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o Storico

[Highway 61] Dodge 1970 Challenger R/T "Billy the Kid" I

이박오 2017. 5. 29. 18:39

윌리엄 스텝(William Stepp) "빌리 더 키드" 는 오하이오 데이톤 법정에서 판사가 기소장을 읽는 동안에도 이것과 같이 화려한 프로스톡 레이서를 법원 앞에 세워놓았다고 한다.



NHRA와 IHRA에서 가장 독특한 경력을 지녔고, 지금은 올드 팬들의 궁금증의 대상이 된 윌리엄 스텝은 2세대 바라쿠다를 구입해서 유명한 빌리 더 키드 팀을 만들고, 곧 70-71 시즌에 챌린저를 투입해서 재미를 보았습니다. 위 사진에서 보이는 71년 챌린저 2세대도 유명하지만,



컬트 영화 '배니슁 포인트'로 유명해졌고, 챌린저의 왕이라 불리우는 70년 1세대 R/T 버전이 역시 더 유명하지요~ (돈 그로더의 헤미 쿠다와의 경기 사진 입니다. )



드랙 레이싱 용 휠과 타이어를 끼고 있어서 뒷바퀴가 상당히 두툼하고 위압적으로 보이지만, 그것을 감안하고서라도, 70년 챌린저는 마지막 포니카로서 디자인과 기능적 요소들을 극대화한 바로크적인 위엄을 갖춘 차량입니다.



거기에 '빌리 더 키드'라는 다채로운 이름을 내걸고있는 차라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70년 챌린저도 은근 드문 모델 중 하나인 듯 하네요.



위에서도 말했듯, '빌리 더 키드'라는 스킴이 이 모델을 선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하이웨이 61에서는 요것 말고도 2세대 쿠다 모델도 같은 스킴으로 발매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빌리 스텝 '더 키드'의 최초 프로 스톡 두 대를 발매한 셈이군요.




 

아시다시피 '빌리 더 키드'는 서부 시대의 유명한 총잡이이자 악당이지요. 뭐 여러가지 민담들이 있다지만, 실제로는 1881년 20대의 나이로 보안관 '팻 개럿'에게 사살당한 것으로 되어 있구요, 대략 9 명 정도를 죽였다고 합니다. 비석에 보시면 그 전해에 죽은 친구들(팰스 - 찰리와 톰) 두 명이 갇히 묻힌 것으로 나타나는데, 역시 갱단의 일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구요.



특이한 것은 요렇게 철장 속에 비석을 가두어 놓았다는 점~..~



그 이유는 재미있게도 비석 도난사건 때문이었지요. 1950년 부터 26년간 한번, 그리고 1981년에 다시 나흘 정도 도난당해서, 심지어는 머나먼 캘리포니아에서 발견되었다고.. 미국인들의 유머감각인지는 몰라도 올드 포트 섬너에서는 팻 가렛의 후손인 자비스를 모셔와서 빌리의 묘석을 수감했다 .. 라고 적혀 있습니다 ~ㅋㅋ


 

그리고, 포트 섬너의 박물관 한켠에는 빌리가 사살당한 곳 이라는 표지판도 보이는데요, 그러니까, 빌리 더 키드는 포트 섬너를 방문했다가 죽임을 당한 것이지요. 에밀리오 에스테베즈가 빌리 더 키드 로 등장하는 영건스 라는 영화는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말도 안된다고 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역사에 근접하는 버전인데, 영화 맨 앞에서 빌리가 애리조나에서 최초 살인을 하는 장면이 나오고 곧 뉴멕시코 링컨 카운티에서 목장주 존 턴스톨의 밑에서 일하게 됩니다.


 

턴스톨은 영화에서와는 달리 20대 의 젊은 목장주였다고 하는데요, 어쨌건 간에 동네 유지이자 양아치였음이 확실한 제임스 돌런과 로렌스 머피(무려 잭 팔란스가 출연했죠) 가 보안관 윌리엄 브래디와 함께 턴스톨을 기소하고, 체포과정에서 브래디가 턴스톨을 사살하는 결과로 흘러감에 따라, 빌리는 동료 5명과 함께 복수를 하기로 결심하고 1878년 식사중인 브래디와 부관 두 명을 사살하게 됩니다.




이것은 사실 비겁한 일이었고, 복수라는 그들의 명분과도 약간 벗어난 것이었죠. 어쨌건 학살자가 되버린 이들은 쫓기는 처지가 되었고, 현상금 사냥꾼의 표적이 되기도 하며 하나 둘 죽어나가는데, 이 때, 새로운 뉴 멕시코 주지사가 링컨 카운티 사건의 주모자를 사면하겠다는 발표를 함으로써 빌리는 자수하게 됩니다.

 



근데, 재밌는 것이, 주지사도 법을 잘 몰랐던지 살인자에 대한 법적 권리는 지방검사에게 있는 것이었고, 지방검사와 판사는 사면을 거부하며 사형을 구형한 것이죠. 그렇게 빌리는 1881년까지 사형수로 수감되어 있던 중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두명의 교도관을 사살하고 다시 탈출하면서 미국 전역에 이름이 알려지고, Bandit King (도적 왕) 이라는 별칭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3개월 간의 도주생활 끝에 보안관 팻 개럿에게 포트섬너에서 사살당하게 됩니다. 한 밤 중에 아무런 무장도 않고 먹을 것을 가지러 나왔다가 사살되었다고 하지요.

...



이렇게 나름은 초라할 수도 있는 진실과는 달리 빌리 더 키드는 유쾌한 악당, 불의에 항거하는 젊은 영웅이자 도적 정도로 민담 같은 것을 통해 미화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서부 영화라는 장르를 완성하는 세르지오 레오네 나 샘 페킨파 같은 감독들은 그렇게 간단하게 오락적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지요.



 

와일드 번치의 장중하며 느린 기관총 신으로 아주 유명한 페킨파의 경우, 이미 스트로 독 같은 문제작에서 폭력에 대한 탐구를 하게 됩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클락워크 오렌지와 함께 영화사에서 가장 쇼킹하다고 손꼽을 수 있을 폭력 장면이 포함되는 이 영화는, 동시에, 개인 대 커뮤너티, 지적인 개인에 대한 동물적인 커뮤너티의 폭력성, 그리고, 갑자기 그것을 반전시키는 개인의 폭력성, 에 대한 연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훨씬 더 고전적인 서사를 따르고 있는 와일드 번치는 변화하는 세계에 순응하는 옛 동료(쏜튼) 와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도적 (파이크) 떼의 대결에, 멕시코의 전설적인 독립운동 지도자 판초 빌랴와 그에 대항하는 부패한 정부군 마파치 장군의 부대라는 배경이 깔려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페킨파는 마파치와 도적들을 일종의 (반) 영웅 들로 묘사하며 자멸하는 강력한 힘으로 보여주는 반면, 영화에는 백의의 독립군으로만 등장하며 마파치를 숨어서 보고 있는 판초 빌랴 무리와 현상금 사냥꾼 무리를 이끌며 옛 동료를 간발의 차로 추격하는 쏜튼으로 하여금, 이 강력한 구심점이 사라진 세계에서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을 선택하도록 해주지요.




이렇게 폭력이나 악에 대한 탐구에서 세계의 변화와 새로운 질서라는 공식을 이용해 서사를 이끌어 내던 거장은 사실은 바로 구로자와 아키라 였습니다.





그는 지금 봐도 끝내주게 재미있는 요짐보나 산주로 같은 작품을 통해, 악당 (산주로) 주인공이 마을의 악당들을 다 처치하고 나면, 새로운 질서 (산주로에서의 행정관) 가 수립되고, 악당은 그 질서 속에서 스스로 잉여적인 존재가 됨으로써 자멸해야 한다는 서사의 공식을 완성했고,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기용, 요짐보를 Fistfull of Dollars 로 리메이크해서 대성공을 거두고 마카로니 웨스턴의 완성자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세르지오 레오네는 역시 미친듯이 재미있으며, 리 반 클리프, 장 마리아 볼론테가 이스트우드와 같이 주연이 되는 A Few dollars More 같은 작품을 통해서 이러한 서사 방식을 다시 독자적으로 발전시키게 됩니다.




즉, A Few Dollars More 는 마치 리 반 클리프와 장 마리아 볼론테라는 두 고전적인 영웅들의 대결에 약삭빠르고 시크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살짝 끼어든 듯한 느낌을 주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들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7인의 사무라이와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에서 구로자와 아키라와 레오네는 꽤 다른 선택을 하게 됩니다. 구로자와가 영화 속에서 마적들과 함께 사무라이 네 명을 죽이고, 원래의 의뢰자였던 농민들에 의해 거의 쫓겨나다시피 하게 되는 쓸쓸한 주인공들을 보여주며, 사무라이 시대라는 한 시대의 역사적인 종말을 선포하는 반면,



레오네는 철도와 마을의 건립, 이민자들의 쇄도라는 역사의 모퉁이에서 찰스 브론슨과 헨리 폰다, 제이슨 로바즈로 대변되는 악한들이 어떻게 시대에 의해 버림받게 되는지, 또는 어떻게 역사에 편입되기에 실패하고 마는지를 보여주면서도, 오히려 자신의 내면에 침잠하는 주인공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침내, 너무나도 멋진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헨리 폰다와 찰스 브론슨은 역사를 완전히 벗어나서, 또는 역사에 의해 영향 받기를 거부하는 주인공으로 부각되면서, 자신들을 그 순간까지 강력하게 밀어온 하나 씩의 개인적 추동력들을 발견하고, 그리고 나서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지요.




*사족으로 위에 A Few Dollars More 스틸 사진에 등만 찍힌 배우는 바로 유명한 클라우스 킨스키 이지요. 성격이 하도 지랄맞아서 평생 친구인 베르너 허족(헤어초크?) 감독과의 옥신각신(총을 들고 죽이겠다고 한다든지, 동물을 죽인다든지..) 그리고 친딸들(폴라와 나스타샤)의 성폭행 의혹으로 유명한... 그 밑의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커버에는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가 있는데 킨스키와 카르디날레는 다시 베르너 허족의 배가 산으로 가는 유명한 작품 '위대한 피츠카랄도'에서 같이 출연하지요. 이 영화 또한 악랄하기로 한자락 하는데, 스텝진의 몰사 사건이라든지, 킨스키가 감독이 자신을 살인하려 했다고 주장한 사건 같은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이전에, 남자 주인공 역의 배우가 수없이 많이 바뀌었다는 점... 그중에는 제이슨 로바즈도 있는데, 이 양반 아마존에 오자마자 이질에 걸려서 구토(아아.. 구토??) 만 하다가 돌아갔다는 슬픈 뒷 얘기가..



 

 


질의 테마곡이죠. 엔리오 모리꼬네는 이 영화의 네 명의 주인공 중 질과 샤이엔(제이슨 로바즈)의 주제 음악을 만들었고, 찰스 브론슨과 헨리 폰다의 주제 음악은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대사없이 액션만 크게크게 잡아서 잔 이야기들을 커버하는 방식과 카메라,편집의 운용, 그리고 나면 수백장의 사진을 보며 꼼꼼하게 재현했다는 당시 마을의 재현,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무나도 멋진 모뉴먼트 밸리의 풍광과, 철도를 놓는 노동자에 대한 마차꾼의 분개 까지.. 구로자와 아키라가 찬바라를 현실화하면서 필요한 이야기들을 총 망라해서 질서정연하게 딱딱 맞춰넣는 고전주의의 대가라면, 세르지오 레오네는 현실 속에서 개인의 관점을 극대화해서 심리적으로 집중해서 보여주는 바로크적 대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짐보와 7인의 사무라이는, 조미료 잡탕같은 요새 영화들과는 달리, 명쾌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함께 편집과 카메라 워크 같은 것들과 일체가 되어서, 버릴 게 하나도 없는, 군더더기 없는 피와 뼈 같은 영화들이지요. 화질도 좋게 다시 다 나와있는데, 유튜브에는 쓸만한 게 없어서 무척 아쉽습니다..


 

아, 빌리 더 키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지요? 썬댄스 키드나 부치 캐시디와 함께 서부 역사에서 무척 중요한 악한 중 한 명인 빌리 더 키드를 중요하게 다루는 현대 영화는 두 편이 있습니다. 바로 샘 페킨파의 '팻 가렛과 빌리 더 키드' 그리고 크리스토퍼 캐인 감독의 '영 건스' 입니다. 근데, 사실 크리스토퍼 캐인 감독은 주로 오락 영화같은 것을 찍는 감독이라 그런지, 역사적 사실+민담에 가깝게 근접하는 반면, 시대적인 안목 같은 것을 보여주려 하지는 않습니다.



 

 




영 건스는 나름 간단한 도덕적 도식으로 시작하거든요. 계몽과 평등주의를 지향하는 영국출신 목장주 턴스톨(테렌스 스탬프)과 쌩양아치이며 부정한 권력과 결탁된 머피(잭 팔란스).. 그런데, 정작 흥미로운 것은 빌리 더 키드(에밀리오 에스테베즈)의 성격 묘사 입니다. 영 건스의 중요한 점은 부정한 것(턴스톨의 잘못된 죽음)에의 저항으로 시작된 갱단의 복수극이(6명의 갱단은 처음에 보안관 대리 뱃지를 달기도 하지요) 학살극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것이고, 더욱 중요한 점을 그 동인을 온전히 빌리에게 쏟아붇는 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다른 5명은 모두 학살자가 될 생각이 없는데, 가장 어리버리하고 나중에 합류한 빌리(더 키드)는 처음 갱단의 일원을 의심해서 죽일 때부터, 아주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살인을 행하며, 점차 담대해져서 나중에는 희생자들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조롱하며 죽이게 되지요. 나머지 5명은 오히려, 이렇게 동물적이고 파괴적인 빌리에게 공포를 느끼고, 끌려다니며, 갈등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즉, 영 건스의 특징은 나름 영웅으로 포장되곤 하는 빌리 더 키드의 본질을 역사적 사실에 가깝게 보여주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빌리와 갱단은 우선 아주 젊은 청년들이며, 또한 어리버리하지요. 그들의 적으로 나오는 사냥꾼들이 거의 할아버지 수준으로, 제대로 뛰어다니지도 못하는 둔한 몸짓을 보여준다는 점은, 그럼에도 어린 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된다는 점은, 감독이 이러한 나이 차이를 의도적으로 설정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갱단은 빌리를 리더로 하는 자신들의 소식이 (잘못) 나오는 뉴스를 읽으며 즐거워 하는데, 심지어는 빌리의 얼굴이라며 딕(찰리 쉰)의 얼굴 그림이 실리기도 하고, 딕이 죽고 난 후에는 그 사실을 이용하기도 하지요. 영화도 마찬가지로, 정의로운 배경을 가졌으나 마치 폭약과도 같은 어린 빌리가 어떻게 무법과 폭력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가 를 보여주는 듯 하다가 마지막 역사적 사건인 변호사 집에서의 군대와 대치씬으로 다시 실제 역사(5일 전쟁)와 합류하고, 악한 머피를 사살하며 끝나게 됩니다.



 

반면 샘 페킨파는 빌리 더 키드가 무법자로 온전히 자리매김 하고 난 후에 팻 가렛에게 사살되는 과정에 집중합니다. 팻과 빌리는 민담에서처럼 예전의 친구이며, 이 영화에서 빌리 더 키드 역할을 하는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은 중후하고 아주 침착하게 연기를 하면서 빌리가 더 이상 어리고 폭발적인 존재가 아니라 온전한 신념과 저력을 가진 성인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지요.

 



나이가 들은 팻 개럿이 살해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곧바로 과거로 돌아가 빌리 더 키드와 같이 병맞추기나 닭..쏘기를 하던 팻 가렛의 과거를, 그리고 빌리 더 키드의 자유롭고 법에 구애받지 않는 방랑자적인 삶을 보여주는 데 집중합니다. 페킨파가 보여주는 빌리 더 키드의 삶은 사실 무법자의 그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자연적인, 그래서 비역사적이며 비현실적인, 삶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요.





다분히 폭력적이지만, 그 폭력을 담보로 자유를 행사하는 빌리의 삶은 사실 60년대 후반의 히피들의 삶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배니슁 포인트의 주인공 또한 아무 의미도, 이유도 없는 질주를 계속하며 사회의 구속으로부터 탈주를 계속하죠. 빌리 더 키드도, 마치 히피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약과 술과 오락과 섹스에 탐닉하며, 그것이 비록 허무한 것일지라도, 권력이나 법과 무관한, 자연스러운 인간의 삶이라고 주장하는 듯 합니다.


 

반면, 예전의 선배이자 동료였던 팻은 법이 확립되고 무법자를 놔둘 수 없다는 시대의 요청에 부흥하여 빌리를 잡으려는 보안관, 법의 집행자,가 되고, 그 후로도 몇 번인가 실제로 만나기도 하는 빌리와 팻은 "Time have changed.." "Not Me" 와 같은 대화를 하며 각자의 방식을 고수하겠다는 뜻을 비칩니다.




그래서, 시종일관 나름의 법칙을 지키며 영예롭게, 그리고 마지못해, 추격전을 지탱하던 둘의 관계는 마지막에 팻이 폭력적으로 잠자다가 걸어나오는 빌리를 사살하는 장면으로 폭발하지요. 페킨파 감독은 이 마지막 장면을 아주 추악한 사건으로 묘사합니다. 팻 가렛 스스로도 빌리를 죽이고 나서 여러가지 감정적 반응을 보이며 무너지고, 비록 한밤중의, 개인 대 개인의 초라한 죽음이지만, 감독의 다른 영화에서 묘사되는 폭력 신들과 비슷한 정도의 감정의 진폭을 보여주는 이 장면이 지나가면, 마지막으로 새벽녘에 포트 섬너를 떠나는 팻에게 한 소년이 등 뒤로 돌을 던지는 장면에서 스톱하며 영화가 그대로 끝나게 되지요.




 

 

 

개개인의 죽음의 장면들은 더 깊이 있어지고, 아름다운 배경에, 사라짐에 대한 슬픔으로 가득한 보안관의 죽음 장면. 주제 음악을 맡은 밥 딜런의 '녹킹 온 헤븐스 도어'와 함께 서부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총격 씬 같은 것이 적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이 작품은 감독의 의지와 무관하게 제작사에 의해 무참히 난도질 당한 영화로 유명하고, 개봉 당시에 혹평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나중에 감독이 처음 공개했던 오리지널 본과 편집되지 않은 풀 버전이 다시 개봉되면서 헐리우드의 마지막 위대한 서부영화라는 원래의 위상을 되찾은 작품입니다.



 

이렇게 60년대 후반-70년대 초반 사이의 정서의 충돌을 빌리 더 키드와 팻 가렛의 충돌로 대변하고, 주인공의 죽음을 법의 집행자에 의한 폭력으로 묘사하는 이 영화가 흥미로운 점 또 하나는, 밥 딜런이 주제 음악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Alias (가명??) 이라는 캐릭터의 빌리의 갱단 일원으로 소소하게 출연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으로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된 것에 그다지 동의하고 싶지는 않으나, 그 이후에 밥 딜런이 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에는 무척 감탄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이 영화에 그가 출연했나 싶기도 하구요, 일단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밥 딜런을 지명한 것에 반대하는 이유는 문학이라는 배타적인, 그러나 빠른 속도로 권위가 허물어지고 있는, 집단의 정치적인 권위를 유지해 주어야 한다는 이유와, 밥 딜런 말고도 뛰어난 대중문화 예술가들도 많다는 점 때문이고요, 이후의 그의 행보에 감탄하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밥 딜런이라는 예술가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밥 딜런은 전 인류의 가장 권위있는 상 중 하나인 노벨상을 두고 안하무인한 것이 아니라, 그냥 관심이 없는 듯 하다는 것이지요. 예전부터 트로피를 받고서도 한손으로 거꾸로 들고 축사 따위는 하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은 표정으로, 할 일을 하러 왔을 뿐, 이라는 태도를 취하면서 바로 퇴장하고는 했던 밥 딜런을 안다면, 사실 노벨상에 대한 그의 태도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전화도 안받고 개인 약속 때문에 시상식에 불참하겠다는 식의 통보 또한, 어떤 권위에나 그 권위가 부여하는 정치적 권력, 혹은 명예에 의한 구속도 받지 않고, 개인의 삶을 영위하겠다는 그의 개인적인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밥 딜런은 행여 노벨상을 받을만한 역사상 '가장 뛰어난 대중음악가'는 절대 아닐지라도, 노벨상의 권위에 대한 가장 명확하고 확실한 '인정과 무관심' 이라는 헤프닝을 보여준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저항과는 다릅니다. 분명히 딜런은 수상에 기쁘고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으니까요. 그러나, 그 권위 때문에 그의 일상이나 직업, 행복의 우선순위가 바뀔 이유 또한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명 받은 이유보다도, 상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더욱더 그 상의 무게에 적합하지 않은가 싶다고나 할까요?





한편, 고전 서부영화의 마지막에서, 그리고 고전 찬바라의 마지막에서, 레오네나 구로자와 같은 감독들이 장르의 서사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완결짓고, 시대의 변화와 연관시키면서 장르 자체와의 결별을 이루어냈다면, 후발주자이며, 폭력에 대한 바로크적인 미학을 보여주는 페킨파 (사실 이런 의미에서 70-80 년대 헐리우드에는 바로크적인 분위기가 농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는 오히려 그러한 시대적 흐름에 끌려가며, 원치않는 파국으로 치닫는 옛 친구들 (팻 가렛과 빌리 더 키드 에서 팻이 처치하는 대부분의 악당들은 사실 그와 빌리의 오랜 친구들이기도 합니다)을 보여줍니다.

 

 

녹킹 온 헤븐스 도어가 흐르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늙은 보안관 역시 전부의 친구이자 구 시대의 유물이었듯이, 변화에 저항하는 빌리도, 변화에 눈치빠르게 가담하며 배신자 소리를 감내하는 팻도, 쫓아오는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지요. 이 영화에는 심지어 살인의 장면에 있어서 어떤 멋진 개인기의 장면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영화의 패거리들은 모두 멋들어진 악당들이 아니라 삶에 지친 패배자들 같지요. 영화에는, 대신,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사이의 알수 없는 애틋함, 그리고 피로함 같은 것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사회의 틀에 껴맞추어지며 억지로 성장당한 어른의 성숙함과도 비슷합니다. 서부의 환상은 깨어지고, 기회의 땅도 질서에 편입되며, 신화는 멸종되는 것이지요. '와일드 번치'에서 파이크가 죽고 나서 쏜튼이 판초 빌랴의 독립운동에 가담해 멕시코로 떠나는 식으로 희망의 여지를 둔 것과는 달리, 이 영화는 힘없이 성숙한 어른에 대한 살해(영화의 도입부)의 상상(실제 팻 가렛은 살해당하지 않았습니다)으로 시작하고, 자신의 분신과도 같을 열정을 죽인 어른에 대한 분노(영화의 마지막에서 돌을 던지는 아이)로 끝나지요. 그리고, 바로 그런 점에서 진정, 마지막 위대한 서부 영화라고 불릴만한 것인지도 모르고요.





70년 챌린저 R/T 의 소유주 윌리엄 스텝(William Stepp) 과 드라이버 딕 험버트(Dick Humpbert). 윌리엄 스텝이 팀 이름을 하필이면 '빌리 더 키드' 라고 지은 것은 지금까지의 모든 내용과 사실 거의 연관이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NHRA 에서 빌리 더 키드 팀은 가장 다채롭고 화려한 팀 중 하나였음이 분명하니까요. 하지만, 스텝이라는 인물도, 그리고 챌린저 라는 차량도, 사실은 그 이면의 이야기들을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