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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wheels] Ferrari F430 challenge 2007 Siverstone winner Bruno Senna

이박오 2023. 9. 1. 15:27

 

이 차량은 세나 가문의 이름으로 출전한 유일한 페라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브라질의 전설 아일톤 세나Ayrton Senna 는 페라리를 몰지 못했습니다. 1994년 당시 페라리 팀 매니저였던 장 토드Jean Todt 가 세나에게 자리를 제안했을 때도 성사되지 못했지요. 세나는 왜 페라리를 몰지 못했을까요?

 


"페라리가 폭스바겐 비틀만큼 느리다 해도 나는 여전히 나의 마지막 스타트, 마지막 랩, 마지막 레이스에서 페라리를 몰기를 원합니다. 페라리는 포뮬라 원의 신화입니다. 전통이자 영혼이며 열정이지요."

 


세나가 장 토드와 바로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했던 이유는 제안받았던 시즌이 94년이 아닌 95년이었기 때문입니다. 94년, 페라리에는 이미 계약이 성사된 두 명의 드라이버들이 있었고, 세나가 열정적으로 당장 계약을 요구했어도 토드는 원칙을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실제로 세나는 포뮬라 원에서 계약은 큰 의미가 없다며 토드를 설득했고, 토드 역시, 당시 페라리가 차량에 대한 자존심에도 불구하고 우승하지 못하고 있던 것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최고의 드라이버 영입을 원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계약중인 장 알레시Jean Alesi 와 게르하르트 베르거Gerhard Berger 를 배제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1994년 산 레모 그랑프리에서 윌리엄스 팀의 아일톤 세나는 그만 사망하고 맙니다.

 


아일톤의 조카 브루노 세나 Bruno Senna Lalli 역시 촉망받는 드라이버였고 생전에 아일톤도 그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지만, 이 서거의 타격으로 브루노 역시 오랫동안 써킷을 떠나게 됩니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 즉, 아일톤 세나의 누나 비비안의 남편 플라비오 랄리, 역시 1996년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하면서 공백은 더욱 커졌지요.

 


하지만, 2004년, 집안의 오랜 친구가 된 게르하르트 베르거의 주선과 이탈리아 인 친구가 준 삼촌의 로터스 98T로 브루노는 다시 선수 생활을 시작, 삼촌의 궤적을 따라 맥라렌과 윌리엄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을 뿐 아니라 다른 리그들에서 많은 활약을 하였고, WEC 챔피언, 르망 24시간 레이스 에서의 준우승 등 다양한 경력을 보유하게 됩니다.

 


이 483마력, 8기통의 페라리 f430은 2007년 실버스톤에서 브루노 세나가 운전하여 여유로운 두 번의 우승만을 기록했고 그 이후에 다른 경기에 출전하지 않고 최근까지 순정 상태와 오리지널 리버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록 포뮬라 원은 아니지만 위대한 드라이버의 유지를 이어받은 단 한 대의 페라리가 되었습니다.*