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다사다난한 3월,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일어날 것이며,
무엇보다도 작년보다 개인적으로 너무 바쁘네요 ㅠ
그만한 성과도 있다면 좋으련만 ㅠㅠ
간간이 꺼내봤고, 댓글 사진으로 쓰기도 한 사진들 중 일부를 올려 봅니다~..
이상한 끄적거림과 함께요....ㅡㅡ;;
요새 워낙 상태가 안좋다 보니 상태 안좋은 게시물이 나왔습니다.
너른 아량과 이해 부탁드립니다..ㅜ.ㅠ
1. 열정의 이탈리아
열정의 이탈리아에서 미지근한 회색분자는 설 자리가 없지요.
이분법은 유용합니다.
하지만, 이분법은 또 파괴적이지요.
우리 사회에도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지요.
누구는 옳고, 누구는 괴물이며, 누구는 피해자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여기 살아 있습니다.
이성보다 열정이 앞서는 감성의 이탈리아,
뭐, 좋습니다. 매도합시다.
하지만, 기왕, 산 자를 매도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은?
기준에 맞추어 판단하고, 휩쓸려 매도하며 공동체가 되지 말고, 개인 대 개인으로 같이 살기에 전념하는 것은?
알베르 카뮈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하지요.
어둠 속에서도, 환한 빛 속에서도, 두 눈을 부릅떠야 한다고.
2. 차가운 독일의 여름
카뮈는 또 이런 말도 했다고 합니다.
"깊은 겨울 속에서 나는 마침내 내 안에 무적의 여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흠.. 왠지 멋지군요..
그런데, 이렇게 말해 보는 건 어떨까요?
깊은 여름 속 나는 마침내 내 안에 무적의 겨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말을 할 때, 카뮈는 불행이라는 추상 속에서 삶의 의미를 지탱할만한 구체성을 찾기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그는 더 큰 불행이 이미 우리 사회의 도덕성 속에 선의의 가면을 쓴 채 자리잡고 있음을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르지요.
누군가를 매도하고 타락자, 괴물로 단죄하는 것은 짧은 안도와 대리적인 희망을 줄 지 모르지요.
하지만, 그냥 살아있음에 집중해도 되지 않을까요?
다시, 매도합시다!
하지만, 삶을 파괴하지는 말고요..
우리가
'선량한 파괴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무적의 차가운 겨울을 열정으로 너무 데피지는 맙시다.
'순수'하기만한 열정은 항상 못미더우니까요.
3. 영국의 비바람 - 추상을 뚫고 가는 회색 분자들
"그렇다. 불행 속에는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일면이 있다.
그러나 추상이 우리를 죽이기 시작할 때, 우리는 그 추상에 대해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카뮈가 본 추상, 불행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선량한 시민들이 생각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악, 죽음, 국가, 뭐 그런 것이었을까요?
어쨌건, 그런 것들이 쓰나미가 되어 덮쳐오더라도, 우리는 두 눈을 부릅떠야 합니다.
완전히 인정받는, 비밀까지 아름다운 삶을 살 수는 없으므로, 완벽한 죽음 이란 것도 있어서는 안되겠지요.
완전한 옳고 그름/ 선과 악 이라는 환상을 버리고, 불완전함을 직시하는 것은?
100 프로의 선함보다 90 프로의, 80 프로의 선함을..
100 프로의 선함이란, 그 자체로 또 다른 추상이자 억압이며, 결국은 폭력이 될 것이기 때문에..
물론, 괴물같고, 분노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앞장서서 돌을 던지지는 말라고 어떤 종교 지도자들은 이야기했지요.
선량한 국민보다 불완전한 시민이 되면 안될까요?
우리는, 날아가는 화살처럼, 열정과 선의마저 꿰뚫는 속도감 속에서만 잠깐 연대하는 사람들....
4. 프랑스적 영웅주의와 성실성
"그런데 나는 어떤 관념 때문에 죽는 것은 지긋지긋합니다.
나는 영웅주의를 믿지 않습니다. 나는 그것이 쉬운 일임을 알고 있으며, 그것은 파괴적인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것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살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죽는 일입니다."
이 말을 하는 것이 타루이건 리외이건 간에, 여기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라는 말은 오해의 여지가 있는 듯 합니다. 왜냐하면, 미국식 영웅주의의 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영웅이 되는 것 또한, 예외없이 파괴적이기 때문이지요. 카뮈가 말한 바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행동은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 아니지 않을까요?
타루건 리외건, 다시 말하듯,
"즉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타인이라는 지옥을 나 자신의 지옥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언젠가 소개해 드리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영화배우 성룡이 작품들 속에서 보여주는 소시민주의는
제가 가장 따르고 싶은 윤리의 방식 중 하나입니다.
르망의 써킷에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으며, 승부는 찰나에 불과합니다.
그 찰나의 빛나는 순간을 위해 매진하고 질주한 후, 역사 속으로 밀려나버리는 제조사들....
5. 타인 이라는 페스트, 페스트 속 타인과의 대면
"시내에서 올라오는 경쾌한 환호성을 들으면서 리외는 그러한 기쁨이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고 있는 사실, 즉 페스트 균은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으며 꾸준히 살아남아 아마도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교훈을 알려주기 위해서 또 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가지고 어떤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인과 대면하는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완전한 전체가 아니라,
서로의 타자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필요에 의해 타협하고 소통하는,
시민 대 시민으로,
우리는 과연 연대할 수 있을까요?
6. 나가며 - 다시 이탈리아.. 여기에서
원래, 이 게시물은 사회에서의 퇴장, 그 뒷모습 에 대한 단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원글에서는
사회적 추문, 도덕적 논쟁, 그 밖의 외적인 정치적 스캔들, 그리고 국가적 위기 국면까지,
작금의 우리 상황을 전반적으로 언급했었으나,
마지막 저장-등록 과정에서
다행히도(?) 이 지옥같은 개인 컴퓨터 님께서 알아서 한번에 통째로 날려주셨으므로,
제 기억 속 민감한 언급들은 모두 빼버리고
알 수도 없는 넌센스로 게시물을 채우고 말았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단, 하나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이분법적 잣대를 포기하고 불완전한 시민이 되어 연대합시다.
우리 사회의 도덕성 앞에서
작년에는 불륜과 도덕의 무게가 무거워 졌다면,
올해 초는 죽음의 무게가 가벼워 졌다는 느낌이네요.
올해의 경우, 저는 이러한 사태가 옳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우리 사회가 얼마나 '너무 건강한지'에 대해서는 좀 걱정이 됩니다.
이건 정치적인, 정당적인, 뭐 그런 양상을 언급하는 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반응에서 느끼는 것이지요.
가장 쉽고 거칠게 말해서,
특정인을 다구리치면서 '우리는 건강해' 라고 위안 받는 전체주의적인 사회 속 우리가 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미셸 푸코는 건강함의 개념이 구조화 되는 과정을 보여준 적이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라도,
제가 좋아하는, 한석규-이은주-엄지원 배우들이 출연하는 우리 영화 '주홍글씨'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는 군요.
이상한 글 올려서 죄송합니다~~ (ㅡㅡ)
그렇다면, 마무리는 고전 독서의 장려로 ~ *
3월, 저는 책을 읽고 싶습니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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