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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Solido] Ford GT mk.1 1968 Le Mans 24 hours #9 winner - Bianchi / Rodriguez

이박오 2020. 6. 2. 21:49

폰으로 올리자니 사진 순서 맞추기가 너무 힘들고
PC로 올렸더니 폰으로는 수정이 안되고..
어중간한 기술의 폐해네요~

ㅡㅡㅡㅡㅡ

그 자체로도 인기 시리즈이지만, 이번 개봉영화 덕에 폭풍 홍보효과를 톡톡이 누리고 있는 GT40. 유투브 등에서도 간지있는 인트로들이 나오고 하면서 팬들의 만족도도 큰 편인듯 한데요.. 순전히 개인적인 얘기지만, 저는 오히려 아쉬움이 남더라구요. 영화는 못봐서 모르지만 왠지 실망할거라는 걱정이 안드는데, 오히려 그 회자되는.. 상식들이..

예를 들어 최근 많은 사람들이 르망 우승의 포드 차량들은 공식 명칭이 포드 지티 이며, 신문기자인지 에 의해서 지티 40 으로 불릴 뿐이다.. 이렇게 말씀들을 합니다.

틀렸지요. 잘못된 정보입니다.

포드 지티는 르망 우승 개체들의 오마주로 포드에서 훗날 다시 선보인 후대 차량의 공식 명칭이며, 또한 1963~64년 포드의 커미션을 받은 존 와이어 John Wyer 와 롤라의 에릭 브로들리 Eric Broadley 가 개발한 초기 그랜드 투어링 카의 명칭이기도 합니다.

지티40 이라는 명칭이 언론에서 시작된 것은 맞지만, 문제는 실제로 포드도 그것을 공식 명칭으로 채택했다는 점입니다. 1964년부터 생산된 대 르망 경주차들의 공식 명칭은 포드 지티가 아니고 포드 지티 40 이지요.

또한 이 차량으로 겁없이 도전하는 셸비와 마일즈가..셸비는 디자이너 / 세일즈맨 이고 마일즈는 미케닉이다..

뭐 틀린건 아니지만 잘못된 이미지를 주기 딱 좋아요.

캐럴 셸비 Carroll Shelby 는 1959년 르망 우승의 전국적 레이싱 영웅인데다가, 그 우승이 이미 페라리의 전성기에 건강문제 때문에 페라리에 의해 거절당한 드라이버로서 설욕전의 우승이었기 때문에 더 의미심장했었거든요. 위키에 나오는 "디자이너"라는 용어는 그가 코브라를 미국식 머슬 경주차로 개조, 고안한 것을 높이 사서 쓴 고안자 라는 뜻이구요.

마일즈는, 설마, 영화에서도 원래는 일개 미케닉인데 파격적으로 드라이버로 발탁됐다.. 뭐 이러진 않겠죠? 그게 아니라 이 시대만 해도 이런 식으로 정비와 레이싱이 다 되는 선수들이.. 시쳇말로 겁나게 많거든요. 마일즈는 이미 50년대부터 야심만만한 레이서였습니다.

게다가, 이건 영화에서 어떻게 풀어냈는지 모르겠지만, 포드 지티를 개발한 것이 셸비는 아니죠. 단지, 셸비는, 그의 철학 그대로, 유럽 풍의 이 차에 빅블럭엔진을 쑤셔박아 파워를 업그레이드시킨 장본인 입니다.

포드 지티의 시작과 끝, 포드 지티로 시작해서 미라지로 끝나는 걸프 오일 레이싱 팀 전설의 시작과 끝에, 그리고, 대 페라리 공략의 대가로 바로 캐럴 셸비 본인을 훈련시켜 이미 7년 전 페라리를 꺾었고, 다시, 그리고, 또 다시 페라리의 대척점에 서게 될, 전설적인 매니저 존 와이어가 바로 이 차량과 그 역사의 배경 속, 가장 중요한 열쇠를 지닌 인물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와이어는 미국인이 아니었고,
다행스럽게도 미국의 방식으로 페라리를 꺾은
첫 두 번의 포드팀 수장이 바로 캐럴 셸비였지요.^^!

 

 

잘 알려져 있듯이 1963년 초 포드와 페라리의 인수 협상은 험악한 분위기 속에 결렬됩니다. 위키에 따르면 애초에 협상을 원한 쪽은 페라리였지만, 막판에 포드 2세가 오픈휠 레이싱 지휘권까지 요구하자 그만 틀어졌다고 합니다. 포드 2세는 포드엔진으로 인디 500을 지배하길 원했고, 그러려면 미국에서의 페라리의 활동을 억제해야 했는데, 페라리는 반대로 인디에 진출하고 싶어 했다는 것입니다.

어쨌건, 포드는 바로 페라리의 대항마를 궁리하기 시작하는데, 그 방법으로 국내 직접 제작을 택한게 아니라 유럽베이스의 쿠퍼, 로터스, 그리고 롤라에 접촉을 했고, 낡은 쿠퍼나 페라리와 비슷한 감성의 로터스가 제외되면서 결국 충분한 잠재력을 가졌으면서도 포드의 요구에 수용적이었던 롤라가 선택됩니다.

동시에 애스턴 마틴의 레이싱 팀으로 5년전 페라리를 꺾었던 매니저 존 와이어를 섭외하고, 본사에서도 기술자를 보내서, 롤라의 미드쉽 레이서를 기반으로 영국 롤라 공장 주변에서 개발에 착수,
64년 4월 포드 GT 1호 섀시를 완성하고, 곧이어 12대의 프로토타입 제작에 돌입합니다.

이 첫 번째 차량들은 4.2리터 합금 v8엔진이었죠.
초기 양산형 mk.1과 변형 로드스터 등은 289 큐빅 인치에 4.7리터의 페어래인 엔진을 달았고요.
이들은 성질급한 포드 임원진의 성화로 바로 실전에 투입되었으나 거의 다 리타이어하면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합니다.

 

 

번째 포드 GT들은 마크 씨리즈와는 앞부분이 다르게 생겼네요.

 

 

 

저 뒤, 두번째 차량 옆에서 기술자의 얘기를 들으며 정면을 보는 사람이 바로 존 와이어 입니다. 와이어는 포드 간부들과 그리 좋은 관계를 맺지는 못 한것 같습니다. 64년 시즌 중반에 그는 전격 경질되고 셸비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데, 이때 와이어가 4리터 대 엔진을 고집한 반면 셸비는 7리터 엔진을 쓰자고 제안했지요.

 


그래서 등장했던 것이 바로 마크 2 였습니다. 마크 2는 갤럭시에서 쓰고 당시 나스카용으로도 공급하던 7리터 대 427엔진을 달았는데요, X1 로드스터까지 엔진스왑을 하고 65년 르망에도 대대적으로 출전했으나 역시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65년의 초기 마크 2 도 66년 우승 모델들과는 다른 면모들이 보이네요.

 


요거는 65년 대회에 참가했던 마크 1 개체 입니다. 65년 초반, 셸비는 데이토나와 세브링에서 각각 우승, 준우승의 성공을 거두지만, 르망 부터는 마크 1 이고 2 고 간에 다 탈락하는데, 어쩌면 이런 과정과 고민들이 영화에서 잘 묘사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비록 존 와이어의 기술적 전략이 폐기되고 파워넘치는 셸비의 차들이 선택되었지만, 어쨌든 64, 65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66년 포드 GT 40 마크 2 는 데이토나와 세브링, 그리고 르망 까지, 말그대로 초강력 태풍처럼 휩쓰는 대성공의 신화를 쓰게 됩니다!

 

 

하지만, 켄 마일즈의 사고와 마크 4 의 성공이 교차하던 66년 말~ 67년이 지나면서 르망 운영진은 무리한 힘에 의한 가속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규정을 바꾸게 됩니다. 프로토타입 차량의 배기량에 제한을 걸어 버린 것이지요.

이로써 12기통의 페라리 330p와 7리터대 포드 GT 40 마크 2, 4 는 모두 출전대상에서 제외되어버리게 됩니다.

 

 

페라리의 독주 연승을 꺾고 2년간 르망을 제패한 포드는, 애시당초 페라리를 인수하면서 르망같은 월드클래스 경주를 통해 브랜드가치를 상승시키려고 했던 본래의 홍보효과를 충분히 누렸다고 판단, 르망 철수를 결정하게 됩니다.

뭐 3.0 리터 대의 P68 을 새로 개발하기는 했는데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도 있지만요.

 

한편, 1966년 가을, 뉴욕에서 피츠버그로 날아가는 걸프 정유회사 소속 전용기 안에서는 능숙한 스튜어드가 칵테일로 차도남 존 와이어의 기분을 풀어주고 있었습니다. 걸프 정유회사의 부회장이었던 그래디 데이비스 Grady Davis가 준비한 것이었죠.

 

 

얼마 전, 모터스포츠에 관심이 많았던 데이비스는 개인 스포츠카로 포드 GT40을 주문할까 해서 와이어를 만났는데, 대화 도중 와이어가 당시 걸프사가 진행중이었던 소극적인 포뮬러 원 지원보다는 차라리 화끈하게 스포츠카 팀을 만드는게 회사 홍보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언뜻 제안을 했던 것입니다.

 

 

촉이 온 데이비스는 바로 존 와이어를 섭외하기위해 접대를 시작했고, 결국 와이어는 10 월 영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계약서를 쓰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역사적인 걸프 레이싱 팀이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실제로 당시에는 그랑프리 보다 르망의 홍보효과가 훨씬 컸다고 하지요. 따라서, 67년 2월 데이토나와 3월 셰브링에 걸프 리버리의 JW 오토모티브 엔지니어링 소속 지티 40 들이 바로 처녀출전하게 되는데요, 이때까지만 해도 걸프 컬러는 다크 블루 / 오렌지 색이었습니다. 존 와이어의 지티들은 당연히 마크 2 가 아닌 마크 1 이었고요.

 


하지만, 너무 어두운 파란색이 눈에 잘 띄지 않아서 위험할 뿐만 아니라 뭔가 기분도 좋지 않았던 그래디 데이비스는 얼마 전 걸프 가 인수한 캘리포니아의 윌셔 오일 컴퍼니의 파우더 블루를 떠올리게 됩니다.

 


곧바로 세대의 오리지널 지티 40들은 파우더 블루로 재도색되고 오리지널 다크 블루는 파우더 블루와 오렌지 사이의 경계선으로 남게 되지요.

 


67년 4월 몬자에서 첫 선을 보인 이 차량들은 동시에 이름도 바뀌어 포드 지티 40 이 아닌 미라지 M1 이 됩니다. 사실, 이름만 바꿨을 리는 없고, 미라지 M1은 포드 지티 40 의 샤시를 토대로 새로 셋팅을 한 차라고 보아도 무방한데요, 외관상으로도 사이드의 흡기구들이 사라진 밋밋한 형태에 후미 디테일의 소소한 차이가 있지요.

 


비록 1년 정도 밖에 활동 기간이 안되며, 두 대 (M10002,10003)는 이듬해 파손되고 다시 포드 지티 셋팅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존 와이어의 미라지 M1 은 이미 5월 스파 프랑코샹 , 10 월 파리 1000킬로미터 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탁월함을 전세계에 입증했습니다.

게다가, 존 와이어가 만든 이 미라지 라는 메이커는 M 씨리즈와 GR 씨리즈의 자체 르망 레이싱카들을 70년대까지 꾸준히 개발, 훗날 프랑스인 장 론도 의 론도 레이싱카들과 함께 개인이 만든 둘밖에 없는 대 르망 경기 특화 메이커로서 불멸의 명성을 남기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1968년, 상기한대로 르망 규정이 바뀌면서 포드와 페라리 양측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동시에, 소규모 엔진만 고집하며 포드 경영진에게 까다로운 실패자의 인상으로 남았던 존 와이어에게는 자신을 증명할 기회가 다시 열린 셈이고요.

 


기억회로 역할을 했던 수석 엔지니어 존 호스맨 John Horsman이 만든, 모든 차량에 대한 면밀한 기록을 바탕으로, 경기 중 모든 발생가능한 경우를 대비하고 예측하는데 탁월했던 전략가의 기질이 강했던 와이어.

그는 차량에 대한 공학적 지식과 트랙에 대한 경험, 그리고 레이싱 전략에 있어서의 단호한 결정력으로 중무장해,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그의 쏘아보는 눈빛 앞에서는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별명이 죽음의 광선 Death Ray....

 


당연히 그는 어떤 바보에 대한 여유있는 배려심도 없었고, 그럼에도 휘하에 익스, 올리비에, 홉스, 로드리게즈, 비앙키, 시페르 등 당대에 빛나는 드라이버들을 모두 한 번 씩은 거느리게 됩니다.

 


1968년, 규정이 바뀌자, 와이어는 3.0리터대로 대폭 낮아진 프로토타입 클래스보다 50 대 생산요건만 맞추면 5.0리터까지 배기량이 확보되는 스포츠카 클래스로 옮겨야 한다는 판단하에, 기존의 미라지 2, 3호차를 다시 포드 지티 셋팅 (1074, 1075)으로 돌리게 됩니다. 포드 지티 40 은 이미 70대 이상 생산되었거든요.

거기다 팀에 새로 한대를 추가(1076), 포드 지티 40 마크 1 - 4.7리터 엔진의 개량형 (4.9리터)으로 68년도 챔피언쉽 라운드에 돌입하게 됩니다!

 


여기서 잠깐, 정리를 해봅시다. 우리가 아는 엑소토의 포드 지티는 모두 마크 2 혹은 마크 4. 이 두 차종은 모두 7리터 대 갤럭시 엔진 기반이며, 캐럴 셸비가 자신의 신념으로 밀어붙인 차들입니다.

 


마크 2 로 셸비와 그의 포드 (셸비 아메리카)팀은 1966년 데이토나, 셰브링, 르망 의 3 대 내구레이싱 동년 우승에 원투쓰리 피니쉬를 연발하며 그야말로 미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집어넣지요.

 


마크 4는 또 어떤가요? 셸비에 의해 개발되다시피 한 순수 미국 혈통의 차로서, 미국에서 제조된 유일한 포드 지티 40 입니다.

마크 1,2, 3 은 모두 영국에서 제조되었지요.

포드의 압력 속에 67년 세브링 대회까지 겨우 한대 밖에 제조될 수 없었지만, 신성 마리오 안드레티와 노련한 브루스 맥라렌은 이 엄청난 차로 우승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단기간에 완성, 보충된 마크 4 들은 결국 공식적으로 참가한 두 번의 경기 - 세브링과 르망 - 모두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 차량들이 엑소토가 선택한, 미국의 영광.. 입니다.

 


하지만, 1968년, 힘에 기반한 경주가 불가능해지면서 재미를 충분히 봤다고 생각한 포드가 발을 빼고, 셸비도 그만 새로운 도전의 동력을 상실해버립니다.

 


하지만, 야심만만한 늙은 대가 존 와이어는 자신을 신뢰하는 걸프 의 후원을 등에 업고, 해묵은 마크 1을 다시 꺼내들었지요.

 


새로 바뀐 규정 속, 포르셰, 마트라, 알핀, 아우토델타... 포스트 페라리의 향후 10년을 수놓게 될 기라성 같은 신차들 속에서도 레이저같이 날카로운 와이어의 믿음 하나는 분명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차량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초기 개발자로서 느낀 포드 팀의 문제점, 이 차량은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아도 그 자체로 우승할 수밖에 없는 잠재력을 갖고 있는데, 포드도, 셸비도 그 잠재성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는 믿음.

 


1966년과 67년의 포드 GT 40 마크 2 와 4 의 이야기가 미국인들에 의한 미국 식의 파워넘치는 대성공 반전극에, 마케팅 이벤트의 성격까지 무척 강했던 아메리칸 드림이었다면,

1968년부터는 그와는 좀 다른, 오리지널 포드 GT 40 이라는 자동차의 진면목을 입증하는 기술과 노련함의 이야기가 펼쳐지며,

미국과 그 꿈, 성공 이라는 지역성, 기업성을 초월한, 한 개인을 중심으로 자원들이 모여들어 형성되는 걸프 레이싱 팀 의 신화가 시작됩니다.

 


포드 지티 40의 오리지널 마크 1 은 두 번의 르망 우승과 걸프 리버리의 상징성, 그리고 인기, 에도 불구하고 엑소토나 오토아트같은 메이저 모델 메이커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엑소토는 이번 영화처럼 마크 2 의 성공에 주목했고, 마크 4 를 메이트로 삼았지요.

 


포드가 GT를 다시 본격적으로 개발해 2016년 FIA 월드 챔피언쉽에 복귀시키기 전까지, 오토아트는 2005년 등장한 오마주 포드 GT 와 그 그란투리스모 버전들로 만족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드디어, 솔리도에서 비록 저가이지만
나름 오픈도 되는 다이캐스트 버전이,
타이어의 화이트 표기, 각종 데칼들, 그리고 에칭이 아닌 프린팅이긴 하지만 후드 고정핀들까지
나름 세심하게 디테일을 살려 출시되었습니다.

 


각이 크지는 않지만, 조향도 되며, 통자 프라 부품 이라도 앞쪽의 그릴 과 바 표현도 좋습니다.

 


뒷쪽에 별도 프라부품으로 후드 고정핀 처럼 보이는 은색 돌기는 넘버링 조명이며, 우측 후륜 펜더 뒤의 푸른 시그널 램프도 별도 프라파츠로 표현해주었습니다.

 


저가 모델이다보니 엔진 쪽은 막혀 있지만 냉각판들을 나름 프라파츠로 비스무레하게 구분지어 주었네요.

 


정말 멋진 자세입니다!
뭐 밑에 눈에 거슬리는 네개의 스크류 돌기들은 솔리도의 시그너쳐로..

 


개인적으로 엑소토의 마크 2 를 매우 늦게서야 구한 기억이 있는데, 마크 1 의 단발라이트 뒷태가 훨씬 더 멋져서 였었지요.

 


스포일러? 밑의 구멍들도 모두 검정 프라파츠로 막혀 있지만, 하판의 표현까지 나름 효과적으로 재현하려 노력한 티가 납니다.

 


실내 표현도 그리 실망스럽지는 않네요.

 


엑소토같은 디테일을 기대할 수는 없으나, 늘 하던대로 정밀해 보이는 대쉬 보드, 보이지 않아서 휑한 페달류, 최대한 효과적으로 양각과 페인팅으로 표현한 통자 시트 재현이 눈에 띕니다.

 


가까이서 본 시트 재현은 사실 유머러스 하지요~^^ 대신 대쉬 패널과 핸들의 포드 로고 까지 꽤나 깔끔하게 디테일해 보입니다.

 


도어 오픈 샷입니다.
저가라서 테일라이트들이 다소 가벼워보이는 싸구려 플라스틱 삘인데, 이게 또 불이 들어온 것 처럼 보일때가 많다는 장점 아닌 장점이..

 


전방에서 보아도 크게 쳐지는 것은 없습니다.
도어 윈도우의 덧창표현과 도어핸들 돌기 표현까지 나쁘지 않네요.

 


위에서 본 모습. 전체적인 비율도 과하거나 덜함이 없이 균형잡힌 느낌이며,

 

하판은 역시 단순한 걸로..

 


저 파랑 시그널 등은 불투명 검정 프라파츠에 반사가 있는 파랑 프린팅을 한것이라 좀 아쉽습니다. 투명부품이었다면 훨씬 더 고급스러웠을텐데요.

 


그럼 다음 편에서는 좀 더 후끈한 1968년 월드 챔피언 쉽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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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
1편 ㅡ 배경 ㅡ 존 와이어 와 걸프 레이싱

2편 ㅡ 1968년 챔피언 쉽 ㅡ 르망 ㅡ 스파크 모델

3편 ㅡ 비교와 후기

육아대란으로 인해 게시물 완성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졌습니다.
그래서 모델에 대한 단점들을 먼저 짚어드리자면,

1. 색깔이 다르다
노랑 틴트가 들어간 찐 파우더 블루입니다.
실제로 보면 오토아트나 스파크와는 무척 달라보일 수 있습니다.

2. 몇몇 오류가 있다
후방 펜더의 번호조명 은 하나만 있어야 하며
주유캡, 이그조스트 파이프 색깔이 틀렸고
엔진 카울의 그릴 (?) 의 방향이 반대로 부착되어 있습니다(!).

3. 고정핀, 사이드 인디케이터, 엔진 등 디테일의 단순화와 라이트류의 저질성.. 에칭 같은거 없다
당연하지. 값이 얼만데..

4. 스파크 동일 모델이 조금 더 멋있다.
어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