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베겟머리에 있는 시계를 보려 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시계는 사라지고 없었다. 시계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것이다. 안경도 없다. 아마 자신이 무의식중에 어딘가에 팽개쳐 버린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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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슴만 울렁거릴 뿐, 토해 버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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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빛과 흰 연기가 눈 안쪽 깊은 데에서 난잡하고 집요하게 뒤섞여 있었다. 전망이 묘하게 단조로웠다. 죽는다는 건 이런 것일까, 하고 그는 문득 생각했다. 이런 기분은 한 번이면 족하다. 지금 이대로 죽어도 좋다. 그러니까 신이시여, 제발 부탁이니까, 앞으로 두 번 다시 이같은 꼴은 당하지 않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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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하고 이처럼 술을 마셨더라. 전혀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생각해 내려고 하면, 머릿속이 돌로 변해 가는 것 같았다. 그래, 나중에 천천히 기억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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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열 시 반경, 귀가길에 가스미가세키 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탔을 때, 그는 귓불이 없는 사람을 보았다.
......
요시야는 망설이지 않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정신을 차려 보니 목구멍 안쪽이 헌 가죽처럼 바짝 말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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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요시야하고는 열여덟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사람들은 항상 어머니를 누나로 착각하곤 했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한 아들의 어머니라는 자각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어쩌면 그냥 단순히 괴상한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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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행위는 남아도는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두려움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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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야는 지금까지, 어머니가 돌발적이고 종종 파멸적인 (그리고 그런 일은 좋은 뜻에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발상을 실행에 옮기려 하는 것을, 전력을 기울여 막아 왔던 것이다.
......
어머니는 언젠가는 아들과 따로 떨어져서 살아가야 할 날이 올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
그처럼 더럽고 냄새 나는 어머니를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소동이 다시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상상만 해도 요시야의 마음은 아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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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눈이 흐려서 진실한 모습을 잘 볼 수 없어. 하지만 요시야야, 네 아버지이신 분은 세계 그 자체란다. 넌 그 사랑 속에 깊이 감싸여져 살고 있는 거야. 그걸 자랑으로 생각하고 올바르게 살아가야 한단다."
"그러나 신은 모든 사람들의 것이잖아요?" 하고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요시야가 말했다. "아버지라는 건 서로 달라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내 말 잘 들으렴. 네 아버지이신 '신주님'은 언젠가 너만의 것으로서 네 앞에 모습을 보이실 거야. 생각지도 못한 때에,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넌 '신주님'을 만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만일 의심하는 마음을 품거나 신앙심을 버리게 된다면, 실망하셔서 영원히 너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실지도 몰라. 알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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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건 나쁘지 않아. 하지만 넌 좀더 큰 것, 좀더 높은 것을 위해 기도해야 해. 구체적으로 이거다 하고 한정시켜 놓고 기도하는 건 올바르지 않은 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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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십대였을 때, 나는 깊은 어둠 속에서 살고 있었단다. 내 영혼은 갓 생겨난 진흙의 바다처럼 혼란스럽고 흐트러져 있었단다. 진실의 빛은 어두운 구름 뒤에 숨어 있었지. 그래서 나는 몇 남자와 사라옫 없이 '마구와이'를 했단다. 마구와이가 뭔지는 알고 있니?"
알고 있다고 요시야는 말했다. 성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어머니는 때때로 굉장히 고풍스러운 말을 사용하곤 했다. 요시야도 그때쯤 이미 몇 명의 여성과 '사랑도 없이 마구와이'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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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른 살이었고,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었거든.얘기는 늘 따분하게 하지만, 정직하고 제대로 된 인간이었지. 그는 오른쪽 귓불이 없었는데, 어렸을 적에 개에게 물어뜯겼기 때문이라더구나.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어디서 본 적도 없는 커다랗고 검은 개가 덤벼들어서 물어뜯었다는 거야, 글쎄. 그는 그래도 귓불만 뜯긴 게 다행이라고 말하더구나. 귓불이 없어도 사는데 별다른 지장은 없다고. 코라면 그렇게는 안 되겠지.
난 분명히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단다. 그와 사귀는 동안 나는 점점 정상적인 모습을 되찾게 됐지. 그와 관계를 하고 있으면 쓸데없는 생각은 하나도 안 할 수 있더구나. 나는 그의 절반밖에 없는 귀까지도 좋아하게 되었단다. 자기 일에 열심인 사람이었으니까, 잠자리에서도 항상 피임에 대한 강의를 했었어. 언제 어떤 식으로 콘돔을 끼우고, 언제 어떤 식으로 빼내는가에 대해서. 트집을 전혀 잡을 수 없는 완벽한 피임이었지. 그런데도 나는 또다시 임신을 하고 말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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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그는 나를 그렇고 그런 불량 소녀로만 생각했던거야. 그 이후로는 두 번 다시 그를 만나지 않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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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이라는 건 바로 '신주님'의 현시를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오오자키 씨, 당신이 아이를 갖는 걸 '신주님'께서 요구하고 계신 겁니다. 오오자키 씨, 그 아인 누구의 아이도 아닙니다. 하늘에 계시는 분의 아이입니다. 나는 태어날 그 사내아이에게 아주 좋고 선하다는 뜻으로 '요시야'라고 이름을 붙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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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야는 직감적으로 그 사람이 자신의 생물학적인 아버지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나라는 아들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조차도 아마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그 사람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는다 해도 쉽게 믿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전문가로서 완벽한 피임을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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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다른 신자들과 함께 오사카에 있는 교단 시설에서 묵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매일 아침 등산용 배낭에 생활 필수품들을 가득 담아 전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곳까지 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깨지고 부서진 기와와 벽돌로 매몰되어 있는 국도를 따라 고베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생필품을 나누어 주었다. 등산용 배낭의 무게는 15 킬로그램이나 된다고 어머니는 전화로 말했다. 그곳은 요시야 자신으로부터도, 그리고 자기 맞은편에 앉아서 열심히 잡지를 읽고 있는 그 사람으로부터도 몇 광년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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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야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서 낯선 집들을 돌아다니는 것을 특별히 고통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의 어머니는 특별히 다정했으며 그 손은 따뜻했다. 차갑게 문전박대를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했으나, 그 때문에 이따금 친절한 말을 들으면 기뻤다. ... 이것으로 아버지인 하느님도 자신을 조금은 인정해 주실 거라고 요시야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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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된 자아가 자기 안에서 눈을 떠 감에 따라, 사회 통념과는 양립할 수 없는 교단의 독자적인 엄격한 계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요시야를 결정적으로 신앙에서 멀어지게 한 가장 근본적인 것은,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끝없는 냉담함이었다. 그것은 어둡고 무겁기만 한, 침묵하는 돌 같은 것이었다. 아들이 신앙을 버렸다는 사실은 어머니를 매우 슬프게 만들었지만, 신앙을 버리겠다느 요시야의 결의는 흔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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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불륜 사건 같은 걸 조사하고 있나 보죠?”
요시야는 말했다.
“아니에요. 헤드 헌팅에 관계된 일이에요. 회사끼리의 직원 스카우트에 관련된 거죠.”
“아, 그래요” 하고 운전사는 놀란 것처럼 말했다. “최근에는 회사가 스카우트 문제로 이런 일까지 하고 있군요. 전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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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야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곳까지 택시를 타고 온 이유는 도대체 뭘까? 그는 지금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지 않는가? 아니, 어쩌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긴 하나, 조금 먼 길을 돌아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2월의 밤은 산책하기엔 너무 추웠다. 얼어붙은 바람이 이따금 요시야의 등을 떠밀 듯 불며, 도로 위를 스쳐 지나갔다.
...
높은 벽으로 양쪽을 둘러친 똑바로 뻗은 좁은 골목길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 스쳐 지나가기도 힘들 정도로 좁고, 밤 바다의 심연처럼 어두웠다. 그 사람의 구두소리만을 따라서 요시야는 그 뒤를 따랐다. 그는 요시야 앞을, 지금까지와 같은 보조로 계속해서 걸어가고 있었다. 빛이 닿지 않는 세계에서 요시야는 소리에만 매달리듯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곧 구두소리가 들리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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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요시야는 벽에 부딪혔다. 막다른 골목인 것이다. 정면이 금속으로 된 울타리로 막혀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곳에는 한 사람이 간신히 빠져 나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누군가가 일부러 뚫어 놓은 구멍이었다.
...
그곳은 야구장이었다. 요시야가 지금 서 있는 곳은 외야의 센터 부근인 것 같았다. 잡초가 발로 짓밟혀져 있었고, 수비가 위치할 만한 부분만 상처 자국처럼 땅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
101-2
요시야는 코트 주머니에 양손을 쑤셔 넣고, 숨을 죽인 채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라이트 쪽을 바라보고, 레프트 쪽을 바라보고, 투수 마운드 쪽을 바라보고, 발 밑의 지면을 바라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엔 윤곽이 뚜렷하게 뭉쳐진 구름 몇 점이 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장자리를 달이 묘한 색깔로 물들이고 있었다. 풀 속에서 희미하게 개똥 냄새가 났다. 그 사람은 사라져 버린 것이다. 흔적도 없이. 다바다 씨가 이곳에 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말이지, 요시야. ‘신주님’은 예상할 수 없는 형태로 우리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신다네.”
그러나 다바다 씨는 3년 전에 요도암으로 죽었다. 죽기 전 몇 개월 동안 그는 옆에서 보고 있는 것도 가슴 아플 정도로 격심한 고통을 겪었다. 왜 그는 단 한 번도 신을 시험하려 하지 않았을까? 왜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 달라고 신에게 기도하지 않았을까? 다바다 씨에게는 그렇게 (바로 코앞의 문제나 아주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십사고) 기도할 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는 것처럼 요시야에게는 생각되었다. 그는 골치 아픈 계율도 엄격히 지키고, 하느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왔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 하고 요시야는 문득 생각했다 - 신이 인간을 시험할 수 있다면, 왜 인간은 신을 시험해선 안 된단 말인가?
관자놀이께가 약간 쑤셔댔으나 그게 숙취 때문인지 또 다른 원인 때문인지 잘 구분할 수가 없었다. 요시야는 얼굴을 찡그리고 주머니에서 양손을 꺼낸 다음 성큼성큼 홈 베이스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숨을 죽이면서 아버지 같은 사람의 뒤를 미행해 왔다. 그것 외에는 거의 아무 것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이 낯선 동네에 있는 야구장에까지 끌려 들어왔다. 하지만 그 사람의 모습을 갑자기 놓쳐 버리고 나자, 그것과 때를 맞추듯이 일련의 행위들의 중요성이 그의 안에서 돌연 뭐가 뭔지 알 수가 없게 됐다. 의미 자체가 해체되어 본래대로 되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 옛날에는 외야 플라이 볼을 제대로 잘 잡아내는 것이 생사를 갈라 놓을 정도로 중대한 현안이었지만, 얼마 후 그게 아무 의미도 없어졌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도대체 ‘이 일에서’ 무얼 구하려고 했었던 걸까? 걸음을 옮기면서 요시야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지금 내 자신이 ‘여기에’ 있는 것의 어떤 연결고리 같은 걸 확인하려 했던 것일까? 자신이 어떤 새로운 사실의 줄거리 속에 짜넣어져서 보다 잘 다듬어진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길 바라고 있었던 걸까? 아니다, 하고 요시야는 생각했다. 그런 건 아니었다. 내가 뒤쫗고 있었던 건, 아마도 나 자신이 안고 있는 마음속 암흑의 꼬리 같은 것이었다. 나는 우연히 그걸 보게 되었고, 뒤쫓아가며 매달리려 하고, 결국에는 종전보다 깊은 암흑속에 내던져 버리고 만 것이다. 이제 내가 그것을 보게 되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
속도에 주의 = 읽는 행위가 이해를 추월하거나, 반대로 어떠한 체감이 가독 속도를 능가하는 경우
- 두 경우 모두 위험하다. 비록 두 번째의 경우에는 다른 독해의 가능성이 열리기도 하지만.
‡‡
그것은 마치 불꺼진 야구장에서 스마트폰을 켜는 숨은 사람들의 조급함 과도 같다.
사실 '어둠 속에 핸드폰을 켜드는 관중'은 군중, 대중들이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인상적인 이미지이긴 하지만
과학이나 이성 같은 것과는 대치되는 불안과 그 불안에서 체득될 수 있는 천사나 악마, 혹은 신의 현현의 느낌은 그와는 좀 다른 듯 하다.
‡‡‡
그래서 이 단편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은 어둠 속에서 춤추는 개구리, 또는 신으로 변신한다.
어둠 속에 숨은 짐승들의 숲, 그 존재를 느끼고, 그 공포를 느끼고, 그리고, 그들과 같은 호흡으로 춤추면서
신의 아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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