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連作『地震のあとで』その四 タイランド

이박오 2013. 7. 5. 23:39

태국에서 일어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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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보았던 개업의들에게는 전선에서 지휘를 하는 고참 장교와도 같은 침착성이 있었고, 또한 사쓰키와 같은 실전 경험이 없는 전문적인 병리전문의를 한눈에 구별할 수 있는 뛰어난 안목을 갖추고 있는 것 같았다. “괜찮습니다. 저 혼자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자리로 돌아가 편히 쉬십시오.” 하고 그는 차갑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입을 우물우물하면서 얼빠진 변명을 하고 좌석으로 돌아와서 변변치 않은 영화를 계속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더라도 어쩌면 이 비행기에는 의사 자격을 갖춘 사람이 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환자는 갑상선 면역계에 중대한 문제를 안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 그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나 같은 사람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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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 모임은 회의라기보다는 오히려 세계적인 가족 모임과도 같은 것이었다. 참가자 전원이 갑상선 전문의였고, 거의 모두 서로를 알고 있었으며, 모르는 사람은 모두에게 소개되었다. 한 마디로 좁은 세계인 것이다.

...

사쓰키는 그들과 함께 있을 때가 가장 마음이 편했다. 그녀는 10년 가까이 디트로이트에 있는 대학 병원에서 갑상선의 면역 기능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도중에 증권 분석가로 일하고 있는 미국인 남편과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다. 그는 술에 빠지는 정도가 해마다 점점 더 심해졌고, 게다가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다. 그 여자는 사쓰키가 잘 알고 있는 여자였다. 그래서 우선 별거 생활을 했고, 남편은 1년 동안 내내 변호사를 동원해서 격렬하게 응수했다. “무엇보다 이혼의 결정적인 이유는 당신이 아이를 갖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이야” 하고 남편은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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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후에 겨우 이혼 조정이 성립되었지만, 수개월 후에 누군가가 병원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그녀의 차, 혼다 아코드의 유리창과 헤드라이트를 깨뜨리고 보닛에 흰 페인트로 일본인을 멸시하는 낙서인 ‘JAP CAR'라고 써 놓은 사건이 일어났다.

...

그녀의 내부에서 무엇인가가 끊어져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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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처럼 아름답게 윤을 낸 구형 감색 메르세데스 벤츠로, 차체에는 얼룩진 데도 전혀 없었다. 새 차보다도 아름다워서, 마치 누군가의 비현실적인 망상으로부터 그대로 살짝 빠져 나온 것처럼 보였다. 가이드 겸 운전 기사로 앉아 있는 사람은 예순 살이 넘어 보였으며 몸이 여윈 태국 남자였다.

...

니밋이라는 게 이름인지 성인지, 그것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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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사람들이 자꾸만 방콕 시내로 코끼리를 몰고 들어오죠” 하고 니밋은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원래는 임업에 사용하던 코끼리들이에요. 그러나 임업만으로는 생계를 꾸려나갈 수 없게 되자, 코끼리에게 재주를 부리게 하여 외국인 관광객들로부터 돈을 벌어 볼 작정으로 도시로 끌고 나온 겁니다. 시민들은 시내에 코끼리가 너무 많아져, 매우 귀찮아하고 있어요. 지난번에는 코끼리가 무언가를 보고 놀라 큰길에서 폭주하는 바람에, 자동차들이 꽤 많이 부서졌습니다. 물론 경찰들도 단속하고 있지만, 코끼리 주인에게서 코끼리를 몰수할 수가 없어요. 설령 몰수한다 해도 들여놓을 곳도 없고, 사료값도 많이 들어요. 그래서 저렇게 방치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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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스테레오 장치가 집에 있었지만, 오페라 이외의 음악을 틀면 노골적으로 언짢은 표정을 지었어요. 오페라 마니아들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성격이 좁쌀같은 인종이 아닌가 생각해요. 남편과 헤어지긴 했지만, 앞으로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오페라를 듣지 않아도 특별히 허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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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매우 아름다운 동작으로 핸들을 꺾었다. 정확하게 같은 곳에 손을 대고 같은 각도로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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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너의 <콘서트 바이 더 시>는 아버지가 즐겨 들었던 곡이었다. 사쓰키는 눈을 감고 옛 기억 속에 잠겼다. 아버지가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별탈없이 잘되어 가고 있었다. 나쁜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느닷없이 무대가 암전되었고 (알아챘을 때에는 아버지는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모든 게 나쁜 방향으로 틀어지고 있었다. 전혀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 것처럼. 어머니는 아버지가 숨을 거둔 지 한 달도 채 안 됐을 때, 재즈 레코드 모음집과 커다란 스테레오 장치를 모두 처분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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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밋은 잠시 동안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그녀 쪽으로 고개를 조금 돌려 이렇게 말했다. “지진이라는 건 참 이상한 거예요. 우리는 밟고 있는 땅이 아주 단단하고 움직이지 않는 거라고 전적으로 믿고 있지요. ‘땅에 발을 붙인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돼요. 견고해야 할 땅이나 바위가 마치 액체처럼 흐물흐물해져 버리잖아요? 텔레비전 뉴스에서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어요. 액상화라고 했던가요? 다행히 태국에서는 큰 지진이 거의 없습니다만.”

 

사쓰키는 차 안의 좌석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리고 묵묵히 에롤 가너의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그 남자’ 가 무겁고 딱딱한 뭔가에 납작하게 깔려 터져 버렸으면 좋으련만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혹은 흐물흐물하게 액체처럼 되어 버린 땅 속에 삼켜져 버렸으면 좋으련만. ‘그거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소망해 온 것이다’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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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라파포트는 사쓰키의 이번 태국 체재를 준비해 준 친구였다. 크메르 루즈가 맹위를 떨치고 있던 때부터 쭉 신문 특파원으로서 동남 아시아 여러 나라를 여기저기 뛰어다닌 아시아 통이라, 태국에서도 발이 넓었다. 그가 가이드 겸 운전사로서 니밋을 추천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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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꿈을 꾸었다. 짧은 꿈이었다. 철망이 쳐진 작은 건물 속에서 토끼 한 마리가 몸을 떨고 있었다., 시간은 한밤중이었고, 토끼는 무언가 다가오는 걸 예감하고 있는 듯했다. 처음에 그녀는 밖에서 그 토끼를 관찰하고 있었는데, 한참만에 제정신이 들자 그녀 자신이 토끼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무언가의 모습을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다음에도 입 안에 언짢은 뒷맛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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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주소와 전화번호도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 남자의 거처를 모르고 지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진이 일어난 직후 사쓰키는 그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보았는데, 물론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집이 납작하게 찌부러져 버렸으면 좋으련만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의 가족이 모두 무일푼이 되어 길거리를 헤매게 되었으면 좋으련만. 당신이 나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태어날 예정이었던 나의 아이들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그 정도의 대가를 치르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니밋이 찾은 수영장은 호텔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었다. 도중에 고개 하나를 넘었는데, 산꼭대기 근처에는 원숭이가 많이 살고 있는 숲이 있었다. 회색 털의 원숭이들은 도로변에 나란히 앉아, 달려가는 차들의 운수를 점치고 있는 듯한 신기한 눈초리로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수영장은 이상하리만큼 넓은 부지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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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당신은 일처리가 아주 확실하시군요.”

“황송합니다” 하고 니밋은 말한 다음, 무표정하게 한 번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는 매우 예의바르게 처신했다.

 

125-6

똑같은 일이 5일 동안 되풀이되었다. ... 수영장 이외에는 어느 곳에도 가 보지 않았다. 사쓰키가 원하는 건 완벽한 휴식이었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 이었다.

 

거기서 수영을 하고 있는 사람은 언제나 사쓰키 한 명뿐이었다. 산골짜기에 있는 수영장의 물은 지하수를 퍼 올려 사용하는지 굉장히 차가워서 수영을 시작할 때는 숨이 막힐 것 같았지만, 몇 번 왕복하고 있을 동안에 몸이 따스해져 알맞은 온도가 되었다. ... 하늘에는 흰 구름이 떠 있었고, 새나 잠자리가 하늘을 가로질러 갔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있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하고 사쓰키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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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3년 동안 방콕 시내에서 노르웨이인 보석상의 운전기사로 일했습니다. 그분과는 쭉 영어로 얘기했죠.”

과연, 하고 사쓰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면, 볼티모어에 있는 병원에서 근무할 때, 동료 중 덴마크인 의사가 한 분 있었는데, 영어를 바로 그런 억양으로 말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문법이 명확하고 억양이 거의 없고, 속어가 나오지 않았다. 이해하기 쉽고 깔끔했지만, 약간 재미가 없었다. 그러나 태국에 와서 노르웨이 식 영어를 다시 듣는다는 건 아무래도 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127-8

니밋은 오랫동안 잠자코 있었다. 어떻게 대답할까 하고 망설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윽고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는 독신이에요. 결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말하자면 33년 동안 그분의 그림자처럼 지내 왔습니다. 그분이 가는 모든 장소에 따라가서 그분이 하는 모든 일을 거들었지요. 마치 그분의 일부처럼요. 그런 생활을 계속하고 있으면, 나 자신이 진정 무얼 원하는지 그것조차 점점 알 수 없게 됩니다.”

...

“이를테면 이 음악만 해도 그래요. ... 나는 그 음악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듣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영혼의 소리를 알아듣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진정으로 나 스스로가 내 귀로 알아들은 건지 어떤지는 분명하게 알 수 없어요. 한 사람과 오랫동안 함께 있으면서 그의 말에 따르고 있으면, 어떤 의미에선 일심 동체처럼 되어 버리는 겁니다. ...”

...

니밋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그와 주인은 동성애 관계에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사쓰키는 생각했다. 물론 직감적인 추측에 지나지 않았다. 근거는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가정하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걸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만일 한 번 더 제게 인생이 주어진다면, 전 같은 일을 한 번 더 되풀이할 겁니다. 똑같은 일을. 선생님은 어떻습니까?”

“모르겠어요, 니밋” 하고 사쓰키는 말했다.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니밋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회색 원숭이들이 있는 산을 넘어 호텔로 되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