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o Storico

구글 [Spark] Ford GT 40 Mk.1 1968 Le mans 24 hours #9 winner - Bianchi / Rodriguez

이박오 2020. 6. 3. 23:14



1968년 FIA 월드 챔피언쉽은 총 10 라운드로 매뉴팩쳐러 챔피언은 각 대회 마다 제조사별로 최고 등수를 기록한 단 한대의 차량씩, 등수에따라 점수가 차등되며, 총점은 전 경기 결과 합산이 아니라 상위 5경기 점수의 합산으로만 계산되었습니다.

경기당 점수는 우승부터 9-6-4-3-2-1점 순으로 주어졌습니다.

또한 68년 시즌의 클래스는
그룹 3 투어링카 (GT) - 배기량 제한없음
그룹 4 스포츠카 (S) - 5리터 제한
그룹 6 프로토타입 (P) - 3리터 제한
으로 크게 구분되었는데

프로토타입 클래스에서 과도한 힘과 속도를 야기하는 배기량을
3리터로 제한한 것은 안전성을 증대하려는 의도였다고 하나
결과적으로 포드, 페라리, 채퍼럴 등 막강한 화력을 내뿜던
상위차량들을 제외하게 되어 강제적인 세대교체를 이루게 됩니다.

특히 60년대 초반을 주름잡던 막강한 페라리 팀은
보이콧 수준의 철수를 강행함으로써 그러한 공백을
명백히 드러냈고 페라리를 운용하던 유럽팀들과
NART는 330 이전 차량들인 206 디노 나 275 등을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되었지요.

포드 역시 66, 67년 르망 우승의 기반이 되었던
7리터 엔진의 차량들을 깔끔하게 포기하고 철수했으나,
동시에 두 가지 후속책들을 세우게 됩니다.

우선, 걸프 레이싱의 지원을 받는 존 와이어와 그 외 개인, 팀 참가자들에게 해묵은 마크 1들을 제공하였고, 동시에 알란 만 레이싱 팀을 섭외해서, 3리터대 p68 쿠페를 외주 개발한 것입니다.

그래서 JWAE팀과 여타 군소 포드 지티 40 마크 1들과
알란 만 팀의 p68 이 1968년 시즌에 뛰게 되지요.

반면 상대적으로 v4나 v6의 작은 엔진을 선호했던 포르셰는
마침 이 시기에 910-907-908을 빠르게 개발하면서 8기통 엔진을 발전시키며,

그리고 알파 로메오는 테스트 상의 문제점이 속출하던 33시리즈의 02바디들을, 알핀 역시 대 르망 레이서 a210과 a220의 안정성들을 테스트 겸 개선 중이었으며 마트라는 600시리즈 쿠페들을 통해 내구레이싱의 가능성을 이 무렵 타진하게 됩니다.

특히, 67년 시즌 Kurt 바디의 910 으로 가능성을 확인한 포르셰 팀은 68년 907 LH 과 908 LH/K/Spyder를 동시 개발/양산 및 FIA 시리즈와 힐클라임 등에 대대적으로 투입함으로써 포드와 페라리가 빠진 1968년 챔피언쉽을 본격적으로 노리게 되는 것이지요.

즉, 1968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모두의 밑그림에는 포르셰 vs 기타 등등.. 의 구상이 있었습니다. 공룡같은 페라리 (그리고 포드)가 빠진 자리에서 대규모의, 프로페셔널한 포르셰 워크스 의 907이 도전자들을 맞아 방어하는 구도. 이것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지형도 였지요.

그러나 어떤이들은 P 클래쓰가 아니라 S 클래스를 주목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신차, 베일에 쌓인 신무기는 아니지만, 걸프의 포드 지티 40 마크 1 들이 마크 2 나 마크 4 의 반 만이라도 파워풀하다면 포르셰 와 일대일 공방전을 펼치게 되지 않을까?

실제로 시즌 내내 걸프 팀 뿐만 아니라 여러 프라이빗 팀의 포드 지티 40 마크 1 들이 써킷을 누비며 좋은 점수를 획득하는데 성공합니다.

1968년, 우리는 포르셰 위주의 미래 지형도가 얼마나 협소했던것인지 처음으로 체감하게 되며, 동시에 스포츠카 레이싱의 향후 십년, 그 새싹들이 움트는 것도 보게 됩니다!

 


하지만 2월과 3월, 시리즈 첫 경기들인 데이토나와 세브링에서, 갑자기 바뀐 규정과 빅 메이커들의 철수에 따른 기대감의 저하로 관중의 숫자는 현저히 적었고, 마치 지방 대회같이 학교 관악대 연주가 울리는 속에서 진행된 대회들에 참가한 차량들은 제 기량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1전 데이토나 ㅡ 포르셰 우승 매뉴팩처러 타이틀 성적 9:0

참가 차량이 적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데이토나에는 포르셰 뿐만 아니라 마리오 안드레티와 루치엔 비앙키, 니뇨 바카렐랴등 뛰어난 드라이버들이 포진한 아우토델타 T33 팀도 있었고 페드로 로드리게즈와 마스턴 그레고리, 데이빗 파이퍼등이 속한 NART도 있었으며, JWAE팀또한 재키 익스, 브라이언 레드맨, 데이빗 홉스, 폴 호킨스 를 고정 멤버로 두 대의 지티 40을 출전 시켰습니다. 그밖에 개인팀 멤버로 모터사이클 챔피언 출신의 마이크 해일우드도 지티 40을 타고 있었지요.

 


게다가 이 경기에서 걸프 팀의 재키 익스는 이미 지난해 댄 거니의 마크 4 보다도 더 빠른 랩타임 기록을 낸 상태로 초반 선두에서 신나게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주사 새옹지차 라는 내구레이싱 특성이라고 해야 하나요? 도로 옆 모래둑에서 떨어진 조개껍데기들 때문에 차량 펑크나 잔고장, 그리고 사고가 속출했고, 경기를 리드하던 익스의 차 역시 저녁때 그만 기어박스가 맛이 가서 리타이어 합니다. 그 뒤를 이어 오전까지 리드하던 호킨스의 차는 브레이크 패드 문제로 핏 인 했으나 나중에 보니 연료탱크가 찢어져서 아웃하지 못한채 그대로 리타이어 하고 말지요.

 


워크스 포르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요한 907LH 들 중 워크스 소속 게르하르트 미터와 롤프 스토멜렌의 차량이 사고에 휘말려서 스핀아웃 되었고 스위스 팀 소속의 스타인맨과 스포에리 도 사고를 당했지요. 하지만 숫자가 많아서 그랬나, 살아남은 907LH들은 엘포드 - 시페르 - 슐레서의 순서로 원투쓰리 피니쉬를 달성하게 됩니다. 게다가 그 뒤로는 세 대의 알파로메오 T33/02 들이 4,5,6 피니쉬 까지 달성하게 되었고요!

 


그래서..
이 영광스러운 사진을 전문가들은 무척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바로 팀 오더 때문입니다. 과거 페라리, 포드 도 그랬듯, 이 포르셰의 사진도 팀 오더에 의해 명령된 것입니다. 마지막 랩타임이나 총 주행 시간, 또는 거리, 를 희생하면서 이렇게 속도를 늦춰 역사적 사진 한장 을 건지는 것이 제조사나 팀의 입장에서는 더 중요한게 사실이지요.

 


하지만, 목숨을 걸고 달렸던 선수들의 입장에서도 어이가 없는 일이며, 당시 전문가들의 반응도 싸늘해서 바보같은 코미디라는 평가들도 있었습니다. 레이싱 본연의 재미보다는 어느정도 예상 가능한 결과에 사고들이 속출할뿐 이변은 없는, 김샌 경기에 걸맞는 김빠진 엔딩이라는 평들이었지요.

 


그러나, 포르셰 팀이 그토록 호기롭고 야심차게 밀어붙였던 68년 시즌에서는 결국 이 사진이 포르셰 팀의 처음이자 마지막 포매이션 크로싱 사진이 됩니다.


2전 세브링 - 포르셰 우승 18:0

2차전인 세브링에서도 차량들의 잦은 고장 및 자잘한 사고들로 얼룩져 경기의 열기를 느끼기가 힘들게 되는데, 그것은 초반 선두에 섰던 걸프팀의 두 대가 각각 클럿치 고장 및 충돌 사고 후 전륜 위시본 파손으로 마샬 포스트까지 미끄러지는 등 화려하게 리타이어했을 뿐만 아니라, 빅 엘포드의 포르셰 역시 베어링 손상으로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는 급하게 준비된, 또는 아직 완전치 못한 차량들의 탓도 있었습니다. 알핀은 220 이 210 만큼의 성과를 내주지 못하고 있었고, 알파 로메오 t33/02 는 아직도 불안정성이 컸지요. 포드 p68 이나 터빈카 들도 경기를 종료하지 못했습니다. 세브링의 경기가 얼마나 처참했으면 두 대의 포르셰 뒤에 끝까지 살아남은 두 대의 펜스케 카마로들이, 어부지리로, 지티 클래스로는 드물게 3, 4 위를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3전 브랜드햇치 - 포드 우승, 우승기준 점수=18:9 (실제 점수=24:9)

오히려 개최 2년차인 브랜드 햇치에서의 BOAC 6시간 레이스가 시즌 처음으로 진정 박진감 넘치는 경기로 기록됩니다. 앞선 경기들에서 초반에 늘 선두로 역주했던 재키 익스의 지티 40은 이번에는 4위로 출발했고, 초반 포르셰들이 1-3위로 포메이션을 형성하고 질주했으며, 놀랍게도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포드의 3리터 프로토타입 68 을 모는 노련한 브루스 맥라렌이 익스를 제치고, 그리고 팀플을 시전하는 포르셰들을 하나씩 제껴서 경기 중반, 2위로 낑겨들어온 것입니다!

 


하지만 맥라렌의 알란 만 포드 p68은 안타깝게도 드라이브 샤프트의 도넛같은 부품이 파손되며 중반에 아웃, 시즌 유일했던 순위권 진입 가능성을 놓치고 맙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게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는 두 대의 포드 지티들이 포르셰의 강력한 삼단 포메이션 사이로 끼어들기 시작합니다!

 


익스 - 레드맨의 걸프 차량과 홉스 - 호킨스의 붉은 차량이 차례로 2위와 4위로 끼어들어와서 선두 그룹은 포르셰 - 포드 - 포르셰 - 포드 - 포르셰 로 쪼개지니 그야말로 접전이 시작된 것이지요! 아 참, 이 대회에서는 걸프팀은 한 대만 출전하고 대신 홉스와 호킨스 조는 호킨스의 붉은색 지티 40 으로 출전했습니다.

 


이 접전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나중에는 경험이 적은 브랜드햇치 운영진이 선두차에 누가 탔는지 헷갈릴 정도였다고 하네요. 그리고 두시 반 경 이 대회 최대 이변이 발생합니다. 바로 호켄하임링 F1 그랑프리에서 짐 클락이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지요. 관중들과 선수들 모두 충격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경기는 계속되고...

 


그리고 익스, 그리고 중반부터는 레드맨 의 과열된 추격전 에 시달리던 시페르의 선두 차량이 마침내 브레이크패드 손상으로 리타이어.. 심지어 레드맨 뒤의 3등차량도 브레이크 패드 손상으로 핏인하게 됩니다. 네시 경에는 레드맨이 핏인 해서 익스로 교체, 이번에는 5등차였던 포르셰의 네르파슈가 홉스를 제치며 3등으로 올라오고, 동시에 게르하르트 미터의 907 이 밀어붙이기 시작, 4시 30분 경 놀랍게도 선두를 탈환해 달려나가기까지 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알아둘 것.. 포드 지티 40 마크 1 은 연료소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차였다는 점! 또 하나, 경쟁차들에 비해 지티 40 이 가진 확실한 장점은 바로 안정성 이었습니다. 존 와이어의 믿음 대로 이 차량은 뛰어난 엔진 성능과 2, 3년 동안 쌓인 기술적 노하우의 집약체였고, 좋은 팀 운영만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차였던 것입니다.

 


반면 포르셰의 문제점은 그 불안정성에 있었지요. 훗날 써킷을 압도하게될 917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회들에 출전하며 드라이버들과 미캐닉들이 함께 맞붙어 쉬지않고 차량을 개조해나가는 최고의 워크스 팀이었지만, 뛰어난 드라이버들임에도 공포를 느낄만큼 불안정할 수 있는 내구레이싱 전용 907, 908 LH 들이다보니 핏인이 적지는 않았고, 단지 신속한 분석과 대처로 감탄을 자아내는 것이었지요.

 


즉, 포르셰의 미터가 최고로 신속한 팀 지원을 받고 있다 해도 풀연료에 가까웠던 익스의 지티 40 과는 달리 한 번은 주유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게다가 규정상 한 드라이버의 운전가능 제한이 네 시간이었고 레드맨으로부터 차를 건네받은지 두시간이 안된 익스와는 달리 미터는 거기에도 걸려 있었습니다.

미터의 차가 어쩔 수 없이 핏인, 이배속 주유 및 스칼피오티로 교체하는 와중에 익스의 걸프 포드가 휙 지나가고, 포르셰 핏크루의 신속한 급유로 그나마 둘의 차이는 45초 정도 만 벌어집니다. 이번에는 스칼피오티가 전력을 다해 추격하기 시작.

 


그리고 종반부, 이번에는 익스 지티 40 의 기어봉에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스칼피오티는 무모하게 느껴질 정도의 역주로 1랩당 1초씩 따라붙는데 익스는 주저하느라 10초를 소비하게 되지요.

 


그러나 다행히 주저한만큼 신중히 기어를 조작하는 익스, 결국 6시간 째 경기 종료 순간 까지도 스칼피오티는 22초 차이로 뒤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엘포드의 포르셰가 홉스를 따라잡아 결국 포드 - 포르셰 - 포르셰 - 포드 의 순으로 경기 종료.

 


4전 몬자 - 포드 우승 18:18 (30:18)

뒤이은 4월 말의 몬자 1000km 에서는 다시 걸프 차량을 몰고 참전한 홉스 - 호킨스가 접전 끝에 우승을 차지합니다.

여기서도 두 대의 걸프 지티 40 들이 포르셰 팀을 난도질하며 곤경에 빠뜨리지요. 평균시속 200 여 키로의 속력으로 앞뒤에서 압박하는 지티 40 들 + 앞 쪽에서 기름을 쏟고간 알파 로메오 덕택에 요 시페르의 1등 차량은 제대로 문제에 빠지게 되고, 결국 엔진 룸의 에어호스 하나가 떨어져서 내부를 엉망으로 망가뜨리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포르셰의 두 번째 차량도 연료파이프에 문제가 생겨 핏인하지요. 그런데, 선두에 섰던 재키 익스의 차량도 배기파이프 하나가 부서져 핏인하게 됩니다.

 


이제 호킨스의 지티 40 이 선두에 데이빗 파이퍼(우연 찮게도 요때는 파이퍼도 갈색 지티 40을 몰았습니다)가 2등, 그리고 스토멜렌의 포르셰가 3등이 되었으나, 이번에는 파이퍼가 베어링 문제로 떨어져서 알핀 하나가 3등으로 올라서게 됩니다. 경기 종반부, 익스의 차량은 결국 철사로 동여맨 배기파이프가 다시 문제를 일으켜 제대로 끝마치지 못하지만 호킨스가 끝까지 선두를 지켜내 우승하게 됩니다.

 


5전 팔레르모 - 포르셰 우승 27:18 (39:18)

그리고 5월, 가장 터프한 대회로 손꼽히는 타르가 플로리오에 걸프 포드 팀은 참가하지 않습니다. 대신 여기서는 페라리를 이어 본토인들의 주목을 받은 아우토델타 팀의 33/02들의 활약이 펼쳐지지요. 니노 바카렐랴와 루치엔 비앙키, 이그나치오 귄티, 난니 갈리 등의 차량들이 선두 그룹에서 포르셰들과 접전을 벌이게 되며, 초반 선두에서 리드하던 루도비코 스칼피오티의 907 이 드라이브 샤프트 문제로 떨어져나간 반면,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허브캡 나사가 풀려 기권 위기에 몰렸던 빅 엘포드의 907 은 경기 내내 차근차근 올라와 결국 근성의 우승을 거머쥐면서 신화가 됩니다!

 


포르셰 워크스 팀은 엘포드와 시페르의 차들이 동시에 구동계에 문제가 생겨 초반부터 난전에 들어갔고 스칼피오티와 한스 헤르만의 남은 두 대의 워크스 포르셰 사이에는 바카렐랴와 비앙키의 알파 로메오들이 1등에서 3등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휘젔고 있었습니다. 엘포드는 상기한대로 출발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허브캡 문제를 발견했고, 차의 공구함에서 스패너를 꺼내 자력으로 조인 후 다시 출발, 그런데 이번에는 가속구간에서 돌을 밟아 타이어에 펑크.. 다시 차를 세운 엘포드는 한번 더 스패어를 꺼내 직접 교체한 후 아예 스패너를 조수석에 던져놓고는 다시 출발합니다.

그리고 핏 인을 했는데 이미 시페르 차량의 액슬 문제 때문에 핏 크루들은 정신도 없고 시간도 뺏긴 것이죠. 여기서 타이어교체하고 스패어 재장착하고 연료채워 떠나는데만 다시 18분을 허비..

하지만, 근성의 엘포드는 무조건 역주합니다. 기존 랩기록을 무려 1분이나 단축시키는 속력으로 무섭게 질주.. 순위권 불가 상황에서 차근차근 7위까지 올려놓을 때 쯤 스카피올티/미터의 907과 1등을 주고받던 바카렐랴/슈츠의 알파가 사고로 떨어져 나가고, 이번에는 미터의 907 의 트랜스미션에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미터의 포르셰는 짧은 핏인에서 드라이브샤프트와 테일파이프까지 손보고 다시 출발 했으나, 이번에는 새로 부착한 파이프가 오버히팅되면서 리타이어.. 반면, 갈리와 귄티의 알파가 새로 선두그룹에 난입하면서 헤르만의 3등 차량은 앞으로 나가지를 못한 반면, 어느새 엘포드의 차량은 4등이 되는가 싶더니 결국 9랩에서 헤르만의 포르셰와 알파 로메오 두 대를 모두 따라잡고 질주를 계속해서 그대로 우승하게 됩니다!

 


6전 뉘르부르크링 - 포르셰 우승 36:18 (42:22)

2주 후 뉘르부르크링에서 열린 ADAC 1000km 경기에서는 걸프 팀이 심각한 전략적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브라이언 레드맨이 뉘르부르크링에 경험이 없다는 점 때문에 고심하다가 레드맨과 홉스를 바꿔서 파트너를 짠 것이죠.

 


68년 최고의 수퍼스타 중 한명이었던 재키 익스는 계속 선두로 치고 올라가려고 했지만 폴 호킨스가 받쳐주지를 못했고, 레드맨은 반대로 뉘르부르크링 적응이 빨랐습니다. 결과는 포르셰가 1,2,4 등을 차지하고 익스-호킨스가 3등, 레드맨 -홉스가 6등, 그리고 갈리의 알파가 5등이었지요. 이 경기에서는 포르셰들도 예상 밖으로 평범한 경기를 보여주어서 많은 사람들이 걸프팀의 전략적 실패를 무척 아쉬워했습니다.

혹시 익스 - 레드맨이었더라면..
흠.. 근데 그랬다면, 르망까지 접전이 계속 될 수 있었을까요?

 


뉘르부르크링에서 우승한 포르셰 908 K 는 LH와 동일한 배열의 프론트 디자인을 갖고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910과 큰 차이가 없는 바디였습니다. 907, 908 쿠페, 그리고 910들을 구분하는 것은 한끝 차이이지요~^^.

 


7전 스파 프랑코샹 - 포드 우승 36:27 (42:31)

재키 익스는 스파 1000km 경기에서 다시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걸프 미라지 M1으로 우승했던 전년에 이어 2연패를 달성하게 됩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수중전이었다는 정도?

 


본 경기에서 비가 오기 시작해 대부분을 수중전으로 치루다보니 차량들의 전기배선 문제가 속출.. 알란 만 포드 들이나 마트라 등이 문제에 직면했고 페스카롤로는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로 겁을 먹은 반면 포르셰의 엘포드는 늘 그랬던 것처럼 전기문제로 핏인했다가 나와서 20등부터 차근차근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결국 페스카롤로의 마트라는 30랩에서 핏인 한 뒤 전기문제로 시동이 걸리지 않아 그대로 리타이어, 한때 1위로 달리던 네르파슈의 포르셰는 레드맨의 포드 에 따라잡힌 후, 홉스의 걸프 2호차와 순위를 놓고 다투다가 스핀 아웃되어 버리고, 막판에 드라이버 체인지로 홉스와 교대한 호킨스는 브레이크 와이어에 문제가 있다고 존 와이어에게 불평했지만, 본전도 못건지고 그냥 역주해서 4등을 차지합니다. 포르셰 팀에서 살아남은 미터와 헤르만의 차량들이 2, 3 등을, 익스의 포드는? 계속 질주해서 우승하지요.

 


8전 왓킨스 글렌 - 포드 우승 36:36 (42:40)

8월의 왓킨스 글렌 6시간 경주는 포르셰에게 무척 중요할 수도 있는 경기였습니다. 만약 여기서 포르셰가 우승하면 5승이 되어 총점 45점으로 챔피언이 확정되는 상황이었지요.

벨기에(스파)에서 이미 걸프 포드 팀에 기회를 한번 빼앗겼던 워크스 팀은 1번 차량에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던 빅 엘포드와 요 시페르 두 사람을 몰빵 배정했습니다.

반면, 걸프 팀의 브라이언 레드맨은 쿠퍼 BRM으로 스파 F1경기에 참가했다가 골절상을 입어 출전 불가 상태가 되었고, 익스의 새 파트너로 알파로메오 팀에서 뛰던 베테랑 루치엔 비앙키가 영입되었지요.

하지만, 이 경기에서 걸프 팀의 두 대의 포드들은 오히려 원투피니쉬로 경기를 끝마치며 압승을 거두게 됩니다. 포르셰로서는 뼈아픈 실패였지요. 왜냐하면 익스에 맞설수 있는 최고의 드라이버였던 빅 엘포드는 경기에 참여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으니까요.

 


뒤에 플랩들을 달고 있던 네 대의 포르셰 908k 쿠페 차량들은 초반부터 분전해서, 1위로 치고 나섰던 익스의 포드를 시페르가 곧 따라잡지만, 13랩에서 다시 역전당해 그대로 모두 역주를 계속합니다. 25랩까지 계속해서 간발의 차를 유지하며 익스가 선두를 지키고 뒤에는 두대의 포르셰가 따라붙은 상황.
그 뒤를 롤라 한대와 홉스의 포드가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37랩에서 다시 익스를 잡는데 성공한 시페르, 랩타임까지 찍으며 15분 정도 분전하지만 39랩에서 다시 익스가 다시 1등을 탈환한 후 경기종료까지 걸프 포드들은 1위를 놓치지 않습니다.

 


반면 네대의 908 들은 차례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시페르의 1번 차량은 왼쪽바퀴 베어링이 잠기면서 핏인하고, 헤르만의 2번은 얼터네이터 문제로, 스쿠터 패트릭의 3번 차량은 과부하가 걸려 온도가 급상승해서 패트릭이 반실신 상태로 핏인, 리차드 앳우드로 교체 투입되지요.

시페르와 앳우드의 1, 3번 차량은 모두 다시 왼쪽 바퀴 베어링 문제가 발생해 결국 리타이어 하게 됩니다. 왓킨스 글렌은 유달리 오른쪽 턴과 범프가 많았는데 908 들이 버티지 못한 것이지요.

이렇게 포르셰가 자멸했지만, 루치엔 비앙키가 몰던 1위의 포드 지티에도 유압 문제가 발생, 결국 펑크가 나서 어쩔수 없이 핏인하게 됩니다. 그런데 포르셰들이 빠지다보니, 그 사이 호킨스의 포드가 1등으로 치고 올라가고, 반면, 핏인을 계속하며 살아남은 헤르만의 포르셰는 11분이나 늦게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경기 중후반에는 호킨스가 1등, 2랩 정도 차이로 익스가 따라가고 있었고 3위로는 시즌 내내 리타이어만 하던 호멧 Howmet의 터빈카가 롤라를 제치고 올라오면서 관중의 이목을 끌게 됩니다. TX터빈카를 몰던 딕 톰슨은 치과의사였죠.

어쨌든, 걸프팀에서는 이제 우승을 확보하기위해 여유있게 운전할 것을 오더했는데, 그 오더를 듣지 못했는지, 펑크 이후 교체투입된 익스는 광란의 질주를 멈추지 않고, 결국 마지막에는 다시 선두를 탈환(?)하면서 그대로 2위 호킨스와 11초 차이로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9전 젤트베그 500Km - 포르셰 우승 40.5:36 (42:40)

오스트리아는 도로교통법 규제가 심하지만, 동시에 스포츠 레이싱에대한 열정도 큰 나라여서 전용서킷이 아니더라도 활주로를 낀 임시 서킷에 지방 클럽들이 부대시설과 편의시설들을 준비, 제공해서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대회를 치루었습니다.

하지만, 단 한가지 빠진게 있다면 그건 바로 걸프 포드 팀과 재키 익스 였지요. 시즌 총 10라운드 중 가장 단거리 경주였으므로 제조사 우승 포인트가 모두 반 밖에 주어지지 않는 경기였고, 사실 포르셰와 포드 양팀의 우승에 크게 중요할 게 없으므로 걸프 포드 팀은 불참합니다. 익스의 역주를 보고싶어했던 오스트리아 팬들은 실망했죠.

 


하지만 폴 호킨스는 다시 자신의 붉은 지티 40 (차량 번호 20번 -사진 중앙에 있습니다. 맨 앞의 5번은 알핀 a220 이고 옆에 차량들이 포르셰 워크스의 908k 들입니다.)으로 독자적으로 출전하고, 포르셰는 르망 예행으로 참가합니다. 워낙 거리가 짧다보니 1인으로 끝까지 운전하는 차량도 많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대회에서는 906, 908, 910등 다양한 포르셰들이 상위권을 싹쓸이했고 어찌보면 모두 포르셰로 끝날 수도 있는 경기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포르셰의 포매이션 엔딩은 재현되지 않지요. 왜냐.. 호킨스가 3위였거든요. 게다가 4위는 알파 로메오..타르가 플로리오(67)와 몬자(68) 우승에 빛나는 폴 호킨스도 레이싱 을 정말로 즐기는 드라이버였던 것입니다!

 


10. 르망 - 포드 최종 우승 40.5:45 (42:45)

1968년의 르망 24시간 레이스는 변화가 많은 경기였습니다. 우선 심각한 데모와 시위, 파업 등으로 경기 자체가 6월에서 9월으로 늦추어졌고, 안전성에 대한 관심 증가로 규정이 바뀌는가 하면 새로운 시케인의 설치도 이루어졌습니다.

경기 일정이 늦춰지면서 4월의 연습경기 이후 프로토타입들은 상대적으로 차의 완성도를 높일 시간이 늘어났고, 르망 그 자체는 가장 중요한 대회 에서 심지어 맨 마지막으로 옮겨지고 포드와 포르셰가 그때까지도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었기 때문에 챔피언 결정전의 의미도 갖게 되었습니다.

또, 포드 본사가 핏 주변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약속한 시케인을 새로 설치함으로써 드라이버들은 화이트 하우스를 지나 핏구역에 접근하기 전에 급제동을 해야했고 동시에 핏 이후 힐을 올라가는데도 애로사항이 생기게 되었지요. 이것은 랩타임을 최소 십초 이상 늘리는 효과(?)와 함께 타이어와 브레이크 패드 소모를 늘리는 부작용(?)도 야기했으며, 결정적으로 핏 주변의 안전성을 높여주었습니다.

그리고 ACO는 68년부터 차량에 상업광고를 부착하는 것을 허용해서 스폰서쉽과 홍보에도 도움을 주게 됩니다.

이에 더해서, 6월에서 9월로 시기를 늦추다보니 밤시간이 길어져서 야간이 열한시간으로 간주되었고, 경기 시간도 오후 4시가 아닌 3시에 시작, 종결 하는 것으로 조정되었지요.

 


시즌 내내 907과 908 LH/K 를 저울질하던 포르셰 워크스 팀은 뉘르부르크링에서 좋은 전적을 낸 908 K .. 는 아니고 LH 4대를 출전시키고 (시페르-헤르만 31번, 미터-엘포드 32번, 스토멜렌-네르파슈 33번, 부제타-패트릭 34번) 걸프 팀은 세대의 포드 지티 40 마크 1 들을 내보냅니다. 거기에 아우토델타, 알핀, 마트라와 호멧 터빈카들, 그리고 프라이빗 팀의 페라리 들과 롤라, 쉐브론 같은 차량들, 콜벳이나 로터스 47(유로파), 힐리 같은 스포츠, 지티카, 변형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른 팀들의 포르셰 907, 910, 911들, 등등 도 대대적으로 출전하지요.

 


걸프 팀 구성은 평소와는 좀 달랐는데 홉스와 호킨스(10번)는 그대로 출전했으나 새로운 세번째 차량(11번)은 신예 재키 올리버와 호주 출신의 브라이언 뮈어가 몰았으며 익스와 레드맨 조(9번)는 멕시코 출신의 페라리 드라이버인 페드로 로드리게즈와 알파로메오 팀에서 잠시 데려온 루치엔 비앙키가 대신 몰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팔을 부러뜨린 레드맨 뿐만 아니라 재키 익스 또한 68년 시즌에 활약한 F1 드라이버이기도 했으며, 익스는 페라리팀 소속으로 캐나다 그랑프리의 연습경기에서 불행하게도 왼쪽 다리 골절상을 입은 것이지요.

 


아마도 68년 르망의 하이라이트는 포르셰 워크스 팀의 침몰과 두 건의 사고들, 그리고 브라이언 뮈어의 삽질과 무엇보다도 걸프 포드 의 성공.. 하지만 뜬금없는 알파 와 페라리 드라이버들에 의한.. 일듯 합니다.

신차가 아니고 프로토타입도 아니었기에 시즌 직전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포르셰 워크스팀의 대대적이며 안정감있는 팀운용에 차선책 정도로만 언급되었던 존 와이어의 걸프 포드 팀은 시즌 초반부터 재키 익스의 광란의 질주로 엄청난 인상을 남기며 포르셰 팀에 끊임없는 압박을 가하게 되고, 결국 방어의 포르셰 팀 포메이션 사이로 파고들어 끝까지 질주하는 포드 지티들의 공략은 68년 시즌을 대 공격의 걸프 시대로 종결짓게 만들지요.

 


무려 네 대의 워크스 포르셰 들이 1-4 위까지 포메이션을 이루면서 선두를 독식하는 경기 시작부터 불과 네시간 만에 차량 문제들로 완전히 와해되는 이야기와 노랑색 지티 40을 타고 출발해서 뮬산 스트레이트에 들어가자마자 시속 240km로 나무에 처박히며 레이싱 경력을 끝내야 했던 윌리 메어세, 알핀으로 선두그룹까지 올라와 역주하던중 충돌사고로 차량에 불이 붙어 화상을 입고 은퇴하는, 베테랑 루치엔 비앙키의 동생, 마우로 비앙키,

 


그리고 그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알파 로메오, 알핀 군단들과 앙리 페스카롤로의 성난 마트라..

 


더해서, 세시간여 동안 계속되는 고난의 삽질..

그리고 경쟁자들이 모두 아웃되면서 자연스럽게 얻은 기회를
끝까지 놓치지 않고 질주하며 거머쥔 걸프팀의 게스트 드라이버들인 페드로 로드리게즈와 루치엔 비앙키의 이야기가

 


분량 조절 실패로 인하여 다음 게시물에서 다루어지겠습니다~^^;;

아, 어쩌면 그 이전에 1969년의 전설적인 르망 24시간 레이스를 먼저 다루게 될 지도..(?!)

더불어 스파크의 스 자도 안나온 ..
리뷰 아닌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