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예기치 않은 사건이 일어났다.
2월 17일 저녁에 가타키리는 저격당했다. 외부로 나다니며 하는 일을 막 끝내고 신용금고로 되돌아가려고 신주쿠 거리를 걸어가고 있을 때, 가죽 점퍼를 입은 젊은 남자가 갑자기 그의 앞으로 뛰어나왔다. 거의 표정이 없고 얄팍한 얼굴을 한 남자였다. 손에는 검고 작은 권총이 쥐어져 있는 게 보였다. 권총은 너무 검고 너무 작았기 때문에 진짜 권총으로 보이지 않았다. 가타키리는 멍하니 그 손 안에 있는 검은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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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공포란 인간의 상상력에서 나온 공포를 말합니다. 하고 개구리 군은 말했다. 가타키리는 망설이지 않고 상상력의 스위치를 내려, 무게 없는 조용함 속으로 가라앉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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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확실한데, 통증은 없다. 아니, 통증뿐만 아니라, 감각이라는 걸 전혀 실감할 수 없다. 손을 들어올릴 수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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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댁은 전혀 저격당하지 않았어요. 오늘 아침에 큰 지진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말이에요.”
가타키리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럼 저는 왜 병원에 와 있습니까?”
“가타키리 씨는 어제 저녁에 가부키쵸 노상에서 갑자기 쓰러져 있는 게 발견되었어요. 외상은 없습니다. 단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을 뿐이에요. 원인은 지금으로선 확실한 것을 알 수 없어요. 잠시 후 의사 선생님이 오시니까 이야기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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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하고 간호사는 말했다. “어젯밤에는 심하게 가위눌리고 있었어요, 가타키리 씨. 나쁜 꿈을 꽤 많이 꾸었던 것 같아요. 몇 번이나 큰 소리로 ‘개구리 군’ 하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개구리 군이라는 건 친구 별명인가요?”
가타키리는 눈을 감고 심장의 고동에 귀를 기울였다. 그것은 천천히 규칙적으로 생명의 리듬을 나타내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고, 어디서부터가 망상의 영역에 속하는 것일까?
그날 밤에 개구리 군이 병실로 찾아왔다. 가타키리가 잠에서 깨어나자, 작은 불빛 속에 개구리 군이 있었다. 개구리 군은 철제 의자에 앉아 벽에 기대어 있었다. 매우 피곤한 것처럼 보였다. 커다랗게 튀어나온 녹색 눈은, 가로로 그어진 반듯한 선처럼 접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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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래요. 가타키리 씨는 꿈속에서 정신을 차려 나를 도와 주었어요. 그래서 나는 지렁이 군을 상대로 어쨌건 끝까지 싸울 수 있었던 겁니다. 가타키리 씨 덕분에요.”
“알 수 없는 일이군요. 나는 오랜 동안 쭉 의식을 잃고 있었고, 링거 주사를 맞고 있었어요. 내가 꿈속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군요.”
“그게 좋아요, 가타키리 씨. 아무것도 기억하고 있지 않은 편이 좋아요. 아무튼 모든 격렬한 싸움은 상상력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싸움터죠. 우리는 거기서 이기고, 거기서 패배합니다. 물론 우린 누구나 유한한 존재고, 결국은 패배하죠. 하지만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간파한 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어떻게 이기느냐, 하는 이기는 방식보다, 어떻게 지느냐 하는 패배하는 방식에 따라 최종적인 가치가 정해집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 못지않게 어떻게 죽느냐에 따라 인생의 가치가 결정될 수 있다는 거죠. 나와 가타키리 씨는 어떻게든 도쿄의 괴멸을 저지할 수 있었습니다. 15만 명의 사람들이 죽음의 검은 손으로부터 피할 수 있었어요.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우린 그걸 달성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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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식으로 지렁이 군을 격파시켰지요? 그리고 나는 무슨 일을 했나요?”
“우리는 죽을 힘을 다하여 싸웠습니다. 우리는......” 개구리 군은 여기서 입을 다물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나와 가타키리 씨는 손에 들 수 있었던 모든 무기와 모든 용기를 사용했습니다. 어둠은 지렁이 군의 편이었어요. 가타키리 씨는 수동 발전기를 가지고 와 힘껏 발로 밟아서 그 장소에 밝은 빛을 비추어 주었어요. 지렁이 군이 어둠의 환영을 구사하여 가타키리 씨를 몰아내려고 했죠. 그러나 가타키리 씨는 거기에 버티어 서서 머물러 있었습니다. 어둠과 빛이 서로 세차게 싸웠어요. 그 빛 속에서 나는 지렁이 군과 격투했습니다. 지렁이 군이 나의 몸에 휘감겨서, 끈적끈적한 공포의 액체를 뿌렸어요. 나는 지렁이 군을 토막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토막내도 지렁이 군은 죽지 않았어요. 단지 흩어져 분해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개구리 군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다시 없는 힘을 쥐어짜 입을 열었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는 신에게 버림받은 사람들을 더할나위 없이 우아하게 묘사했어요. 신을 창조해 낸 인간이 그 신으로부터 버림받는다는 처절한 패러독스 속에서, 그는 인간 존재의 존귀함을 발견한 겁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지렁이 군과 싸우면서 문득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백야>를 생각해 냈습니다. 나는......” 하고 말하다가 개구리 군은 잠시 머뭇거렸다. “가타키리 씨, 잠을 좀 자도 되겠습니까? 좀 피곤해서요.”
“푹 자요.”
“나는 지렁이 군을 물리칠 수 없었어요” 하고 말하고 개구리 군은 눈을 감았다. “어떻게든 지진이 일어나지 않도록 저지할 수는 있었지만, 지렁이 군과의 싸움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어떻게든 무승부로 몰고가는 일뿐이었어요. 나는 지렁이 군에게 해를 주었지만, 지렁이 군도 나에게 피해를 입혔습니다. ...... 하지만 가타키리 씨.”
“뭐죠?”
“나는 순수한 개구리 군이지만, 동시에 ‘비 개구리 군’의 세계를 표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는데......”
“나도 잘 몰라요” 하고 개구리 군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단지 그런 느낌이 들 뿐이에요. 눈에 보이는 게 반드시 진실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나의 적은 나 자신 속의 나이기도 해요. 나 자신 속에는 ‘내가 아닌 나’가 들어 있습니다. 내 머리는 아무래도 혼탁해진 것 같아요. 기관차가 달려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난 가타키리 씨가 그걸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
“개구리 군, 당신은 지금 매우 피곤해 보여요. 한숨 자고 나면 좀 나아질 거예요.”
“가타키리 씨, 나는 점점 혼탁 속으로 되돌아가고 있어요. 그렇지만 만일...... ,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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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키리는 두꺼운 옷에 싸여 있는 듯이 잠들어 있는 개구리 군의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병원에서 퇴원하면 <안나 카레니나>와 <백야>를 사서 읽어 봐야겠다고 가타키리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소설에 대해서 개구리 군과 함께 실컷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윽고 개구리 군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개구리 군이 잠결에 몸을 흔들고 있는 거라고 가타키리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개구리 군은 뒤에서 누군가가 흔들고 있는 커다란 인형처럼 어딘지 부자연스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가타키리는 놀라서 숨을 죽이며 그 상태를 엿보고 있었다. 그는 일어서서 개구리 군 곁에 가 보려 했다. 그러나 온몸이 마비되어 말을 듣지 않았다.
이윽고 개구리 군의 눈 바로 윗부분에 커다란 혹이 솟아올랐다. 어깨 주위나 옆구리에도 같은 모양의 혹이 보기 흉한 거품처럼 솟아올랐다. 곧 온몸이 혹투성이가 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가타키리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갑자기 혹 하나가 터졌다. ‘탁’ 소리가 나면서 그 부분의 피부가 사방으로 튀었고, 걸쭉한 액체가 내뿜어져 역겨운 냄새가 떠돌았다. 마찬가지로 다른 혹들도 잇따라 터졌다. 모두 스무 개 내지 서른 개의 혹이 파열되어, 그 피부 껍질과 체액이 병실 벽에 튀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지독한 악취가 좁은 병실 가득히 자욱했다. 혹이 터진 다음엔 어두운 구멍이 나타났다. 그리고 거기서 크고 작은 여러 가지 구더기 같은 것들이 우글우글 기어 나오는 게 보였다. 말랑말랑한 흰 구더기였다. 구더기에 이어서 작은 지네 같은 것도 나왔다. 수많은 다리를 가진 지네들이 굼실굼실 움직이며 내는 기분 나쁜 소리도 들렸다. 벌레들이 계속 줄을 이어 잇따라 기어 나왔다. 개구리 군의 몸은 - 전에 개구리 군의 몸이었던 것은 - 여러 종류의 시커먼 벌레들로 구석구석까지 뒤덮여 버렸다. 커다랗고 둥근 두 개의 눈알이 눈구멍에서 분리되어 바닥에 똑 떨어졌다. 강한 턱을 가진 검은 벌레들이 그 눈알에 꾀어들어 걸신들린 것처럼 먹어댔다. 앞을 다투듯이 지렁이 떼가 미끈미끈하게 병실 벽을 기어올라 이윽고 천장에 이르렀다. 그것은 형광등을 뒤덮었고, 화재 경보기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바닥 위에도 벌레들로 가득했다. 벌레들은 전기 스탠드의 전구를 뒤덮어서 그 빛을 차단했다. 물론 그것들은 침대 위로도 기어 올라왔다. 온갖 벌레들이 가타키리의 이불 속으로 잠입해 들어왔다. 벌레들은 가타키리의 다리 위로 기어오르고, 잠옷 속으로 기어 들어와, 다리 가랑이 속으로 들어왔다. 작은 구더기나 지렁이가 항문이나 귀, 코를 통해 체내로 들어왔다. 지네들이 억지로 입을 열어 그 속으로 잇따라 잠입해 들어왔다. 가타키리는 세찬 절망 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누군가가 불을 켰다. 방 안이 빛으로 충만해졌다.
167-
어떤 게 꿈이고 어떤 게 현실인지 그 경계선을 구분할 수가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게 반드시 진실이라고는 할 수 없어.” 가타키리는 자기 자신에게 타이르듯이 이렇게 말했다.
“그래요” 하고 간호사는 말하며 미소지었다. “특히 꿈의 경우는 말예요.”
“개구리 군”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개구리 군이 어떻게 했나요?”
“개구리 군 혼자 지진이 가져올 재앙으로부터 도쿄를 구해 냈어요.”
“다행이군요” 하고 간호사는 말했다. 그리고 링거액을 새로 바꾸었다. “다행이네요. 도쿄에는 더 이상 지독한 게 필요 없거든요. 지금 있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하지만 그 대신 개구리 군은 많이 다치고 없어져 버렸어요. 아니면 본래의 혼탁 속으로 되돌아갔던가. 이젠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간호사는 미소를 띤 채, 타월로 가타키리의 이마에 난 땀을 닦았다. “가타키리 씨는 정말 개구리 군을 좋아한 것 같네요.”
“기관차 같았어” 하고 가타키리는 꼬부라지는 혀로 말했다.
“누구보다도.” 그러곤 눈을 감고, 꿈이 없는 조용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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