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Toni Morrison, 3rd. Dec. 1993, The Oslo City Hall (4)

이박오 2023. 5. 13. 09:26

She is convinced that when language dies, out of carelessness, disuse, indifference and absence of esteem, or killed by fiat, not only she herself, but all users and makers are accountable for its demise.

부주의함이나 미사용, 무관심과 존중의 부재로 인해, 또는 명령에 의해 살해당해서 언어가 죽을 때는, 그녀 자신 뿐만 아니라 모든 사용자들과 창조자들이 그 사망에 책임이 있다고 그녀는 확신한다.

 

In her country children have bitten their tongues off and use bullets instead to iterate the voice of speechlessness, of disabled and disabling language, of language adults have abandoned altogether as a device for grappling with meaning, providing guidance, or expressing love.

그녀의 나라에서 아이들은 혀를 깨물어 잘라내버리는 대신 총알을 사용해왔다. 의미와 씨름하고, 안내를 제공하며, 사랑을 표현하는 도구이지만 어른들이 전부 폐기해버려서, 말 없고, 장애를 가졌으며 장애를 주는 그 언어의 목소리를 반복하기 위해서.

 

But she knows tongue-suicide is not only the choice of children. It is common among the infantile heads of state and power merchants whose evacuated language leaves them with no access to what is left of their human instincts for they speak only to those who obey, or in order to force obedience.

하지만 그녀는 언어적 자살이 아이들의 선택만은 아님을 안다. 그것은 그들이 복종하는 자들에게만, 혹은 복종을 강요하기 위해서만, 말하므로 자신들의 소개된 언어가 그들의 남아있는 인간적 본능에 접근하지 못하게 해버린 유아적인 국가 정상들과 권력 상인들 사이에서는 흔한 일이다.

 

The systematic looting of language can be recognized by the tendency of its users to forgo its nuanced, complex, mid-wifery properties for menace and subjugation. Oppressive language does more than represent violence; it is violence; does more than represent the limits of knowledge; it limits knowledge.

언어의 체계적 약탈은 그 사용자들이 위협과 정복을 위해서 그 미묘하고 복잡하며 산파와 같은 특징을 모두 버리고 사용하는 경향을 통해 파악될 수 있다. 억압적 언어란 폭력을 대변하는 것 이상을 하니, 그것이 곧 폭력이며, 지식의 한계를 대변하는 것 이상을 하니, 그 스스로 지식을 제한한다.

 

 

Whether it is obscuring state language or the faux-language of mindless media; whether it is the proud but calcified language of the academy or the commodity driven language of science; whether it is the malign language of law-without-ethics, or language designed for the estrangement of minorities, hiding its racist plunder in its literary cheek it must be rejected, altered and exposed.

그것이 국가의 언어나 무신경한 미디어의 가짜 언어를 모호하게 하든 말든, 오만하지만 돌처럼 굳은 학계의 언어나 상품 중심적인 과학의 언어이든, 또는 윤리없는 법의 해로운 언어이든, 아니면 소수를 따돌리기 위해 고안되었으며, 그 문학적 속임수 아래 인종주의자의 약탈행위를 감추고 있는 언어이든 간에 그것은 거절되고, 바뀌고, 드러나야만 한다.

 

It is the language that drinks blood, laps vulnerabilities, tucks its fascist boots under crinolines of respectability and patriotism as it moves relentlessly toward the bottom line and the bottomed-out mind. Sexist language, racist language, theistic language all are typical of the policing languages of mastery, and cannot, do not permit new knowledge or encourage the mutual exchange of ideas.

그것은 피를 마시며, 취약성을 할짝거리는, 파시스트의 군화를 존경과 애국심이라는 세척제 아래 담가 버리는 언어이다. 그러면서 그 언어는 밑바닥과, 그 바닥마저 비워진 정신을 향해 가차없이 움직여 간다. 성차별주의자, 인종주의자, 유일신 주의자의 언어들은 모두 감시자의 지배의 언어이니, 새로운 지식을 허락하거나 생각의 상호 교류를 격려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