕시코에 출전했던
3대의 w194 중 마지막 6번 스피드스터 차량이지요.




w194는 많은 경기에 로드스터의 형태로 참전을 했으므로
커스터머의 원래 의도를 알 수는 없으나
일단 윈드쉴드의 형태는 완전히 다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칼의 몇몇 부분만 고치면 된다는 점에서
카레라 판아메리카나 의 6번으로 꾸미는 것이 가장 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시 릭코 모델로 돌아와서..

릭코가 그릴 뒤의 철망을 프린팅으로 재현한 거는
티가 꽤 나는 편이고, 후드고정용 스트랩은
프라파츠로 구멍에 고정시키게 되어 있습니다.

헤드라이트와 그릴 사이의 골을 CMC는 부드럽고
약간 불규칙하게 둥글둥글 처리한 반면
릭코는 주름선이 보이게 처리했네요~

그리고 CMC에는 없는 전면 번호판을 부착해준게 고맙기는 한데
실제 차량에는 번호판이 없었다는게 함정 ...^^;;




반면에 릭코 모델의 강점은
차체를 상당히 낮추어주었다는 점입니다.
전, 후륜 모두 림과 타이어가 만나는 선이
펜더의 휠하우스 선에 걸리지요.
그래서 릭코 모델은 CMC 보다 약간 넓고 평평한데도
실제로 보면 무척 귀여워 보입니다.



CMC 와는 달리 트렁크 후드와 대시의 300sl 레터링은
단순 프린팅 처리했기 때문에
빛을 받는 어느 각도에서는 아예 보이지 않습니다.

테일라이트들은 모두 페인팅 처리인데요,
이는 CMC도 동일하지요~~




콕핏 하나 없어졌을 뿐인데 라인이..
뭔가 너무 밋밋해서 민달팽이 인가 싶은 뒷모습..



하지만 릭코 모델도 CMC 못잖은 풀오픈을 자랑합니다.
요 개체는 커스터머가 사이드 도어를 잘라서 고정..
끼..룩?!





이게 재밌는게 실제 차량은 시저도어처럼 열렸지요~




릭코도 내부는 카펫 처리가 잘 되어 있습니다.
잘라붙인 도어의 안쪽도 카펫처리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쉬도 CMC와 같은데 오히려 프라파츠의 우둘두둘함이 덜해서
CMC보다 나은 느낌도 듭니다.

하지만 CMC 를 보고 따라 만들었는지
CMC 가 이상한 네모칸으로 재현했던(?) 센터의 시계는
완전히 특색없는 네모가 되었네요.




그리고 릭코의 가장 재밌는
씨트 재현.. CMC 와 유일하게 배색까지 다르고
매끈한 프라파츠에 매끈한 프린팅이라서
마치 틴토이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게 좀 어이는 없지만,
모델 자체로 보면
갑자기 빈티지한 느낌이

와서 무척 참신하고 재밌습니다~~^^




역시 왠지 CMC 와 너무 같은 엔진.
파랑통이 여기서도 하나 뿐인데요,
여기서는 그 사이드에 붙은 은색통
옆의 작은 검정통도 없어지고
잘 안보이는 하부 디테일들과 배선들이 사라지고..
하여간 알게모르게 생략들이 되는거죠~ㅎ




스패어 재현은 나름 괜찮아 보이는 듯 하나
사실은 뒷쪽의 튜브 프레임과 연료탱크+캡이 없고
트렁크가 휑 해져서 인지 스패어들도 완전히
바닥에 누워있네요.

CMC와 실차는 가로 길이가 좁아서 서로 맞대고
약간 비스듬히 서 있습니다.




중저카 다캐의 정석대로 CMC 와는 달리
철판이 아닌 프라판으로 된 릭코의 하부 표현은
무척 대충 만들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도 구멍에 꽂기만 하면 되는 그럴듯한 스트랩까지.
리코는 정말 가성비가 훌륭한 대안입니다~^^




게다가 CMC 구모델과는 달리 궁극의 갈매기샷도 가능하죠!
끼룩끼룩 끼르륵~^^!
(https://m.gamer.com.tw/home/creationDetail.php?sn=3530568)




커스텀된 로드스터 버전은 다시봐도 민달팽이같은 차체이지만,

어쨌든 w194는 각 바퀴 독립 서스펜션으로 주행감이 좋고
스티어링도 비교적 정확했다고 하지요.




전륜은 각각 더블 위시본과 코일 스프링,
유압 쇽 옵저버, 거기에 토션 바 스태빌라이저
까지 장착되어 있었으며,

후륜은 각각 두 개의 조인트로 연결되는
스윙액슬로써 중앙에 위치한 디퍼렌셜에
조인트로 연결되는 방식으로
역시 차량의 민첩성을 증가시키고
승차감도 향상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운전이 평온하다는 건 또 아니었습니다.
뒷축의 스윙 액슬이 뒷바퀴가 아닌
디퍼렌셜에 걸려 있어서
캠버각이 크게 나왔으며,

트렁크 쪽에 있는 커다란 연료탱크 때문에
뒷쪽의 오버스티어링을 통제하기도 까다로웠다고 합니다.




참고로, 걸윙도어 형태가 훨씬 더 익숙한 w194는
앞서 언급한대로, 오픈 스피드스터의 형태로도
많은 경기에서 나타났는데요,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4위를 싹쓸이했던
뉘르부르그링 아이펠렌넨 스포츠카 레이스 였지요.
(저~ 위의 사진입니다)




멕시코 대회에 참가했던 6번 로드스터는 왠일인지
미국인 존 핏치 John Fitch 와
미케닉 오이겐 가이거 Eugen Geiger 가 몰게 되었는데요,

위의 설명을 따르면, 메르세데스 팀 모두가
첫 스테이지가 끝난 후 타이어를 갈아야 했고,
적합한 타이어를 알아볼 시간조차 없이
대회에 참가했기 때운이라고 하는 군요.

여기서 트레드가 나가서 교체되었다는 타이어가
바로 컨티넨탈.. CMC 모델들이 달고 있는 타이어 이지요~~^^




하지만, 어쩌면 시간이 너무 없었다는 설명은
변명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메르세데스 팀은
이미 오스트리아 고산지대 등지에서
총 2000 마일 에 이르는 테스트를 하며
이 대회를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러 루트와 고도에서 주행을 체크하고
스파크 플러그와 카뷰레터를 체크했으며
가솔린의 비율과 소비까지 측정했다고 합니다.




23명의 팀원과 참가선수 차량 세대 포함 13대 차량의
대규모에 조직적이었던 당시 메르세데스 팀이
정작 가장 중요한 타이어 체크를 빼먹었다니요~!




3, 4, (6) 번 차량들..

헤르만 랑 Hermann Lang 과 에르빈 그룹 Erwin Grupp의
3번 차량이 종합 2위

칼 클링 Karl Kling 과 한스 클렝크 Hans Klenk 의
4번 차량은 종합 우승

그리고 존 핏치와 오이겐 가이거의 6번 차량은 실격했지요.




릭코 커스텀드 로드스터를 가운데에 놓아보았습니다~^^



52년의 3회 카레라 판아메리카나 멕시코는
대회 자체의 규정 변화도 컸습니다.




우선 미국 회사들의 로비의 결과로
어느 정도 튜닝도 허용되는
(미국차량들의 우승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일반차량 클래스가 별개로 분리되었고


기존에 하루씩 주어졌던 경기 중 휴일 이 사라져서
총 5일간 연일 진행되는 체제로 바뀌었으며


대신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경기 중 하나라는
악명을 의식해서인지 경비를 대폭 강화!

무려 군대를 동원해서 루트의 곳곳에 배치하고
도시는 더 촘촘히 경계를 서도록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이 군인들의 임무 중 하나는
도로로 난입하거나 하는 동물을
퇴치(총으로..) 하는 것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도 오히려 이런 사고가 발생한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대회 첫날 여덟개의 스테이지를 빠르게 공략하던
칼 클링의 4번 차량. 독수리로 추정되는
그 무언가가 시속 200km의 속도로 윈드쉴드에
충돌하면서, 유리가 박살나는 동시에
조수석의 한스 클렝크의 이마 쪽을 그대로 강타!




갑작스런 사고로 한스 클렝크는 잠시 의식을 잃을 정도였죠.
천만다행으로 멀쩡했던 칼 클링은
우선 클렝크를 세차게 흔들어 깨우고,
계속 할 수 있을 지 물어보았다고 하네요.



윈드 쉴드가 깨진 4번 차량의 또 다른 사진입니다.
설명에는 마치 수류탄이 터진 것 같았다고 하는 군요.

또, 깨진 유리는 스테이지 마지막으로 갈 때까지
교체되지 않았다고 나와 있는데,
나흘동안 구멍난 채로 달렸다는 뜻이 아니라
첫째 날의 사고가 난 스테이지가 끝날 때까지
고칠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4번 차량도 처음에는
앞유리에 바 같은 게 없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첫째날 일정이 끝나자마자 깨진 유리를 교체하면서
선수들을 보호하기위해 여덟개의 철제 바를 붙였고,

이 모습으로 경기 종합우승까지 하면서
그 유명한 쇠창살버전이 탄생한거죠.




그에 비해 시종일관 안정적으로 달린
헤르만 랑의 3번 차량은 35분 차이로 2위.
비록 2등 이지만 우승차인 4번 보다
파란 스트라이프 색상이 더 이쁘기 때문인지
(얼마나 이뻤으면 얘 사진만 컬러..
라기에는 사진에 조금 이상한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메르세데스 뮤지엄에 전시되어 있는 4번보다도
더 자주 행사를 뛰며 인기몰이를 한다고 합니다~^^




마지막 차량이자 이번 게시물의 주인공인,

그러나 아직 커스텀이 덜된,

존 핏치의 6번 로드스터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좋은 성적으로 경기를 마칠뻔 했으나

타이어의 트레드가 계속 나가서
앞바퀴 쪽의 펑크로 인해 쇽 옵저버 마운트 하나가 나갔고
그것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결격 사유가 발생,
실격당했습니다.

하지만, 존 핏치는 이 모든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지요.
왜냐하면 애초에 메르세데스 팀을 멕시코로 끌어당긴 것이
바로 그였거든요.




2차 대전때는 메써쉬미트 Me 262 제트기를 격추시켰던
몇 안되는 머스탱 파일럿이었고,
그 자신도 격추당해 전쟁 포로로 대전을 마감했던 핏치는
무척 열혈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음에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왓킨스 글렌에서 정비소를 하면서
지방 레이싱 경기에나 참가하던 그를 눈여겨봤던
브릭스 커닝햄 Briggs Cunningham 이 직접 영입했고,

커닝햄의 다크호스 드라이버이자 자체 커스텀한
경주차들을 몰고 단기간에 급성장해 아르헨티나의
에바 페론 경주에 우승해서 영부인의 키스를 받기도 했으며,
SCCA 챔피언이 되기도 하는데,
이 모든 레이싱 커리어를 1950-51년 사이에 쌓게 됩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일은 그가 커닝햄의 드라이버로
52년 르망에 참가했을 때 일어납니다.

그는 커닝햄 C4r 로 우승까지 근접하는 역주를 보여주는데
그만 연료 불량으로 실패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패기를 본 메르세데스 팀의
울렌하우트와 알프레드 노이바우어 Alfred Neubauer가
직접 그에게 300sl을 테스트 운전해 보자고 요청하게 됩니다.




핏치는 울렌하우트와 노이바우어 앞에서
300sl을 몰고 트랙을 두 바퀴 돌게 되는데
노이바우어가 쉬엄쉬엄 몰아보라고 했지만,
핏치는 최선을 다해서 운전합니다.

그래도 확신이 부족했는지 노이바우어는
한 바퀴 더 돌아 보자고 제안하고
핏치는 전 랩들보다 몇 초 더 빨리 들어오지요.




결국 깊은 인상을 받은 메르세데스 팀의 수장들은
훗날을 기약하며 그와 헤어지는데,

몇달 후,
메르세데스 팀의 멕시코 여행 계획이 없다는 것을 안
존 핏치가 오히려 먼저 연락해서 다시 그들을 설득!

결국 메르세데스 팀의 카레라 판아메리카나 참전이 결정되고,
노이바우어의 공식 초청으로
핏치가 새로 제작된 차를 몰게 된 것입니다.




<카레라 판아메리카나에서의 300sl 로드스터 6번.
핏치와 가이거 둘 다 뒤를 쳐다보며 운전하는게(?)
무척 특이합니다. 옆을 지나는 차량은 종합 4위를 한
움베르토 마글리올리의 란치아 B20 아우렐리아 쿠페>

비록 52년 멕시코에서 핏치는 메르세데스와
좋은 결과를 얻는데 실패하지만,

1953년 세브링에서 커닝햄 팀으로
미국차에 탄 미국인으로는 최초로 우승을 하며
당시 애스톤 마틴 팀의 매니저였던
존 와이어 John Wyer의 찬사를 받기도 합니다.
"내 팀을 이기다니.. 심지어 미쿡인이.."

54년까지는 커닝햄 뿐만 아니라
포르셰, 탈봇-선빔, 내쉬-힐리, 쿠퍼 등
여러 팀에 참여해 다양한 경기를 치뤄내기도 하고요.

결국 54년부터 다시 메르세데스 팀에도 참여해서
마침내 55년, 후안 마누엘 판지오, 칼 클링, 스털링 모스 등
기라성같은 드라이버들과 함께
다임러-벤츠 AG 스포츠카 팀의 일원이 되지요.

독일 전투기를 격추시키던 미국인이 독일 팀으로
독일 차를 몰다니~!

더 놀라운 것은 이즈음 모스의 네비게이터인
데니스 젠킨슨 Denis Jenkinson 을 위한
스크롤링 맵을 만들어 준 것도 바로 존 핏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해 르망에서 피에르 르벡 Pierre Levegh 과 함께
존 핏치는 메르세데스 팀의 궁극의 머쉰인 300 slr 으로 참전했고,
동료 르벡이 하늘을 날아 관중석을 덮쳐 85명의 사상자를 내던
순간, 르벡 부인과 함께 트레일러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300 sl 로 화려하게 부활했던 메르세데스 팀의 염원은
운명의 장난처럼 그 손자뻘인 300 slr 로 무참히 짓밟히고,

독일의 거인 메르세데스는 다시금 스스로 족쇄를 채운채
(다음 르망 복귀와 우승을 할 때까지)
모터스포츠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게 됩니다.





1950년대, 영욕의 300 sl 과 그 후계차들,
그리고 노이바우어와 울렌하우트의 메르세데스 팀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았던 미국인 존 핏치는

55년의 대 참사 이후에도
커닝햄과의 오랜 동료로,
에드 콜과 빌 미첼 산하 시보레 콜벳의
레이싱 팀의 대표로,
그 밖에 수많은 자동차들을 타고,
열정적인 레이서의 삶을 이어갔습니다.

심지어 90세에 가까웠던 2000년대 초에는
거꾸로 가기 스피드 신기록을 세우기까지 했지요.

그를 처음 발견했던 브릭스 커닝햄과의 팀활동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66년 세브링 12시간 레이스에서,
존 핏치는 이미 다음과 같은 인터뷰를 남겼습니다.

"이게 우리의 마지막 레이스가 될거라는 생각은
결코 들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가 진정 이기려고
계획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느낌은 있지요.
예전에 우리는 보통 이기기위한 전략을 짜려고
노력하고는 했는데 이번엔 아니었습니다.
내 생각에 우리는 그저 운전하는 걸 좋아해서 그런것 같아요."

그들의 포르셰는 벨브 고장으로 경기를 끝마치지 못했고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공식 경기였습니다.

그리고 87세에 다시 데뷔하긴 했지만...




하나 더,

은빛 메르세데스의 찬란하지만 너무 짧았던
50년대를 함께했던
존 핏치의 가장 위대한 유산은
바로 모터스포츠의 안전에 관한
선구자적인 관심과 지속적인 노력이었습니다.

그가 베테랑 컨설턴트로 개발에 참여한
수많은 자동차 안전장치들과 트랙 디자인은
이후 수많은 레이싱 드라이버들의 목숨을 구했다고 합니다.

다음에는
w198 300 sl 걸윙 쿠페로 이야기를 이어갈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