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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the Quake - All God's Children Can Dance Pt. II

이박오 2013. 7. 5. 23:29

 

 

102-3

 

요시야의 영혼은 이제 고요하게 맑게 개인 한 시간과 한 장소에 잠시 멈춰 서 있다. 뒤쫓던 분이 진짜 아버지든, 어머니가 말하는 나를 낳아 주신 신이든 혹은 자신과는 무관하게 우연히 어딘가에서 오른쪽 귓불을 잃었을 뿐인 아무 인연도 없는 사람이든, 그건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거기에는 이미 하나의 신과 같은 거룩한 존재가 뚜렷한 형태로 나타나는 현현이 있었고 비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건 얼마나 영예로운 일일까.

 

그는 투수 마운드 위에 올라가 닳아 빠진 투수판 위에 서서 한껏 크게 기지개를 켰다.

 

...

 

그는 마운드 위에서 양팔을 빙빙 돌려 보았다. 그리고 그에 맞춰 다리를 율동적으로 앞으로 내밀어 보기도 하고, 옆으로 뻗쳐 보기도 했다. 그 춤과 같은 움직임을 한동안 계속하고 있으려니까, 몸이 조금씩 따뜻해졌고, 생체기관의 제대로 된 감각도 되돌아왔다. 정신을 차려 보니 두통도 거의 사라져 가고 있었다.

 

 

 

104

 

요시야는 그 말을 듣고 약간 기분이 상했지만, 그래도 그녀를 따라다니며 몇 번 춤을 추는 동안, 춤추는 것이 점점 좋아지게 되었다. 음악에 맞춰서 무심코 몸을 움직이고 있으면, 자기 몸 안에 있는 자연스런 율동이 세계의 기본적인 율동과 연계하고 호응하고 있는 것이라는 확실한 실감이 있었다. 조수의 간만이나 들판 위로 부는 바람이나 별들의 운행 같은 것이 결코 자신과 무관한 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게 아니라고, 요시야는 생각했다.

 

그 여학생은 요시야의 페니스만큼이나 큰 페니스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큰데 춤출 때 방해되지 않니, 하고 그녀는 그걸 손으로 쥐어 보면서 물었다. ... 우선 그건 미적인 관점에서 봐도 지나치게 컸다. 크기만 할 뿐 축 늘어지고 여간 굼뜨고 아둔하게 생긴 것이 아니었다. 그는 될 수 있는 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105

 

그러나 언젠가부터 갑자기 모든 게 어리석게 느껴졌다. 요시야는 외야 플라이 볼을 제대로 잡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효험이 없었고, 그 대신 신은 남보다 큰 성기를 준 것이다. 세상에 그런 괴상한 거래가 어디 있단 말인가?

 

...

 

나쁘지 않았다. 요시야는 눈을 감고 하얀 달빛을 피부로 느끼면서 혼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기분에 딱 맞는 멋진 음악을 생각해 낼 수 없었기 때문에, 풀의 흔들림과 구름의 흐름에 맞춰서 춤을 추었다. 순간 어딘가에서 누군가 보고 있는 기척을 느꼈다. 누군가의 시야 속에 있는 자신을, 요시야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몸이, 피부가, 뼈가 그것을 감지해 냈다. 그러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게 누구든 간에, 보고 싶으면 실컷 봐라.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

 

하나의 움직임이 다음 움직임을 부르고, 다시 다음 움직임이 자율적으로 이어져 갔다. 몸은 여러 가지 도형을 그려 냈다. 거기에는 패턴이 있었고 변화가 있었고 즉흥성이 있었다. 리듬 뒤에 리듬이 있었고, 리듬 사이에 또 보이지 않는 리듬이 있었다. 그는 춤추며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그 리듬들의 복잡한 뒤엉킴을 바라볼 수 있었다. 갖가지 동물들이 숨은 그림 찾기 퍼즐처럼 보일락말락하며 숲 속에 숨어 있었다. 그중에는 본 적도 없는 무시무시한 짐승도 섞여 있었다. 그는 이윽고 그 숲을 빠져 나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공포 따윈 없었다. 그것은 그 자신 속에 있는 숲이었다. 그 자신을 형성하고 있는 숲이었다. 그 자신이 안고 있는 짐승이었다.

 

 

 

106

 

그리고 문득 자신이 굳게 딛고 서 있는 대지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거기에는 깊은 어둠의 불길한 울림이 있었으며, 아무도 모르게 욕망을 전하는 보이지 않는 흐름이 있었으며, 끈적끈적한 벌레들의 꿈틀거림이 있었으며, 도시를 파괴하여 허섭쓰레기의 산더미 같은 폐허로 바꾸어 버린 지진의 진원지가 있었다. 그것들도 또한 지구의 율동을 만들어 내는 일원인 것이다. 그는 춤추는 걸 멈추고 숨을 고르게 쉬면서, 바닥이 보이지 않는 구멍을 들여다보듯 발 밑의 땅바닥을 주의깊게 내려다보았다.

 

요시야는 멀리 붕괴된 거리에 있는 어머니를 생각했다. 만약 이대로 원하는 대로 시간이 거꾸로 잘 뒤돌아가서, 지금의 내가, 그 혼백이 아직 어둠의 심연 속에 있었던 젊은 시절의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면,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아마 두 사람은 혼미한 진흙탕 속에 뒹굴며 틈새도 없이 합쳐지고 서로를 탐하고, 그리고 심한 보복을 받게 됐을 것이다. 그렇지만 무슨 보복을 받게 된들 그게 어떻다는 거야. 그런 말을 하려고 입을 연다면, 훨씬 이전에 보복을 받았어야 했다. 내가 있는 주변에 있는 도시야말로 무참하게 붕괴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107

 

"지금까지 말을 못했지만, 나는 신의 아들이야. 그러니까 나는 '아무하고도' 결혼할 수 없어."

 

 

 

108

 

자네 어머니는 때묻지 않은 마음의 소유자일세.

 

...

 

사과할 건 하나도 없습니다. '욕정을 품었던' 건 당신만이 아닙니다.

 

...

 

요시야는 잠자코 다바다 씨의 손을 잡고 한참 동안 있었다. 가슴 속에 있는 상념을 손을 통해 상대방에게 전하려고 했다. '우리의 마음은 돌이 아닙니다. 돌은 언젠가 무너져 내릴지도 모릅니다. 모습과 형태를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음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그 형태가 없는 마음을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어디까지나 서로 전할 수 있습니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을 춥니다.' 그 다음날, 다바다 씨는 숨을 거두었다.

 

 

 

요시야는 투수 마운드 위에 웅크리고 앉은 채 한동안 시간의 흐름 속에 몸을 맡겼다. 멀리서 희미하게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이 불어 풀잎을 춤추게 하고, 풀의 노래로 축복하다가 멈추었다.

 

신이여, 하고 요시야는 소리내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