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진 - 그리운 동방 그리운 동방 1부 - 가족 신화 폐병쟁이 – 명희 누나 – 아이 어릴 적 아랫동네에 홀아비 폐병쟁이가 살았는데 그 집 앞에는 항상 깨진 사금파리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우리 꼬맹이들은 그 집 대문을 지날 때면 왼손으로 코를 싸쥐고 오른손을 왼팔 오금 위로 얹어 놓아 코끼리.. 한글 2012.05.11
김소진 -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열린 사회와 그 적들 - 김소진 (단편, 1991) 1. 상황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봐서 오늘 새벽 경찰이 전격적 행동을 취할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병원 앞 도로 양쪽에 쌓아둔 바리케이드를 지키는 학생들이 교대를 하기 위해서 정문을 들어서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 땜에 저그 밖에서 밤새는 갱.. 한글 2012.04.18
한강 - 그대의 차가운 손 5-0. 부서진 관 29. 나비의 통로 종내는 무녀처럼 두 발로 겅중겅중 뛰며 비명 같은 고함을 질렀다. 깔깔대는 웃음 소리가 낮은 천장을, 낡은 벽을, 먼지 낀 비닐에 싸인 조각들을 때렸다. “이리 와, 같이 해.”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달래려 애쓰며, 발가벗은 그녀가 고무공처럼 .. 한글 2012.04.17
한강 - 그대의 차가운 손 4-3 - 껍질벗기/기 25. 껍질과 껍데기 “어떤 사람은 이렇게 설명하더군요.” …… “껍질이 벗겨지는 기분이었다고.” (284) 그녀의 은밀한 시선이 탁자에 놓인 흰 석고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 나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저 딱딱한 물건은 껍데기였으며, 껍질은 그녀의 얼굴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을.. 한글 2012.04.11
한강 - 그대의 차가운 손 4-1 - 우리는 왜 증오를 사랑하는가 23. 미니멀리즘 극도로 미니멀한, 그래서 사람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 공간이었다. (199) 나는 천천히, 아무런 욕망도 없이, 마치 의무를 실행하는 사람처럼 몸을 씻었다. 그 깔끔하고 완벽한 욕실에 아무렇게나 걸린 내 셔츠와 구겨진 바지는 마치 누더기처럼 보였다. (223) 나는 사람들의 돈.. 한글 2012.04.11
한강 - 그대의 차가운 손 3-2 – 두번째 환상과 또 하나의 진실 18. 박제사 그러나 어쨌든, E 자신이 말했듯이, 모든 것은 사라진다. 사라진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살아갈 수도 없는 것이다. “전에도 몇 번 깨진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흰 가루가 되어 소복이 쌓여 있던 L의 껍데기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단 한 번 내리치기만 해도 산산조각나.. 한글 2012.04.02
한강 - 그대의 차가운 손 3-1 – E의 얼굴 11. 마네킹 웃음이 얼굴에서 채 가시기 전에 그녀의 눈에서 빛이 꺼졌다. 그녀의 시선은 아무런 생기가 담겨 있지 않은, 흡사 인형의 얼굴에 박힌 유리알 같은 것이 되었다. 그녀는 고개를 떨구었는데, 그것은 마네킹의 목이 부러지는 것 같은 동작이었다. 자연스럽던 그녀의 몸놀림은 굳.. 한글 2012.04.02
한강 - 그대의 차가운 손 2-0 - 박제의 절규 9. 숨기-빼앗기기 그러나 그것은 어쨌든 타인의 손이다. 내 손으로 직접 빚어 만든 조형물과는 비교할 수 없이, 내 체온과 냄새는 결코 빨려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90) 어떤 생명을, 숨결을 훔쳐 감쪽같이 내 것으로 만든 듯한 전율을 나는 느꼈다. 그러나 뻥 뚫린 손목의 입구로 들여다보.. 한글 2012.04.02
한강 - 그대의 차가운 손 1-3 - L 이 남긴 것 6. 몸에서 얼굴으로. 그리고, 다시 빠져나갈 수 없는 몸으로.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무엇인가가, 내 내부의 무엇인가를 영원히, 돌이킬 수 없이 변화시켰다. 그러나 그것들이 정확히 무엇인지 나는 결코 알아낼 수 없었다. 그해 늦가을 어느 오.. 한글 2012.03.12
한강 - 그대의 차가운 손 1-2 - 첫번째 환상, 속력 3. L 나는 그녀가 잡았던 포즈대로 다리를 뻗고 앉았다. 틀집은 안락하였다. 누군가 틀집의 앞면을 끌어다 붙여주기만 하면 관은 완성될 것이다. 어쩐지 편안한 마음이 되어, 나는 그녀의 등이 닿았던 실팍한 곡선 위로 몸을 기댔다. 잠을 청하듯 눈을 감았다. 그러자 내 감은 눈 위로 겹쳐.. 한글 2012.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