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오디오 음질/음량 테스트 용이라고 갖고 다녔던 음반들 중 하나인 호로비츠-스카를라티 음반 (소니).
물론 나의 귀가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으므로 그저 기분을 낸 것에 불과하다. 이러나 저러나 그 음반은 이미 몇십년 전
녹음에 돌비 정도의 기술도 들어가지 않은 것이니 전혀 전문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했다.
그래도 그 음반이 가진 포-쓰 는 상당해서, 언제나 좌중을 조용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평론가들이 극찬하는 호로비츠 연주의 '투명성' 은 분명히 녹음 기술에 관련된 얘기는 아니다.
플레트네프, 포고렐리치, 그외 스카를라티에 진지하게 접근하는 최근의 여러 젊은 연주자들까지
모두들 다이나믹이나 템포, 기교와 구성 모두에서 호로비츠 보다 더 인상적이고, 명징하며, 탁월하고, 치열하지만,
적어도 단 한가지, 호로비츠의 마성적인 레가토 만은 쉽게 따라잡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의 레가토가 치명적이라든지 감정이 넘친다든지 그런건 아니고, 오히려 반대로
호로비츠가 연주하는 곡의 표정은 대부분 매우 느슨하고 따뜻하며 여유가 넘친다.
1968 Live at Carnegie Hall
Keyboard Sonata in E, L23 / K 380
in G, K55 / L 335
http://www.youtube.com/watch?v=4-5yWDliZZw
러시아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20 대에 혜성처럼 등장, 곧바로 독일,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와 대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등과의 협연으로 차이코프스키 1번 협주곡 같은 초고난도의 대곡들을 놀라자빠질 정도의 테크닉으로 연주, '폭풍' 같은 데뷔를 하고, 초인적이라고 할 만큼의 스케줄을 소화해냈던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곧 토스카니니의 딸과 결혼하고, 차이코프스키를 능가하는 고난도의 라흐마니노프 2, 3번 협주곡등을 연주하며, 열광적인 환호를 보낸 미국에 정착해, 아더 루빈스타인과 함께 대표적인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된다.
사실상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던 1940-50년대에 그의 테크닉은 당시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의 것이었다고 하며, 녹음이 많지는 않지만, 독창성과 구조 모두에서 놀라운 연주를 들려준다. 하지만, 대중적 상업주의와 쇼 의 성격이 짙었던 미국식 콘서트에 치여 자신이 갖고 있는 음악적 역량이 점차 소진되는 것을 느낀 그는 전격 은퇴를 선언하고, 10년 이상의 공백기를 갖게 되는데, 1965 년 위에 연주가 포함된 카네기홀 연주 등을 비롯, PBS 에서 소개한 일련의 연주회를 통해 미국 대중의 열렬한 환호속에 화려하게 컴백하게 된다.
하지만, 이 첫번째 컴백은 미국 밖에서는 그다지 성공적인 것은 아니어서, 다시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돌아갔을 뿐, 음악적인 성숙을 이룩했다고는 평가받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주로 미국 내에서만 활동했던 호로비츠는 이후에도 무려 세 번이나 은퇴, 컴백을 반복하게 되는데, 이렇게 잦은 번복이 어쩌면 콘서트에 치이는 대중 음악인이 된 연주자의 고충과 유럽 음악인들의 경시 - 호로비츠의 음악에는 테크닉을 따를 만한 깊이가 없다는 중평 - 에 대한 자기 고민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건, 마지막으로 컴백한 80 년대에 호로비츠는 이미 너무 늙어서 힘도, 기교도, 전성기와는 비교가 안되게 떨어졌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마지막 시기의 호로비츠가 진정한 거장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들 한다.
1986 Live in Moscow
in E, L23 / K 380
http://www.youtube.com/watch?v=JaHMdDjNnZ8
1986 년 60 여년만에 다시 찾은 고국 러시아, 모스크바에서의 호로비츠의 연주회 실황은 그의 마지막 녹음들을 담은 DG (도이치 그라모폰) 사의 여러 명반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음반 중 하나가 되었다. 같은 곡이지만 드라마틱하고 긴장감있던 60 년대 실황과는 달리 시종 여유있고 가벼운 터치로 일관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 더이상 대중을 의식하지 않고 음악의 즐거움 속으로 빠져드는 이런 모습이 아마도 평자들로 하여금 이제서야 진정한 거장이 되었다 라는 존경을 끌어낸 것 인지도 모르겠당..
하지만, 쇼 에서가 아닌 녹음에서의 호로비츠는 사실 전성기 때부터 일관된 세련됨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령, 스카를라티 소나타들은 그가 데뷔 초부터 항상 연주했던 곡들이었는데, 이미 60 년대의 PBS 스튜디오 녹음에서 이 곡의 연주는 80 년대 실황에서 보여주는 가벼움과 명료함, 그리고 긴장감없이 느슨하면서도 노래하듯이 흘러가는 레가토가 이미 완성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베토벤 - 슈베르트 라인의 고전-낭만 음악은 연주하지 않았지만, 스카를라티-하이든-모짜르트, 그리고 슈만-쇼팽-리스트, 마지막으로 차이코프스키-프로코피에프-스크리아빈-라흐마니노프 의 음악들을 놀라운 레가토, 또는 강력한 테크닉으로 완성한 호로비츠는 가장 20 세기의 가장 유명한 거장 중 한 명이 되었다.
Studio recording
Mikhail Pletnev
Keyboard Sonata in D, L 165 / K 214
http://www.youtube.com/watch?v=OmVjcxCv3B8
호로비츠 이후 스카를라티를 진지하게 접근한 명연주자들로는 플레트네프 와 포고렐리치 등이 있다. 역시 러시아 출신이며, 엘리트에,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한 플레트네프의 경우 확실히 공부를 많이 한, 날카로움과 통찰력이 넘치는 잘 계산된 연주를 들려준다.
하지만, 호로비츠 이전에 스카를라티의 소나타들은 연주자들에게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곡들은 아니었다. 3부 구성 정도에 반복부가 제시부의 진행과 다른 등 바로크로서는 다소 진보적인 구조를 보여주고, 심각한 곡들에서는 놀랍게도 낭만주의에 근접하는 조성 운용과 테크닉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반면 소곡의 경우에는 초심자도 접근이 가능하고 전반적으로 곡들이 매우 짧기 때문에, 주로 앵콜 곡으로 쓰이거나, 바흐와 핸델에 밀려 아예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작곡가로서의 스카를라티 역시 근대에는 그다지 유명한 편이 아니었는데, 좋은 환경에서 성장해 20 대에 폴란드 왕녀의 음악교사가 되고, 핸델이나 파리넬리 등 호사를 누리던 유명인사와 교류를 나누며 계속해서 이탈리아/ 포르투갈의 화려한 궁정에 머물렀던 그의 대부분의 오페라/ 가곡들은 현재는 거의 잊혀진 상태이다. 오직, 생의 마지막에 왕족을 따라 건너간 스페인에서 작곡한 무려 500 여곡에 달하는 이 소곡들만이 그의 뛰어난 업적으로 남았는데, 그래서 스카를라티의 권위자 커크패트릭 같은 사람은 모든 소나타들에서 스페인의 무희와 캐스터네츠, 탬버린 소리와 소란스러운 풍취가 스며들어 있다고 보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들어보면 어떨까? 실제로, 스페인의 노래가 들려오는지? 아니면, 보다 일반적인 바로크의 느낌인지?
개인적으로, 스카를라티의 소나타, 특히 가벼운 곡들에서 느끼는 것은 날아가는 듯한 새의 움직임, 혹은 그런 자유로움 같은 것이다.
바흐, 핸델과 같은 연도에 출생했으며, 유명한 작곡가였던 아버지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 의 영향도 깊게 받아서 순탄하게 성공적인 삶을 살았지만, 오직 스페인에서 보낸 만년에서야, 스카를라티는 뭔가 완전히 새롭고 그리고 자유로운 것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규칙적이면서도 파격적이고 조용하면서도 쉴새없이 움직이는 음악이었다. 쳄발로의 명인이었던 핸델과도 존경어린 교분을 나누었지만, 당시의 음악가들은 스카를라티의 쳄발로는 마치 천 개의 손이 연주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는데, 피아노 테크닉의 역사에서 쇼팽이 차지하는 위치에 비교될 정도로 뛰어났던 쳄발로 연주에 관한 그의 타고난 재능은 분명 스페인적 열기와 나른함을 통해 만년게 원숙하게 피어올랐다. 그래서 그의 소나타들에서는 분명히 스페인 적인 색채가 드러나며, 훗날의 팔랴, 알베니스, 그라나도스 등이 보여주는 민족/민속성을 이미 200 여 년 전에 선취하게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음악에는 그러한 민족성을 제한하는 바로크적인 규제 또한 지배적이다. 훗날 스페인 작곡가들의 음악에서 여지없이 드러나는 따가운 햇살과 열광적인 감정의 파도가 스카를라티에서는 절대로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몽환적인 나른함이나, 가벼운 잔물결, 그리고 활기로 가득하지만 동시에 넘치지 않게 잘 가두어진 작은 웅덩이나 호수들 같이 작고 즐겁게, 재단되고 걸러져서 결정화된다. 스페인이라는 공간이 주는 영감과 바로크적인 시간의 규제 속에서 음악은 더이상 그 어떤 쪽에도 속하지 않고 온전히 '스카를라티' 적인 것이 되어간다.
Live in Tokyo
Ivo Pogorelich
Keyboard Sonata in C, L 104 / K 159
http://www.youtube.com/watch?v=d2G3VK-D6-A
그리고, 놀랍게도, 오늘날 이 소나타들은 쳄발로가 아닌 피아노로 더욱더 사랑받는 곡들이 되었다. 많은 연주자들이 앵콜곡으로 애용하며, 또, 많은 연주자들이 진지하게 스카를라티에 접근하고 있다. 스카를라티 자신의 시대에 쳄발로에는 페달링도, 악상 기호들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오직 멜로디만이 남아서 전수된 스카를라티의 소나타들은 오늘날 수많은 피아노 연주자들에게 운지법, 페달링과 같은 기본적인 테크닉에서부터 곡의 구조와 다이나믹 같은 구성 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끊임없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은 샘물들이 되고 있다.
어쩌면 호로비츠 역시 그런 면에서 더 스카를라티를 사랑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모차르트의 음악과 같이 스카를라티의 작은 소나타들에는 구조에서 출발해도 그에 얽매이지 않는 무한한 표현의 자유가 숨어 있는지도 모르고, 그것은 어떤 연주자들에게는 자기만의 깊이있는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밑그림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또 다른 연주자들에게는, 그냥 단순한 그대로 숨쉬듯 흘러넘치는 자연스런, 샘솟는 자유의 음악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대중과 평단의 엇갈린 평가 사이에서 늘 고민해야 했던 명인 호로비츠 같은 사람에게도 이 작은 곡들은 어쩌면 마시고 숨쉴수 있는 편안한 샘물 같이 솟아오르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2008 Live at Auditorium Rai Arturo Toscanini, Turin
Martha Argerich
in D minor K 141 L422
http://www.youtube.com/watch?v=wjghYFgt8Z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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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클래식 음악이 작품번호 (Opus number; op) 그리고 작곡자 자신, 또는 출판자가 붙이는 번호 (No. 1 -...) 로 구성되는데 반해
스카를라티 소나타들에는 L 번호 와 K 번호, 그리고, P 번호가 있다. L 번호가 가장 먼저 롱고 인가 하는 사람에 의해 붙여졌는데, 이 사람은 자신이 연관된다고 묶은 뭉치들에 따라 번호를 붙였고, 후에 커크패트릭이 소나타를 시대순으로 정리, K 번호를 붙이게 된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다른 사람이 여기에 수정을 가해 작품들을 다시 배열하고 자기 이름 머릿글자를 따서 P 번호를 붙였는데, 아직은 K (그리고 L) 번호가 대세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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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고렐리치 연주를 올리고 보니 아르헤리치 연주도 있어서 올려보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모르는 사람 빼면 다 아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일종의 스캔들 이랄까 ~..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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