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청연을 보고..

이박오 2012. 3. 13. 11:47

1

논란이 많았던 영화이지만, 그 논란은 언제나 민족 감정, 혹은 국가 정체성, 또는 역사적 사실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청연은 추락에 관한 영화이다. 영화는 추락으로 시작해서 추락으로 끝나며,

비행사 박경원은 계속해서 그 지점으로, 자기를 뛰어 넘는 그 지점으로 몰고간다.

추락은 운명일지 몰라도, 누군가는 그 예정된 추락을 향해 점점 더 빠르고 높게 뛰어 오름으로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그녀는 이런 의미에서 매 순간 죽어가고 있다. 혹은 자기 파괴의 길로 묵묵히, 그러나 빠르게 날아간다.

나는 이 영화가 그런 인물을 그린 것이지 역사적 위인이나 영웅에 대한 전기라고 보지 않았다.

국적이 문제가 되고, 또 누가 첫번째 였는가 하는 역사적 진실도 중요하다.

하지만, 친일행적을  했고, 첫번째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지탄을 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굳이 역사적인 척 하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안타까운 점 중 하나는 역시 고증과 허구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렸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2

하지만, 청연은 뭐랄까.. 좋아하는 스타일의 영화는 아니다.

일단 헐리우드 스타일의 드라마 전개와 인물 관계 구성이 맘에 들지 않는다.

한지혁이나 이정희, 기베 같은 인물들이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이 인물들의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느냐 하는 관점에서 이 영화는 너무나도 진부하게 헐리우드적이다.

그리고, 음악은 뭐랄까

그냥 안 들었다. 말러 5번이나 베토벤 5번을 쓰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 개인적으론

없어도 될 것 같다 는게 물론 개인적인 내 생각이었다.

요새 영화들을 볼 때 대부분 음악은 아예 듣지 않게 되는 이유도

뭐랄까 없어도 되는데 지나친 배려란 느낌도 들고,

영화도 산업이다 보니 모든 부분이 과잉생산이 된다는 느낌도 들고,

때로는 감독의 욕심이 너무 과해서 그렇다는 느낌도 들고,

하여간 과잉이라는 느낌이 많이 든다. (이것은 음악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내용은 안 좋은 점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반두비 같은 영화의 마지막은 무척이나 신선했다.)

 

3

이 영화가 더 안타까운 점은 장진영과 김주혁이 보여주는 열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장진영의 경우 싱글즈 이후로

나름 '열렬한' 팬이었으므로 더 말할 것이 없겠지만, 김주혁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가 아닌데도,

이 영화에서는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남겨주었다. 그리고 일본 측 배우들도 무척 좋았다고 생각한다.

(요새 한국에서 만드는 합작 영화에 참여하는 아시아 배우들은 대체로 무척 성실하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영화도, 그리고 역도산 같은 영화도 (재일한국인의 이야기를 위인전으로 다룬 작품들)

막상 일본 친구들에게는 그리 환영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가령 피와 뼈 같은 영화와는 전혀 다른 반응)

아무리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한들, 자국인을 앞서는 모습 같은 것을 보이는 순간 기분이 나빠지는 것을

우리도, 그들도,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만, 받아들이기도 쉽지는 않은 것이다.

그래서, 반두비의 남자 주인공이 협박을 받거나 우리학교의 선생님들이 협박을 받은 것처럼

거주 외국인의 문제를 다룬 영화들은, 특히, 과거의 역사적 상흔이 있거나 할 때에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 말고도 현실의 국가간의 전쟁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역사란, 그리고 국가란 무엇인가.. 참으로 어려운 숙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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