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 ㅂㅈ 고 2학년에 할당된 두 개의 보조 교재중 하나인 존 스타인벡의 생쥐와 인간 번역본을 올리고 있다.
분량을 다소 줄이면서 원작의 거친 구어체를 쉬운 고등학생 영어로 바꾼 대역본을 사용하는데, 그럼에도 원작에 그다지 뒤지지 않게 내용 전달에 성공하고 있는 듯 하고, 특히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에게는 원작보다 더 설득력있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전 15 챕터로 나뉘어 있는데, 나는 이것을 다시 여덟 부분으로 잘라 올리고 있다.
지금까지 1-3. 4-5, 6-7, 그리고 8-9 챕터를, 앞으로는 10, 11-12, 13-14, 그리고 마지막 챕터 순으로 올릴 계획이며,
원작 소설의 모태가 되었다는 스코틀란드 시인 로버트 번즈 (옛날 교수님은 뻐언스 라고 읽으셨던..) 의 작품도 올려볼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생쥐와 인간은 두 번 째 읽은 스타인벡의 작품이며, 대학때 읽었던 장편 In Dubious Battle 보다 오히려 생동감이 있어서 간단하면서도 무척 힘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스타인벡 하면 The Grapes of Wrath (분노의 포도) 를 기억하겠지만, 그 작품 역시 장편인데다가 각 장이 교차구성으로 엮여 있기 때문에 읽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는 점, 반면에 이 작품은 의도적으로 간단한 공간과 소규모의 인원에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하는 연극체로 쓰인 단편소설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보면, 이 작품이 더 많이 읽혔을 공산이 크다.
실제로 이 작품은 연극 상연도 염두에 두고 쓰였으며 그래서, 인물 뿐만 아니라 배경과 장면 전환, 안과 밖의 활용 같은 것들이 모두 간결하고, 제한적이다.
앞서 언급된 두 개의 장편들이 스타인벡의 대표작들로서 농장주들과 소작인들의 갈등을 집단농장, 대공황, 기독교, 사회주의 의 배경 속에서 다양한 남자(그리고 여자)들의 이합집산과 함께 사회 전체의 문제로 스펙타클하게 그리는데 반해, 이 작품의 특이한 점은 농장 주인과 아들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장편들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사회문제가 전면에 돌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신 이 작품에서 주요 인물들은 뚜렷하게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어 명확한 내용을 무척 경제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비교적 간단한 사건을 중심으로 인물들의 반응을 개성넘치게 보여주는데 성공하고 있어서, 단순하면서도 결코 쉽지는 않은 주제를 강렬하게 드러내게 된다.
그것은 결코 이념적, 사회적인 비전이 아니다. 소설의 모태가 되는 번즈의 원시가 과거와 미래의 비전이 없는 막막한 어둠으로 암전되듯, 이 작품에서도 가장 중요한 상징을 지니고 있는 기계-인간 레니 (그리고 욕망-인간 인 컬리의 아내) 를 죽음으로 몰고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됨으로써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조지는 결국 모든 것을 상실하고 꿈을 이루는데 (삶을 살아가는 데) 실패하게 된다.
즉,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은 바로 레니와 컬리의 아내이며, 이 두 사람은 실재적인 인물이라기 보다는 훨씬 더 상징적인 삶의 '요소', 혹은 '충동' 들이 되고 '인간의 본성' 같은 무언가를 의미하게 된다. 반면, 목장주와 컬리 같은 인물들은 캐리커쳐 처럼 묘사되고, 슬림같은 인물들 역시 어떤 전형으로, 캔디나 크룩스 같은 인물들은 소설의 구체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 (소작농, 인종 문제)를 담지하는 요소들로 사용된다. 그리고, 그러한 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해 소설의 첫머리에서는 마치 악역처럼 등장하는 조지가 종국엔 스스로 비현실적인 이상을 파괴하고 의미없이 떠도는 대다수의 불특정 개인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파국이 있기 전까지는 스스로 의미없는 개인으로서 살아가기를 굳건하게 거부하는 조지는 소설 속에서 '부랑자들' 혹은 낙오자들로 언급되는 세 사람, 레니, 캔디, 그리고 크룩스, 에게 '토끼들과 자신들의 땅' 이라는 이상향의 꿈을 제시하면서 예언자 같은 모습도 보여준다. 독자들로서는 서양 고전의 이상향 - 아르카디아나 코캐인의 땅 - 같이 황홀하게 묘사되며 반복, 변주되는 조지와 레니의 목장에 대한 풍요로운 묘사를 잊기 힘들 것이며, 동시에 소박하고 단순한 이런 미국적 이상과 감동에 극명하게 대비되는, 소작농들의 삶의 무의미함 이 주는 비정한 폭력성 (그런데, 이 소설 속의 모든 폭력성은 레니를 통해서 촉발된다) 에 우선 강력한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갖고 있는 더 깊고 핵심적인 매력은 레니와 컬리의 부인이라는 캐릭터들이 지닌 극단성과 그 극단성이 주는 기이함, 그리고 그들이 주인공 조지와, 혹은 서로에게 반응하는 비정상적인 관계 같은 것에 숨어 있다. 가령 앞서도 언급했듯, 이야기 초반에 작가가 의도적으로 조지를 레니를 괴롭히는 악역처럼 등장시키는 것이 라든지, 컬리의 부인에 대해서도 조지가 일관되게 도덕적이고 명백한 태도를 취하게 만든 점, 그리고, 반대로 컬리의 부인이 레니에게 다가가며 조금씩 자신을 드러내는 장면 등을 통해 우리는 작가 스타인벡이 문제시하고 또 재미있게 보았던 인간의 한계와 가능성, 혹은 사회와 개인의 대비 같은 문제들에도 직접 다가가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은 생쥐와 캔디의 늙은 개, 다섯 마리만 남은 강아지들, 새끼를 낳는 다양한 색깔의 털복숭이 토끼들, 그리고 연어나 염소 같이 꿈 속의 목장에 등장하는 다양한 동물들로 각 인물들의 운명들과 이상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소설의 우화적인 구조 또한 놓칠 수 없다. 주머니 속의 작은 생쥐 이미지는 몸집이 왜소한 조지와 거대한 레니라는 대조적인 체구의 두 남자를 통해 다시 그들이 공유하는 다산성의 토끼들 의 꿈 (혹은 수백만 마리의 쥐들이라는 악몽)으로 투영되고, 다시 삶에 갇혀 죽어가는 인간, 혹은 차라리 죽음을 갈구하는 개들의 이미지로 회귀하게 된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단지 살아있기 위해 현재에 쫓기며 삶을 탕진하는 힘없는 개인으로 돌아가며, 공동체의 꿈은 사라진다.
사실 레니와 컬리의 부인은 극단적인 상징성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설을 읽는 독자들도 돌파하기 어려운 도덕의 한계선 저 너머에 있는,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동시에 양극적인 인물들 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 레니는 순수함과 기계적 폭력의 양극단에, 컬리의 부인은 또 다른 측면 - 타인의 시선(이것은 다시 레니의 시선과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 분열된다) 과 자신의 욕망 - 의 양극단에 위치한다.) 이기 때문에 이 소설의 핵심에 도달하는 것은 독자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힘들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많은 독자들이 가장 강렬하다고 꼽는 장면들은 이들 보다도 주변 인물들인 캔디와 크룩스가 등장하는 데 있다. 즉, 캔디와 그의 늙은 개가 대변하는 소비되는 인간의 에피소드, 그리고 크룩스가 대변하는 고립된 개인의 에피소드 들이다.
내가 이용한 번역본은 이 두 장면들 중 사실 크룩스의 에피소드를 의도적으로 축소한 느낌이 있어서 제대로 느낌이 살아나지는 않는다. 원작에서의 크룩스는 타인과 관계하지 않고 혼자 책을 읽는 것이 '사람을 미치게 한다'고 하기도 하고, 홀로 살아가는 것을 마치 깰 수 없는 꿈을 꾸면서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지도 못한채 삶에 대한 현실 감각을 상실하는 것으로 비유하기도 하면서, 실제로는 가장 많은 독자들의 기억에 남는 인물이다.
(물론 이 둘을 독자들이 기억하는 이유는 그들의 호소력 뿐만 아니라 현대 독자들이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이들이 표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 소설의 마지막에 비극의 주인공으로써 파국의 결단을 내리게 되는 조지의 경우 스타인벡의 다른 두 장편에서 삶에 패배하는 인물들의 대표자 처럼 묘사되는 목사들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다시 장편소설들을 언급하자면, 그 작품들에서의 스타인벡은 확실하게 생쥐와 인간과는 다른 태도와 시점을 견지한다. 그 작품들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이 소설의 조지에게 제기되는 문제와 한계를 극복하거나 돌파하려 한다.
In Dubious Battle 은 우리 말로 번역이 된지 잘 모르겠으므로, 일단 이 작품과 연관해서는 분노의 포도를 읽어보길 권한다. 특히 첫 챕터에서 강렬한 서스펜스를 이용해 인물을 소개하는 흡인력 같은 것에는 이 작품과 비슷한 측면이 있고, 반면 마지막 부분에서 중요한 인물들로 부각되는 여성들은 비인간적일 정도로 상징적인 컬리의 부인과는 확연히 다른 생동감도 갖고 있다. 가령 조드 일가가 마지막으로 정착하는 복숭아 농장에서 잡화점 점원과 대작하는 어머니의 장면 같은 것은 사회와 개인의 관계속에 항상 존재하는 수수께끼같은 모순에 대한 대문호 스타인벡의 명쾌하면서도 우화적인 시각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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