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Toni Morrison, 3rd. Dec. 1993, The Oslo City Hall (2)

이박오 2023. 5. 12. 21:35

Speculation on what (other than its own frail body) that bird-in-the-hand might signify has always been attractive to me, but especially so now thinking, as I have been, about the work I do that has brought me to this company.

(자신의 연약한 신체 외에) 손 안의 새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추측은 항상 내게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내가 해온 대로, 나를 이 무리로 데려온 나의 작업에 대해서 생각하건대 지금은 특별히 그렇다(매력적이다)

 

So I choose to read the bird as language and the woman as a practiced writer.

그래서 나는 그 새를 언어로, 그 여자를 원숙한 작가라고 읽기로 선택한다.

She is worried about how the language she dreams in, given to her at birth, is handled, put into service, even withheld from her for certain nefarious purposes. Being a writer she thinks of language partly as a system, partly as a living thing over which one has control, but mostly as agency as an act with consequences.

태어나면서 받은, 꿈꾸는 데 사용하는 그 언어가 어떻게 다루어지고, 사용되기 시작하고, 심지어 어떤 사악한 목적으로 그녀로부터 금지되는지에 대해서 그녀는 걱정한다. 작가이기 때문에, 그녀는 언어가 부분적으로는 하나의 체계라고, 부분적으로는 통제할 수 있는 생명체라고, 그러나 대체로는 대리자, , 결과를 가지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So the question the children put to her: “Is it living or dead?” is not unreal because she thinks of language as susceptible to death, erasure; certainly imperiled and salvageable only by an effort of the will. She believes that if the bird in the hands of her visitors is dead the custodians are responsible for the corpse.

그러니 그 아이들이 그녀에게 제기한 질문, 그것이 살아있는가 죽었는가, 는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언어가 죽음, 사라짐을 허용하며(에 민감하며) 확실히 위험에 처했고, 오직 의지의 노력에 의해서만 구조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방문객들 손안의 새가 죽었다면 그 관리인들이 그 시체에 책임이 있다고 그녀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