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 5CV '도핀' 은 경쟁사 시트로엥의 2CV 와 함께 프랑스의 국민차로 큰 사랑을 받은 로노 4CV 의 후속작입니다. 세계 대전 후 다시 살아난 전후 프랑스와 메트로폴리탄 파리의 문화적 감수성을 십분 발휘해서 야심차게 개발된 르노의 회심작이지요.
동글동글 구름빵처럼 귀여운 차체에, 부담없는 엔진과, 칼라풀한 색채, 스윙액슬의 부드러운 느낌에 날렵한 회전능력을 갖춘 도핀은 내수시장에서는 물론이고, 해외 수출에서도 기록을 경신하며 기염을 토한 전후 재건 프랑스의 첫 월드카이기도 하지요.
전 세계적(미국대륙과 유럽, 아프리카, 호주와 일본)으로 사랑받으며, 아름답다기 보다는 귀엽고 실용적인, 통통 튀며, 경쾌하고 칼라풀한 이미지의 도핀은 근대 프랑스 자동차의 이미지를 실질적으로 대변하게 된 첫 번째 차량이기도 합니다.
전전 프랑스의 럭셔리, 과장스럽게 팬시풀한 차들의 이미지를 걷어내고, 경제적 곤궁기의 2CV 나 4CV 같은 소박하고 실용적인 세대를 거쳐, 이제 막 다시 부활하기 시작한 프랑스 특유의 허세없는 엘레강스함과 자유로운 개인주의를 강조한 도핀은, 전후 근대 프랑스 자동차 산업의 방향성을 제시한 명차인 것입니다.
정면에서 보아도 동글동글 귀엽기만 한 이 도핀의 이미지는 르노, 시트로엥, 심카, 그리고 푸조까지, 전후 프랑스 자동차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예술적이되 사치스럽지 않은, 실용제일주의의 경쾌하고 개성적인 디자인의 추구였지요. 사실상 4CV 에서 시작되며, 1970 년대 말까지 계속 이어지는, 이 시기 프랑스 명차들의 일관된 매력, 그 에스쁘리는 바로 이 도핀에서 벌써 완성기로 접어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것입니다.
도핀의 디자인적 선구자로는 팬하드(Panhard)의 1954 년작 다이너 Z(Dyna Z) 가 있지요. 다이너 Z 는 루이 비오니에(Louis Bionier)가 디자인한 48 년 다이나비아 (Dynavia)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도핀 자체는 순전히 르노의 기술진과 이탈리아의 명 카로체리아 가이아 (Ghia), 그리고, 텍스타일 디자이너 폴 마로(Paule Marrot) 의 영감과 협업, 거기에, 무엇보다도 시대를 선도하겠다는 경영자 피에르 르포슈 (Pierre Lefaucheux)의 뚜렷한 의지에 의해 탄생한 자동차 입니다.
역사적인 르노 4CV 에 대한 소개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르노 3 형제가 세웠고, 마르셀 (Marcel) 과 페르낭(Fernand) 사후, 루이(Louis)에 의해 한 때 프랑스 최대 자동차 회사로 군림했던 르노는, 2 차 대전시 비시 정부에 협력했다는 혐의에 따라 경영자 루이가 투옥되고, 곧 사망하면서, 큰 위기를 겪게 됩니다. 프랑스 정부는 경영자가 공석인 르노를 정부차원의 트럭 회사로 전환하려는 동시에 레지스탕스 리더 출신의 피에르 르포슈를 그 수장으로 앉힌 것이지요.
그런데, 알고보니, 근 30 년 르노를 홀로 강하게 이끌었던 루이 르노에 버금가는 뚝심있는 사업가였던 르포슈는, 정부 방침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4CV 계획을 강력하게 추친했고, 또 성공해서, 위기에 빠진 르노 사를 지켜냈습니다. 또한, 포르셰 박사와의 본의아닌 악연을 통해, 폭스바겐과는 다른 발전성을 획득하기로 하고, 새로운 차량의 고안을 독자적으로, 르노 4CV 의 대성공 시기에 이미, 시작하지요. 이 차가 바로 5CV 였습니다. 르포슈는 4CV 를 개발할 때와 마찬가지로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이 차를 개발합니다.
5CV 의 개발은 르포슈와 르노의 수석 기술자이자 4CV 의 고안을 담당했던 페르낭 피카르(Fernand Picard) 와의 대화에서 처음 가닥이 잡혔습니다. 4CV 의 가용기간에 대해 이야기 하던 그들은, 빠른 재건 속도를 보이던 당시 프랑스의 국민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4CV 에 싫증을 느낄 것이라는 데에 의견을 같이 한 것이지요.
이에 따라, 1949 년, 이미 '프로젝트 109'라고 명명된 기획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차량의 엔진과 서스펜션, 바디의 개발과 함께, 시장 설문조사를 통해, 50 년대의 사람들은 최고 시속 110km/h 의 고연비 4 인승 차를 선호하며, 특히 자동차 선택에서 여성의 입김이 세질 것이고, 여성들은 특히 자동차의 색상 같은 디자인 적 요소에 민감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지요.
때맞추어,1950 년, 르노 공장을 방문한 미국 GM 회장은 르노의 자동차들이 안팎으로 너무 칙칙하다는 발언을 합니다. 심지어 한 여류 직물 디자이너는 르포슈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전후 파리의 자동차들이 온통 엄숙한 색 천지이니, 예술가의 손길로 좀 더 신선하고 활기있는 색깔을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지요.
이 직물 디자이너는, 당시 수많은 텍스타일 디자인을 개발했으며, 재클린 캐네디 같은 유명인들의 개인적 의뢰를 받을 정도로 의류, 가구 직물 산업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던 명 디자이너 폴 마로 였지요. 그녀는 다시 전후 프랑스 자동차들이 그 내부 디자인과 외부 칼라에서 특히 구리다는 제안서를 제출했고, 르포슈는 그녀를 디자인 부서로 당장 영입, 새로운 차의 내부 디자인과 컬러를 맡기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르포슈와 피카르는 무려 5 년동안의 기술 개발이 단계적으로 집약된 새로운 자동차의 모형을 들고, 1953 년 이탈리아로 건너가 카로체리아 가이아(Ghia)의 루이지 세그레(Luigi Segre)에게 자문을 구합니다. 그들은 그 때까지의 기술 집약을 디자인으로 소화시켜줄 것을 부탁하고, 세그레의 가이아 팀은 도핀의 특징적인 후방 그릴과, 후륜 펜더의 에어 인테이크, 전면 보닛의 전체적인 형태, 보닛에 내장되는 헤드 램프와, 보닛의 오픈 형태, 그리고, 전면 트렁크의 배치와, 스페어 타이어를 위한 디자인 등을 손보아주게 되지요.
그렇게, 당시 동일한 바디구조로, 그러나 전형적인 50 년대 유럽 자동차의 스타일로 르노에서 동시 개발중이던 중형차 프레기트(Fregate)와는 완전히 다른, 독특하고 개성적인 신차의 형태가 차차 완성되어 나갑니다.
이 차는 4CV 보다 왠지 폭이 좁은 느낌이었습니다. 경쟁차였던 팬하드 다이나 Z 와 거의 유사하게, 초소형차로서는 넓고 실용적인 4 인승의 캐빈과 앞 뒤로 거의 비슷한 정도로 튀어나온 폰툰(Pontoon) 형태의 3 박스 스타일 차량이었으며, 직선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부드러운 스타일링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이나 Z는 중형차였던 만큼 르노의 새로운 차량보다 길이가 훨씬 더 길었지요. 그러다 보니, 마치 생선과도 같이 측면이 길어서, 왠지 부담스러운 느낌이 있었습니다. 반면, 작고 강한 엔진의 서브컴팩트 사이즈를 목표로 한 5CV 는 뭉툭하고 동글동글한 느낌을 제대로 살릴 수 있었지요.
거기다 군청색, 회색, 검정색, 누렁색, 같은 당시의 칙칙한 르노 컬러를 해소하기 위해 파스텔톤의 밝고 다채로운 색채를 투입, '바하마 노랑' 같이 통통튀고 기억에 남는 이름의 바디 컬러들까지 만들어낸 마로의 공로로, 새로운 차 도핀은 당시 또 다른 경쟁차였던 푸조 203, 심카 아롱드 등과도 완전히 차별화된 발랄함을 전면으로 내세울 수 있게 됩니다.
변화하는 시대상황을 파악하여, 그때까지 눈에 띄지 않던 여성 고객들을 잠재적인 주 타겟 층으로 분석, 발빠르게 전문가들을 영입한 르포슈와 피카르의 기술적 결단들은, 이렇게 폴 마로나 가이아 같은 디자인 장인들의 손길을 거쳐, 시대의 감성을 창조, 선도하는 감각적인 명차 도핀으로 형상화되었습니다. 이 차량의 외부와 내부 마무리를 담당했던 여류 디자이너 마로를 기념하기 위해, 르노 사는 도핀의 마크 디자인 역시 그녀에게 일임하지요. 보닛의 정 중앙에 크게 자리잡은 이 마크는 바로 왕관 위에서 널뛰고 있는 세 마리의 돌고래 였습니다~
노레브가 그 분위기를 멋지게 살려 재현한 이 차는, 중저가 모형으로, 개인적 기준으로는 크게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일단, 보닛과 엔진 후드, 그리고 4 도어 중 앞열 2 도어 오픈을 제대로 재현해 주고 있지요. 앞쪽으로 열리는 전방 후드의 양 옆쪽 검은 덩어리는 헤드라이트 소켓을 담고 있으며, 그 앞의 가로로 된 랙은 트렁크 가이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요 전방 트렁크의 한 쪽에 배터리도 위치하고 있지요.
내부 재현도 나쁘지 않습니다. 좌석과 도어 안감의 직물 느낌도 나름 살아 있고, 특히 재미있는 것은 놀랍도록 간결한 대쉬보드이지요. 연료, 온도, 배터리 등의 인디케이터들이 모여있는 커다란 속도계와 라디오를 빼면 글로브 박스만 두 개... 간결한 스티어링 휠의 가운데에도 도핀 마크가 있습니다.
노레브의 특징적인 플라스틱 삘 팍팍나는 하부 입니다. 전륜의 안티 롤 바는 왠지 숨어 있는 느낌이고, 코일 스프링을 떠받치는 위시본 프레임이 눈에 띄는군요. 후방 엔진 후륜 구동 차량이다 보니 샤프트는 없고, 후륜의 코일 스프링이 장착된 스윙 액슬 도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왠지 부끄러운 엔진과 머플러가 좀 귀여운 느낌이죠? 하얗고 넓대대한, 간 같이 생긴 물체는 물론 연료통 입니다.
배기량과 마력이 모두 증가한 32 마력의 공랭식 5CV 엔진입니다. 세부로 들어갈수록 허접한 표현이지만, 나름 도색의 묘미를 줌으로써, 분위기는 꽤 좋아 보이네요~. 그러고 보면, 4CV 가 비틀의 영향을 받았다고 오인 받았듯이, 도핀은 포르셰의 영향을??
다시, 전체 오픈 샷입니다. 저는 노레브의 이 도핀 모형이 18 스케일로는 전무후무한 다이캐스팅 모델일 것이라고 거의 확신하는데요, 그 이유는, 노레브가 가장 중요한 모델들을 모두 뽑아주었으며 (두 개의 랠리 우승 모델과 폴리스 파이버전까지..) 오토아트 급으로 정밀하게 재현하기에 도핀은 너무 귀여운 감성이 충만한 차량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 랠리버전 도핀들을 구하기가 결코 쉽지는 않지요.
몇 년동안의 낚시 끝에 겨우 구했던 이 모델들은, 사실, 무척 많은 하자가 있습니다. 요 사진에 보이는 하자도 하나.. 반대 편에도 하나 있고, 전면부에도.. 심지어, 처음 우편으로 받았을 당시에는 앞쪽 보닛이 분리되어 있었고, 엔진도 통째로 떨어진 상태로 박스 안에서 돌아다니고들 있었다능... 이건 뭐 기적에 가까운 멀쩡함...
하지만, 이런 저런 하자들로도 감출 수 없는 귀염충만 도핀의 매력은 오토아트나 BBR 의 역작들과 같이 놓아도 크게 꿀리지는 않는다는.. 헤드라이트의 접합핀 같은 거는 나머지 하자들과 함께 모두 레드썬 하고 보게 되는군요~
게다가, 실제로, 이 귀여운, 32 마력에 불과한 차량은, 알고보면, BMW 나 페라리 같은 슈퍼카들은 물론이고, 허드슨이나 알파로메오 같이 레이싱의 피가 끓어 넘치는 차들에게도 전혀 꿀리지 않는, 엄청난 전적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 노레브가 선택한 모델 그 첫 번째는 바로 1956 년 제 1 회 투르 드 코스 의 우승차량 이지요.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출생지인 코르시카 섬에서 벌어지는 투르 드 코스는 1978 년 대회부터는 WRC 의 프랑스령 경기로 들어와 있는, 프랑스 최고의 명성을 지닌 유서깊은 랠리 중 하나입니다.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코스가 하도 많아서 Ten Thousand Turns Rally (만 회전 랠리??) 라고도 불리며, 앙리 토이보넨 의 사망 등 WRC 역사에 흑역사를 남긴 악명높은 투르 드 코스의 현재 경로는 사실, 원래 코르시카 랠리의 일부에 불과 합니다. 1950-60 년대 중반까지 원래의 투르 드 코스 는, 'Tour of Corsica' (코르시카 일주) 라는 이름 그대로 섬 전체의 험로를 모두 타는 무시무시한 경기였던 것이지요.
물론, '코르시카 일주' 라는 이름만 보아서는 왠지 무서운 느낌이 들지는 않습니다. 아마 56 년의 드라이버들 또한 비슷하게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이 코스의 무서움을 몰라서 그랬다기 보다는, 그 때만 해도 당연히, 코르시카의 이 미친 산길은, 시속 30-50 킬로 이상으로 달리는 것이 애시당초 불가능했기 때문이지요. 악명높은 투르 드 코스의 무서움은, 이 좁고 험준한 산길을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는 그런 고속으로 주파하려는 욕망의 코너링에서, 갑작스럽게, 미처 손쓸 새도 없이 들이닥치기 마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56 년 11 월에 열렸던 1 회 경기는 더욱 의미가 컸습니다. 이 랠리에서 르노의 소형 신차 도핀은, 대회 종합 우승과 준우승 이라는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면서 데뷔 첫 해를 화려하게 마무리하게 되지요. 이 우승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너무 험준하니 그냥 일주정도나 하지, 라고 참가한 선수들일지라도, 포르셰 356 이나 알파로메오 줄리에타, 그리고 메르세데스 300SL 같은 슈퍼급 기량의 GT카들을 타고 있으면 없던 자신감도 생길 테니까요. 경기는 자연스럽게 과열되고, 참가자의 3/2 정도가 사고와 고장으로 중도 탈락하며, 결승선에 들어온 차량은 17 대, 그 중 기록에 남은 차량은 12 대 밖에 없었던 접전이었습니다.
1970 년대 까지의 투르 드 코스는 항상 11월-12월에 열렸고, 날씨는 늘상 엉망진창이었지요. 결승선을 통과하는 차량의 숫자는 항상 1/5 에서 1/3 정도. 심지어, 가장 악명높았던 61 년 6 회 대회에서는 눈이 20-30 센티미터 까지 쌓일 정도로 날씨가 안좋아서, 심판들마저 경기취소로 여기고 퇴근했습니다. 노끈, 삽, 톱, 등 갖은 도구를 다 써서 눈길을 파헤치며 예상 시간보다 훨씬 늦게서야 경기를 끝마친 건 겨우 6 대. 그 중 1,2 위를 차지했던 두 대의 시트로엥 DS19 이 결승선에 도달했을 때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경찰을 불렀을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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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년 첫 대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눈은 오지 않았지요. 하지만, 추운 날씨와 얼어붙은 산길은 충분히 위력적이었고, 이런 경기에서 이기려면, 날렵하고 반응성이 아주 뛰어나며, 스티어링과 서스펜션이 훌륭한 차량과, 그 차량을 쉬지않고 몰아붙일 수 있는 경험이 풍부하고 집중력있는 선수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도핀과 그 직속 후계 차량인 르노 R8 은 초기 투르 드 코스의 최고 인기 차량들이었지요. 56 년 대회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시간 집계상) 간발의 차이로 1,2 위로 두 대의 도핀이 뛰어들어왔고, 그 바로 1 분 뒤에는 3 등차였던 356 쿠페가, 또 1 분 뒤에는 줄리에타 SVZ가, 다시 1 분 뒤에는 300SL 이, 그리고 한참 후에 356, 란치아, 심카, 사브 등등의 차량들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도핀 1 등차를 몰았던 질베르 티리온은, 특이하게도, 대회 경력 채 5 년이 안된 아름다운 20 대 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단기간에 자동차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스포츠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던, 베테랑 중의 베테랑 이었지요.
* 1956년 투르 드 코스 우승차량 르노 도핀 과 드라이버 질베르 티리온(Gilberte Thirion), 코 드라이버 나데지 페리어(Nadege Ferrier)
질베르 티리온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맥스 티리온은 부유한 자동차 부품 수입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스파 24 시간 레이스 같은 중요 경기에 참가했던 레이서 였으며, 어머니 헬레네 티리온은 모델이었지요. 질베르는 부모의 영향을 모두 받았습니다. 8 살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자동차를 사달라고 했고, 14 살에 면허를 땄지요. 10 살이 되던 해에는 부모님이 이혼했습니다. 질베르는 어머니와 살며 비서학교를 다니게 되지만, 아버지와도 사이가 좋았으므로 졸업 즉시 아버지의 회사였던 챔피언 플러그 (Champion Plug) 수입회사의 비서, 곧 홍보 담당이 됩니다. 회사 일로 트랙을 드나들다 보니, 마누엘 판지오나 알베르토 아스카리, 스털링 모스 같은 전설적인 드라이버들과도 알게 되지요.
1951년 라임즈 12시간 레이스에서 마누엘 판지오와 함께
1951 년, 23 살의 질베르 티리온은 칸느의 태양(Soleil de Cannes) 랠리에 오스틴 힐리 를 몰고 처음으로 참가, 완주에는 실패합니다. 이듬해에는 아버지 맥스를 따라 놀러간 브뤼셀의 오토살롱에서 기본형보다 350 파운드 가벼운 경주용 포르셰 356 특제 알미늄 Gmund 쿠페 한 대에 푹 빠지게 되지요. 아버지는 딸을 위해 당장 그 차를 사주고 싶어했지만, 이미 팔린 상태였습니다.
1957년 투어 오토에서 스털링 모스의 300SL 에 앉아 모스, 그리고
르네 코튼과 대화중인 질베르 티리온
그러나, 맥스는 포기하지 않고 그 특별한 차량을 계속 추적, 아니나 다를까, 새로산 차를 운전해보니 너무 위험하다고 느낀 새 주인에게 찾아가 딜을 해서, 결국 차를 가져오지요. 이 차를 타고 부녀는 그 해 4 개의 대회에 출전, 결국 다시 칸느의 태양 랠리에서 클래스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해에 질베르는 모로코와 카사블랑카 랠리, 투르 드 프랑스, 그리고 벨기에 스프린트 경기에도 참가하여 시속 191 킬로의 클래스 기록도 수립합니다.
1952년 칸느의 태양 랠리 에서 클래스 우승을 차지한 직후, 아버지 맥스 티리온과 함께, 질베르 티리온의 포르셰356 Gmund Coupe
1952년 투어 오토 (Tour Auto)에서, 잉게보르그 폴렌스키의 포르셰 356 쿠페로 참가해서 클래스 우승을 차지했으나, 당시 포르셰에서 일하던
잉게보르그 폴렌스키의 남편으로부터 부적절한 서포트를 받았다는 이유로 우승이 취소됩니다. // 질베르 티리온의 벨기에 면허증
1953 년 초, 그녀는 파리-생 라파엘 랠리에서 거의 선두에 달리던 중 사고를 당해서 두 달 동안 경기에 참가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 기간 동안 열렸던 밀레 밀리아에는 지정된 시트에 아버지 맥스가 대신 참가해서 클래스 준우승을 차지하지요. 하지만, 5월에 질베르는 다시 잉게보르그 폴렌스키(Ingeborg Polensky)의 포르셰를 타고 뉘르부르그링에 출전, 8 위를 차지하고, 계속해서 프랑스 여성 드라이버인 애니 부스키에(Annie Bousquet) 와 함께 피아트 1100 을 몰고 스파 24 시간 레이스에 참가, 전체 16 위, 그리고 레이디스 컵 우승과 벨기에 국왕 컵을 획득합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서킷과 랠리, 알핀, 힐클라임, 모로칸 랠리, 투르 드 프랑스, 투르 드 벨지움 등에 쉬지않고 참가하며, 스프린트에도 한 번 더 참가, 201 킬로미터의 새 기록을 수립하기도 하지요.
애니 부스키에와 함께, 고디니 1100
1954 년에는 첫 랠리 우승을 기록하고, 처음으로 나데지 와셰(훗날의 페리어)를 만나며. 애니 부스키에와는 고디니를 타고 밀레 밀리아에 도전, 여성 컵을 획득하는가 하면, 잉게보르그 폴렌스키와도 투르 드 프랑스 5 위, 벨기에 투어 랠리 우승도 차지하게 됩니다. 질베르 티리온은 심지어 고디니 T17S 를 타고 르망에도 출전했으나, 고장으로 11 시간 만에 리타이어 했지요. 다음에는 올리비에 겐디비엔(Olivier Gendebien)과 파트너로 리옹이나 몽블랑, 투어 오브 이탈리아, 라임즈 등의 랠리에서 클래스 우승, 또는 그에 준하는 성적을 냈습니다.
Mercedes 300SL, Olivier Gendebien 과 함께, Stella Alpina 대회에서 // 1953년 Tour Auto 의 Final stage, 포르셰 356
Lise Renaud 와 함께 1955년 Tour de Belgique 에서, 르노 4CV 1063 original 모델
1956 년 파리 1000km 경기 (Paris Mille Kilometres) Anna Maria Peduzzi 와 팀을 이룬 질베르 티리온은 10위를 차지합니다.
1955 년은 고디니 1100 을 타고 12 시간 레이스에서의 우승으로 시작, 메르세데스 300SL 걸윙 쿠페로 힐클라임과 알핀 랠리등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나데지 와셰와 고디니 T155 를 타고 밀레 밀리아에서도 상위권에 안착합니다. 몇몇 대회에서는 리타이어 하기도 했으나, 리스 르노(Lise Renaud)와 한팀으로 왜소한 르노 4CV를 타고 참가한 투어 오브 벨기에에서는 클래스 2 위를 차지하지요.
Anna Maria Peduzzi, Enzo Ferrari 와 함께 - 1956년, Monza // 포르셰 550 을 탄 질베르 티리온
1956 년 투르 드 코스에서 나데지 페리어와 함께한 질베르 티리온
1956 년 역시 리스 르노와 함께 한 몬테 카를로 랠리에서의 클래스 2 위로 시작합니다. 밀레 밀리아에서도 마찬가지로 클래스 2 위를 차지한 이 해에 그녀는 르노 4CV, 메르세데스 300SL, 알파로메오 줄리에타 (자가토), 포르셰 356 쿠페, 포르셰 550 스파이더, 그리고 심지어 페라리 500TR 까지 다양한 차들을 몰며 힐클라임 우승, 뉘르부르크링 1000km 16 위, 1000km 몬자 10 위, 스웨덴 스포츠카 그랑프리 12 위, 그리고 투르 드 프랑스 11 위 등, 쉬지않고 기록을 내지요.
그리고, 바로 이해에 질베르는 르노에서 새로 출시된 귀여운 자동차 도핀으로 리스 르노와 함께 투어 오브 벨기에에 출전, 클래스 우승을 차지하고, 마지막으로, 나데지 페리어(와셰)와 함께 11 월에 참가한 투르 드 코스에서 간발의 차로 남성 경쟁팀이었던 미치 모리스와 람보 자크의 도핀 2 번 차량을 앞지르고 우승하게 됩니다.
두 대의 도핀은 잔고장도 없이, 뛰어난 드라이버와 네비게이팅 코드라이버의 조합으로 채 1분도 안되는 간격으로 우승-준우승을 차지한 것이지요. 하필이면 이렇게 기술과 차량, 그리고 행운의 조합으로 종합 우승을 차지한 것이 여성팀이었기 때문에 이 우승은 좀 더 주목할만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투르 드 코스를 우승함으로써 질베르 티리온은 WRC 급의 가장 굵직한 대회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한 첫 번째 벨기에인, 그리고 여성 드라이버라는 기록을 남기게 되지요. 이 공로로, 연말에는 벨기에 최고의 스포츠인에게 주어지는 국왕 트로피도 받습니다. 티리온과 페리어, 그리고 동일한 르노 도핀은 이듬해인 1957 년 미국에서 열린 세브링 12 시간 레이스에도 참가, 클래스 2 위를 차지하지요.
그런데, 이것이 질베르 티리온의 마지막 경기였습니다. 1956 년, 티리온의 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던 애니 부스키에가 라임 12 시간 레이스에서 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티리온은, 코르시카 일주에서 자신에게 가장 큰 우승을 안겨주었던 도핀과 코드라이버 페리어 와 함께 미국 세브링 레이스웨이를 경험함으로써 유럽, 아프리카, 그리고 미국 대륙 모두에서 레이싱/랠리 경험을 쌓은 셈이지만, 이것을 마지막으로 스포츠 레이싱을 떠나지요. 그녀는, 아버지와 같은 부유한 사업가와 전격 결혼, 그 이후로는 브뤼셀에서 평범한 가정 주부로서의 긴 여생을 보내게 됩니다.
1954년 투르 드 프랑스, 질베르 티리온은 잉게보르그 폴렌스키와 함께 포르셰 356 을 타고 5위를 차지합니다.
모델같은 외모에 불과 3,4 년만에 힐클라임, 익스트림 랠리, 레이싱, 스프린트 등 모든 종류의 자동차 경기를 뛰어난 실력으로 섭렵하고, 세계 무대의 정상까지 밟으며 어릴 때부터의 꿈을 이루었던 벨기에의 명드라이버 질베르 티리온. 너무 이른 은퇴로 애호가들에게 큰 아쉬움을 남겼던 그녀는 2008 년 가족들에 둘러쌓여 마지막을 보낼 때 까지, 단 한 번도 재기를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레이싱 트랙에는 종종 방문해서 레이싱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었다고 하지요. 어쨌거나, 레이서로서의 그 짧은 전성기에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차량은 역시 포르셰 였습니다. 356, 550, 르노 4CV 등 그녀가 가장 많이 탔던 차들은 바로 포르셰와 같은 후방엔진 후륜 구동 차량이었고요.
르노 5CV 도핀 역시 50 년대 후반의 가장 성공적인 후방엔진 후륜 구동 차량 중 하나였지요. 파워면에서 크게 내세울 게 없는 도핀과 연약해 보였던 여성 드라이버의 예상치 못했던 성공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질베르 티리온이 전격 은퇴를 선언함으로써 WRC급 세계 대회를 재패한 첫 여성 드라이버로 오랫동안 남게 된 것처럼 도핀의 우승도 일종의 이벤트 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착각이었습니다. 그 후 5-6 년간, 도핀은 랠리계에서 당시의 다른 어떤 명차도 넘볼수 없는 빛나는 우승의 기록을 쌓게 되거든요.
그렇게, 2 년 후, 제 1 회 투르 드 코스의 험준하고 쌀쌀하지만, 그런대로 화창하기도 했던 일주와는 조금 또 다른 1958 년의 완벽하게 힘들었던 몬테카를로 랠리. 르노의 소형차 도핀은, 다시, 무려 302 대의 경쟁차들을 모두 제치고 종합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그 빛나는 랠리 커리어에 또 다른 한 획을 긋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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