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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震のあとで その-二. アイロンのある風景

이박오 2013. 4. 15. 00:18

 

58

하지만 그 이야기 속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은, '기본적으로는' 그 사나이가 죽음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로서는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다만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어려움이 따랐다. 그녀가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이 여행자는 사실 죽음을 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결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력을 다해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살아 남기 위해 자신을 억누르는 것을 상대로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쥰코의 마음 깊은 곳을 뒤흔들어 놓은 것은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그러한 근원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모순성이었다.

[....]

그러나 쥰코는 알고 있었다. 잘못 알고 있는 건 지금 웃고 있는 학생들과 교사 쪽이라는 것을. 그도 그럴 것이,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 이야기의 결말 부분이 어째서 그처럼 조용하고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62

불꽃은 그들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삼켜 버리고, 용서해 가는 것처럼 보였다.

진정한 가족이란 바로 이런 것일 거라고 쥰코는 생각했다.

 

 

63

머리가 나쁜 건 아니었다. 다만 사물에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다. 무엇인가를 하기 시작해도 마지막까지 끝내지 못하게 되었다. 집중을 하려고 하면 머리가 아파 왔다. 호흡이 힘들어지고 심장의 고동이 불규칙해졌다. 학교에 가는 건 고통일 뿐이었다.

 

 

67

그때 모닥불의 불길을 바라보면서, 쥰코는 표현하기 어려운 '무엇인가'를 문득 느꼈다. 단순치 않은 '무언가 깊이가 있는 것' 이었다. 어떤 기분이 뭉친 덩어리라고 해야 좋을지, 관념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생생하고 현실적인 중량감을 가진 것이었다. 그것은 쥰코의 몸 속을 천천히 달려 빠져 나갔고, 그리운 것 같은, 가슴을 옥죄는 것 같은 이상한 감촉만을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그것이 사라진 후 한참 동안 그녀의 팔에는 소름 같은 것이 돋아 있었다.

 

 

68

"하지만 모든 불이 다 그런 건 아니야. 그런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불 모양이 자유롭지 않으면 안 돼. 가스 스토브의 불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거든. 라이터 불에서도 마찬가지야. 웬만한 모닥불도 안 돼. 불이 자유로워지려면 그렇게 되기 위한 공간을 이쪽에서 제대로 만들어지 주지 않으면 안 되거든. 그리고 그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70

두 사람은 다시 불 앞에서 한참 동안 잠자코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이 두 사람 따로따로의 경로를 따라서 흘러가고 있었다.

 

 

72-73

"아저씨는 어떤 식으로 죽고 싶은데요?"

"냉장고 속에 갇혀 죽는 거야" ... 불길이 반사되어 그의 얼굴에 왠지 모를 비현실적인 그림자를 드리웠다.

"좁은 곳에서. 캄캄한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죽어가는 거야.  [....] 그런 꿈을 여러 번 꾸곤 했지. [....] 그것이 이 꿈의 가장 무서운 점이야. 잠이 깨면 목구멍이 바싹 말라 있는 거야.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지. 물론 우리 집에는 냉장고가 없으니까, 그게 꿈이라는 걸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때는 그걸 깨닫지 못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문을 열거든. [....] 이따금 그런 꿈에서 해방되는 시기도 있었어. 1년인가, 그렇지. [....] 2년 정도 그런 꿈을 전혀 꾸지 않았던 적도 있었어. 그런 때에는 여러가지 일이 제대로 잘되어 가는 것처럼 보였지. 하지만 언제나 반드시 되돌아오고 마는 거야. 이제 됐다. 살았다 하고 생각할 때쯤 다시 시작되지. 그러면 어쩔 수가 없어.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구."

 

 

74

"[....] 잭 런던은 아주 오랫동안, 자기는 결국 바다에 빠져 죽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반드시 그런 식으로 죽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거야. 언제든 발을 헛디뎌 밤 바다에 떨어져 아무도 모르게 익사하고 말 거라고." ....] "아니, 모르핀을 맞고 자살했어." [....] "[....] 예감이라는 건 말야, 어떤 경우엔 역할을 대신하는 대역이라고 할 수 있어. 이를테면 죽음의 예감은, 실제로 죽는 건 아니지만, 죽음과 같은 체험을 느껴볼 수 있다는 거지. 어떤 경우엔 말야. 그런 대역은 현실을 뛰어넘어 생생한 것이 될 수도 있어. 그게 예감이라는 행위의 가장 무서운 점이야. [....]"

 

 

75

"[....] 방 안에 다리미가 놓여 있지. 그저 그뿐인 그림이야."...."그 '다리미 그림'은 실은 다리미가 아니기 때문이지."

[....]

"그럼 그건 무엇인가를 대역으로 세우지 않고는 그릴 수 없다는 건가요?"

 

76-

"아저씨."

"왜?"

"저는 속이 텅텅 비어 있어요."

"그래?"

"네."

눈을 감으니까 아무런 이유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눈물은 차례로 뺨을 타고 내려가 떨어졌다. 쥰코는 오른손으로 미야케 씨 치노 팬츠의 무릎 근처를 힘주어 꽉 움켜잡았다. 몸이 가늘게 부들부들 떨렸다. 미야케 씨는 팔을 그녀의 어깨에 두르고 조용히 끌어당겼다. 그래도 쥰코의 눈물은 멎지 않았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다구요" 하고 그녀는 한참 있다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깨끗이 텅 비어 있다구요."

"알고 있어."

"정말로 알고 있어요?"

"그런 것에 꽤 정통하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한숨 푹 자고 일어나 보면 대개는 낫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예요."

[....]

"글쎄...... 어때, 지금부터 나랑 같이 죽을까?"

"좋아요. 죽어도."

"진짜로 죽어도 좋아?"

"전 진짜예요."

[....]

"하지만 어떻게 죽을 거죠?"

"생각해 보자꾸나."

"그래요."

 

준코는 모닥불 냄새에 감싸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쥰코의 어깨를 감싸안은 미야케 씨의 손은 성인 남자의 손치고는 작고 묘하게 울퉁불퉁했다. 쥰코는 이 사람과 함께 살아 나갈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는 건 전혀 불가능하니까. 그렇지만, 함께 죽는 거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미야케 씨의 팔에 안겨 있는 동안 차츰 졸음이 몰려왔다. 틀림없이 위스키 탓이다. 나뭇조각은 대부분 재가 되어 부스러져 버렸지만, 가장 굵은 통나무는 여전히 오렌지색으로 빛나고 있었으며, 그 조용한 따스함이 아직 피부에 느껴졌다. 그게 모두 타 버릴 때까지는 시간이 한참 걸릴 것 같다.

"조금 자도 돼요?" 하고 쥰코는 어리광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좋아."

"모닥불이 꺼지면 깨워 줄 거예요?"

"걱정하지 마. 모닥불이 꺼지면 추워지니까, 싫어도 눈은 떠진다."

쥰코는 머릿속에서 그 말을 되뇌었다. '모닥불이 꺼지면 추워지니까, 싫어도 눈은 떠진다.' 그러고 나서 몸을 웅크리고는 잠시 동안의, 그러나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