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Toni Morrison, 3rd. Dec. 1993, The Oslo City Hall (1)

이박오 2023. 5. 12. 16:16

“Once upon a time there was an old woman. Blind but wise.” Or was it an old man? A guru, perhaps. Or a griot soothing restless children. I have heard this story, or one exactly like it, in the lore of several cultures.

옛날 옛적, 한 노파가 있었다. 장님이지만 현명한.” 아니면 늙은 남자였을까? 어쩌면, 현자였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들썩이는 아이들을 달래는 노래하는 현자(griot 아프리카의 음유시인,현자)이거나. 나는 이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아니면 정확히 같은 것을, 여러 문화들의 이야기 속에서.

 

“Once upon a time there was an old woman. Blind. Wise.”

옛날 옛적 한 노파가 있었다. 장님이고, 현명한.”

 

In the version I know the woman is the daughter of slaves, black, American, and lives alone in a small house outside of town. Her reputation for wisdom is without peer and without question.

내가 아는 버전에서 그 여성은 흑인이며 미국인이고, 노예들의 딸이다. 그리고 마을 밖의 작은 집에 홀로 산다. 지혜롭다는 그녀의 명성은 경쟁자나 의심의 여지가 없다.

 

Among her people she is both the law and its transgression. The honor she is paid and the awe in which she is held reach beyond her neighborhood to places far away; to the city where the intelligence of rural prophets is the source of much amusement.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는 곧 법이자 그 위반이다. 그녀에게 바쳐지는 영예와 그녀가 받는 경외심은 이웃 근방을 너머 먼 곳까지 도달한다. 시골 예언자의 총명함이 큰 오락 거리가 되는 도시까지.

 

One day the woman is visited by some young people who seem to be bent on disproving her clairvoyance and showing her up for the fraud they believe she is. Their plan is simple: they enter her house and ask the one question the answer to which rides solely on her difference from them, a difference they regard as a profound disability: her blindness.

어느 날 그녀는 그녀의 선구안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그들이 믿는대로 그녀를 사기꾼이라고 내세우기로 작정한 것으로 보이는 몇몇 젊은이들에 의해 방문 받는다. 그들의 계획은 단순하다. 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그녀의 차이, 그들이 깊은 장애라 여기는 그녀의 눈멀음,에 편승하는 답을 가진 질문 하나를 던지는 것이다.

 

 

 

They stand before her, and one of them says, “Old woman, I hold in my hand a bird. Tell me whether it is living or dead.”

그녀 앞에 서서, 그들 중 하나가 말한다. “노파여, 내 손에는 새 한 마리가 있소. 그것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나에게 말해주시오.”

 

She does not answer, and the question is repeated. “Is the bird I am holding living or dead?”

그녀가 대답하지 않자, 질문이 반복된다. “내가 쥐고 있는 새는 살았는가 죽었는가?”

 

Still she doesn’t answer. She is blind and cannot see her visitors, let alone what is in their hands. She does not know their color, gender or homeland. She only knows their motive.

그녀는 여전히 대답이 없다. 그녀는 장님이라, 그들의 손안에 있는 것은 물론이고, 그 방문자들도 볼 수 없다. 그녀는 그들의 피부색, 성별, 또는 출신지를 알 수 없다. 그녀가 아는 것은 오직 그들의 동기 뿐이다.

 

The old woman’s silence is so long, the young people have trouble holding their laughter.

노파의 침묵이 너무 길어지자, 젊은이들은 웃음을 참기 힘들어 한다.

 

Finally she speaks and her voice is soft but stern. “I don’t know”, she says. “I don’t know whether the bird you are holding is dead or alive, but what I do know is that it is in your hands. It is in your hands.”

마침내 그녀가 말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엄하다. “나야 모르지그녀가 말한다. “나는 당신들이 쥐고 있는 그 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지,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그것이 당신들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이야. 그것은 당신들 손 안에 있지.”

 

Her answer can be taken to mean: if it is dead, you have either found it that way or you have killed it. If it is alive, you can still kill it. Whether it is to stay alive, it is your decision. Whatever the case, it is your responsibility.

그녀의 대답은 이렇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만약 그것이 죽었다면, 당신은 죽은 새를 발견했거나, 또는 당신이 그것을 죽였다. 만약 살아있다면, 당신은 여전히 그것을 죽일 수 있다. 그것이 살아남을지 말지는 당신의 결정이며, 어떤 경우에도, 그것은 당신의 책임이다.

 

 

 

For parading their power and her helplessness, the young visitors are reprimanded, told they are responsible not only for the act of mockery but also for the small bundle of life sacrificed to achieve its aims. The blind woman shifts attention away from assertions of power to the instrument through which that power is exercised.

그들의 힘과 그녀의 무기력함을 나열한 것에 대해서 젊은 방문자들은 꾸중을 듣는다. 그들은 조롱의 행동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희생된 작은 삶의 꾸러미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 맹인 여성은 힘의 행사으로부터 그 힘이 행사되는 도구로 관심을 이동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